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 온 885시간
이 글은 제가 회사 게시판에 올린 올해의 결산이자 감사인사로써, 밸리 식구들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감안하고 봐주십시오. :-)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2025년 12월 23일 밤 11시, 마지막 글을 쓰고 있습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보니, 올 한 해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누군가는 "주마등이 스친다"는 표현을 죽을 때나 쓴다고 하던데, 글쎄요, 저의 2025년은 그 표현 외에는 마땅한 것이 없을 정도로 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1년간 총 885시간을 들여 게시판에 59개의 글을 쓰고, 292,613회의 조회수, 7,377개의 공감, 그리고 1,960개의 소중한 댓글을 받았습니다. 885시간은 주중에는 두 시간씩, 주말에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거의 고3처럼 공부했던 저의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계산입니다. 아마 조금 더 넘을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어디 갔니? 내 주말?"을 외칠 정도로 10시간 이상 몰입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숫자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숫자 뒤에 계신 분들,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며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따끔한 조언으로 덕왕을 일으켜 세워주신 분들입니다. 그 이야기로 을사년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1월, 다시 시작이라는 이름의 설렘
2025년의 첫 글은 루디아드 키플링의 시 'If'였습니다. "만약 네가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라는 구절은 덕왕의 한편에 좌우명처럼 새겨진 문구입니다. 그 시를 여러분과 나누며 한 해를 열고 싶었습니다. 새해 첫날의 다짐이란 대개 작심삼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 시를 보면 의지가 샘솟았기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1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삼국지 인물열전이었습니다. 연초부터 40시간을 투자해서 쓴 글인데, 어떤 분이 댓글로 "40시간이면 회사에서 일주일 근무시간 아닌가요?"라고 하셔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그건 회사 업무 시간 외에 따로 40시간이었는데 아마 지금은 알고 계시겠지요. 정말 엄청나게 조사하고 글을 쓰고 또 다듬고, 각 인물들의 사진을 보정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무엇이든물어보세요님께서 "요즘 나이가 든 건지 게임 속 NPC가 된 듯 씁쓸한 기분"이라며 남기신 댓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삼국지의 영웅들도 결국 누군가의 서사 속 NPC였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내가 주인공도, NPC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댓글에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자가되고싶니님은 글을 쓸 때마다 "동오의 진정한 왕은 덕왕뿐"이라며 칭송해 주셨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으시네요. 사라지신 건지, 닉변하신 건지 알 수 없군요.
2월, S&P500과 씨름하던 날들
2월에는 S&P500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자료 조사를 참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의 역사를 파헤치다 보니 1929년 대공황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인류가 얼마나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제게도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남녀칠세부동산님께서 "엄청난 정성에 제곱, 세제곱으로 비례하는 양질의 내용을 편하게 볼 수 있어 감사하다"라고 하셨고, 인버스도국장이다님은 "이건 진짜 개추를 누를 수밖에 없다"라고 해주셨습니다. 그 댓글들을 보며 새벽까지 자료를 뒤지던 저의 수고가 보상받은 듯했습니다. (그리고 만성피로를 얻었습니다)
2월 말에는 21세기 산업의 후추라고 불리는 희토류에 대해 열심히 썼습니다. 내심 좋은 반응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많은 공감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만큼 지식으로 남았습니다.
봄, 그리고 침묵
3월의 기억은 강렬했습니다. 희토류 2편을 올리고 나서, 덕왕은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저의 존재 가치는 부정당했고 글을 쓴다는 것,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때의 저는 겨우 숨만 쉬며 목숨을 연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둠에 빠진 시간이 길어질 때쯤 게시판에서 저를 찾아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딱딱한꿀고구마말랭이님. 정말 우연하게 본 글이었습니다. 그 호출이 없었다면, 덕왕은 아마 2025년을 여기서 끝냈을지도 모릅니다. 방황하는 저의 이름을 불러주시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4월, This Time Is Not Different
4월 9일, 오랜 침묵을 깨고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This Time Is Not Different".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고구마말랭이님의 호출로 인해 쓰게 된 글은 시장도, 인생도, 결국 사이클이 있고 바닥이 있으면 반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그 글은 독자분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너진 저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보면 부족한 글이지만 당시로서는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날 댓글창은 제가 예상하지 못한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블루베리요거트님과 맑음님의 위로, "러키비키!"를 외쳐주신 크라토스님, 리스너님, 버핏처럼님, 미국장을했어야하는데님. 워너비리치님은 "인생의 또 한 계단을 오르고 있는 덕왕을 응원한다.”라는 감동의 댓글을 주셨고, mumumu님은 복귀를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날 밤, 퇴근 후 방에서 조용히 울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랬답니다. 화면 너머의 글자들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이 당시 여러 책을 우연하게 읽었는데, 제가 예전 글에서 썼듯이 하나같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련은 소명을 찾는 여행이라며 저를 들어 올렸습니다. 마치 귀멸의 칼날 마지막에, 무잔에 의해 혈귀가 되려 하는 탄지로를 죽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This time is not different. 이 글의 제목처럼 어두웠던 시간들 역시 저를 정금같이 단련하기 위한 수련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일어났습니다. 그 글에는 이와 같은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글을 쓰며 저의 어둠은 끝났습니다.
5월과 6월, 다시 달리기 시작하다
기운을 차린 덕왕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5월에는 ‘식량자원'과 ‘아이스크림의 역사'에 대해 썼습니다. 어떻게출근까지사랑하겠어널사랑하는거지님(제발 닉네임을 어떻게 좀…)께서는 "덕왕과 같은 회사를 다녀서 쫄아들었던 자부심이 생겼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닉네임의 길이만큼이나 긴 감동이었습니다.
5월 말에는 ‘가장 행복했던 대통령, 호세 무히카’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대통령이라 불렸던 우루과이의 지도자. 구태원클라쓰님께서 "일생에 한 번쯤 그런 대통령을 만나 자녀와 후손을 위해 진심으로 투표하고 싶다"라고 하셨을 때, 가슴 가득한 애민정신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본좌의 가슴을 터치터치001하시다니, 제법이시군요)
6월에는 대선 이후 '확신의 함정, 우리 안의 괴물'을 썼습니다. 정치적인 글은 늘 조심스럽지만, 써야 할 때는 써야 합니다. 더 이상의 분열은 우리나라에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글에 단골이신 어떻게출근까지사랑하겠어널사랑하는거지님(제발 닉네임을…)께서는 "우리 아들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라고 덕왕을 흐뭇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찍먹부먹vs다먹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은 훗날 '생각을 멈춘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댓글 하나가 새로운 글의 씨앗이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소통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6월에는 COSTCO에 대한 분석글을 썼습니다. 닉네임을뭘로해야하나님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