한국과 UAE의 백년가약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밸리에는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기다리셨던 분이 계셨을까요?
11월 12일에 사내게시판에 연재했던 <지식한스푼>이 1주년을 맞이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소규모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5분을 추첨하여 책을 보내드리는 행사였는데, 무려 139분이 지원하셔서 공정한 추첨을 거쳐 (무려 Gemini 3.0 pro로 프로그램을...) 5분을 선정하여 어제 책을 배송했습니다. (택배비가 20,000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ㅠ.ㅠ)
그래도 이렇게 나누는 것을 저는 참 즐거워해서 다음 기념일이 되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벌써부터 듭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호흡을 아주 길게, 그리고 깊게 가져가 보려 합니다. 커피 한 잔, 아니 주전자째로 진하게 타 오십시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단순한 뉴스나 분석이 아닙니다.
2025년 11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에서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대한민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맺은 '포괄적 전략 동맹'. 언론에서는 "협력 강화" 같은 점잖은 단어를 쓰지만, 이는 앞으로 100년 동안 서로를 먹여 살릴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구축되었음을 천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혼인 신고'이자, 장인이 사위에게 처갓집 곳간 열쇠를 통째로 맡긴 대사건입니다.
1971년, 영국군이 짐 싸 들고 떠나버린 휑한 사막. 건국 선언을 하기도 전에 이웃집 깡패에게 앞마당을 뺏기고 피눈물을 흘렸던 작고 약한 나라가 50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똑같이 힘없던, 하지만 떡잎은 남달랐던 동방의 작은 나라와 손을 잡고 '100년의 혈맹'이라는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기까지의 여정 뒤에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일자무식 청년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대감집 따님의 가정교사가 되고, 무예까지 출중하여 그 가문을 지키는 경호원이 되고, 결국엔 '데릴사위'가 되어 대감마님으로부터 곳간 열쇠를 물려받게 된다는 스토리는 고전 영화에서 자주 다루는 뻔한 클리셰지만 사실 현실은 엄청난 노력과 행운마저 함께 해야 실현될까 말까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135조 짜리 데릴사위가 되기까지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부: 아부다비에 울려 퍼진 21발의 예포
1-1. 숫자로 보는 '최고의 예우'
2025년 11월 18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국가의 궁전'이라 불리는 웅장한 '카스르 알 와탄(Qasr Al Watan)' 앞마당은 긴장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얀 대리석과 22k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돔 아래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국빈 방문의 현장에서는 사막의 건조한 공기를 가르는 21발의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21발의 예포가 흔한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UAE는 의전에 매우 까다로운 나라입니다. 보통 외국 정상이 방문하면 장관급이 공항 영접을 나오거나, 의장대 사열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21발의 예포는 국가 원수급 중에서도 '최고의 예우'를 갖춰야 할 때만 쏘아 올리는 강대국급 의전입니다.

아무리 최고급 의전이라지만 이 장면은 정말....음...뭐랄까...
하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대통령의 직접 영접: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MBZ) 대통령이 공항 트랩 아래까지 직접 걸어 나와 우리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통상 왕세자급이 하던 관례를 깬 파격 중의 파격입니다.
하늘의 에어쇼: UAE 공군 F-16 Block 60 전투기 4대가 대통령 전용기 좌우를 호위하며 비행했고, 아부다비 상공에 태극 문양의 붉고 푸른 연막을 5km나 수놓았습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2019년) 이후 두 번째로 제공되는 극진한 예우입니다.
낙타와 기마대: 궁전 입구에서는 50기의 낙타 기병대와 30기의 아라비아마 기마대가 도열해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는 2019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문 때보다 규모가 30%나 더 큰 환대였습니다.
도시를 덮은 태극기: 아부다비의 랜드마크인 에티하드 타워, ADNOC 본사 건물 등 15개 주요 건물 외벽이 LED 조명으로 태극기를 띄웠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환영을 넘어 UAE가 전 세계에, 그리고 특히 주변국(이란, 사우디)에게 보내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한국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다. 우리의 가족이다."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Mohamed bin Zayed Al Nahyan), 흔히 MBZ라고 부르는 UAE 대통령은 특유의 온화하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우리 대통령을 맞이했고, 두 정상은 이날 매우 중요하고도 충격적인 문서 하나에 서명합니다.
이름하여,
"다음 세기를 향한 공동의 여정(A New Leap toward a Shared Journey for the Next Century)".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외교적 수사(Lip service)를 걷어내고, 덕왕식으로 쉽게 풀이해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우리 둘은 한 이불 덮고 자는 운명 공동체다. 이혼은 없다."
내용을 뜯어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지다 못해 턱이 빠질 지경입니다.
에너지: "한국이 기름 떨어져서 공장 멈추는 일 없게, 내 개인 금고(유전)를 한국에 열어주겠소. 금고를 한국(한국석유공사 기지)에 두고 급하면 사돈네가 먼저 써도 좋소. 일단 1,000만 배럴 정도면 되겠소? 부족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시구려."
