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이란 전쟁 이야기를 한번 다루고 싶었지만, 에이전트랑 노느라 시간을 못 냈음. 얼마전에 맥미니도 도착해서, 오픈클로랑 이것저것 해보느라 더 정신없기도 했고. 에이전트 이야기도 할 얘기가 워낙 많기는 한데, 조만간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란 이야기
서론이 길다
긴 얘기를 하려면 본인의 세계관을 먼저 서술하는 게 유용하다고 생각함. 그러나 다들 아는 이야기일 수 있어서, 지루해질 테니 넘길 사람은 그냥 넘기고 다음 파트부터 읽으면 됨. 영웅사관, 아날학파, 대층 이런 이야기 할 거임
역사관의 역사
인류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음. 대략 세 개의 축이 있음
1) 신의 섭리
중세까지의 역사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 그 이전 그리스-로마 때에도 신의 이야기가 있었고, 이집트 문명 때도 마찬가지였음.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불규칙한 변동에 대한 가장 간편한 설명, "신의 뜻이다."는 당연히 가장 먼저 나오는 세계관임
중세까지 이 세계관이 지배했었음. 역사는 정해져 있고, 인간은 그 내막을 알지 못함. 그저 신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인간의 의무임. 근데 문제는 이 신이 나의 신일 뿐인 거라서, 다른 신을 믿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함. 애초에 신이 여럿이면 별 상관이 없는데, 유일신을 믿으면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인정하는 행위 자체가 배교 행위가 됨. (흥미롭게도, 이슬람은 유일신이면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인정함. 신은 하나(알라)이고 그때그때 신의 뜻을 알리는 예언자를 인간 세상에 내려보내는데, 순서대로 모세, 예수, 모하메드임. 이슬람 입장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냥 선배들임. 근데 선배가 "나는 그런 후배 모른다" 하니까 서운함)
현대 관점에서 보자면 신의 섭리라는 세계관은 정치도구로서 작용한 면이 큰데, 신의 섭리를 믿는 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해석 자체를 용납할 수 없음
사실 이 세계관은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있음. 미국 입장에서 이란 공격은 미국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을 격파하는 일임.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고. 마찬가지로 이란 입장에서 미국의 공격은 이교도의 침략임. (중동 친구들의 세계관은 현대사회에 적응하기가 상당히 빡센데, 이슬람 교리가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그들 교리에 잘 안 맞음. 중동의 각'국'은 성립부터 서방의 입김에 따른 것이었고, 세속의 국가 지도자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이슬람 교리에 끼워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음)
2) 영웅주의
우리가 어린 시절 들어왔고, 지금도 자주 보이는 세계관이 영웅사관임. 시대는 몇몇 특출난 리더의 지도력으로 인해 변함. 따라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웅들이 자라온 과거, 유년시절 환경, 어떤 역경을 이겨냈고 어떤 인연을 맺었는가, 어떤 성격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아야 함
계몽주의 이래 영웅사관이 대두되었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임. 신의 섭리라는 자리를 과학이 조금씩 치고 들어오면서, 인간이 신의 보호 아래 그 뜻을 따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두 발로 걸으면서 자기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개념이 기저에 자리함
그러면서도 신의 섭리라는 관점과 공유하는 지점이 있는데, 다수 인간의 의지보다는 그들을 이끄는 특출난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서 각 개인은 리더들의 대립에 쓸려다니고, 리더를 떠받들고 보호받는 존재가 됨
현재도 영웅사관은 자주 찾아볼 수 있음.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을 '미친 트럼프' 한 명의 독단으로 해석하는 것임. 이런 세계관에서는 트럼프 한 명 제거하면 세계에 평화가 찾아옴. 이스라엘은 네타냐후를 제거하면 되고, 이란은 하메네이를 제거하면 되고, 중국은 시진핑을 읍읍하면 됨.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암살하면 독일이 2차대전을 일으키지 않음. 그러나 세상이 그러한가?
