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의 시대에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LLM의 시대에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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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GT3RS
2026.04.02조회수 616회

들어가며

이 글을 진정 내가 썼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실상 LLM이 쓴 것인가?

어릴 때 아주 잠깐이지만 작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어른이 되면서 부업으로도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수긍하게 되어서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지만요. 말 주변이 없는 저에게 글은 제 생각을 오해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래서인지 펜을 잡으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LLM의 시대가 오면서 이 모델들이 저보다 훨씬 뛰어난 글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어떠한 방식으로도 경쟁이 안 된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임에도 저는 키워드 몇 개만 던져주고 LLM에게 전문(全文)의 작성을 맡기는 행위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내가 초안을 쓰고 LLM에게 보완을 요청하는 것은 '활용'이지만, LLM이 쓴 글을 내가 다듬는 것은 남의 사고를 가져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Valley에 많은 글을 쓰면서, LLM의 리서치 결과를 기록용으로 통째로 올린 적은 있었어도, LLM이 쓴 글을 마치 제가 쓴 글인 것 양 올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LLM이 만든 완벽에 가까운 문장들을 보면서 당연히 그렇게 '딸깍'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번도 들지 않았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한때 작가를 꿈꿨던 사람으로서의 얄팍한 위선때문에, 그동안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이 글은 LLM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여러날에 걸쳐 고민해 본 결과물입니다.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혹시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유명했던 것은 당시의 기술을 뛰어넘은 화려한 초월작화 뿐만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급격히 가속하는 세기말 1995년경에 이 작품이 던지는 철학적인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첫번째 메시지

공각기동대를 던지는 첫번째 메시지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육체인가, 영혼(Ghost)인가?"하는 것입니다. 작품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여 팔다리 뿐만 아니라 각종 장기는 물론 심지어 뇌까지도 이식할 수 있게 된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뇌를 제외하고 온몸이 기계로 대체된 존재입니다. 정확히는 기계에 주인공의 뇌를 옮겨심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이를 '전뇌화'했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인간의 몸에 기계로 된 뇌를 장착한 사람 vs 기계의 몸에 인간의 뇌를 장착한 사람 중에서 누가 더 인간에 가까운가?"라는 주인공의 고민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이 주인공의 고민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육체적 외관인지, 외관과는 무관하게 그 안에 들어있는 영혼인가하는 질문을 세상에 던집니다.

두번째 메시지

공각기동대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두번째 메시지는 "그렇다면 그 영혼(Ghost)이라는 것은 정말로 '나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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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메시지에서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육체가 아닌 영혼이라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했다면, 두번째 메시지는 그 결론의 토대 자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작중에서 전뇌화된 인간들의 기억은 기계에 뇌를 옮겨 심는 과정에서 해킹당하거나 조작될 수 있고, 심지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이 이식될 수도 있습니다.


쿠사나기 소령 역시 자신의 뇌에 담긴 기억과 인격이 과연 원본 그대로인지, 의체화 과정에서 변형되거나 덧씌워진 것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인간임을 정의하는 기준을 영혼으로 삼았는데, 그 영혼 자체의 경계와 순수성이 불분명하다면 결국 기준은 다시 허공에 뜨게 됩니다.


이렇게 영혼마저도 조작우려 때문에 순수성이 의심된다면, 육체도 영혼도 모두 인간이 인간임을 판별하는 기준으로서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입니다.


LLM과 글쓰기

저는 요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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