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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2/2
V I R T U E K I N G2026 시리즈 연재 지식한스푼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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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6.06.01조회수 1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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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구독자 337명구독중 3명
이세계에 환생한 삼국지의 진정한 덕왕은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오늘도 수련에 매진한다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https://blog.naver.com/virtue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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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양 많던 곰탕도 이제 마지막 그릇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마테리온을 향한 세 가지 의문이 담긴 곰탕 그릇을 받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첫째, 거버넌스의 정점에 앉은 CEO 비제이는 누구이며 어떤 무기를 쥔 사람인가. 둘째, 마테리온은 왜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가. 셋째, 재무제표에 쌓인 그 많은 차입금은 정말 나쁜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마치 다대기, 후추, 소금처럼 완벽한 곰탕 맛을 위해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양념 3형제와 같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39장에서 우리는 비제이가 그의 경력 대부분을 '인수와 통합'이라는 한 우물로 보낸 사람이며, 도둑이 제 버릇 못 고치듯 그 필살기를 마테리온에서도 그대로 꺼내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40장과 41장에서는 손다이크와 차브라야를 비교하며 마테리온의 자사주 매입을 살펴보았고, 쌀 때 사들이던 규율이 최근 들어 흐릿해진 정황과 함께, 비싼 주식을 통화처럼 쓰는 차브라야의 기술은 끝내 꺼내지 않은 채 인수 자금을 빚으로 마련해 온 사실을 보았지요. 그렇게 세 갈래로 흩어져 보이던 의문을 끝까지 따라가 보니, 결국 차입금이라는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마지막 그릇에서는 판단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요소인 차입금까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사골뼈가 녹아내릴 만큼 끝까지 우려낸다는 마음으로, 마테리온을 여덟 가지 측면에서 진단하고, 차입금을 자세히 들여다본 뒤, 마지막으로 재무제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숫자 뒤의 미장센까지 살핀 후 이 기업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제4부 가치함정에 대한 종합 진단

제42장 네 가지 원천과 네 가지 증상, 여덟 가지 측면으로 보는 진단

제3부에서 우리는 비제이라는 사람과 그의 자본배분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4부에서는 시야를 넓혀, 마테리온이 적정한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는지, 혹은 회사 전체가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겠습니다.

상편 도구상자에서 우리는 첫 번째 도구로 '가치함정'을 챙겼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덕왕은 가치함정을 '네 가지 원천'과 '네 가지 증상'으로 나누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마치 들은 지 백만 년은 지난 듯한 먼 이야기 같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짚고 가겠습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회사는 왜 함정에 빠지는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추락하는 산업의 낮은 PER은 싼 게 아니라 비싼 것입니다.

원천② 회계 신뢰성 함정: 싸게 보이는 것에는 재무적 마사지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에 실패한 회사는 미래의 PER이 낮아집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좋은 회사가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닙니다. 시스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증상: 함정에 빠진 회사는 어떻게 보이는가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현금흐름이 들쭉날쭉합니다. 이런 기업의 앞날은 며느리도 모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인색합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경영 지배력이 약하고, 의사결정이 비정상적이며 느립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거버넌스를 의심케 하는 비정상적 거래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원천 넷, 증상 넷,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중 셋은 이미 상편에서 검증이 끝났습니다. 그 셋은 짧게 결론만 확인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나머지 다섯이 이번 장에서 새로 들여다볼 것인데, 그중에서도 회계 신뢰성 함정은 다음 장인 43장에서 차입금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이미 검증이 끝난 세 가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마테리온이 코닥처럼 죽어가는 산업에 갇혀 있는가. 상편 34장에서 우리는 우주·방위·에너지 세 전선을 모두 살펴보았고,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움직이며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양산업 함정은 명백히 해당 없고 앞날은 창창함. 통과입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상편 38장에서 임원 매도 클러스터를 3차원으로 검증할 때 점검했던 대목입니다. 고용된 전문경영인 CEO와 90%가 넘는 외부 기관의 지분 구조는 마테리온에게 최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닙니다. 13년 넘게 이어진 배당 증가 기간에서 볼 수 있듯 경영권 간섭의 징후는 없고, 앞으로도(배당이 꾸준하기만 하면)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통과입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마테리온의 임원 매도는 정상적인 거버넌스 규정 안에서, 사전에 약속된 자동 매도 일정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실적 발표에 연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여러 이사회 멤버에게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이었습니다. 매수 없이 매도만 이루어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것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스톡옵션 가이드라인도, 이사회 독립성도 미국 상장사의 표준적인 틀 안에서 작동하고 있으므로 가치함정의 증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것 역시 통과입니다.


세 가지가 통과되었으니, 이제 새로 들여다볼 다섯 가지로 넘어가겠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 실패 함정은 상편에서 후기 GE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CEO의 손에 들어온 1달러를 잘못된 곳에 쓰는 회사, 비싼 가격에 인수를 거듭하고 비쌀 때 자사주를 사들이는 회사는, 아무리 사업이 좋아도 주주의 돈이 새어 나갑니다.


비제이는 인수에 강하게 기울어진 자본배분을 해왔습니다. 옵틱스 발저스, H.C. 스타크, 코나솔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인수가 2017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임기를 채웠습니다. 반면 자사주 매입은 2014년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고, 2025년에는 오히려 비싼 구간에서 사들였습니다. 게다가 인수 자금은 자기 주식을 영리하게 '통화'로 쓰는 차브라야의 길이 아니라, 빚을 지는 방식으로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자본배분 실패'라고 부르기엔 이릅니다. 41장에서 보았듯이 큰 인수의 성패는 5년, 10년 뒤에야 드러나는데, 차브라야조차 인수 당시에는 큰 비판을 받았으니까요. 비제이의 인수 역시 훗날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성공하면 '탁월한 선견지명'이 되고 실패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가 되는, 딱 그런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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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만 '실패'는 아니더라도 '치우침'은 분명합니다. 비제이의 자본배분은 인수 한쪽으로 강하게 기울어 있고, 그 인수가 빚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회사의 재무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중립'입니다.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안전하게 통과'라고 도장을 찍어 줄 수도 없습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가격과열 함정은 상편에서 2000년의 시스코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그 가격이 미래의 성장까지 모두 끌어다 반영해 버리면, 그 시점의 주식은 끔찍한 주식이 된다는 이야기였지요. 내재가치로 적정주가를 계산하는 일은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겠으나, 대략적인 상대가치평가로 러프하게라도 들여다보는 것은 가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0장에서 본 대로 마테리온의 밸류에이션은 어떤 자(尺)를 대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일회성 손상차손 탓에 회계장부 그대로의 PER은 한때 수백 배로 튀었고, 그것을 걷어낸 보정 PER은 2025년 약 27배였습니다. EV/EBITDA로 보면 2025년 약 14.2배입니다.


(참고로 이 둘은 2025 회계연도 기준입니다. 뒤 에필로그의 동종업계 비교에서는 2026년 5월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한 멀티플을 쓰기 때문에 같은 회사의 숫자가 이보다 높게 나오는데, 회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잣대와 시점이 다른 것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밸류에이션은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지금의 마테리온이 2014년처럼 '누가 봐도 싼' 구간에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보정 PER 27배도, EV/EBITDA 14배대도 헐값이라 부를 수치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것이 곧 하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내재가치평가도 상대가치평가도 '추세(momentum)'를 담아내지는 못하며, 그 어떤 평가도 심리로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기에 가격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이 점이 덕왕이 내재가치평가, 상대가치평가 모두를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다만 현재 가격에 대한 상대적 판단은 43장의 종합 진단과 에필로그를 통해 정리하겠습니다.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 이제 증상 쪽으로 넘어갑니다. 첫 번째 증상은 '불안한 현금흐름'입니다. 함정에 빠진 회사는 장부상 이익은 그럴듯해도 실제로 들어오는 현금이 들쭉날쭉하거나 빈약합니다.


마테리온은 어떨까요. 2024년 회계상 순이익은 손상차손 탓에 590만 달러까지 추락했습니다. 장부만 보면 거의 돈을 못 번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8,780만 달러였습니다. 순이익의 거의 열다섯 배입니다. 손상차손이 현금이 나가지 않는 회계상의 비용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장부상 이익은 찌그러졌어도 현금은 견조하게 들어왔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마테리온의 현금 창출 능력은 '불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테리온이 CAPEX가 무거운 회사라는 데 있습니다. 사업에서 현금이 들어와도 그중 상당 부분이 설비 유지·갱신으로 다시 빠져나갑니다. 특히 그 설비투자와 배당금 등을 빼고 최종적으로 남는 잉여현금흐름(FCF)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FCF를 매출로 나눈 잉여현금흐름이익률은 2019년 6.13%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내려와, 2023년 1.47%, 2024년 0.42%, 2025년 1.33%, 그리고 2026년 1분기 TTM 기준으로는 단 0.50%에 불과합니다. 업종 중앙값 2.27%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매출 19억 달러대 회사의 한 해 잉여현금이 한 줌이라면, 지갑 사정이 '넉넉하다'는 말은 도저히 붙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두 번째 증상은 '미흡한 주주환원'입니다. 주주에게 돌려주는 데 인색한 회사인가를 보는 자리이지요.


마테리온은 주주환원의 두 통로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 가운데, 배당 쪽으로 분명한 무게를 실어온 회사입니다. 13년 연속으로 배당을 늘려왔지요.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결코 가볍게 볼 기록이 아닙니다. 어지간히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없고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니까요. 반면 자사주 매입은 과거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습니다.

두 통로를 합쳐 보면, 마테리온의 주주환원은 '미흡하다'고 깎아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배당이라는 한 통로가 13년째 오히려 모범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훈장인 동시에 족쇄입니다. 배당은 한 번 늘리면 좀처럼 줄이기 어려운 탓에, 그 현금을 부채 상환이나 다른 곳으로 돌릴 여지가 좁아집니다. 앞서 보았듯 마테리온은 잉여현금이 얇아지는 상황에서도 매년 배당을 꼬박꼬박 늘려왔습니다. 2025년 한 해 배당으로 나간 현금이 약 1,150만 달러였는데, 그해 잉여현금흐름이 불과 2,370만 달러였습니다. 버는 잉여현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배당으로 빠진 셈이고,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13년 동안의 배당 증가는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그것이 '버는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내서 주는 것이라면, 배당의 증가가 오히려 다른 살림, 특히 부채 상환 여력을 빠듯하게 만드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동반하게 되며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집니다.


중간 정리

여덟 가지 측면 가운데 회계 신뢰성 함정(원천②)을 뺀 일곱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회계 신뢰성은 차입금과 한 묶음이라 43장으로 미뤄두었지요. 일곱 가지를 표로 모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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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가 셋, 부정적이 셋, 중립과 보류가 각각 하나입니다. 얼핏 보면 마테리온은 무난하게 함정을 피해 가는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칸, 보류해 둔 회계 신뢰성 함정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막보'가 가장 센 것처럼, 이번 심화편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이 주제는, 마테리온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인 차입금과 맞닿아 있습니다.

곰탕 두 번째 그릇도 이제 바닥이 보입니다. 같이 힘을 내시지요.

 

제43장 회계 신뢰성 함정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이것을 43장으로 미룬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계 신뢰성을 검증한다는 것은 결국 "마테리온의 재무제표 숫자 자체를 믿어도 되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차입금이라는 가장 무거운 의심을 파헤치는 작업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차입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지려면 재무제표를 펼쳐야 하고, 그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지는 회계 신뢰성이 답해 줘야 하니까요. 두 가지는 한 묶음으로 다뤄야 앞뒤가 맞습니다.

상편과 하편을 마치며 덕왕의 마음에 가장 크게 걸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사실 자사주도 아니고 임원 매도도 아닌 차입금이었습니다. 이 회사, 빚이 너무 빠르게 늘어난 것 아닌가. 이자비용이 회사를 갉아먹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이 가시를 빼려고 보니, 한 가지 곤란한 사실과 마주쳤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이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은 왜 다루기 어려운가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부채비율 200% 넘는 회사는 거르세요." 투자 책에도, 유튜브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깔끔하고 외우기 쉬운 기준이지요. 시험에 나오면 동그라미 받기 딱 좋은 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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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깔끔한 기준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에 그대로 갖다 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책에 나오는 위대한 CEO 여덟 명 중 상당수가, 부채비율 기준으로는 낙제생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람이 존 멀론입니다.


