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각을 훔치는 방법




[기술가능성과 태도]
아래의 글을 읽엇다는 전제 하에 시작한다.
인간의 기호는
어떤 사태에 충돌하여 대처가 있었다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기호가 발생되었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로 인한 것인데,
그 중에서 기호를 채집하고 선별하여 이어놓은 것에 해당한다. 이 작업을 손수 한 것이 \'발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이러한 \'행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걸 읽지 못하면, 그는 다른 것을 읽게 되는 셈이다. 이걸 알고 모르고에 따라 독해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관점에 의해 글이 나오지만
그 글은 관점에 의해 해독된다.
따라서 관점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A관점에서 썼지만 B관점에서 읽히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건 관점을 통제하지 못하면 막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예컨대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108891&page=1&bbs=
이 글을 보자.
이 글에는 마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역시 사태에 대한 자신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는데, 그 결정의 근거가 뭐냐?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잘 보면 \'한다한다한다\'가 밀집되어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게 바로 그가 선택한 \'술어\'에 해당하는데, 이 부분이 이 사람의 태도에 해당한다.
즉, 이게 바로
\'결정\'이라는 사태에 대해서, 저 사람이 반응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 때에 저 사람이 선택한 방식이 곧 저 글에 나타난 기호들로서 나타나 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글을 읽지 않는다면
저것은 단순한 어떤 진리체계로서 전달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논증을 했고
나는 근거를 찾아야 되고, 그에 대해 평가해야되는 초보적인 수준의 분석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행위로서 접근하게 되면
저 사람이 사태에 대해서 어떤 충돌의 형태를 보이는지 보게 되고,
그것을 태도로만 받아들이게 되어, 내가 저 사태와 충돌할 때 살필 수 있는 하나의 유형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저 사태에 마주할 때, 저런 태도를 로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로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로직을 한차원 업그레이드한 방식이다.
왜? 타당성은 기본으로 갖고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전성을 따지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천을 전제하여 실용성을 따진다. (또는 내게 적합한지 나에로의 적합성을 따진다.)
한 사람의 견해는 솔직히 말해서,
그저 견해일 뿐이다.
그것은 진리체계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한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진리증명은 이후에 사후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견해\'에 해당한다. 그냥 내가 보는 바, 그렇다는 것이다. 즉 사태에 대한 일단의 나의 대처방식이다.
일단 이렇게 깔고 들어간다.
이 때에 상대의 이야기는 가치가 폄하되어 있는 상태다.
그는 필시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니가 이 글에 깔려있는 함의는 알기는 아냐?"
이것은 필시, 그가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생각을 훔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이뤄진다.
1. 도려내기
2. 튜닝하기
도려내기란, 한 사람의 태도를 도려내어 가져가는 것이다.
앞서 기술가능성과 태도에서 말했듯이,
저 패턴을 머리속에 환기시킨다음에, 해당되는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내서, 각각에 조각칼을 꽂고, 긁어서 파내가면 된다.
이 비유가 와닿길 바란다.
여기서 얻어야 될 것은, 한 사람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그걸 가져가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내 몸에 이식시킨다.
근데
이 순간 저항이 일어난다.
일단 뉴런의 배열에 맞지 않는 새로운 것이기도 하고,
또한 낯선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에고가 격하게 저항을 보인다. 에고는 나의 것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고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것이 권력적인 것, 뭔가 동경할 수 있는 것, 매혹적인 것, 허락받은 것,
이런 것들이다.
도려낸 것에 대해서
에고의 저항을 가라앉히는 관념의 작업
이것이 튜닝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저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또는 괜찮다 괜찮다 토닥이면서, 내걸로 바꾸는 (내 색을 추가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튜닝이다.
튜닝이 되면, 튜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은 유일무이한 것이 된다.
점 하나 더 찍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된다. 이걸 안하면 그저 복제한듯한 느낌이 들므로, 뭔가 저항을 느낀다.
하지만 튜닝을 하면 내거다.
뭔 상관이랴?
패리스힐튼은 하얀색 스포츠카로 나온 것을 핑크색으로 바꿔버렸다.
그런 차는 세상에 거의 없다. 그래서 이제는 그 회사의 차라기 보다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