미래 기술: "OpenAI 하고 마이크로소프트랑 1,000억 달러(약 135조 원) 짜리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라는 걸 하려고 하는데, 자네가 알다시피 난 돈만 있지, 기술 같은 건 잘 모르지 않소? 그러니 자네가 다 맡아서 지휘해 주시게. 반도체야 뭐 자네가 다 알아서 해줄 테고, 전기도 많이 필요하다고 하니 전력망도 다 알아서 깔아주시게나."
국방: "사돈네가 요즘 KF-21이라는 새로운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참모총장도 타보고는 정말 좋다고 하더군. 듣자 하니 동네 양아치(인도네시아)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푼돈 몇 푼에 잔머리 굴리는 의리 없는 놈은 제끼고 그거 나랑 하세나. 얼마면 되겠는가? 아무 걱정 마시고 연구나 하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석유(에너지), AI(미래 먹거리), 국방(생존)이라는 3대 급소를 서로 완전히 공유하기로 한 겁니다. 이건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아닙니다. 서로의 운명을 묶어버린 '세기의 결혼식'입니다.
1-2. 왜 지금인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특별한 이유는 타이밍에 있습니다. 취임 후 첫 양자 국빈 방문지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아닌 UAE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중동에서 대한민국의 베이스캠프는 UAE다"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입니다.
특히 G20 정상회의 참석차 남아공으로 가는 길에 UAE를 들른 것은, 다자 외교 무대보다 실리적인 양자 경제 외교를 우선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방문 5일 전인 11월 13일에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특사로 미리 날아가 실무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보통 국빈 방문은 외교부 실무진이 준비하는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직접 나선 것만 봐도 이번 방문이 단순한 악수나 하러 간 게 아닌, 철저히 경제적으로 계산된 '수주전(受注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돈 많고 친구 많은, 전 세계가 러브콜을 보내는 UAE는 왜 하필이면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에게 이렇게까지 진심인 걸까요? 미국도 있고 중국도 있는데 말이죠.
그 절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그들의 가장 아팠던 기억, 1971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합니다.
2부: 1971년의 트라우마 - "힘없는 평화는 비참하다"
오늘날 두바이의 화려한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 경찰차가 람보르기니인 세상을 보면 상상이 안 가지만, 건국 초기 UAE는 그야말로 '돈만 있는, 힘없고 약한 빵셔틀 같은 아이'였습니다. 더구나 동네에는 이란이나 사우디 같은 무시무시한 형들이 득실거리는데, 믿었던 보디가드가 도망가버린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2-1. 믿었던 영국의 '먹튀' (1968~1971)
19세기부터 페르시아만 연안의 7개 부족 국가들(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등)은 영국의 보호령 아래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들을 '트루셜 스테이트(Trucial States)'라 부르며 치안을 담당해 주었습니다. 일종의 월세 받는 유료 경호원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1968년, 영국 노동당 정부가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을 합니다.
"우리 재정이 좀 힘들어. 파운드화 가치도 떨어지고... 돈 없어서 이제 그만 집에 갈래.
수에즈 운하 동쪽으로는 군대 다 뺄 테니 그리 알아?"
당시 아부다비의 통치자이자 UAE의 국부인 셰이크 자이드(Sheikh Zayed)는 기가 찼습니다. 당장 호랑이(이란)와 사자(사우디)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 보호자가 사라진다니! 그는 다급하게 제안했습니다.
"가지 마시오! 빼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빤스런이오? 군대 주둔 비용, 우리가 전액 다 대겠소!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제발 있어만 주시오!"
하지만 영국은 냉정했습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책 문제요. 우린 갑니다. 굿럭."이라며 짐을 싸서 1971년 말 훌쩍 떠나버립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분쟁의 원인의 반은 역시 영국이라는 것을 다시금 각인시킴과 동시에 UAE 지도부의 뇌리에는 씻을 수 없는 교훈을 남깁니다.
"강대국이란 놈들은 지들 이익이 안 맞으면, 우리가 돈을 싸 짊어지고 가도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다.
돈으로 평화를 살 순 없다. 진짜 힘,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2-2. 건국 이틀 전의 치욕: 1971년 11월 30일
비극은 영국군이 떠나자마자 현실이 되었습니다. UAE가 정식으로 건국(1971년 12월 2일)되기 딱 이틀 전인 11월 30일 새벽. 페르시아만의 패권국을 자처하던 이란(당시 팔레비 왕조)이 군함을 몰고 쳐들어옵니다. 목표는 호르무즈 해협의 목줄을 쥔 전략 요충지, 아부 무사(Abu Musa) 섬과 툰브(Tunbs) 섬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걸프 지역의 경찰'을 자처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었고, 영국이 떠난 힘의 공백을 노린 것이죠.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섬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유조선들의 목덜미를 잡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이곳을 뺏기면 UAE는 앞마당을 내주는 꼴이 됩니다.