빚으로 제국을 세운 사람, 존 멀론

존 멀론은 TCI라는 케이블TV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빚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빚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끌어다 썼지요. 부채비율 200% 룰을 들이대면 멀론의 TCI는 거를 회사가 아니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회사입니다. 그런데 손다이크는 이 멀론을 위대한 자본배분가 여덟 명 안에 당당히 넣었고, 멀론과 주주들은 그 빚더미 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멀론이 사기꾼이었거나 손다이크가 잘못 본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멀론의 빚은 '좋은 빚'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빚이란

케이블망은 한 번 깔면 수십 년을 씁니다. 깔고 나면 가입자들이 매달 꼬박꼬박 시청료를 냅니다.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 망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그 현금은 거르지 않고 들어옵니다. 멀론은 바로 이 점을 꿰뚫어 봤습니다. 들어올 현금이 이렇게 확실하다면, 그 현금을 담보 삼아 빚을 내서 케이블 회사를 더 사들이고, 거기서 또 현금이 나오면 또 빚을 내서 또 사들이고. 이렇게 굴리면 빚이 곧 성장의 엔진이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멀론의 빚은 갚을 수 있는 빚이었고, 벌어들이는 빚이었고, 실제 현금이 따라오는 빚이었습니다. 빚의 '양'이 아니라 빚의 '성격'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부채비율 200%"라는 한 줄짜리 기준은, 편하긴 해도 너무 거칠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칩니다. 같은 1억의 빚이라도 누가, 어떤 사업에, 어떻게 졌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데, 부채비율은 그저 "빚이 자본의 몇 배냐"만 볼 뿐 그 빚의 성격은 한 글자도 말해 주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부채비율 말고 무엇을 봐야 할까요. 이 질문 앞에서 덕왕은 세 도구상자 외에, 품속에 넣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냅니다.


제갈량의 지혜주머니, 세 개의 비단주머니

〈삼국지연의〉에는 유비를 모시러 동오로 떠나는 조자룡에게 제갈량이 비단주머니, 즉 금낭(錦囊) 몇 개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러두지요. "평소에는 열지 말고, 정말 위급한 고비(위고비)가 닥쳤을 때 하나씩 열어보아라." 조운은 이후 막다른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주머니를 하나씩 풀어보았고, 그 안에 제갈량이 미리 적어둔 계책을 실행하며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이때 조운이 받은 이 비단 주머니 안에 담긴 세 개의 계책을 '금낭묘계(錦囊妙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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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오늘날 금낭묘계를 맛볼 수 있는 술. Feat. 제갈량 금낭호품(錦囊豪品))

 

덕왕은 상편에서 가치함정, 5 Forces, 6중 제약이라는 세 개의 도구상자를 챙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셋은 회사를 처음 들여다볼 때 활짝 펼쳐놓고 쓰는 연장입니다. 그런데 차입금이라는 고비는 결이 좀 다릅니다. 모든 회사를 볼 때마다 매번 꺼내는 도구가 아니라, "이 회사 빚이 좀 많은데?" 싶은 위급한 순간에만 품에서 꺼내 풀어보는 제갈량의 금낭이 필요합니다.


이에 덕왕은 투자자가 빚 많은 회사를 만났을 때 하나씩 풀어보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비단주머니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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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는 덕왕의 능력치를 수정하라!

 

다만 그 셋을 풀기 전에, 이 주머니를 어디서 펼쳐봐야 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숫자는 영업이익입니다. "영업이익이 늘었으니 빚도 감당되겠지" 하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건 주머니를 열어보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손익계산서의 순서를 떠올려 보면 간단합니다. 매출에서 원가와 판관비를 빼면 영업이익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자비용이 빠집니다. 영업이익은 이자비용보다 윗줄에 있기에 회사가 빚을 산더미처럼 졌든 한 푼도 안 졌든 영업이익은 똑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사업이 잘 굴러가나"는 말해 줘도 "그 사업이 빚을 감당할 수 있나"는 한마디도 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빚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영업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어도 영업이익 자체가 빚을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영업이익으로 이익의 질을 보고자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자룡처럼 알맞은 상황과 질문에서 열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단주머니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비단주머니, 갚을 수 있는가

첫 번째 금낭에 적힌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회사, 빚을 갚을 수 있는가." 빌린 돈이 많든 적든, 일단 제때 이자를 내고 만기에 원금을 돌려줄 능력이 되느냐를 봅니다. 이걸 보는 숫자가 둘입니다. 하나는 이자보상배율,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입니다. 앞에서 영업이익만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는데, 이자비용으로 나누는 순간 "사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를 몇 번이나 갚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쓸모 있는 숫자가 됩니다. 값이 1이면 번 돈을 이자로 정확히 다 토해낸다는 뜻이라 위태롭고, 보통 2~3을 넘어가면 급한 불은 끈 것이며, 훌륭한 기업들은 20~30이 훌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차입금을 EBITDA로 나눈 값으로, "지금 버는 속도로 빚을 다 갚으려면 몇 년 걸리느냐"를 대략 보여줍니다. 3을 넘어가면 빚이 슬슬 무겁다는 신호입니다.


두 번째 비단주머니, 벌고 있는가

두 번째 금낭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빌린 돈이, 그 돈을 빌리는 값보다 더 벌고 있는가." 빚에는 이자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연 5%에 돈을 빌렸다면 최소한 5%보다는 많이 벌어야 남는 장사입니다. 5% 주고 빌린 돈으로 3%밖에 못 벌면 빌릴수록 손해이지요. 멀론이 위대했던 건 빌린 돈으로 그 이자보다 훨씬 많이 벌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재는 잣대가 ROIC와 WACC입니다. ROIC는 "회사에 들어온 전체 자본(Invested Capital), 주주 돈이든 빌린 돈이든, 그것으로 세금 떼고 뭐 떼고 몇 퍼센트를 벌었나"이고, WACC는 "그 자본을 끌어오는 데 든 평균 비용이 몇 퍼센트냐"입니다. ROIC가 WACC보다 높으면 자본을 굴려 가치를 만드는 것이고, 낮으면 굴릴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금낭에는 잣대가 하나 더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듀퐁 분석(Dupont Analysis)'입니다. 회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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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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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2026.06.01

복습되는 내용도 많고 새로 알게된 내용도 많네요

진한 글 감사합니다 다시 봐야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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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2026.06.01

하동관 곰탕에 덕왕의 글 하나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소. - 지나가던 밸리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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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락
2026.06.03

진한곰탕을 들이마셨는데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거 같네요.

깊고 진한 분석에 경외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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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호두
2026.06.04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수준이 올라오면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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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6.06.04

원고를 올린 후 밤부터 감기몸살이 쎄게 와서 이제야 정신차렸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이제 뭘 써야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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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2026.06.05

종로나 여의도... 둘 다 맛이 비슷한가요?

낼 모레 가봐야겠습니다. (일요일은 쉬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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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2026.06.05

이런... 하동관... 일요일은 쉬는 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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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6.06.05

