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2/2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양 많던 곰탕도 이제 마지막 그릇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마테리온을 향한 세 가지 의문이 담긴 곰탕 그릇을 받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첫째, 거버넌스의 정점에 앉은 CEO 비제이는 누구이며 어떤 무기를 쥔 사람인가. 둘째, 마테리온은 왜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가. 셋째, 재무제표에 쌓인 그 많은 차입금은 정말 나쁜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마치 다대기, 후추, 소금처럼 완벽한 곰탕 맛을 위해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양념 3형제와 같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39장에서 우리는 비제이가 그의 경력 대부분을 '인수와 통합'이라는 한 우물로 보낸 사람이며, 도둑이 제 버릇 못 고치듯 그 필살기를 마테리온에서도 그대로 꺼내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40장과 41장에서는 손다이크와 차브라야를 비교하며 마테리온의 자사주 매입을 살펴보았고, 쌀 때 사들이던 규율이 최근 들어 흐릿해진 정황과 함께, 비싼 주식을 통화처럼 쓰는 차브라야의 기술은 끝내 꺼내지 않은 채 인수 자금을 빚으로 마련해 온 사실을 보았지요. 그렇게 세 갈래로 흩어져 보이던 의문을 끝까지 따라가 보니, 결국 차입금이라는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마지막 그릇에서는 판단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요소인 차입금까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사골뼈가 녹아내릴 만큼 끝까지 우려낸다는 마음으로, 마테리온을 여덟 가지 측면에서 진단하고, 차입금을 자세히 들여다본 뒤, 마지막으로 재무제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숫자 뒤의 미장센까지 살핀 후 이 기업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제3부에서 우리는 비제이라는 사람과 그의 자본배분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4부에서는 시야를 넓혀, 마테리온이 적정한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는지, 혹은 회사 전체가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겠습니다.
상편 도구상자에서 우리는 첫 번째 도구로 '가치함정'을 챙겼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덕왕은 가치함정을 '네 가지 원천'과 '네 가지 증상'으로 나누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마치 들은 지 백만 년은 지난 듯한 먼 이야기 같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짚고 가겠습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회사는 왜 함정에 빠지는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추락하는 산업의 낮은 PER은 싼 게 아니라 비싼 것입니다.
원천② 회계 신뢰성 함정: 싸게 보이는 것에는 재무적 마사지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에 실패한 회사는 미래의 PER이 낮아집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좋은 회사가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닙니다. 시스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증상: 함정에 빠진 회사는 어떻게 보이는가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현금흐름이 들쭉날쭉합니다. 이런 기업의 앞날은 며느리도 모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인색합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경영 지배력이 약하고, 의사결정이 비정상적이며 느립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거버넌스를 의심케 하는 비정상적 거래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원천 넷, 증상 넷,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중 셋은 이미 상편에서 검증이 끝났습니다. 그 셋은 짧게 결론만 확인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나머지 다섯이 이번 장에서 새로 들여다볼 것인데, 그중에서도 회계 신뢰성 함정은 다음 장인 43장에서 차입금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이미 검증이 끝난 세 가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마테리온이 코닥처럼 죽어가는 산업에 갇혀 있는가. 상편 34장에서 우리는 우주·방위·에너지 세 전선을 모두 살펴보았고,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움직이며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양산업 함정은 명백히 해당 없고 앞날은 창창함. 통과입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상편 38장에서 임원 매도 클러스터를 3차원으로 검증할 때 점검했던 대목입니다. 고용된 전문경영인 CEO와 90%가 넘는 외부 기관의 지분 구조는 마테리온에게 최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닙니다. 13년 넘게 이어진 배당 증가 기간에서 볼 수 있듯 경영권 간섭의 징후는 없고, 앞으로도(배당이 꾸준하기만 하면)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통과입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마테리온의 임원 매도는 정상적인 거버넌스 규정 안에서, 사전에 약속된 자동 매도 일정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실적 발표에 연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여러 이사회 멤버에게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이었습니다. 매수 없이 매도만 이루어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것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스톡옵션 가이드라인도, 이사회 독립성도 미국 상장사의 표준적인 틀 안에서 작동하고 있으므로 가치함정의 증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것 역시 통과입니다.
세 가지가 통과되었으니, 이제 새로 들여다볼 다섯 가지로 넘어가겠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 실패 함정은 상편에서 후기 GE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CEO의 손에 들어온 1달러를 잘못된 곳에 쓰는 회사, 비싼 가격에 인수를 거듭하고 비쌀 때 자사주를 사들이는 회사는, 아무리 사업이 좋아도 주주의 돈이 새어 나갑니다.
