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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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옹이
2026.04.01조회수 1,955회

현재 미국-이란 전쟁을 보면서 다양한 담론이 오가고 있고, 짧게 한 숟갈 생각을 얹었는데, 여기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져서, 아 역시나 말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하나의 국제정세 이벤트가 일어날 때에는, 언제나 다양한 층위의 압력이 존재한다. 인간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어떤 '미친' 리더가 있다 해서 그 조직이 다같이 미쳐 날뛰지 않는다. 조직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 일이 그렇게 되게끔 만드는 다양한 구조적이거나 산발적인 압력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이벤트의 원인을 설명하는 그럴싸한 이유 한두 개를 발견했다 해서, 그것이 다른 층위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걸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지난 글


오늘은 협상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국인들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고, 현대 사회는 그 역량이 각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서 매우 뿌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유독 취약한 역량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협상이다. (신기하게도 외교부에서는 나름대로 협상을 잘한다. 어느 나라에든 특출난 역량을 지닌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다행히도 협상을 할 줄 아는 희귀한 인재들이 외교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 같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한국의 고위 행정가들의 역량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한국인들은 협상에 대해서 상당히 단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체스를 두듯이 서로 수를 하나씩 내놓고, 주거니 받거니 양보를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하고, 더 많이 양보한 사람이 패배자가 되고 더 많이 얻어낸 사람이 승리자가 되는 식.


뭐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실제 협상이라는 건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협상에서 누가 이겼느냐 졌느냐도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협상이라는 건 한 번에 끝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 중의 한 '표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에 더욱 부합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협상 전문가가 전혀 아니며,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듯) 살면서 협상이란 걸 해본 경험이 많지도 않다. 그래도 최근의 판을 보아하니 평균적인 한국인보다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겠다 싶어서 이 글을 적는 것이며, 본인이 협상에 대해서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글에서 새롭게 얻을 것이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 글을 닫고 나가는 것을 권한다.


이 글이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한 국가의 지도자를 미치광이로 규정짓지 않고서는 이 현상이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한 국가의 지도자를 미치광이로 규정하는 것 이외의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 또한 지금 당장 이 글을 닫고 나가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계정을 차단하고 다시는 이 자리에 발을 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에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악한 사람'은 '자국민을 학살한 지도자' 정도이다. 누군가를 선과 악으로 쉽게 가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와 대화가 안 통할 가능성이 높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당장 나가길 권한다.)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많은 걸 이야기한다. 상대방이 나로부터 원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줄 생각이 있으며, 그 과정을 대화로 풀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나와 상대방 양자 사이에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맞닿아서, 그가 협상에 임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안다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두 행위자가 서로에게서 주고받을 게 있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희귀한 일이다. 내가 대뜸 어디엔가 취업을 하겠다고 해보자. 저 회사에 빈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내가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상대방도 알아야 한다. 내가 에스엠엔터의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 한들, 누가 귀기울여주겠는가. (내 최애는 윈터다.)


미국이 작년 4월 2일에 던진 관세 전쟁은 협상이다. 협상 테이블을 벌렸으니 협상안을 가지고 테이블로 오라는 뜻이다. 많은 국가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협상이 이루어졌다. (협상의 이행은 또 다른 이야기다.) 당시에 수많은 호사가들이 미국이 제시하는 관세 공식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무의미하다. 미국은 계산을 정교하게 할 필요가 없다. 정교한 계산은 약자들이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누구의 공식이 '옳으냐'가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얼마의 가격을 제시하느냐이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으면 합의가 되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거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것은 협상이 아니다. 그냥 행동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은 2025년 내내 마두로를 압박했지만, 마두로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으니 필요한 행위를 했다. 그뿐이다.


그린란드 협상이 사실 트럼프 2기 협상의 백미인데, 2025년의 협상에서 미국은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 상대를 초대했지만,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강요하는 플레이였고, 미국은 협상 테이블이 열리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관세는 그냥 매기고 진행해도 그만이었고, 베네수엘라 또한 사전 경고 없이 무력을 행사해도 됐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이기고 전쟁을 시작한다, 손자병법의 주요 책략이다. 트럼프는 손자병법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린란드 협상은 내가 이해하는 바 트럼프 2기 협상에서 가장 불리한 협상이었다.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멀쩡한 땅 위에 갑자기 미군기지를 대거 증강한다고? 희토류 통제권을 확보한다고? 누가 응하겠나? 덴마크는 그저 코웃음치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앵커가 등장한다. '앵커'는 협상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처음에 내가 원하는 바를 던지고 거기서 조정해나가는 거다. 영업전략에서 앵커는 세게 던질 수도 있고 약하게 던질 수도 있다. 외교 협상에서 앵커는 일단 세게 던지는 게 기본이다. 외교에서 앵커는 나는 이 이상으로는 무엇도 바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것도 변주가 있긴 한데, 약하게 던져서 협상테이블에 앉은 다음에 상대방이 서명하기 직전에 "안 할래" 하면서 판을 엎는 방법이 있다. VC의 스타트업 투자나 M&A 협상에서 종종 보인다. 국가 간 협상에서도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있다. 양아치 소리 듣겠지만.)


앵커에 대해서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일은 아마도 옛날에 용산전자상가에 전자제품 사러 갔을 때일 것이다. 용산의 형아들은 항상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를 묻는다. 상대가 먼저 앵커를 던지도록 해서 거기에 나의 가격을 맞춰가는 거다. 여기에 대응해서 진짜 얼마까지 알아봤는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내가 실제 알아본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 노련한 형아들은 "그 가격에는 못 팔고요. 그 집 가서 사세요." 한다.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뒤돌아서면 "아 잠깐만" 하고 잡는 경우가 가끔 있다. 요새는 온라인 최저가로 구매하니까 이런 걸 경험할 일이 적다. (꼰대가 되었다.)


각설하고, 트럼프의 첫발은 합병이었다. 갑자기? 물론 이전에도 언론에 솔솔 보도가 되었다. 그런 다음에 일단 합병을 던지고, 합병에 반대하는 국가들에게 관세를 던졌다. 그리고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고 무력 시위를 했다.


관세? 2025년 한 해 내내 떠들썩하다가 이제 좀 소강상태에 오지 않았나. 그 악몽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력시위? 바로 직전에 주권국가에서 특수작전을 실행하여 대통령의 신변을 확보하지 않았나? 그런 직후에 그린란드과 유럽 국가들에 대고 이 카드들을 다 던진 거다. 앞서의 이 뉴스들이 없었다면 관세나 무력시위가 그냥 헛소리로 들렸겠지. 그러나 그 '트럼프'니까 이게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설마 설마 싶기는 해도, 진짜로 무력침공을 하려나 하는 생각이 단 1g이라도 드는 거다.


그렇게 협상테이블에 앉았고, 다보스 포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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