저희집은 쿠팡으로도 시켜먹곤 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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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심화편 상편을 철야작업 끝에 업로드했습니다. 회사에서 졸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덕왕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상편은 덕왕이 정성을 다해 우려낸 곰탕이었습니다. 베릴륨이라는 금속을 둘러싼 세 개의 산업 전선을 짚었고, 가치함정·5 Forces·6중 제약이라는 세 가지 도구상자를 펼쳤으며, 마테리온이라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를 검증하고,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가 정말 위험 신호인지를 3차원으로 뜯어보았습니다. 스스로는 정성을 다한 한 그릇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진한 곰탕에, 예상보다 손님이 적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우셨는지, 아니면 내용이 복잡해 숟가락을 들기 어려우셨는지. 곰탕집 사장으로서 가게 문을 닫고 혼자 솥을 들여다보며 잠시 고민했습니다. 더 묽게 끓여야 했나, 양을 줄여야 했나.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가 밸리 가족만을 위해 올리겠다고 약속한 독점 컨텐츠는 애시당초 대중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이 깊은 밸리까지 굳이 찾아오시는 변태들을(좋은 의미입니다) 위한 글이라는 것. 그러니 그릇의 깊이를 얕게 만들기보다는, 같은 깊이를 더 잘 떠먹을 수 있도록 좋은 숟가락을 손에 쥐여드리는 쪽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진심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글이 어렵든, 길든, 혹은 재미있든,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피드백 한 줄 한 줄은 덕왕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이 부분이 어려웠다", "이 비유는 와닿았다", "이건 빼는 게 낫겠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의견을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앞으로 나올 다음 그릇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덕왕은 여러분 위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식탁에서 함께 곰탕을 떠먹는 사람이니까요.   자, 그러면 두 번째 곰탕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상편이 넘칠 만큼 큰 곰탕이었으며, 이번 하편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첫 그릇을 비우셨다면 아직 자리를 뜨실 수 없습니다. 덕왕은 여러분을 한 그릇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상편을 아직 안 드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두 번째 그릇을 내려놓으시고 첫 그릇부터 드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곰탕은 순서대로 드셔야 제맛입니다. (feat. 입 벌려. 지식 들어간다)   첫 그릇 가볍게 핥아보기 긴 곰탕이었으니 첫 그릇의 맛을 짧게 되짚고 가겠습니다. 상편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를 물었습니다. 세 가지 도구상자 ―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 ― 를 펼쳐 검증한 결과, 마테리온은 우주·방위·에너지라는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있고, 5 Forces 22/25점의 깊은 해자를 가졌으며, 미국의 지정학적 구조 안에서 단단하게 보호받는 좋은 회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또한 "마테리온은 좋은 주식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심층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검증으로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 클러스터를 3차원으로 씹고 뜯어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CEO의 보유 주식이 18개월간 1.56배 늘었고, 매도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정해진 거버넌스 규정과 사전채택 자동 일정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이 회사 내부의 이상 신호가 아니라 정상 거버넌스의 작동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첫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그릇을 비우고 나니, 국물 바닥에 가라앉아 건져 먹지 못한 건더기들처럼 세 가지 의문이 남게 되었습니다.   첫째, 그 거버넌스의 정점에 선 CEO는 누구인가? 그의 경력이 어떤 무기를 쥐여주었는가? 둘째, 마테리온은 왜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가? 한두 해가 아니라 십 년 넘는 시계열로 길게 봐도 같은 그림인가? 셋째, 마테리온이 재무제표에 나타난 많은 차입금은 정말 나쁜 것인가? 빚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회사를 깎아내려도 되는가?   이 의문들을 풀기 위해 두 번째 그릇을 내어 봅니다.   하편의 목차 이번 하편의 차림표는 다음과 같으며 이번 시간에는 3부 41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제3부 CEO와 그의 자본배분전략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31년이 만든 그의 도구상자 제40장 손다이크의 거울 ― 자사주 매입 11년의 이력 제41장 차브라야의 거울 ― 비싼 주식을 ‘통화’로 쓴다는 것   제4부 함정과 종합 진단 제42장 가치함정 원천과 증상의 결합 ― 8각 진단 제43장 가치함정 종합 진단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에필로그: 색안경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리고 이 회사는 어떤가 부록: 심화편 용어·개념 정리표   상편에서 우리는 세 가지 도구상자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하편에서도 그 세 도구상자를 그대로 들고 갑니다. 다만 제43장에서 차입금이라는 까다로운 함정 앞에 섰을 때, 도구상자와는 결이 조금 다른 물건을 하나 더 꺼낼 것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위급한 장수의 품에 넣어주던 비단주머니 같은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43장에서 자세히 풀겠습니다. 일단은 "도구상자 셋에, 급할 때 열어볼 주머니 하나가 더 있다" 정도로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 번째 의문, 마테리온이 가는 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CEO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제3부 CEO와 그의 자본배분전략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31년이 만든 그의 도구상자 상편 38장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의 거버넌스가 정교한 기계가 돌아가듯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의 운전석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바로 마테리온의 CEO인 비제이입니다.   '비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덕왕은 인터넷 방송이 막 태동하던 시절, 게임을 중계하던 철 지난 옛날 BJ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스타크래프트 한 판에 채팅창이 불타오르고, 입담 좋은 BJ 하나가 수천 명을 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 그 BJ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한 시절 그 게임방송을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말입니다. 세월이 야속합니다.)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억을 뒤로 하고 우리는 게임이 아닌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마테리온의 BJ, 주갈 K. 비제이바르기야(Jugal K. Vijayvargiya)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름이 길고 발음이 어려우니, 이 글에서는 그를 줄여서 '비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그렇게 불린다고 하니, 무례한 호칭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상편에서 마테리온이라는 회사의 해자와 산업을 둘러싼 구조를 보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칼이라도 누구 손에 들렸느냐에 따라 요리 도구가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하듯이 마테리온도 운전석에 앉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비로소 "이 회사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Jugal K. Vijayvargiya, 현 마테리온의 CEO   한 엔지니어의 30년 비제이는 1968년에 태어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출발점은 엔지니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의 커리어는 1986년, 델파이(Delphi)에서 사회 경력을 시작하게 되면서 바뀌게 됩니다. 델파이는 당시 제너럴 모터스(GM)의 부품 부문이었고, 그 안에서도 전장·안전(Electronics & Safety, 이하 E&S) 조직이 그의 첫 둥지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31년 뒤 마테리온을 떠나는 순간까지 한 우물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10년은 엔지니어로서 여러 기술 직무를 거쳤습니다. 그후 1996년에 영업 직군으로 이동했고, 제품 라인 관리로 영역을 넓혔으며, 2002년에는 오디오 시스템의 제품 라인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성실하고 유능한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관리자의 성장 곡선입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은 2003년에 찾아옵니다.   2003년, 독일행과 그룬디히 2003년, 델파이는 독일에서 그룬디히 카 인터미디어 시스템(Grundig Car InterMedia System GmbH), 줄여서 CIS라는 회사를 인수합니다.   빈티지 오디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룬디히'라는 이름에 귀가 번쩍 뜨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룬디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막스 그룬디히가 세운 독일의 전설적인 가전·오디오 브랜드입니다. 한때 유럽 최대의 라디오·TV 제조사였고, 빈티지 오디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디자인 예쁘기로는 그룬디히"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름값이 있는 명기 중의 명기입니다. 실은 덕왕도 그룬디히 라디오(Grundig T7500)를 한 대 가지고 있습니다. 덕왕의 친형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었는데, 그 라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향숙이, 아니, 그룬디히 예뻐요!"라고 말할 정도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입니다. 영롱하지 아니한가   오디오 역사에서 이름 꽤나 날린 그룬디히의 ‘2040 SQ system’   하지만 2003년 당시 모기업 그룬디히 AG는 과거의 빛을 잃은 채 파산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룬디히 AG는 재무상태를 개선하고자 그나마 알짜였던 자동차 전장 사업부(차량용 오디오, 텔레매틱스, 인포테인먼트를 만들던 CIS)를 떼어내어 매물로 내놓았고, 그것을 델파이가 약 5,800만 유로에 사들인 것입니다.   기업 인수의 세계에는 이런 종류의 거래를 '카브아웃(carve-out)'이라고 부릅니다. 멀쩡한 회사를 통째로 사는 것이 아니라, 큰 몸통에서 특정 사업부만 칼로 도려내듯(carve) 떼어내어(out) 사는 거래입니다. 그리고 이 카브아웃은, 인수합병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축에 속합니다. 본디 사업부란 모기업의 회계 시스템, 인사 제도, IT 인프라에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던 조직인데 그 탯줄을 모두 끊어내고 인수한 회사의 몸에 새로 혈관을 이어 붙이는 작업은 수술로 따지면 거의 장기이식에 가까운 난이도입니다. 게다가 그룬디히 AG의 자동차 전장 사업부가 매물로 나왔을 때는 모기업이 파산 중이었고, 사업부가 독일과 미국, 두 나라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델파이는 이 까다로운 수술의 집도의로 비제이를 지명했고 그는 2003년, 짐을 싸서 독일로 건너갑니다.   인수란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서로 다른 두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와 사람을 한 몸으로 잇는 일을 '인수통합(acquisition integration)'이라고 부릅니다. M&A에서 돈을 버느냐 잃느냐는 사실 인수 가격보다 이 통합의 성패에서 갈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싸게 좋은 회사를 사도 통합에 실패하면 그 인수는 재앙이 됩니다.   비제이는 그 인수통합을, 책상 앞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배웠습니다. 독일어가 오가는 뉘른베르크 사무실에서, 포르투갈 브라가의 생산 라인에서, 파산한 모기업에서 막 떨어져 나와 불안에 떨고 있었을 1,000명의 직원들 사이에서 발로 뛰며 결국 수술을 성공시킵니다. 그리하여 CIS는 '델파이 그룬디히'라는 이름으로 델파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4년 동안 완성한 하나의 필살기 그는 통합을 끝낸 뒤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2017년 마테리온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무려 14년 동안 독일에 머물렀습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자신이 직접 꿰매 붙인 사업을 키우고 또 키웠습니다. 차체 보안과 메카트로닉스(Body Security & Mechatronics), 컨트롤 및 보안(Controls & Security), 인포테인먼트, 드라이버 인터페이스(Infotainment & Driver Interface) 등 부서를 차례로 거치며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2012년 2월, 델파이의 전장·안전(E&S) 부문 전체를 이끄는 수장(President)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그가 맡은 E&S 부문은 16개국에 생산·기술 거점을 두고 자율주행, 능동 안전,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연 매출 약 3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전장 사업이었습니다. 비제이는 델파이의 임원이자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기업의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최고위 경영진 모임)’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2003년 1,000명짜리 부실 사업 조각을 꿰매러 독일에 갔던 사람이, 14년 뒤 30억 달러 사업의 정점에 서며 자신의 필살기를 완성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성공시킨 무기를 평생 신뢰한다 비제이를 평사원에서 30억 달러 사업의 수장으로 끌어올린 무기는 바로 '인수와 통합'이었습니다. 회사를 사들이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가며 성과를 내는 것이 그의 필살기가 되었고, 그 위에 그의 커리어가 세워졌습니다.   상편에서 덕왕은 회사에서 해외향 제품을 담당하던 시절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한 번 몸에 익은 전략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성공을 맛본 조직은 계속 패스트 팔로워로 남으려 하고, 분석으로 성공한 사람은 계속 분석에 의존합니다. 자신을 정상으로 이끌어준 무기를, 사람은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합니다. 2017년, 자동차 부품 업계를 떠나 마테리온의 CEO가 된 비제이는 인수와 통합이라는 자신의 필살기를 마테리온에서도 꺼내들지 않았을까요?   마테리온에서의 비제이의 행적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2020년, 마테리온은 스위스의 광학 회사 옵틱스 발저스(Optics Balzers)를 약 1억 3,6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1년에는 독일의 H.C. 스타크(H.C. Starck)의 일부 사업을 약 3억 9,2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2025년에는 한국의 특수 목적용 기계 제조 및 금속 복합 소재 전문기업이자 반도체 박막 증착 공정에서 필수적인 ‘고순도(99.999%) 탄탈럼 스퍼터링 타깃(Tantalum Sputtering Target)’ 소재를 독점 공급하는 코나솔(Konasol)을 약 1,95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2025년 마테리온이 인수한 코나솔 무언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인수통합 전문가가 마테리온의 운전석에 앉아서 한 일이 다름 아닌 그의 주특기인 인수였던 것입니다. 그의 31년 커리어가 마테리온에서도 주요한 경영 방식이 된 것이지요.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이 그 사람의 미래에도 반영된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비제이의 계속된 인수통합이 좋고 나쁨을 따지기에 앞서 그 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인수에 쓸 돈을 어디서 가져왔는가? 둘째, 자본배분은 어떻게 했는가?   그런데 눈치 빠른 분이라면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서두에서 의문은 세 개라더니, 갑자기 웬 질문 두 개인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이 두 질문은 새로운 의문이 아니라, 서두에서 던진 세 의문 중 둘째(자사주를 왜 안 사는가)와 셋째(차입금은 정말 나쁜가)를 실제로 풀기 위한 실무적인 경로입니다. 인수에 쓸 돈의 출처를 캐다 보면 자연히 차입금에 닿고, 자본배분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자사주 매입 습관에 닿기 때문입니다. 큰 의문 셋은 그대로 두고, 그것을 손에 잡히게 좁힌 작업용 질문 둘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이 두 질문이 40장과 41장의 주제입니다.   그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비제이가 달리고 있는 도로를 먼저 점검하겠습니다. 이 점검의 도구로는 앞서 익힌 세 개의 도구 중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을 사용하겠습니다.   파픽의 시선으로 본 비제이를 둘러싼 제약들 상편 36장에서 우리는 6중 제약이라는 도구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를 분석했습니다. 파픽의 도구는 국가뿐 아니라 국가 지도자, 그리고 기업의 경영자를 분석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제이가 아무리 인수라는 필살기를 가졌어도, 그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반드시 회사가 처한 ‘제약’을 감안하여 그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의사결정자는 제약 속에서 움직입니다. 파픽의 표현을 빌리면, 지도자의 '선호'보다 '제약'이 결과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트럼프는 이란을 폭격하고, 핵무기 가능성을 뿌리뽑고 미국에 친화적인 정권을 세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호르무즈를 둘러싼 지정학적 제약으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해군력과 지상 병력을 투입할 수 없으며, 유가와 소비자 물가에 의한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전쟁비용을 과도하게 쓰기 어렵고 군대를 지속적으로 전쟁에 동원하는 것에도 법적 제약 등에 부딪혀 제한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약’이 행동을 부르는 마리오네트라고 말해도 부족함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비제이에게 작용하는 여섯 제약 중, 그의 행동을 가장 강하게 규정하는 네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국내 정치, 경제 금융, 헌법 제도, 정보 불완전성)   첫째, 국내 정치 제약: 이중의 족쇄 여기서 '국내 정치'란 회사로 치면 이사회·주주·규제당국이라는 내부 권력 구조를 말합니다. 비제이에게는 이 족쇄가 두 겹입니다.   한 겹은 미국 정부입니다. 상편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이 베릴륨을 사실상 독점한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독점은 '미국 정부의 관리와 지원 아래 있는 독점'입니다. 마테리온은 ‘국방물자생산법(DPA) Title I’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 정부는 마테리온에게 "정부 계약을 다른 민간 주문보다 우선해서 처리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마테리온은...
2026 시리즈 연재 지식한스푼
2026.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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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1/2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2/2