비제이는 인수에 강하게 기울어진 자본배분을 해왔습니다. 옵틱스 발저스, H.C. 스타크, 코나솔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인수가 2017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임기를 채웠습니다. 반면 자사주 매입은 2014년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고, 2025년에는 오히려 비싼 구간에서 사들였습니다. 게다가 인수 자금은 자기 주식을 영리하게 '통화'로 쓰는 차브라야의 길이 아니라, 빚을 지는 방식으로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자본배분 실패'라고 부르기엔 이릅니다. 41장에서 보았듯이 큰 인수의 성패는 5년, 10년 뒤에야 드러나는데, 차브라야조차 인수 당시에는 큰 비판을 받았으니까요. 비제이의 인수 역시 훗날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성공하면 '탁월한 선견지명'이 되고 실패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가 되는, 딱 그런 자리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만 '실패'는 아니더라도 '치우침'은 분명합니다. 비제이의 자본배분은 인수 한쪽으로 강하게 기울어 있고, 그 인수가 빚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회사의 재무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중립'입니다.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안전하게 통과'라고 도장을 찍어 줄 수도 없습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가격과열 함정은 상편에서 2000년의 시스코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그 가격이 미래의 성장까지 모두 끌어다 반영해 버리면, 그 시점의 주식은 끔찍한 주식이 된다는 이야기였지요. 내재가치로 적정주가를 계산하는 일은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겠으나, 대략적인 상대가치평가로 러프하게라도 들여다보는 것은 가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0장에서 본 대로 마테리온의 밸류에이션은 어떤 자(尺)를 대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일회성 손상차손 탓에 회계장부 그대로의 PER은 한때 수백 배로 튀었고, 그것을 걷어낸 보정 PER은 2025년 약 27배였습니다. EV/EBITDA로 보면 2025년 약 14.2배입니다.
(참고로 이 둘은 2025 회계연도 기준입니다. 뒤 에필로그의 동종업계 비교에서는 2026년 5월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한 멀티플을 쓰기 때문에 같은 회사의 숫자가 이보다 높게 나오는데, 회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잣대와 시점이 다른 것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밸류에이션은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지금의 마테리온이 2014년처럼 '누가 봐도 싼' 구간에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보정 PER 27배도, EV/EBITDA 14배대도 헐값이라 부를 수치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것이 곧 하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내재가치평가도 상대가치평가도 '추세(momentum)'를 담아내지는 못하며, 그 어떤 평가도 심리로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기에 가격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이 점이 덕왕이 내재가치평가, 상대가치평가 모두를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다만 현재 가격에 대한 상대적 판단은 43장의 종합 진단과 에필로그를 통해 정리하겠습니다.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 이제 증상 쪽으로 넘어갑니다. 첫 번째 증상은 '불안한 현금흐름'입니다. 함정에 빠진 회사는 장부상 이익은 그럴듯해도 실제로 들어오는 현금이 들쭉날쭉하거나 빈약합니다.
마테리온은 어떨까요. 2024년 회계상 순이익은 손상차손 탓에 590만 달러까지 추락했습니다. 장부만 보면 거의 돈을 못 번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8,780만 달러였습니다. 순이익의 거의 열다섯 배입니다. 손상차손이 현금이 나가지 않는 회계상의 비용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장부상 이익은 찌그러졌어도 현금은 견조하게 들어왔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마테리온의 현금 창출 능력은 '불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테리온이 CAPEX가 무거운 회사라는 데 있습니다. 사업에서 현금이 들어와도 그중 상당 부분이 설비 유지·갱신으로 다시 빠져나갑니다. 특히 그 설비투자와 배당금 등을 빼고 최종적으로 남는 잉여현금흐름(FCF)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FCF를 매출로 나눈 잉여현금흐름이익률은 2019년 6.13%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내려와, 2023년 1.47%, 2024년 0.42%, 2025년 1.33%, 그리고 2026년 1분기 TTM 기준으로는 단 0.50%에 불과합니다. 업종 중앙값 2.27%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매출 19억 달러대 회사의 한 해 잉여현금이 한 줌이라면, 지갑 사정이 '넉넉하다'는 말은 도저히 붙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두 번째 증상은 '미흡한 주주환원'입니다. 주주에게 돌려주는 데 인색한 회사인가를 보는 자리이지요.
마테리온은 주주환원의 두 통로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 가운데, 배당 쪽으로 분명한 무게를 실어온 회사입니다. 13년 연속으로 배당을 늘려왔지요.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결코 가볍게 볼 기록이 아닙니다. 어지간히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없고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니까요. 반면 자사주 매입은 과거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습니다.
두 통로를 합쳐 보면, 마테리온의 주주환원은 '미흡하다'고 깎아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배당이라는 한 통로가 13년째 오히려 모범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훈장인 동시에 족쇄입니다. 배당은 한 번 늘리면 좀처럼 줄이기 어려운 탓에, 그 현금을 부채 상환이나 다른 곳으로 돌릴 여지가 좁아집니다. 앞서 보았듯 마테리온은 잉여현금이 얇아지는 상황에서도 매년 배당을 꼬박꼬박 늘려왔습니다. 2025년 한 해 배당으로 나간 현금이 약 1,150만 달러였는데, 그해 잉여현금흐름이 불과 2,370만 달러였습니다. 버는 잉여현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배당으로 빠진 셈이고,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13년 동안의 배당 증가는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그것이 '버는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내서 주는 것이라면, 배당의 증가가 오히려 다른 살림, 특히 부채 상환 여력을 빠듯하게 만드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동반하게 되며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집니다.
중간 정리
여덟 가지 측면 가운데 회계 신뢰성 함정(원천②)을 뺀 일곱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회계 신뢰성은 차입금과 한 묶음이라 43장으로 미뤄두었지요. 일곱 가지를 표로 모아 보겠습니다.