3) 아날학파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철학에서 말하는 구조주의와는 좀 다른 느낌인데, 아무튼 전반적인 구조에 집중함. 다수 인간 무리가 처해있는 구조적인 환경 하에서, 흘러가는 어떤 줄기가 있고, 그 줄기들이 교차되면서 일이 일어난다는 것. 사건은 큰 흐름의 파편일 뿐임. 리더를 제거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는 않음
2차 세계대전은 베르사유 체제의 어설픔 - 패전국을 너무 심하게 압박했고, 해야 할 조치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고, 가장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자가 발을 빼버려서 강제력을 가지기 어려웠던 체제 - 에서 파생된 어쩔 수 없는 귀결 - 하이퍼인플레이션, 실업, 기존에 남아있던 높은 생산성과 제조기술 등 + 공산주의 물결에 대응하는 군국주의 - 임
인간의 선택압으로 작용하는 구조적인 요소는 복합적인데,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지리, 기후, 천연자원 등, 중기적으로 변하는 인구구성, 기술발달, 주변국과의 관계 등, 단기적인 경기변동, 자연재해, 리더십 교체 등의 이벤트가 있음
아날학파에 대한 반박으로 문화나 제도와 같은 인간의 선택을 들기도 하는데, 그 또한 큰 범주에서는 구조의 한 축이라, 학술 분파 간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음
이 외에도, 어차피 이런 분석이 다 무의미하고, 모든 건 다 우발적인 일들의 연속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를테면 프란츠 공 암살 사건이라든가, 나가사키 원폭이라든가('고쿠라의 행운'을 검색해보시길).. 근데 이런 건 원래 모든 단일 사건에는 다양한 우발적인 사건들이 겹쳐있는 건데, 그걸 가지고 전체 구조의 힘을 부정하기는 무리이므로 패스 (이쪽은 과거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암살할 필요도 없다는 쪽. 만 명의 히틀러가 태어나서 나치의 리더가 되는 경우는 우리 세계의 히틀러 한 명뿐이라는 사고.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없음)
종합
내가 바라보는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아날학파의 관점임. (원래 그런 단어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분류표를 보니까 그쪽이었음.) 그렇다고 영웅사관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음. 기본적으로 국가의 선택에는 선택권자들에게 부과되는 여러 선택압이 있고, 선택압이 허용하는 여러 범주 하에서 각 지도자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선택을 한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음
이쪽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책으로 그레이엄 앨리슨의 '결정의 본질'이라는 책이 있음. 매우 재미없지만 매우 유익한 책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도 더 잘 알려진 분인데, 그 책보다는 이 책이 훨씬 유익함
투자를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바텀업을 중시하지만, 국제정세를 볼 때에는 탑다운 관점을 취함. 애초에 국제정세라는 게 매크로에 해당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국제정세에서는 수많은 가설이 난립하고, 그 대부분의 가설은 그 가설 자체의 신빙성 보다는 본인의 세계관(선악구조)를 강화하느라 끼워맞춘 가설이 많아서 신뢰하기 어려움. 그러므로 국제정세를 볼 때에는 여러 줄기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줄기들을 잡고, 거기서 그때그때 필요한 여러 갈래들을 통합해나가는 게 현실적이면서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있음
그런 측면에서 미국을 바라볼 때 시드가 되는 줄기는 두 가지임. 하나는 '바텀업', 하나는 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지역들이 시드를 언급해보자면, 중국을 볼 때에는 '대국', '공산당'이고, 중동을 볼 때에는 '이슬람', '이스라엘'임. 유럽은 '은퇴', '분열'. 한국은? '주변국', '인구밀도', '교육열' 정도?
미국은 이란을 왜 공격하였나
이제 본론을 시작함. 주변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애초에 미국이 이란을 왜 공격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았음. 아니 뭐 나라고 뭘 '아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어이없고, 예측불가능했고, 부도덕하고, 명분 없고, 몰상식하다는 시각이 많아서 놀랐음. 뭐 미국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미 베네수엘라 작전때부터 미국은 군사행동 옵션을 우선순위 상단으로 옮겨놓았고, 이란 시위때부터 군사개입을 언급해왔었음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었음
국제정세에 어지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작년에 중동이 시끌시끌했다는 건 알고 있을 거임. 서로간에 본격적인 미사일 공세가 있었고, 삐삐에 폭탄을 심어서 한 번에 요인을 암살했다거나 하는 뉴스도 봤을 거임. 작년에는 아예 이스라엘과 미국이 합동으로 이란을 공격하기도 했었음. 타임라인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고마워 클로드. (퍼플렉시티로 교차검증함. 대략 맞다고 함)
주로 이스라엘이 주도하긴 했지만, 미국도 상당한 수준으로 개입해왔고, 여기에 사우디, 중국도 개입되어있음. 생각보다 복잡하고 위험하고 중대한 사안들이 벌어지고 있었음
공식 명분
우선 미국이 이야기하는 공식 목표는 크게 네 갈래 (사람마다 발언이 조금씩 다르긴 함)
핵 위협 제거 - 트럼프의 주된 프레임.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게 할 수 없다.
선제적 자위 -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의 발언.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할 것이고, 이는 이란의 대 미국 공격을 촉발할 것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제거하기로 했다.