게시판 용량 제한이라는 불의의 일격으로 1/2에 이어 씁니다. (어쩐지 철야작업을 해도 안 끝나더라니...) 1/2를 읽지 않으신 분께서는 먼저 읽고 와주십시오. ㅠ ㅠ 차원 3. 매도 시점과 방식 ─ 10b5-1 자동 매도와 Trading Window 세 번째 차원에서는 매도가 일어난 방식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경영진이 행여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얻거나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10b5-1 사전채택 자동 매도 plan’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 SEC가 인정하는 합법적 분산 매도 계획이지요. 임원이 내부정보를 알기 전 시점에 미리 자기 매도 일정 ─ 언제, 얼마나, 어떤 가격에 ─ 을 정해두면 그 일정대로 자동으로 매도가 일어나도 내부자거래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안전장치입니다. plan 채택 후 보통 90일의 cooling period가 필요하지요. 채택 사실은 SEC Form 4에 공시됩니다. 이는 장모님 칠순 잔치를 90일 전에 식당에 예약해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가족 분위기가 어떻든 예약은 그대로 작동하지요.  마테리온 CFO Chadwick의 2026년 3월 3일 매도기록을 다룬 SEC Form 4 공시문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pursuant to a Rule 10b5-1 plan adopted on 2025. 12. 1" 이는 해당 주식 매매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거래가 아니라, 2025년 12월 1일에 미리 예약해 둔 계획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행된 거래임을 증명하는 문구입니다. Chadwick이 plan을 채택한 2025년 12월 1일 시점에서는 2026년 2월의 실적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결코’는 아닙니다. 알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알아내겠지요) 그날 정해둔 일정에 따라 2026년 3월 3일에 자동으로 매도가 일어났을 뿐입니다. 회사 내부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매도 행위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90일 전에 미리 정한 분산 일정이 그날 작동한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Trading Window입니다. 미국 상장사가 임원에게 매매를 허용하는 시기입니다. 분기 실적 발표 직후 약 2주간 열립니다(회사마다 다름). 그 외 시기는 매매가 금지되지요. 이를 blackout period라고 부릅니다. 평소에는 임원이 자기 회사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고 오직 trading window가 열린 짧은 기간에만 가능합니다. 회사가 임원에게 "이 2주 동안만 매매 허락한다"고 정해주는 통금 해제 시간 같은 것입니다. 마테리온의 경우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가 2026년 2월 14일이었습니다. 그 직후 2월 17일부터 trading window가 열렸지요. 임원 5명의 매도가 그 윈도우 시작일에 집중된 것은 평소 매매를 자제하던 분들이 허락된 시기에 한꺼번에 분산 매도를 진행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차원 검증 종합 세 차원이 가리키는 결론을 한 표로 모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 차원은 기존의 '하'편과 다른 결론을 말합니다. 이 매도 클러스터는 회사 내부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임원들이 도망치는 신호가 아닙니다. 정상 거버넌스 규정 안에서, 미리 정해진 자동 매도 일정에 따라, 허락된 시기에 분산 매도가 진행된 결과이지요. 덕왕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이번 검증은 사실 가치함정의 또 다른 분류인 '증상' 중에서도 '비효율적 지배구조'와 '이사회 독립성'에 해당하는 거버넌스 특징을 미리 점검한 셈입니다. 심화편-하의 제4부에서는 이 결과를 다른 일곱 축(원천 네 가지 + 증상 두 가지 + 거버넌스 외 한 가지)과 합쳐 8각 종합 진단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리를 한 줄 미리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잉 해석하지 않는다 위의 검증이 끝났다고 해서 "임원 매도 = 회사에 대한 신뢰 표현"이라는 1차원적인 긍정론으로 넘어가지는 않겠습니다. 그 자리로 가는 것은 다른 의미의 과잉 해석일 수 있습니다. 매도 가격대를 보자면, 임원들의 매도가 일어난 주요 가격대가 146달러에서 157달러 사이입니다. 그 시점의 마테리온의 보정 PER은 약 35배, EV/EBITDA가 약 20배였습니다. 5년 중앙값(보정 PER 약 21배, EV/EBITDA 13배)을 한참 위에 있는 구간이지요. 임원들이 분산 매도를 이 가격대에 집중적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은 그 분들의 입장에서 "지금 주가가 충분히 반영된 가격대"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임원도 사람인지라 비싸지면 그들도 팝니다. 회사 내부에 문제가 있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유분의 시장 가치가 충분히 올라온 시점에서 분산 매도가 작동한 것이지요. 색안경 너머로 같은 데이터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지가 보입니다. 회사 내부에 우리가 모르는 이상 신호가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임원들도 현재 주가가 본인 보유분의 충분한 가치를 반영했다고 판단하는 가격대라는 시그널은 정직하게 받아들여 대응했다는 흔적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챕터 용어 한눈에 보기 미국 상장사의 임원 보상 구조와 매매 규정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이 챕터에서 새로 나온 용어를 한 표로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이 표에 나오는 용어만 머릿속에 가지고 가신다면 본문에서 다시 이 용어들이 나와도 막힘없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심화편-하로 넘어가는 다리 자, 여기까지가 심화편-상의 마지막 챕터였습니다. 제2부가 38장에서 마무리되는 자리이지요. 같이 달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심호흡하며 정리하겠습니다. 심화편-상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점검했습니다. 제1부에서는 마테리온이 좋은 회사인가를 물었습니다. 1부의 세 챕터(34·35·36장)를 거치며 외부 산업 조건과 해자를 종합한 결과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라는 데까지 도달했습니다. 우주·방위·핵융합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있고, 5 Forces 22/25점, 6중 제약으로 본 지정학적 입체 구조가 미국 편에서 매우 단단합니다. 특히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대만 방어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못하는 자리와 NATO에서 발을 빼는 자리에서 마테리온의 의미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는 것까지 보았지요. 제2부에서는 ...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1/2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1/2 프롤로그: 곰탕을 우려내는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날씨가 무더워진 요즘,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세 시간에 걸쳐 베릴륨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야무지게 살펴보았습니다. '최애의 아이'의 주인공 아쿠아마린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여정이 보석의 세계와 과학의 역사를 지나 마침내 세계관 최강자인 마테리온을 살펴보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하'편을 마치며 마테리온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남겼습니다. "마테리온은 분명 단단한 해자를 가진 좋은 회사 같은데 몇 가지 신호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다. 둘째, 임원들이 자기 회사 주식을 무더기로 팔고 있다. 회사가 정말 좋다면 왜 그 좋은 회사의 주인들이 사지 않고 팔기만 할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내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셋째, 차입금과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영업레버리지 전략이 실패할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으로 인해 저처럼 마테리온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깊이 알아보지 않은 채, '부정성 편향 (Negativity Bias)'에 빠진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의문을 풀지 않고서는 후회없이 글을 썼다 할 수 없을 것이며, 편히 잠을 청할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셨다면 이번 심화편이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먹었던 상편·중편·하편은 기사식당의 백반입니다. 양도 적당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며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깊은 맛은 아닙니다. 그에 비해 이번 심화편은 48시간 푹 고아 우려낸 진한 곰탕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정성을 들여 음식을 내놓는 이유는 굳이 이 어려운 밸리까지 찾아와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밸리식구들이 마치 만화 〈요리왕 비룡〉에서 천하의 진미(眞味)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돌며 궁극의 레시피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들처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변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대충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면 마치 애니에서 나오는 까칠한 캐릭터처럼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이걸 요리라고 내오신 겁니까"라고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릴 수도 있기에 덕왕은 마땅히 노력을 다해 최고의 한끼를 선물하고자 합니다. 다만 저의 배움이 깊지 않아 다양한 요리를 내어드릴 수 없음이 통탄스럽지만 깜냥 내에서 노력을 다해 글을 쓰고 이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다만 다 드실 때까진 못 나가시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곰탕을 남긴다? 이건 섭섭하지요) 이번 심화편이 던지는 질문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편 마지막에 떠오른 의문은 사실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테리온은 좋은 기업이 아닌 것인가? 혹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마테리온은 좋은 기업이 되는 것인가? 더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이번 심화편에서는 지난 하편에서 다룬 자사주 매입 부재와 임원 매도 클러스터라는 두 가지 신호를 단지 1차원적으로 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재무데이터와 거버넌스 규정, 그리고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며 정밀하게 검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전통적 방법과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검증의 끝에서 진짜 의심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좋은 회사인 마테리온이 좋은 주식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기대합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번 심화편은 분량이 상당하기에 상, 하편으로 나눕니다. 또한 새로운 개념과 생소한 내용도 있기에, 사용할 도구와 목차에 대해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글에 사용하는 도구들에 대해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복잡하고 긴 의문을 논리적, 효율적으로 검증하려면 그에 적합한 도구를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나 길고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평가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흔히 회사의 적정주가를 구할 때 우리가 꺼내는 도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DCF나 DDM, RIM 등으로 대표되는 내재가치 평가이며, 다른 하나는 PER이나 EV/EBITDA 등으로 대표되는 상대가치 평가입니다. 이 두 도구는 강력하고 검증된 도구이며 밸리AI의 많은 뉴런분들도 이 곳 밸리의 강의 지옥 속에서 어떻게든 배우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기업의 주가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산하는 내재가치 평가와 상대가치 평가는 '지금까지 확보된 지식'에만 기반하는 강력한 '현재적'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덕왕은 회사에서 해외향 제품을 담당했었습니다. 전임자들은 경쟁사의 제품이 유행하면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베꼈습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경쟁사 대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미래의 히트상품을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 이 기능과 디자인이 필요한지, 각 요소가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 전략은 격차를 좁히는 데 사용되기에는 좋았으나 제품의 주기와 수명을 예측하는데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목표 시장에 대한 경제, 문화, 국방 등 전방위적인 분석과 함께 국가의 장기적 계획과 지정학적, 법적 분석을 병행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현재 이 제품을 왜 원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것을 원하게 될지에 대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수립한 전략을 통해 나온 제품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1등을 차지하며 경쟁사들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적정주가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까지 얻어진 지식에 기반한 추정에는 커다란 오류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미래의 변화는 내재가치 평가나 상대가치 평가에서는 잘 잡히지 않기에 다른 도구로 접근해야 합니다. 회사의 성격, 산업의 형세, 경영자의 선호, 정치적 제약같은 정성적 차원이 그것이지요. 어떤 회사는 PER 12배인데 절대 사면 안 되고, 어떤 회사는 PER 35배인데 사도 됩니다. 어떤 회사는 DCF로 돌리면 적정가가 100달러로 나오는데 현실은 50달러에 거래되고 또 절대 그 가격을 회복하지 못합니다. 숫자만 보면 안 되는 영역이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심화편에서는 숫자가 잡지 못하는 영역을 잡아 줄 세 가지 도구를 먼저 챙기겠습니다. 그 세 가지 도구는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입니다. 이 세 도구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합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은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의 모양'을 외워두는 도구입니다. 마이클 포터의 5 Forces는 회사가 마주한 산업이라는 전장에서 '적의 진형'을 읽는 도구입니다.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은 그 전장이 놓인 '지형도'를 그리는 도구입니다. 함정의 모양을 외우고, 적의 진형을 읽고,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면 우리는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천지지(知天知地)의 자리에 닿게 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아야 비로소 승리가 온전해집니다. 그 세 도구를 차례로 펼쳐보겠습니다. 첫 번째 도구상자: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가치함정(value trap)이라는 말은 워런 버핏의 친구이자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었던 찰리 멍거가 즐겨 쓰던 표현입니다. 싸 보이는데 사실은 싼 게 아니라 비싼 회사, 즉 PER이나 PBR이 낮은데 그 낮은 가격조차 미래에 더 떨어질 회사를 가리킵니다. 가치함정에는 네 가지 원천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회사를 왜 함정에 빠뜨리는가"의 원인을 분류한 것입니다. 첫 번째 원천은 사양산업 함정입니다. 코닥이 대표적이지요. 1976년 미국 카메라 시장의 90%, 필름 시장의 85%를 차지했던 회사였습니다. 1996년까지도 PER 17배에 시가총액 280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 시장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먼저 만들어냈으면서도 상품화하지 않은 채 기존 필름 시장에 안주했고 시장 자체가 사라지면서, 2012년 결국 파산했습니다. 산업 자체가 죽어가는 함정은 어떤 경영자도 구해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회계 신뢰성 함정입니다. 엔론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 매출 1,000억 달러, 시가총액 700억 달러의 미국 7위 기업이었지요. 