통과가 셋, 부정적이 셋, 중립과 보류가 각각 하나입니다. 얼핏 보면 마테리온은 무난하게 함정을 피해 가는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칸, 보류해 둔 회계 신뢰성 함정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막보'가 가장 센 것처럼, 이번 심화편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이 주제는, 마테리온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인 차입금과 맞닿아 있습니다.
곰탕 두 번째 그릇도 이제 바닥이 보입니다. 같이 힘을 내시지요.
이것을 43장으로 미룬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계 신뢰성을 검증한다는 것은 결국 "마테리온의 재무제표 숫자 자체를 믿어도 되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차입금이라는 가장 무거운 의심을 파헤치는 작업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차입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지려면 재무제표를 펼쳐야 하고, 그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지는 회계 신뢰성이 답해 줘야 하니까요. 두 가지는 한 묶음으로 다뤄야 앞뒤가 맞습니다.
상편과 하편을 마치며 덕왕의 마음에 가장 크게 걸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사실 자사주도 아니고 임원 매도도 아닌 차입금이었습니다. 이 회사, 빚이 너무 빠르게 늘어난 것 아닌가. 이자비용이 회사를 갉아먹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이 가시를 빼려고 보니, 한 가지 곤란한 사실과 마주쳤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이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은 왜 다루기 어려운가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부채비율 200% 넘는 회사는 거르세요." 투자 책에도, 유튜브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깔끔하고 외우기 쉬운 기준이지요. 시험에 나오면 동그라미 받기 딱 좋은 한 줄입니다.