당시 그 섬을 지키던 건 고작 라스 알 카이마의 경찰 6명. 그들은 소총을 들고 이란의 구축함과 정규군 상륙부대에 맞서다 전원 사살당합니다. 이란은 섬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나려는 신생국 UAE는 자기 영토가 유린당하고 국민이 쫓겨나는 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력감'과 '공포'. 이것이 바로 UAE의 DNA에 새겨진 원초적 트라우마입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이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다시는 이런 꼴을 당하지 않겠다.
우리에겐 진짜 힘, 그리고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이것이 UAE가 지난 50년간 그토록 강한 군사력과 믿을 수 있는 동맹에 집착해 온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안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으니까요.
3부: 한국을 향한 '러브콜'의 변천사 - 마당쇠에서 사위까지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일까요? 미국도 있고, 영국도 있고, 프랑스도 있고 심지어 UAE의 제1의 경제 파트너인 중국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몇십 년간의 관계의 역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그들의 '원픽'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UAE에게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신분 상승 성장 드라마' 같습니다.
3-1: 1970~90년대 "애는 착해" - 성실한 마당쇠
1970년대, 오일쇼크로 돈방석에 앉은 중동은 건설 붐이 일었습니다.
선진국 기업들은 "더워서 못 해", "돈 더 줘", "조건이 안 맞아"라며 콧대를 세웠죠.
더워. 땀 나. 피부 상해.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게 바로 한국 기업들이었습니다.
현대건설, 동아건설의 전설: 1977년 현대건설이 아부다비 첫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당시 계약 규모는 2억 달러(현재 가치 약 10억 달러)였죠. 섭씨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횃불을 켜고 야간작업을 했습니다. "빨리빨리" 정신으로 공기를 단축하고, 품질은 완벽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인프라를 까는 그들의 모습은 현지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감동 포인트: 라마단 기간(이슬람의 금식 기간)에는 현지인들을 배려해 물도 몰래 숨어서 마셨다는 일화는 현지 왕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합니다. 일도 잘하는데 예의까지 바른 겁니다.
이때 UAE는 한국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얘네 진짜 성실하네? 시키면 군말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데 착하기까지 해?"
UAE는 그렇게 돌쇠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3-2: 2000년대 "착한데 공부까지 잘해!" - 바라카의 기적
세월이 흘러 2000년대, UAE는 '석유 이후(Post-Oil)'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름이 말라버리면 우린 뭐 먹고살지?" 그래서 선택한 게 첨단 기술과 원자력 발전이었습니다.
2009년, 200억 달러(약 25조 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 입찰 당시 세계는 원전 종주국인 프랑스(아레바)나 기술의 일본이 승리할 거라 점쳤습니다. 한국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라고 봤지요.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승자는 한국전력 컨소시엄이었습니다.
왜 한국이었을까?: 강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스는 당시 핀란드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 건설 현장에서 2005년 착공하여 4년 후인 2009년에 완공 예정이었던 공기를 계속 지연시켰고 당초 대비 예산 또한 초과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올킬루오토 원전 3호기는 2023년 4월에 가동을 시작했고 예산은 최초 대비 3배 이상 초과함)
반면 한국은 과거부터 꾸준한 실적을 통해 "우리는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예산으로 완벽하게 짓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제시한 가격도 프랑스보다 14억 달러 이상 저렴했습니다.
바라카의 기적: 한국은 사막 한가운데에 APR1400이라는 3세대 한국형 원전을 무려 4기나 지었습니다. 모래폭풍과 폭염을 뚫고,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원자로를 설치했습니다.
납기 준수와 완벽한 운용: UAE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무서운 실행력을 다시 한번 목격했습니다. 프랑스가 약속을 어길 때, 한국은 약속된 공기 안에 원전 4기를 모두 완벽하게 지어 올렸습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 위에. 2024년에는 바라카 원전 4호기까지 모두 상업 운전을 시작했고, 현재 이 원전들은 UAE 전체 전력 수요의 무려 25%를 담당하며 사막의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의 지위는 수직 상승합니다. 이제 한국은 단순한 일꾼이 아니라, UAE에게 에너지 자립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해결해 주고 미래를 제시하는 '실력 있는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UAE에게 한국은 대략 이런 느낌 (애니: 사카모토 군)
3-3: 2010년대 "싸움까지 잘해!?" - 아크부대와 K-방산
하지만 UAE의 가슴속엔 여전히 1971년의 안보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란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하고, 예멘의 후티 반군은 미사일을 쏘아댔습니다.
어느 달 밝은 밤, 정원을 거닐며 한숨을 쉬던 마님을 발견한 가정교사 한국이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물었습니다.
아부다비의 외로운 달은 마님의 마음 같아라
"마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아… 한국이 자네인가… 동네 깡패들이 날마다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에 힘쓰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뾰족한 수가 없음이 답답하여 그러네."
마님은 고개를 떨구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이를 조용히 듣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