당시 엔론은 PER 55배에 거래되며 월스트리트의 총아였습니다. 그런데 2001년 12월 회계 부정이 드러나며 한 달 만에 파산했습니다. 숫자 자체를 믿을 수 없는 회사는 그 숫자 위에서 만든 모든 분석이 모래성이 됩니다. 매출도 이익도 자산도 부채도 의심해야 하지요. 회계 신뢰성을 검증하는 도구로는 알트만 Z-스코어, 피오트로스키 F-스코어, 베니시 M-스코어, 모한람 G-스코어가 있습니다. 밸리 AI의 재무비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네 지표를 통해 마테리온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 원천은 자본배분 실패 함정입니다. 잭 웰치 후기의 GE가 대표적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잭 웰치를 위대한 CEO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잭 웰치는 부임 당시 약 140억 달러였던 GE의 시가총액을 약 4,100억 달러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잭 웰치의 임기 후기와 그의 후임 제프 이멜트 시기에 GE 캐피털을 지나치게 키웠고 비싼 가격에 인수를 거듭했으며 자사주는 주가가 비쌀 때 사들이며 연이은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같은 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회사의 운명을 가른다는 사실을 가장 비싼 수업료로 가르쳐준 사례입니다. 자본배분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CEO 손에 들어온 1달러를 어디에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자사주를 살 것이냐, 배당으로 줄 것이냐, 다른 회사를 인수할 것이냐, 공장을 더 지을 것이냐, 빚을 갚을 것이냐. 그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은 윌리엄 쏜다이크의 저서 〈현금의 재발견〉에 등장한 위대한 CEO들의 자본배분 케이스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거울삼아 마테리온의 CEO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분석해보겠습니다. 네 번째 원천은 가격과열 함정입니다. 2000년의 시스코가 대표적입니다. 1999년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의 절대 강자였고 매출은 매년 50% 이상 성장했으며 실제로 그 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닷컴 거품의 정점에서 PER 200배에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기록한 순간부터 정점에서 80% 가까이 추락했고, 그 가격으로의 회복에는 2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스코는 좋은 회사였지만 그 시점의 시스코 주식은 좋은 주식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좋은 회사가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니라는 격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을 표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도구입니다. 본문에서 마테리온을 검토할 때 우리는 이 네 가지 원천을 통해 차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치함정에는 이 네 가지 원천 외에도 또 다른 분류가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 원천이 "왜 함정인가"라는 원인 측면의 분류(산업·회계·자본배분·가격)라면, 또 하나의 분류는 "함정에 빠진 기업이 시장에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증상 측면의 분류입니다. 이 증상 분류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① 불안한 현금흐름 창출능력, ②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이 그것입니다. 두 분류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원인 분류와 내부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 분류가 가치함정이라는 같은 현상을 양쪽에서 협공하는 입체 도구가 됩니다. 심화편-하의 제4부에서 두 분류를 함께 펼치며 마테리온을 8각 정밀 진단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미리 말씀드리면, 이번 심화편 상편에서는 첫 번째 원천인 사양산업 함정에 한정해서만 적용합니다. 나머지 세 원천과 네 가지 증상은 모두 CEO와 자본배분, 회계 신뢰성, 그리고 적정주가 분석과 직결되어 있고 이는 하편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기에 다음 시간에 다루겠습니다. (feat. 여기에 다 쓰면 죽음) 첫 번째 도구는 일단 소개만 받아주십시오. 두 번째 도구상자: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두 번째 도구는 마이클 포터의 5 Forces입니다. 이것은 마이클 포터가 197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산업 구조 분석 프레임입니다. 한 회사가 속한 산업에는 다섯 가지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는데, 이에 대한 회사의 저항력을 측정합니다. 싸움 잘하는 '짱'을 주변 학교 다섯 명이 둘러 싼 악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편에서 다룬 바 있지만 이번 심화편에서는 더욱 정밀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다섯 압력이 모두 낮으면 회사는 편하게 돈을 법니다. 모두 높으면 회사는 죽도록 일하고도 얇은 마진만 챙기거나 천천히 망합니다. 마테리온의 경우 이 다섯 압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본문의 핵심 검증 지점 중 하나입니다. 다만 포터의 프레임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 세계, 즉 산업의 형세만 봅니다. 같은 산업에 있어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혹은 외부적 환경 변화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인데 그 부분은 5 Forces로 잡히지 않지요. 그래서 세 번째 도구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도구상자: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 마르코 파픽은 세계적인 지정학 전략가입니다. 2026년 상반기에 월가아재님의 라이브 방송에서 언급된 것을 계기로 읽게 된 그의 저서 〈지정학적 알파(Geopolitical Alpha)〉는 개인적으로 2026년 상반기 읽었던 최고의 책 중 하나였습니다. 지정학적 알파 / 마르코 파픽 / 여의도 책방 / 2022 그가 펼치는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한 국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는 지도자의 개인적인 '선호'보다 '제약'이 더 중요한 요인이 되며, 이러한 제약에는 여섯 가지가 존재합니다. 본래는 국가 차원의 분석 프레임이지만 회사의 CEO가 내린 결정의 배경을 읽어낼 때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분석의 수준이 한 단계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력한 '제약'기반 분석 도구는 미국과 중국 같은 '국가'를 분석할 때도 유용하며, 마테리온의 CEO인 '비제이바르기야'같은 '개인'의 의사결정을 검증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마르코 파픽의 여섯 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여섯 제약 중에서 처음 네 개는 비교적 단단하며 잘 변하지 않지만, 마지막 두 개는 변동성이 큽니다. 그래서 파픽은 첫 네 개를 "구조적 제약(structural constraints)", 마지막 두 개를 "와일드카드(wildcards)"라고 부릅니다. 구조적 제약 중 지정학적, 지리적 제약과 헌법, 제도적 제약은 체계적 위험에 속하기도 합니다. 이 여섯 가지 제약이 세 번째 도구입니다. 이 도구는 기존의 어떠한 투자분석에서도 깊이 있게 다룬 적이 거의 없으며 CFA 시험에서도 나오지 않지만, 수학보다는 인문학을 엣지로 삼아야 하는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덕왕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이 분야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도구 외에 하나의 책이 등장합니다. 바로 윌리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The Outsiders)〉이라는 책인데, 기존의 기업분석이나 투자방법, 매매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현금흐름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성과를 냈던 8명의 미국 CEO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윌리엄 손다이크 / 마인드 빌딩 / 2019 특히 이 책에 나온 CEO들의 자본 배분 방식은 개인 투자자가 추구해야 할 엣지 형성에 충분히 참고할 만하며, 마테리온을 비추는 거울로 삼기에도 충분합니다. 이 책 안에 있는 CEO들의 성과 하나하나가 오늘날에도 그 유산이 계승되고 있을만큼 매우 훌륭한 사례이기에 본문에서 한 사람씩 자연스럽게 등장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표로 먼저 정리해보겠습니다. 손다이크는 이 8명에게서 공통적인 자본배분의 7가지 원칙을 찾아냈습니다. 본문 곳곳에서 이 원칙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주식이 쌀 때만 사들이고, 비싸지면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싼 자산을 사는 모습은 일반 투자자가 추구해야 할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원칙의 거울로 마테리온을 비추어 살펴보겠습니다. 이로써 도구상자가 다 펼쳐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짚은 후 본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밸리AI식구들만을 위한 글입니다. 가뜩이나 공부할 것도 많은데 굳이 미국의 작은 회사 이야기를 이렇게 굳이 심화편까지 써가며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개인 투자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마테리온이라는 회사 자체의 성격에 있습니다. 지난 '하'편에서 살펴봤지만 이 회사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것처럼 보였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판단이 회색지대에 있으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실력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파보는 '경험'만이 우리의 엣지를 강화시키며 그 경험을 얻는 것이 이번 심화편의 목적입니다. 세 가지 도구상자를 통해 기업을 분석하는 것은 개인투자자에도, 기관레벨에서도 익숙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증권사가 발간한 레포트를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스스로 파묘해보는 경험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이라는 세 가지 도구상자와 함께 손다이크가 제시한 위대한 CEO들의 원칙들을 결합하여 기업의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고 현재의 '가격'의 적절성을 시장을 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개인의 엣지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단지 이 도구들을 손에 쥐었다고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게임도 아니고 초보 목수에게 에픽 도구들이 주어졌다고 해서 바로 멋진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땅을 다지는 법, 주춧돌로 삼을 돌과 좋은 목재를 구별하는 눈, 그리고 환경을 고려한 설계를 머리속에 순서대로 넣고 있다면 적어도 아기돼지 삼형제급으로 망칠 가능성은 줄어들 것입니다. 결국 이 도구들은 자랑할 만한 멋진 집을 만드는 것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집을 만드는 데 그 목표가 있습니다. 분석은 대박의 기회를 찾는 것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월가아재 혹은 에이버리 혹은 스텔라)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한국에도 마침 단독 글로벌 독점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첨단소재 회사들이 있고 외부 영입 CEO가 있고 자사주 매입에 인색한 채 매도에만 집중하는 임원들이 가득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심화편을 마치고 나면 이러한 기업들을 평가할 수 있는 멋진 도구들을, 우리는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번 심화편에서 나눌 핵심 내용들을 짚어보았습니다. 끝으로 이번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줄 전체 목차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심화편 상 프롤로그: 곰탕을 우려내는 마음으로 제1부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 제34장 세 전선이 동시에 불붙다 ─ 우주, 방위, 에너지 제35장 등짝, 등짝을 보자 ─ 5 Forces로 본 마테리온의 해자 제36장 미국과 중국의 제약 ─ 파픽 6중 제약의 입체 분석 제2부 마테리온은 좋은 주식인가? 제37장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 사이 ─ 비대칭의 화두 제38장 임원매도 3차원 검증 ─ 팔기만 한다는 말의 진위 심화편 하 제3부 CEO라는 사람과 그의 자본배분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그의 31년이 만든 도구상자 제40장 손다이크의 거울 ─ 자사주 매입 11년의 이력 제41장 차브라야의 거울 ─ 비싼 주식을 통화로 쓴다는 것 제4부 함정과 종합 진단 제42장 가치함정 원천과 증상의 결합 ─ 8각 진단 제43장 가치함정 종합 진단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에필로그: 색안경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부록: 심화편 용어·개념 정리표 참고로 이번 심화편에는 적정가격과 매수와 매도에 대한 의견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적정주가 도출에 대해 아직 글을 쓸 만큼 충분하게 익히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격과 매수·매도에 대한 해석은 투자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가격도 어떤 투자철학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가치투자자에게는 비싼 가격이지만 테크로펀더멘털리스트에겐 합리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통의 관심 요소인 기업 분석에 한정하며 투자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주의: 만약 기존 상, 중, 하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면 당장 곰탕을 내려 놓고 기사식당 밥을 먼저 드시고 오시는 것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제1부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 제34장 세 전선이 동시에 불붙다: 우주, 방위, 에너지 지난 세 시간에 걸쳐 살펴보았듯이, 베릴륨이라는 금속은 이상한 금속입니다. 알루미늄보다 1.5배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합니다. 전기는 막는데 열은 또 잘 전달합니다. 그리고 X선도 통과시킵니다. 다른 금속들은 X선을 막지만 베릴륨은 거의 그대로 통과시킵니다. 우리가 찍는 X-Ray 기기에 베릴륨으로 만든 튜브 부품이 들어갑니다. 이 네 가지 특성 ─ 가볍고, 단단하고, 열을 잘 전달하고, X선이 통과한다 ─ 을 한꺼번에 가진 조합은 오직 베릴륨뿐입니다. 그래서 이 금속은 산업계에서 주전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손흥민급 선수입니다. 다만 계속 경기를 뛰고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는 오직 그 팀이 얼마나 발전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릴륨이 활약한 산업이라는 전장에 대해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베릴륨이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 개의 전선은 바로 우주, 방위, 에너지입니다. 전선 1. 우주산업 우주산업에서 베릴륨이 가장 빛나는 자리는 망원경의 거울입니다. 우주 망원경의 주거울은 매우 가벼우면서 정밀하며 극한의 조건에서도 신뢰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무거우면 발사 비용이 폭발하고 신뢰도가 낮으면 비싼 쓰레기가 됩니다.(실제로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렇게 될 뻔 했습니다) 베릴륨은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유리보다 단단해서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그 대표 사례입니다. 2021년 발사된 이 망원경의 주거울은 베릴륨 18장을 벌집 모양으로 이어붙인 6.5미터짜리입니다. 이 거울에 들어간 베릴륨은 마테리온이 공급했지요. 정확히는 마테리온의 자회사인 Brush Wellman이 1990년대 후반부터 NASA에 베릴륨 광학 그레이드를 공급해 왔고 마테리온이 2011년 사명을 바꾼 뒤에도 계속 담당하고 있습니다. JWST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 세대의 우주망원경 ─ NASA의 NGRST, ESA의 Plato 미션 ─ 도 모두 베릴륨 광학을 검토 중입니다. 그리고 미국 NRO(국가정찰국: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는 첩보위성에 베릴륨 광학제품을 정기적으로 사용합니다. 