그런데 이 깔끔한 기준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에 그대로 갖다 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책에 나오는 위대한 CEO 여덟 명 중 상당수가, 부채비율 기준으로는 낙제생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람이 존 멀론입니다.
빚으로 제국을 세운 사람, 존 멀론
존 멀론은 TCI라는 케이블TV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빚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빚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끌어다 썼지요. 부채비율 200% 룰을 들이대면 멀론의 TCI는 거를 회사가 아니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회사입니다. 그런데 손다이크는 이 멀론을 위대한 자본배분가 여덟 명 안에 당당히 넣었고, 멀론과 주주들은 그 빚더미 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멀론이 사기꾼이었거나 손다이크가 잘못 본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멀론의 빚은 '좋은 빚'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빚이란
케이블망은 한 번 깔면 수십 년을 씁니다. 깔고 나면 가입자들이 매달 꼬박꼬박 시청료를 냅니다.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 망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그 현금은 거르지 않고 들어옵니다. 멀론은 바로 이 점을 꿰뚫어 봤습니다. 들어올 현금이 이렇게 확실하다면, 그 현금을 담보 삼아 빚을 내서 케이블 회사를 더 사들이고, 거기서 또 현금이 나오면 또 빚을 내서 또 사들이고. 이렇게 굴리면 빚이 곧 성장의 엔진이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멀론의 빚은 갚을 수 있는 빚이었고, 벌어들이는 빚이었고, 실제 현금이 따라오는 빚이었습니다. 빚의 '양'이 아니라 빚의 '성격'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부채비율 200%"라는 한 줄짜리 기준은, 편하긴 해도 너무 거칠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칩니다. 같은 1억의 빚이라도 누가, 어떤 사업에, 어떻게 졌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데, 부채비율은 그저 "빚이 자본의 몇 배냐"만 볼 뿐 그 빚의 성격은 한 글자도 말해 주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부채비율 말고 무엇을 봐야 할까요. 이 질문 앞에서 덕왕은 세 도구상자 외에, 품속에 넣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냅니다.
제갈량의 지혜주머니, 세 개의 비단주머니
〈삼국지연의〉에는 유비를 모시러 동오로 떠나는 조자룡에게 제갈량이 비단주머니, 즉 금낭(錦囊) 몇 개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러두지요. "평소에는 열지 말고, 정말 위급한 고비(위고비)가 닥쳤을 때 하나씩 열어보아라." 조운은 이후 막다른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주머니를 하나씩 풀어보았고, 그 안에 제갈량이 미리 적어둔 계책을 실행하며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이때 조운이 받은 이 비단 주머니 안에 담긴 세 개의 계책을 '금낭묘계(錦囊妙計)'라고 합니다.