재래식 군사 위협 - 국방장관 피트 해그세스의 발언. 탄도미사일, 드론 무기고 등이 핵무장을 위한 방패가 되고 있었음
인도주의적 명분 - 1월 이란 시위 때 트럼프는 발언 수위를 높여왔고, 전쟁 이후에도 "너희의 정부를 가져라"라고 레짐 체인지를 암시
이게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은 다른 여러 가설을 갖다붙이는데, 사실 나도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임. 2번 선제적 자위는 국제법상의 전쟁명분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 같으니 제거, 3번 재래식 군사 위협은 1번에 종속되니까 제거, 4번 인도주의적 명분은 굳이? 특히나 미국은 타국의 레짐 체인지에 개입했다가 크게 쓴맛을 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저게 주 이유가 될 수는 없음. 저게 이유라면 유엔을 소집했어야지.
그러나 1번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는 된다고 봄. 이란의 핵무장은 이란 하나만의 문제가 아님. (물론 이란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임.) (미국보다는 이스라엘에 더 큰 문제.) 그간 핵무장을 포기한 나라들이 어떤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는지 독재자들은 다 알고 있음. 그리고 어떻게든 핵을 갖춘 나라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알고 있음. 그러니 독재자 입장에서 핵무장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카드이고, 이걸 포기했을 때 미국으로부터의 확실한 안전보장을 획득해야 함. 미국과 친하게 지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임. 근데 미국은 친하게 지내다가도 언제 등 돌릴지 모름
핵무장을 원하는 모든 나라들의 이목이 이란에 쏠려있기 때문에, 이란이 핵무장에 성공하는 이는 다른 나라들의 연쇄 핵무기 확보로 이어짐
맨처음으로 돌아가서, 미국의 행동을 설명하는 시드는 두 가지, 바텀업과 힘이라고 했음. 여기서 힘이라 함은, 1등 국가로서의 지위를 이야기함. 미국이 1등 국가인 이유는 군사력이고, 군사력에서 현재의 달러 기축통화 체제, 경량기업들의 고수익성 체제가 유지됨. 군사력으로 세계의 교역로를 유지하고 달러를 사용한 금융시스템이 편리하기에 다른 국가들은 그 체제를 사용하는 것임.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이 힘을 누린다는 '달러 패권' 이론이라든가,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면서 기축통화 체제를 유지한다는 '페트로달러' 이론은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함. 기축통화여서 힘을 누리는 게 아니라 힘이 있어서 기축통화가 되는 것임. 그리고 석유 달러 결제는 이미 깨졌음. 근데도 달러는 멀쩡하잖아.)
미국이 미국이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국가여야 함. 이미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미국을 이길 자가 없으나, 핵전력은 이야기가 좀 달라짐. 국가 간 협상의 대원칙은 국가의 의도보다는 국가의 역량이 우선순위임. 무엇을 하고자 하느냐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 ('크로 메모랜덤' 검색해보시기 바람.) 북한이 현재 생존해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핵무기임. 핵이 없었더라도 중국 입장에서 완충지대로 남겨둘 이유는 충분하지만, 핵이 없는 북한의 지위는 아프간이나 파키스탄 정도일 것임
그래서 핵 위협 제거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함. 문제는 핵 위협이 대중 레벨에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곧' 완성될 예정이었는가 하면 그건 우리는 모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이스라엘이 강력하게 위협을 느꼈고, 미국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뿐임
비공식이지만 설명 가능한 명분
그리고 또 한 가지.
미국의 대전략의 시드는 바텀업과 힘인데, 미국의 중동 전략을 바라볼 때 시드는 하나가 추가됨. 셰일 오일임. 미국은 2010년대 초반 셰일가스/셰일오일이 대중화되었고, 2010년대 후반이 되면 석유 순수출국이 됨. 미국은 태생부터 안보를 지극히 걱정하는 나라였음. 애초에 미국이 'United' States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구대륙으로부터의 침공에 맞서기에 연방이 되는 게 유리했기 때문이 컸음. ('페더럴리스트' 참고.)
1차대전 이후 오일이 주요 에너지원이 되면서 미국의 대전략에서 중동의 중요도가 올라감. 그전까지는 중동은 그냥 사막에서 낙타 타고 교역하는 친구들이었고, 오스만 제국 휘하의 불모지였음. 1차대전 끝나고 땅따먹기 하던 중에 석유가 발견됨. 1900년대 초중반 중동은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의 무주공산, 새로운 식민, 산유지 같은 느낌. 힘없는 빈땅인데 석유가 나네? 히힛 내꺼! 하는 곳
중동 친구들은 당연히 못마땅했고(못마땅한 사유는 이거 말고도 많음), 이슬람 왕국을 결집하고 싶었으나 이스라엘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 그러다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