정확히 어떤 위성에 얼마나 쓰는지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NRO의 단독 예산도 공식적으로는 비공개로 분류되어 있으며, 공개된 마지막 단독 수치는 2013년 Snowden 자료 기준 약 $10.3B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ODNI가 공개하는 National Intelligence Program(NIP) 총액이 FY2024 기준 약 $76.5B에 달하며, NRO는 그 NIP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NRO 광학 위성의 베릴륨 수요 비중에 대한 외부 추정치들이 일부 산업 보고서에 등장하지만, 1차 자료로 공개된 수치는 없으므로 정확한 비율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NRO의 베릴륨 광학 수요는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Space-X 같은 민간우주기업들의 발사체 사업과 스타링크로 대표되는 저궤도 위성군의 가세도 베릴륨 수요 증가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스페이스X 스타링크, 아마존 카이퍼, 중국 GW(귀왕), 인도 ISRO가 모두 자기 위성군을 띄우고 있습니다. 이 위성들 중 일부는 광학 카메라를 탑재하고 그 카메라 중 일부는 베릴륨 광학을 씁니다. 무게가 곧 돈인 시장에서 한 그램이라도 가벼운 거울은 발사 비용을 낮춥니다. 전선 2. 방위산업 베릴륨이 가장 결정적으로 쓰이는 곳은 사실 방위산업입니다. 무기 시스템에서 베릴륨은 당당히 두 자리를 차지합니다. 첫 번째 자리는 정밀 광학입니다. 베릴륨은 5세대 전투기의 핵심 부품에 필수적입니다. F-35 전투기의 눈 역할을 하는 EOTS(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의 하우징(껍데기)에 마테리온이 공급하는 특수 알루미늄-베릴륨 합금(AlBeCast®) 등이 쓰입니다. 이 합금은 알루미늄보다 22%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6배 단단하여 고속 비행 시 카메라의 진동을 잡아줍니다. 그 외에도 랜딩기어 부싱, 전기 커넥터 등에 구리-베릴륨 합금 형태로 한 대 당 수십 킬로그램(kg) 이상이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F-35 한 대당 정확한 베릴륨 사용량은 록히드마틴·국방부 모두 비공개이며, 외부 추정치들이 산업 보고서 형태로 유통될 뿐입니다). 특히 F-35는 미국이 동맹국에 수출하는 5세대 전투기로 2026년 현재까지 1,000대 이상이 생산되었고 향후 3,000대 이상이 생산될 예정입니다. EOTS 한 세트당 베릴륨 사용량은 작지만 3,000대 곱하기 한 세트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양이지요. 전투기 단독 소비량과 위성/우주 프로그램을 포함한 국방 예산 자료를 통해 연간 총소비량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USGS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6(2025년 데이터 기준)에 따르면 미국 전체 베릴륨 apparent consumption(실질 소비 추정치)은 2025년 약 230톤으로, 시장 규모는 약 3억 6천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USGS 자료에서 베릴륨 제품의 매출 기준 용도 비중은 소비자 전자 약 29%, 항공우주·방산 약 24%, 산업부품 약 17%, 자동차 전자 약 9%, 에너지 약 8%, 반도체 약 2%, 기타 약 11%로 제시됩니다. F-35 전투기의 제조사 록히드마틴은 SEC 공시 기준 2024년 110대, 2025년 사상 최대인 191대를 인도했습니다(Lockheed Martin Form 8-K, 2026년 1월). 미 국방부의 단독 베릴륨 소비량은 별도로 공식 발표되지 않으나, F-35 프로그램의 연 150~190대 생산 규모와 합금 부품에 들어가는 베릴륨 양을 종합할 때 F-35 프로그램만으로도 가공 시 손실분 포함 연간 수십 톤 규모의 베릴륨 원료가 소요될 것이라는 산업 추정치들이 모입니다. 마테리온의 오하이오 엘모어 정련소가 연 약 130톤(공급망 자료 기준)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F-35 하나의 프로그램이 마테리온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는 셈입니다. 두 번째 자리는 핵억지력입니다. 미국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에는 베릴륨이 들어가는데, 정확히는 핵탄두의 1차 단계(primary stage)에 쓰입니다. Teller-Ulam 설계의 열핵무기에서 플루토늄 코어 주위를 감싸는 얇은 베릴륨 층은 두 가지 결정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하나는 ‘중성자 반사체’로서 플루토늄의 임계 질량을 낮춰 핵분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유의 X선 투과성(X-ray transparency)을 활용해, 1차 단계 폭발 시 발생한 X선을 흡수·차단하지 않고 2차 단계로 손실 없이 빠르게 통과시켜 ‘복사 임플로전(Radiation Implosion) 압축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성자는 강력하게 반사하면서도 X선은 그대로 통과시키는 이중적 특성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금속은 베릴륨 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시 똑똑한 밸리인 답습니다. (feat. 믿고 있었다구!) 미국은 현재 보유 중인 ICBM 미니트맨3를 센티넬(Sentinel)이라는 신형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2024년 7월 미 공군 발표에 따르면 센티넬 프로그램의 총 예상 비용은 1,410억 달러로 부풀어 있고 초기 능력은 2030년대 초, 전면 배치는 2050년대 목표로 일정이 다시 잡혀 있습니다. 1,410억 달러짜리 프로그램에서 ─ 노스럽 그루먼이 주계약자이고 록히드마틴이 재진입체(Mk21A)를 만들고 NNSA가 W87-1 탄두를 새로 만드는 ─ 그 모든 탄두의 1차 단계에 베릴륨이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테리온이 미 국방부에게 어떤 위상의 회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핵잠수함의 핵탄두,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탄두,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핵억지력 시스템도 베릴륨을 사용합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베릴륨을 공급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통로가 마테리온이지요. 그렇다면 이 방위산업 전선은 더 격렬해질까요? 거시 데이터가 그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독립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가 2026년 4월 27일 발표한 Trends in World Military Expenditure, 2025 Fact Sheet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군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실질 +2.9%, 11년 연속 증가). 한 해 전인 2025년 4월 28일에 발표된 2024년 데이터는 2조 7,180억 달러였고 실질 +9.4%로 1988년 이래 가장 가파른 연간 증가율이었습니다. (출처: SIPRI Fact Sheet, 2025-04-28 및 2026-04-27) 미국의 2025년 -7.5% 감소는 FY2025 예산의 회계상 조정 ...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하'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베릴륨의 제왕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중'편으로 깔끔하게 끝내려 했던 덕왕의 장대한 꿈이 먼지처럼 사라진 후 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기필코 반드시 ‘하’ 편으로 끝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은 덕왕의 글 중에서 가장 깁니다. 점심시간 정도로는 어림없으며 기존에 점심시간과 글을 등가교환하셨던 분이시라면 이번 글을 통해 비자발적으로 간헐적 단식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만약 식사를 하며 읽고 싶으시다면 즉시 테이크아웃을 해 오실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밥은 먹고 싶고 글은 읽어야겠고 지금까지 참으로 먼 길이었습니다. <최애의 아이>로 '상'편의 문을 열며 보석의 세계와 우주의 역사를 지나, '중'편에서는 우주로부터 버림받은 베릴륨의 40억 년 동안의 존버 후 마침내 지구 문명의 전면에 등장하여 인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청구서를 내미는 복수의 시작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릴륨은 성격은 개차반이었지만 재능 하나만큼은 끝내주던 전직 축구선수 '탐욕왕’ 아델 타랍을 떠올리게 합니다. 폐를 망가뜨릴 만큼 치명적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악마적 재능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핵발전소의 부품이 되면서 동시에 핵폭탄의 방아쇠가 됩니다. 미량을 넣어도 5배 이상의 물성 향상을 가져오면서도 그보다 적은 양으로도 생명을 빼앗고 파멸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양 극단을 오갑니다. 이번 시간에는 덕왕에게 남아있는 열 두 챕터를 통해, 이런 혼란한 베릴륨의 이중성에 대해 살펴보고 과연 인류가 베릴륨이 내미는 청구서를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2장. 마테리온, 둥지 싸움에서 살아남은 뻐꾸기 지구에서 베릴륨을 지배하는 단 하나뿐인 회사의 이름은 마테리온(Materion Corporation, NYSE: MTRN)입니다. 1931년 Brush Beryllium이라는 사명으로 시작하여 201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으며, 오하이오주 메이필드 하이츠에 있는 본사가 있는, 직원 2,880명 규모의 작은 회사입니다. 시가총액은 약 40억 달러로 코스피로 따지자면 시총 60위권의 대형주지만, 미국 상장사 기준으로는 미드캡(중형주)의 하위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고객이 있는 S&P500의 거대 기업들과 비교하자면 '매우 작은' 회사입니다. 사업부는 총 셋입니다. 채굴과 정제를 담당하는 Performance Materials가 회사의 본진이고, 그 외 반도체 소재 부문의 Electronic Materials와 광학 부품을 담당하는 Precision Optics 사업부가 있습니다. 핵심 자산도 셋입니다. 유타주 Spor Mountain에는 가장 중요한 베르트란다이트 광산(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채굴되는 베릴륨 광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주 Elmore에는 정제소와 함께, 핵융합 및 핵반응로에 필수적인 베릴륨 페블(Beryllium Pebbles, 작은 구형 입자)을 생산하는 핵심 시설인 'Pebbles Plant'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고? 다른 곳은 엄두도 못 낸다고? 더구나 앞으로 더욱 미래가 기대된다고? 세상에, 완전 로또잖아?" 100년 가까이 오로지 한 우물만 판 회사. 세계에서 하나의 광물을 지배하고 있는 단 하나의 회사. 미국 정부가 밀어주는 회사. 이 정도라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사면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사기꾼들이 늑대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돈을 노리는 이 냉혹한 투자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제 막 태어난 ‘맛있는’ 아기염소일 뿐입니다. '신이 내린 로또'라는 말이 신중함이 아닌 직관으로부터 나오고, '매수'에 대한 결정이 자신의 판단이 아닌 타인의 권위에 의한 것이 되는 순간, 그 회사는 가장 위험한 종목이 됩니다. 덕왕은 매수 매도 추천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하편에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쌓아 온 베릴륨에 대한 선입견을 최대한 지우고 다시 면접을 보는 마음으로 업계에서 왕으로 군림해 온 마테리온에 대해 최대한 숫자와 사실에 근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뱁새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슬쩍 알을 낳고 사라지는 '탁란(托卵, Brood Parasitism)'을 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같은 둥지 안에서 키워준 어미새의 다른 알들을 하나씩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립니다. 둥지에 자기 혼자만 남을 때까지. 마테리온이 8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일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은 둥지 밖으로 떨어졌고 마테리온은 살아남았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부활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한데,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 23장.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네 개의 벽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아니,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중국이나 땅덩이 넓은 러시아에 베릴륨이 없을까? 정말 없는 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면 덕왕은 당신의 날카로운 시선에 물개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베릴륨은 희귀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보게 작가 양반. 미국에만 있다면서 이제 와서 희귀하지 않다니, 대관절 이게 무슨 곱버스 ETF 상하이 트위스트 추는 소리요?" 마침내 포트폴리오에서 ‘왕이 될 상'을 찾았다며 좋아하던 여러분이 이 한마디에 내뱉는 장탄식이 덕왕의 키보드 앞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사실 베릴륨은 희토류처럼 6대 대륙 모든 곳에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USGS(미국지질조사국: U.S. Geological Survey)의 2017년 글로벌 베릴륨 분포 지도를 보면 밀도의 차이는 있지만 점이 찍히지 않은 대륙은 없습니다. 지각 평균 함량은 약 2~6 ppm으로 우라늄(2.7 ppm)이나 주석(2.3 ppm)과 비슷한 수준이며, 크롬·니켈·아연 같은 흔한 금속보다는 적지만, 금이나 백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합니다. 중국에도 러시아에도 카자흐스탄에서도 베릴륨이 있습니다. 출처: https://www.usgs.gov/media/images/world-map-showing-beryllium-deposits 즉 매장량이 부족해서 마테리온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단 한 회사만 살아남았을까요? 그 이유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세 개의 방벽보다 단단한 네 겹의 장벽 때문입니다. 첫째, 순도와 규모. 미사일 자이로스코프나 핵무기 중성자 반사체에 들어가는 베릴륨은 99.8퍼센트 이상의 고순도가 요구됩니다. 그에 비해 카자흐스탄·중국에서 나오는 베릴륨은 상당량이 순도가 낮은 합금용 또는 산업용 등급이며, 무기에 쓸 만한 고순도 등급을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곳은 마테리온뿐입니다. 또한 규모에 있어서도 유타 Spor Mountain광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써(베르트란다이트 광상 기준), 매장량은 19,000톤에 이르며 앞으로 70년 이상 채굴 가능한 압도적인 경제성을 지녔습니다. 둘째, 공정 노하우. 베릴륨의 대표적인 가공 공정으로는 성형 공정(HIP)과 영역 정제(zone-refining)가 있습니다. HIP 공정(Hot Isostatic Pressing: 열간 등압 성형)은 소재에 높은 열과 균일한 압력을 가해 내부의 기공을 없애 밀도를 극대화하는 고밀도 성형기술로써, 방위산업이나 첨단 부품 제조에 필수적입니다. Zone-refining(영역 정제법)은 긴 금속 막대의 한쪽 끝을 녹인 후, 이 녹은 영역(Zone)을 천천히 반대쪽 끝으로 이동시켜 한 방향으로 불순물이 몰리게 하고 반대쪽에 99.999% 이상의 초고순도 베릴륨이 남게 만드는 공정인데, 반도체나 고성능 검출기 제작에 필수적입니다. 이 공정에 대한 노하우는 오랜 시간에 걸친 시행착오와 목숨의 등가교환을 통해 축적되었습니다. 셋째, 공급 안정성과 인증 장벽. 미국 국방부는 자국 무기 부품을 외국 공급망에 맡기는 것을 전략적 자살로 간주합니다. 카자흐스탄이 아무리 좋은 베릴륨을 만들어도, NASA의 화성 망원경에 카자흐스탄산 베릴륨이 들어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품질의 문제를 넘어선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타국에서 생산할 수 있다 쳐도 NASA·Pentagon·반도체 OEM의 2차 공급원 인증을 받으려면 기본 3~7년의 세월과 함께 1,000만~5,000만 달러의 심사 자금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베릴륨 거울 인증만 7년이 걸렸습니다. 원서비만 최소 150억에 불합격이 99% 예정된 상황에서 지원할 학생은 없겠지요. 넷째, OSHA 0.2 마이크로그램 규제와 ITAR 수출통제. 게다가 군용·원자로용 베릴륨은 미국 수출통제 대상이라, 외국 회사는 미국 방산 수요에 법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ITAR(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 국제 무기 거래 규정)’은 미국 국무부가 관장하는 수출 통제 규정으로, 미국의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방위 물품, 기술 데이터, 서비스의 해외 수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법률입니다. 베릴륨 합금이나 고순도 베릴륨 등은 군사적 응용 가치가 높아 ITAR의 군용물자품목목록(USML)에 포함되어 관련 기술과 함께 통제됩니다. 이에 따라 미국산 베릴륨이나 관련 기술을 거래하고자 할 때는 국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허가 없이 제3 국으로 재수출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거기에 80년간 구축된 강력한 환경 규제는 미국 외의 어떤 나라도 공정 기준을 충족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야구장에서 고래밥 한 알 만큼 흘려도 환경파괴범으로 잡혀가는 수준입니다. 24장. 죽었는데 살아난 마테리온, 미국 정부의 파묘 이쯤 되면 견고한 4겹 장벽 앞에서, 둥지에 들어가 보려 했던 다른 알들의 최후가 어땠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식의 형태에서 가장 은밀하고 까다로운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개인의 경험, 학습, 노하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정량적으로 측정되지 않으며 대규모로 공유되기 어렵기에 거의 현장에서 도제식 전수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대표적인 암묵지 중심의 산업입니다. 