(주의: 오늘날 금낭묘계를 맛볼 수 있는 술. Feat. 제갈량 금낭호품(錦囊豪品))
덕왕은 상편에서 가치함정, 5 Forces, 6중 제약이라는 세 개의 도구상자를 챙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셋은 회사를 처음 들여다볼 때 활짝 펼쳐놓고 쓰는 연장입니다. 그런데 차입금이라는 고비는 결이 좀 다릅니다. 모든 회사를 볼 때마다 매번 꺼내는 도구가 아니라, "이 회사 빚이 좀 많은데?" 싶은 위급한 순간에만 품에서 꺼내 풀어보는 제갈량의 금낭이 필요합니다.
이에 덕왕은 투자자가 빚 많은 회사를 만났을 때 하나씩 풀어보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비단주머니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코에이는 덕왕의 능력치를 수정하라!
다만 그 셋을 풀기 전에, 이 주머니를 어디서 펼쳐봐야 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숫자는 영업이익입니다. "영업이익이 늘었으니 빚도 감당되겠지" 하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건 주머니를 열어보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손익계산서의 순서를 떠올려 보면 간단합니다. 매출에서 원가와 판관비를 빼면 영업이익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자비용이 빠집니다. 영업이익은 이자비용보다 윗줄에 있기에 회사가 빚을 산더미처럼 졌든 한 푼도 안 졌든 영업이익은 똑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사업이 잘 굴러가나"는 말해 줘도 "그 사업이 빚을 감당할 수 있나"는 한마디도 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빚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영업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어도 영업이익 자체가 빚을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영업이익으로 이익의 질을 보고자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자룡처럼 알맞은 상황과 질문에서 열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단주머니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비단주머니, 갚을 수 있는가
첫 번째 금낭에 적힌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회사, 빚을 갚을 수 있는가." 빌린 돈이 많든 적든, 일단 제때 이자를 내고 만기에 원금을 돌려줄 능력이 되느냐를 봅니다. 이걸 보는 숫자가 둘입니다. 하나는 이자보상배율,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입니다. 앞에서 영업이익만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는데, 이자비용으로 나누는 순간 "사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를 몇 번이나 갚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쓸모 있는 숫자가 됩니다. 값이 1이면 번 돈을 이자로 정확히 다 토해낸다는 뜻이라 위태롭고, 보통 2~3을 넘어가면 급한 불은 끈 것이며, 훌륭한 기업들은 20~30이 훌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차입금을 EBITDA로 나눈 값으로, "지금 버는 속도로 빚을 다 갚으려면 몇 년 걸리느냐"를 대략 보여줍니다. 3을 넘어가면 빚이 슬슬 무겁다는 신호입니다.
두 번째 비단주머니, 벌고 있는가
두 번째 금낭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빌린 돈이, 그 돈을 빌리는 값보다 더 벌고 있는가." 빚에는 이자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연 5%에 돈을 빌렸다면 최소한 5%보다는 많이 벌어야 남는 장사입니다. 5% 주고 빌린 돈으로 3%밖에 못 벌면 빌릴수록 손해이지요. 멀론이 위대했던 건 빌린 돈으로 그 이자보다 훨씬 많이 벌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재는 잣대가 ROIC와 WACC입니다. ROIC는 "회사에 들어온 전체 자본(Invested Capital), 주주 돈이든 빌린 돈이든, 그것으로 세금 떼고 뭐 떼고 몇 퍼센트를 벌었나"이고, WACC는 "그 자본을 끌어오는 데 든 평균 비용이 몇 퍼센트냐"입니다. ROIC가 WACC보다 높으면 자본을 굴려 가치를 만드는 것이고, 낮으면 굴릴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금낭에는 잣대가 하나 더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듀퐁 분석(Dupont Analysis)'입니다. 회사의 ...

복습되는 내용도 많고 새로 알게된 내용도 많네요
진한 글 감사합니다 다시 봐야겠습니다ㅎㅎ

하동관 곰탕에 덕왕의 글 하나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소. - 지나가던 밸리 나그네

진한곰탕을 들이마셨는데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거 같네요.
깊고 진한 분석에 경외를 표합니다.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수준이 올라오면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ㅎㅎ

원고를 올린 후 밤부터 감기몸살이 쎄게 와서 이제야 정신차렸습니다.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이제 뭘 써야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종로나 여의도... 둘 다 맛이 비슷한가요?
낼 모레 가봐야겠습니다. (일요일은 쉬려나요? ^^)

이런... 하동관... 일요일은 쉬는 날이군요.

저희집은 쿠팡으로도 시켜먹곤 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수준 높은 두 그릇.. 잘 먹었습니다. 다음 매뉴가 기대됩니다~

긴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