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만난 귀한 인연




주말 일본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적은 글입니다.
저는 지금 일본 마쓰야마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내어준, 수의처럼 희고 인도 옷처럼 긴 잠옷을 걸친 채, 오늘 있었던 우연하고도 특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오랜만의 해외순방은 순조로웠습니다. 맛있는 현지 음식에 마음이 들떴고, 돈키호테에서의 쇼핑은 소소한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저렴하고 맛있는 이자카야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참에 소중한 인연, 혹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인생이란 참 예측하기 어려워서, 그저 스쳐 갈 줄 알았던 순간이 때로는 깊은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이 밤, 한 청년과의 만남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빼곡한 한자 메뉴판 앞에서 난감해하던 제게, 한 청년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자신을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이라 밝힌 그는, 참으로 예의 바르고 선한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 친절함은 이후 이어진 대화 내내 한결같이 배어 나왔습니다. 혼자 여행을 왔다는 청년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화는 자연스럽게 고국의 여러 걱정거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오늘날 20대들이 보수화되는 경향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선배나 친구들의 영향, 알고리즘이 빚어내는 편향된 정보와 뉴스, 그리고 기성세대, 특히 진보 정치 세력에게 느끼는 원망과 상대적 박탈감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그 자신을 포함한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깊이 있는 고민을 거쳐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그의 놀랍고도 성숙한 고백이었습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은 제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순간 가장 쉬운 선택은 제 정치적 견해를 설파하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가장 경계해야 할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저와 그에게 모두 잘못된 확증편향을 심어줄 수 있는, 소위 '꼰대'라 불리는 어른이 '나이' 혹은 '경험'을 무기로 젊은 청년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선택이지만 이 짧고도 깊은 질문에 저는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작은 삼촌 뻘 되는 어른으로서, 저는 더욱 신중하게 답해야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어른이 20대 청년들을 '이대남'이라 재단하며 많은 커뮤니티에서, 소셜미디어에서 섣불리 비판의 날을 세우곤 합니다. 대선 이후 승리감에 고취되어 반대를 선택한 세력을 폄훼하며 비난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기성세대가 그들의 나이였을 때, 지금의 청년들처럼 깊은 위기감을 느끼고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며 고뇌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청년들의 생각은 아직 여물어 가는 과정에 있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