암묵지가 풍부할 때는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지만 한 번 끊기면 오히려 문서화된 전수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지적 역량의 손실(Loss of intellectual capacity)'을 가속화하여 '사라진 기술(Lost Art)'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베릴륨의 절대강자 마테리온이 정확히 이 암묵지의 함정에 빠져 숨통이 끊어졌다가 미국 정부의 파묘로 인해 2012년, 12년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한 번 죽었던 마테리온을 미국 정부가 되살린 이야기 1990년대 후반, 미국 국방부가 보유한 '베릴륨 잉곳 비축분(National Defense Stockpile)'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냉전이 끝나며 핵무기 수요가 줄었고, 비축분만 갖다 써도 한참 쓴다는 판단이 우세했지요. 마테리온(당시 이름은 Brush Wellman) 입장에서는 정제 라인을 돌리는 것보다 정부 비축분을 사다 가공해 파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이어 온 1차 정제 능력을 — 그것도 세계에서 유일한 — 자기 손으로 묻어버렸습니다. 10년쯤 지나자 미국 국방부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냉전이 끝나며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지만 소련의 빈자리를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채우기 시작했고,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며 모든 것에 대한 통제가 주요 화두로 떠올랐는데, 이는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 수급 문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급한 마음에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비축분은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2011년에 바닥을 친다는 충격적인 예측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이 10년 간 손을 놓고 있던 동안 전 세계 어디에도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고순도 베릴륨 공급원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발등을 찍었다"는 자각이 의회를 흔들었고, 2003년 하원 군사위원회는 마침내 "전략물자인 금속 베릴륨 고갈 직전"이라는 보고서를 의결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국방생산법(DPA, Defense Production Act) Title III'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지만 시장 논리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 국가 기간산업을 정부 자금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준 것인데,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George W. Bush)이 이 조항을 베릴륨에 발동시켰습니다. 마테리온이 관뚜껑을 열고 들어간 지 십여 년 만에 미국 정부에 의해 다시 파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004년 의회가 DPA Title III 예산으로 첫 $300만을 배정해 예비 설계에 들어갔고, 2005년 10월에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900만 규모의 본격 설계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후 단계적으로 추가 예산이 배정되며, 마테리온은 관에서 끌려 나와 강제로 소생술을 받으며, 닫았던 공장의 샷다를 다시 올려야 했습니다. 안돼. 돌아가. 당시 정부 부담은 약 $7,323만(약 $73.23M, Inside Defense 보도 기준)으로, 정부와 회사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였지만, 말이 좋아 분담이지, 시설이 운영될 수 있게 된 대부분의 자금은 정부가 지원했습니다. 연간 73톤(160,000파운드) 생산을 목표로 부활한 라인은 2011년 4월 15일, 다시 베릴륨 알갱이를 토해냈고, 2012년 1월 정식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베릴륨 해자의 본질을 한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미국 정부가 "세상에서 베릴륨을 다룰 줄 아는 회사"를 새로 찾으려 했다면 절대 같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본금 $7,300만으로 80년 치 노하우를 가진 회사를 대체 어디서 사 올 수 있을까요? 결국 미국도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부활시킬 곳은 그곳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테고, 이미 죽은 회사를 파묘하여 다시 살려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테리온이 가진 강력한 해자입니다. 네 겹의 성벽도 모자라, 국가의 절대적인 지원과 의존까지 받는 회사라니! 그것이 이 기업으로 하여금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경쟁자들은 어떻게 둥지에서 떨어졌을까요? 둥지에서 떨어진 알들 1. 카자흐스탄 Ulba. 마테리온이 생산하는 광물만으로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미국은, 전체 수입량 중 약 31%를 카자흐스탄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에는 베릴륨 광산이 없습니다. "엥? 광산이 없는데 어떻게 베릴륨을 수출한다는 거지?" 덕왕처럼 여러분도 이 말에 당혹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지만, 광산이 없는 카자흐스탄이 베릴륨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소련 붕괴 당시 '에르마코브스코예(Ermakovskoe)'와 같은 러시아 지역 광산으로부터 대량의 베릴륨 정광(Ore Concentrate) 비축분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집에 있는 금반지를 팔아 야금야금 생활비로 쓰듯, 울바(Ulba) 공장은 비축분을 조금씩 정제하여 미국에 판매해 왔는데, 이는 미국이 마테리온을 다시 되살리기 전부터 지금까지 일정 부분 유지되며 미국 외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베릴륨 공급국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물려받은 소련 시대 비축분은 이미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USGS 자료에 따르면 울바 공장이 현재 정광을 가져오는 곳은 다름 아닌 러시아에 남아있던 소비에트 시대의 잔여 비축분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구조입니다. 카자흐스탄의 돼지저금통은 이미 텅텅 비어서 옆집 러시아 저금통의 배까지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가 광물을 보내면, 카자흐스탄이 그것을 정제해서, 미국에 팝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자국 안보의 핵심 광물을, 러시아가 캐고 카자흐스탄이 가공해서 보내주고 있는 이상한 협력관계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앞에서 이념은 솜사탕처럼 살살 녹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합니다. 러시아발 비축분도 무한하지 않으며, 만드는 것도 대부분 원천제품에 해당하는 업스트림 피드(후방산업, 저부가가치)이고 마테리온처럼 고부가가치의 다운스트림(전방산업,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능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Rosatom과의 지분 관계 때문에 미국 방산 인증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받을 수 없으니, 자원이 소모되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습니다. 2. 중국 Fuyun Hengsheng. 중국이 믿고 있는 이곳은 Zone-refining 라인까지 갖췄지만 서방 항공우주 인증 실적은 전무합니다. 결정적으로 신장 위구르인을 동원했다는 강제노동 의혹으로 인해 미국 강제노동방지법(UFLPA)에 의해 미국 시장 진입이 차단되었습니다. (핑계가 좋은걸?) 물론 베릴륨은 단순한 자원이 아닌 전략물자기에 정부의 지원 하에 자국 내에서 첨단 재료로 쓰일 수는 있겠으나,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이며 여러 번의 과정을 거치며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베릴륨 가공의 특성상 경제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3. 러시아 Ermakovskoe. 한때 세계 최대급 매장지로 꼽혔던 에르마코브스코예(Ermakovskoe) 광산은 지금은 상업 생산 자체를 중단했습니다.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산업 인프라가 무너졌고 이로 인해 공정을 관리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지식 체계도 사라져 버리는 완벽한 'Lost Art(암묵지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 광산은 다시 가동되지 못했고, 정제 공장도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카자흐스탄, 중국, 러시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은 미국의 우호국가들이 아니기에 둥지에서 떨어진다 한들 미국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충격은 같은 뻐꾸기 동지마저 둥지에서 떨어뜨렸다는 데 있습니다. 4. IBC Advanced Alloys. 이 회사는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릴륨을 이용해 첨단 부품을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사실 이 회사의 베릴륨-알루미늄 합금 정밀 주조 공장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윌밍턴에 있었기에 반쯤은 미국 회사라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회사가 만든 부품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록히드 마틴의 F-35 전투기 부품도 있었습니다. 미국 방산의 진짜 핵심 공급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2024년 4월 25일, IBC가 갑자기 공장 문을 닫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장기 수요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못 찾았다. 누적 적자가 모회사의 구리 사업 자금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회사가 밝힌 이유였습니다. 특히 보도자료에서 CEO인 Mark A. Smith의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IBC 팀은 12년 동안 베릴륨-알루미늄 합금 시장을 키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장기 시장 수요가 끝내 형성되지 않았고 우리의 가능성은 끝났습니다." 그렇게 2024년 6월, IBC는 마지막 계약을 마무리하고 베릴륨-알루미늄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며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구리 합금 사업장만 남은 시총 2,500만 달러 수준의 작은 회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5월 11일 기준으로는 시총 약 1,640만 달러로 더 작아졌습니다. 한때 F-35 부품을 만들던 회사가 지금은 마테리온 시가총액의 1/256 수준이 되었으니, 둥지에서 떨어진 알의 운명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마테리온은 이제 고작 작은 게임에서 살아남은, 어미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어야 하는 아직은 어린 새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둥지에 홀로 남은 이 새끼에게(욕 아님) 먹이를 줘야 하는 어미새들은 누구일까요? 마테리온이 생산한 베릴륨이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 살펴보면 답이 보입니다. 25장. 베릴륨이 흘러드는 12개의 거인들                     이 표를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제법 많으실 겁니다. 미국 방산 4대장인 록히드 마틴, RTX(레이시온), 노스럽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있고 반도체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ASML, Applied Materials, Lam Research와 함께 MRI·CT 장비로 유명한 진단계의 최강자 Siemens도 등장합니다. 표 아래쪽에는 Schott AG라는 이름도 보입니다. 혹시 이 회사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집의 주방에 검은색 인덕션 쿡탑이 있다면, 그 검은 유리 표면 한쪽 구석에 작은 글씨로 SCHOTT CERAN이라고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71년 이 회사가 인덕션 유리를 처음 만든 후 반세기 동안 대명사가 된 브랜드입니다. 1960년대 말, Schott은 막스 플랑크 천문학 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천체 망원경 거울 기판용 유리세라믹인 '제로두(Zerodur)'를 개발했습니다. (주의: 제로투 아님) 제로두를 만들면서 쌓인 강화유리 기술은 1971년에 인덕션 쿡탑으로 응용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인덕션 유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지금도 마테리온의 12개 주요 고객사 중 하나입니다. Schott은 '초경량'이 요구되는 우주·군사 프로젝트에서, 베릴륨을 기반으로 한 광학 시스템을 '더 가볍고, 더 단단하게' 제작하기 위해 마테리온의 소재를 사용합니다. 천체 망원경 거울에서 시작한 회사의 이력이 우리 집 주방과 우주에 같이 맞닿아 있다니 신기하네요. 앞으로는 주방의 인덕션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12개의 거인들이 필요로 하는 베릴륨을 공급하는 회사가 단 하나, 마테리온뿐이라는 것은 이 회사가 강력한 해자(moat)를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우리의 긍정편향된 추측뿐일까요, 아니면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요? 다행히 재무제표를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이를 뒷받침하는 아주 깔끔한 증거가 있습니다. 26장. 줄을 서시오, 줄을!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판다 드라마 〈허준〉에서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줄을 서라며 소리쳤던 장면이 나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제한적이면 일찌감치 줄을 서거나 돈을 싸들고 가야 하지요. 이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개인과 기업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베릴륨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먼저 받기 위해 돈을 들고 줄을 서는 풍경이 마테리온의 회계 장부에 선수금이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선수금은 기업의 해자 혹은 우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마테리온의 2025년 3분기 10-Q 보고서에는 Unearned income이라는 항목으로 잡힌 4,640만 달러가 있는데, 이는 ‘Precision Clad Strip (고성능 금속 접합 소재)’ 제품의 확보를 원하는 고객으로부터 미리 받은 돈입니다. 또한 2026년 2월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 방산 대기업이 6,500만 달러(약 920억 원)를 미리 입금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회계 용어를 풀고 가겠습니다. 선급금과 선수금은 형제 같지만 방향은 서로 다른 용어인데 처음 접하면 조금 헷갈릴 수 있습니다. (덕왕도 실제로 공부하면서 많이 헷갈렸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계를 작성하는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선급금(Prepaid)은 '내가 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파듯이, 제발 나 먼저 살려달라며 얼마 안 되지만 넣어두라며 상대의 지갑에 돈을 찔러 넣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돈은 나갔지만 물건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니 나의 재무제표에는 '자산'으로 잡힙니다. 선수금(Advances)은 "내가 돈을 미리 받는 것(受: 받을 수)"입니다. 조선시대 세도가가 뇌물 값에 따라 관직을 팔았듯이, 선수금은 "보이는 성의에 따라 살려는 드릴게."라는 명백한 나의 우위 신호입니다. 돈은 미리 받았지만 나중에 물건을 줘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에 나의 재무제표에는 '부채'로 잡힙니다. 덕왕은 당시 선수금과 선급금을 구별하기 위해 단 하나의 문장을 기억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돈을 미리 받으면 나중에 갚아야 하는 '부채'가 생기고, 돈을 미리 줬으면 나중에 받아야 하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세상에 공짜란 없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참 쉽죠?) 기업회계에서 부채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가치평가를 할 때 부채비율이 좋다고 하지만, 선수금 같은 부채는 오히려 좋은 신호입니다. 판매자인 내가 구매자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투자에서는 대박의 기회를 발견하는 것보다 쪽박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 장기적 성공에 더욱 유리하기에, 초보 투자자라면 부채비율 200%가 넘어가는 기업을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수익성이 적어도 한 단계는 높아지겠지만, 투자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며 같은 부채라도 성격이 다름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 수 있다면 투자에서의 엣지는 확실히 커질 것입니다. (대충 공부하자는 말) 어쨌든 ...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중’

우주로부터 버림받아 삐뚤어진 미아, 마침내 청구서를 내밀다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최애의 아이』의 주인공 아쿠아마린과 루비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보석의 세계를 지나 어지러운 양자역학의 파편을 살짝 찍먹한 후, 온 우주의 핍박을 받으면서 흑화한 베릴륨의 화려한 복귀까지, 긴 여정을 이니셜 D 새벽배송 드리프트하듯 지나왔습니다. 절대 ‘브금’을 들으며 운전하지 말 것. 왜냐고는 묻지도 마. 이번 시간에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으로 베릴륨이 산업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고, 인류가 이 금속을 다루기 위해 치러야 했던 청구서의 정체와 80년째 그 비용을 지급하고 있는 한 회사를 만나보겠습니다. 만남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만 다시 (투자의 대상으로) 만나기 위해 회사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의 정체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투자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분께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온 우주가 거부했던 왕따였지만 지구에 정착한 이래로, 그땐 그랬지만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며 앞으로 꽃길만 걸을 것 같은 베릴륨의 뒤에서 누군가 짐을 싸고 있는 모습도 보게 되실 텐데, 이 지점에서 독자 여러분 각자의 판단이 요구됩니다. 덕왕과 함께 공부한 여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투자논리를 세우는 작업은 그 어떤 투자 서적을 읽는 것보다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덕왕의 이자카야에서 술 한잔과 함께 생각에 잠긴 당신을 본다면 덕왕도 조용히 가게문의 ‘샷다’를 내리며 오늘의 영업 마감을 알린 후 함께 한잔 하겠습니다. 자 이제. 영업 시작해 볼까요? (좋아. 오늘 오프닝 마음에 들었어) 14. 베릴륨의 형태: 합금, 순수, 산화물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그곳에서 꿀을 빨던 기억을 잊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일구며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거저 얻을 수 있었던 에덴의 달콤한 과일은 '완벽한 행복'의 상징이었지만, 인류는 그 후로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행복'을 얻기 위해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원죄처럼 갖고 살아왔습니다. 베릴륨 또한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힘을 가졌지만, 그 대가로 치명적인 파멸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악과'와 완벽한 평행이론을 이룹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 파괴적인 금속을 갈구했고 마침내 여러 산업에서 현대 문명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베릴륨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모습으로 변신해서 쓰입니다. 베릴륨 사용 형태 비중 첫째, 베릴륨-구리 합금(Be-Cu)이 대표적입니다. 전체 사용량의 약 73%가 이 합금 형태로 활용되는데, 베릴륨 1.8~2% 정도에 나머지가 구리인 합금입니다. 합금으로 쓰는 이유는 단지 베릴륨의 독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순수 베릴륨은 매우 높은 '취성(Brittleness, 脆性)'을 가지고 있어 가볍고 강하지만 잘 부러지고 가공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구리에 베릴륨을 소량만 섞으면 흡사 김치찌개에 조금만 넣어도 고향의 맛이 제대로 나는 마법의 가루처럼 인장 강도가 일반 구리의 5배로 뛰어오르고 전기 전도성과 가공성이 동시에 확보됩니다. 이 때문에 스프링·커넥터·베어링·방폭 공구 같이 "구부러지고 눌려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부품에 최적이며,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요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합금은 부딪혀도 불꽃이 안 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석유·가스 시추 장비용 '무(無) 스파크 공구(Non-spark tool)'에도 필수입니다. 두 번째는 순수 베릴륨 금속 형태로 약 17%를 차지합니다. 99% 이상 순도를 사용하는데, 미량만 들이마셔도 치명적인 이 금속을 굳이 순수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위험천만한 순도를 쓸 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물리적 극한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 광학 분야입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의 주경은 눈부신 황금색으로 빛나기에 전체가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주경은 순도 99% 이상의 고순도 베릴륨으로 만들어졌으며, 금은 그 위에 아주 얇게 100 나노미터 두께로 살짝 입혀졌을 뿐입니다. 베릴륨이 주재료로 선택된 이유는, 귀하신 몸으로 자란 금이 가지지 못한, 베릴륨이 빅뱅 이후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으면서 갖게 된 물성 때문입니다. 금 코팅 전 단계의 제임스 웹 주경. 매우 귀한 사진 금은 온도 변화에 따라 수축과 팽창이 심하고 매우 무겁습니다. 그에 비해 잡초처럼 살아온 베릴륨은 우주를 떠돌며 다져온 생존력 때문인지 약 영하 220도에 이르는 극저온에서도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는 안정성을 가졌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도 강철에 맞먹는 강성(영률 약 287 GPa)을 가집니다. 덕분에 제임스웹 주경의 뒷면을 깎아내어 벌집 구조로 만들면서 무게를 극한까지 줄이면서도 강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베릴륨의 우수성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허블 vs 제임스웹 거울 비교 이러한 베릴륨의 물성은 제임스웹 주경의 면적이 6배 이상 넓어졌음에도 무게는 허블 주경의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쯤 되면 판타지 세계에서 베릴륨을 미스릴보다 상위 등급으로 위치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베릴륨은 영하 200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에서부터 연쇄 반응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원자력 발전의 중성자 반사체나, 핵무기에서의 중성자 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온도 조건에서도 강력한 물성을 자랑하는데, 이때는 순수 베릴륨 형태로 사용됩니다. 의료용 X선 기기나 CT 스캔 장비에서도 순수 베릴륨은 대체 불가입니다. 거대한 X선 장비 안에는 '엑스레이 튜브'라는 핵심 부품이 있습니다. 이 튜브 안은 완벽한 진공 상태인데, X선이 밖으로 잘 새어 나오도록 뚫어 놓은 작은 구멍(직경 몇 cm 내외)을 아주 얇은 베릴륨 판으로 막아 놓았습니다. 이 작은 구멍은 X선을 거의 흡수하지 않고 통과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원자번호가 매우 낮은(4번) 베릴륨은 최적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건강검진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베릴륨 덕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베릴륨 X-ray Tube 마지막으로 베릴륨 산화물(BeO) 형태로써 전체 사용형태 중 약 10%를 차지합니다. 베릴륨을 태워 산소와 결합시키면 흰색 세라믹 덩어리가 생기는데, 이 녀석은 화학계의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기묘한 성질을 가진 이단아입니다.  부침 가루 아님. 먹으면 한방에 주님 곁으로 보통 전기가 잘 통하는 금속(구리, 은)은 열도 잘 전달하고, 전기가 안 통하는 절연체(유리, 고무)는 열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자연의 일반적인 법칙입니다. 그러나 베릴륨 산화물은 이 법칙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전기는 완벽히 차단하면서, 열은 구리만큼 빠르게 전달하는,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도 안 되는 성질을 갖추었습니다. (역시 뼛속까지 삐뚤어졌군요) 이러한 성질이 생기는 이유는 베릴륨 산화물의 원자 구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금속에서 열은 '전자'라는 배달원이 로켓 배송으로 이동하며 전달합니다. 하지만 베릴륨 산화물은 원자 구조가 매우 가볍고 결합이 단단하여 전자가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가벼운 원자들이 아주 촘촘하고 단단하게 맞물려 있어서, 열이 가해지면 고등학생들 마스게임 마냥 그 진동이 옆으로 광속에 가깝게 전달됩니다. 이 '원자의 진동'을 ‘포논(Phonon)’이라고 하는데, 열이 포논의 고속도로를 통해 순식간에 배송되는 셈입니다. 전기는 차단하면서 열은 광속으로 빼내는 이 성질 때문에 고출력 반도체 방열판, 고출력 레이저 히트싱크, 고주파 RF 세라믹에 널리 쓰입니다. "전기는 막고 열은 빼낸다." 이것은 매우 핵심적인 투자 인사이트를 제공해 줍니다. 전기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열관리 최적화는 최근 전기차 산업의 당면 과제입니다. 800V 고전압 배터리 모듈의 열관리 소재로 베릴륨 산화물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뒤에서 다뤄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베릴륨은 합금, 순수, 산화물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쓰입니다. 합금은 마법의 가루처럼 소량만 들어가도 고향의 맛을 내듯 물성이 향상되며, 순수한 베릴륨은 극한의 온도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 '순수한 강성'을 가졌으며, 산화물은 전기를 차단하고 열을 방출하며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슈퍼맨이 됩니다. 이 세 가지의 사용 형태와 특징을 기억한다면 앞으로 첨단 산업에 대한 리포트를 읽을 때에도 해당 산업에 대한 베릴륨의 적용 가능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회를 찾을 확률도 조금씩 더 올라가겠지요. 어차피 투자에서 한방에 팔자를 고치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은 노력들이 쌓여 작은 우위를 만들어 내며, 이 또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쌓여 비로소 성공이라는 탑으로 완성됩니다. 모든 구루들이 그렇게 자신만의 탑을 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 희열은 덤입니다. 15. 더 많은 곳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베릴륨 순수 베릴륨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주경이 되기까지, 미국에서만 11개 장소를 14번 이동하며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유타의 광산에서 채굴된 베릴륨 광석은 오하이오의 공장으로 옮겨져 정제되었고, 다시 여러 주를 거치며 분말화·압축·연마·금 코팅을 거친 뒤 마침내 우주로 올라갔습니다. 마치 하나의 명품 정장을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의 디자인, 영국의 양모, 프랑스의 안감, 독일의 재단 가위가 함께 모인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임스 웹에는 한 장도 아닌 열여덟 장의 주경이 들어가기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과학자를 갈아 넣어야 했지만, 10년의 세월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강산이 변하고 다시 쿨타임이 차는 동안,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방법을 수정하고 신뢰도 높은 기술을 축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노하우는 다시 시간의 단축과 규모의 경제로 이어져 오늘날 베릴륨이 여러 산업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사용의 '형태'를 보았으니 이제는 어떤 산업에서 사용되는지 그 '쓰임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자로용 베릴륨 현재의 원자력 발전과 차세대 핵융합 발전에도 베릴륨은 필수 소재입니다. 원자력 발전에서 최적의 효율을 위해서는 원자로와 핵융합 반응벽에 고온 환경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는 재료가 필요한데, 베릴륨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합니다. 베릴륨은 원자로 효율을 높이고, 원자로에서 분리 후 보관 시간을 단축하며, 유해 폐기물 발생량을 줄여 원자로의 가동 기간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핵융합 에너지 생산에 초점을 맞춘 세계 최대 규모의 플라즈마 물리학 실험 시설인 유럽 공동 토러스(JET)의 벽면 반사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중성자 반사체 및 감속재, 중성자 필터 어셈블리, 핵실험용 원자로 및 의료용 동위원소 원자로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릴륨-구리 합금(Be-Cu) 앞서 살펴보았듯이 베릴륨에 구리를 넣으면 미원 한 숟갈에 감칠맛 폭발하듯 인장 강도가 일반 구리의 5배로 수직 상승합니다. 이 압도적인 물성 덕분에 첨단 반도체 장비 내부의 정밀 커넥터·스프링·테스트 소켓이 대부분 이 합금으로 되어 있으며 그 쓰임새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ASML, Applied Materials, Lam Research의 장비 안에는 이 베릴륨-구리 합금이 가득합니다. 알루미늄-베릴륨 합금(AlBeMet)과 베릴륨 산화물(BeO) 이 두 소재들은 국방과학에서 더욱 주목받는 신소재입니다. 최근 국산 전투기 KF-21에 탑재된 ‘AESA 레이다(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Radar: 능동형 위상배열 레이다)’는 더 멀리서 더 빠르게 더 많은 적기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는 전투기의 눈입니다. 이 뛰어난 능력은 현대 전투기에 요구되는 “선제 탐지, 선제 타격 (First Look, First Shoot, First Kill)”의 핵심 개념이 되어 KF-21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4.5세대 이상급 전투기에 도입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이 분야에서 영국, 프랑스, 스웨덴,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여섯 번째로 AESA 레이다 기술 보유 국가가 되었습니다. 샷다내려! KF-21의 AESA 레이다 / 출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첨단 AESA 레이다 (좌측부터 UK Leonardo, Hanwha Aerospace, Northrop Grumman) AESA 레이다는 수천 개의 작은 안테나 모듈(T/R 모듈)을 잠자리 눈처럼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박아놓고, 이 작은 모듈 하나하나가 각자 알아서 전파를 쏘며 적기의 위치를 동시에 추적합니다. 성능은 끝내주게 좋지만 매우 무겁고 정밀하여, 극한 상황에서 버틸 수 없다면 오히려 일반 레이더보다 못합니다. 이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밀성과 신뢰성을 유지해 주는 알루미늄-베릴륨 합금은 레이더 하우징에 찰떡같은 필수 재료이고, 베릴륨 산화물은 전기를 완벽히 차단하면서도 열은 빠르게 방출하여 레이더가 과열되어 타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최적의 방열판(히트싱크) 소재로 쓰입니다. 프랑스 4.5 세대 전투기 Rafale에 장착된 AESA 레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공군만 쓸 리는 없겠지요. AESA의 안테나 및 반도체 송수신 모듈 등 핵심 구성품들은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면 무궁무진하게 활용이 가능하며, 심지어 100% 재활용도 가능하기에 향후 신규 사업으로의 확장이 대단히 용이합니다. 실제로 2030년대 중반 도입 예정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KDDX)에서는 AESA 레이다를 장착한 6,000~7,000톤급 미니 이지스함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미니 이지스 구축함 건조사업인 KDDX 우주 및 항공우주용 베릴륨 베릴륨은 높은 '항복 강도'를 지니고 있어 계측 장비가 '응력(Stress, 應力)'에 노출될 때에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우주 탐사 위성 및 광학 위성의 망원경 지지대에 필수적인, 낮은 응력 수준에서 높은 소성 변형 저항성이 요구되는 용도에 사용됩니다. 베릴륨은 영하 196도에서 영상 226도의 온도 범위에서도 안정적이며, 광학 코팅 없이도 원적외선 영역에서 뛰어난 반사율을 제공하기에, 제임스웹과 허블 우주망원경은 물론이고 탐사에 나서는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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