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장 소식 | 하워드 막스, 프라이빗 크레딧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내가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크레딧(credit)’이라 불리는 분야 전반에서는 엄청난 혁신이 이루어져 왔다. 이 분야의 인기는 꾸준히 높아졌고, 금융 세계에서 차지하는 규모와 역할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최근 Oaktree의 한 동료가 현재 크레딧 시장이 형성되기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물었고, 나는 다음과 같은 목록을 떠올렸다.
주요 변화의 흐름
1970년대: 투자적격등급이 아닌 채권(non-investment grade debt)의 수용
1980년대: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BO)의 확산 및 기업 레버리지 증가
1990년대: 광범위한 신디케이트 대출 및 트랜치 구조화 증권의 발전
2000년대: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s)’ 트렌드의 부상
서브프라임 대출 및 주택저당증권(MBS)
2010년대: 직접 대출(direct lending)의 확대
2020년대: 개인 및 연금 투자자 대상 직접 대출 상품 마케팅 확대
1968년 여름 내가 처음 접한 투자 세계는 주식과 고등급 채권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매우 단순하고 제한적이었다. 위와 같은 변화들은 자산운용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Oaktree와 고객들 역시 그 수혜를 입어왔다. 이 모든 변화는 ‘크레딧’, 즉 본질적으로 정부가 아닌 주체가 발행한 부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아래에서 그 흐름을 간략히 정리해보겠다.
1977~78년 이전에는 투자적격등급(BBB 이상)이 없는 기업이 공모채를 발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존재하던 투기등급 채권은 대부분 한때 투자적격등급이었으나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 이른바 ‘폴른 엔젤(fallen angel)’들이 발행한 것이었다. 투자적격등급이 없는 기업은 주로 은행 대출이나 보험사를 통한 사모 형태의 자금조달에 의존해야 했다.
마이클 밀켄은 1970년대 후반, 높은 금리를 통해 디폴트 리스크를 보상할 수 있다면 비투자등급 기업도 채권 발행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위험 대비 수익’ 사고방식은 현재 약 1.5조 달러 규모에 달하는 미국 하이일드 채권 시장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고, 이후 다양한 금융 혁신의 기반이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소규모 LBO가 일부 존재했지만, 1980년대 하이일드 채권의 확산은 LBO 펀드, 소규모 기업, 그리고 인수합병 세력들이 이전보다 훨씬 큰 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LBO 시장이 크게 성장했고, 1990년대에는 ‘프라이빗 에쿼티(private equity)’라는 이름으로 재편되었다.
부채 자산을 묶어(pooling) 서로 다른 선순위·위험·금리를 가진 트랜치로 나누어 판매하는 개념은 1970년대 주택저당증권(MBS)에서 시작되었으며, 1980~90년대를 거치며 확대되었다. 이 개념은 주로 Salomon Brothers의 루이스 라니에리와 연관되어 있다.
1990년대 이전에는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고 이를 소수 은행들과 신디케이트 형태로 나누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후 ‘광범위 신디케이트 대출(broadly syndicated loans)’, ‘레버리지드 론’, ‘시니어 론’ 등이 월가에서 발전하면서 기관 투자자들에게 대규모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시장 역시 현재 미국에서 약 1.5조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러한 금융 조달 능력 확대는 프라이빗 에쿼티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1990년대 말 IT 버블 붕괴(2000년) 이후, S&P 지수는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하락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을 잃었고, 그 상태는 약 10년간 지속되었다. 동시에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췄고, 투자자들은 채권 이상의 수익을 찾기 시작했다.
주식과 채권이 모두 매력적이지 않자 투자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상대적으로 견조했던 헤지펀드와 프라이빗 에쿼티로 이동했다. 이때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s)’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러나 헤지펀드는 대규모 자금을 소화할 만큼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고, 많은 투자자들이 프라이빗 에쿼티로 이동했다. 이 시기에 최초의 100억 달러 규모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가 등장했다.
같은 시기, 기업 부채는 CLO(담보부 대출채권)와 같은 ‘구조화 크레딧(structured credit)’ 상품으로 증권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품은 트랜치 구조를 통해 내부 레버리지를 활용했고, 고수익 하위 트랜치와 과잉담보된 상위 트랜치 모두에서 강한 수요가 발생했다. CLO에 대한 수요와 구조화 수익성은 더 많은 대출 발행을 촉진했고, 이는 다시 신디케이트 대출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한편 은행들은 신용이 낮은 차입자에게 제공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을 RMBS(주택저당증권)로 포장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부실 대출’ 기반 상품에도 대규모 AAA 등급이 부여되었다. 이후 이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2008~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은 자본이 약화되고 규제가 강화되었으며, 그 결과 프라이빗 에쿼티 산업의 수요를 충족할 만큼 대출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자산운용사들이 공백을 메우며 ‘프라이빗 크레딧(private credit)’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는 ‘직접 대출(direct lending)’이다. 이는 투자적격등급 미만의 중견기업(주로 PE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비은행 대출을 의미한다.
※ 참고: ‘프라이빗 크레딧’과 ‘직접 대출’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며, 직접 대출은 그 하위 개념이다. 최근 프라이빗 크레딧 관련 보도는 사실상 대부분 직접 대출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개인 투자자 및 연금 계좌를 대상으로 직접 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직접 대출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확대시켰고, 이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운용자산(AUM)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일반적인 패턴 (The Normal Pattern)
새로운 형태의 투자에 대한 인기 급등, 흔히 ‘버블’이라 불리는 현상은 거의 항상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
핵심 요소는 ‘새로움’이다. 어떤 것이 새로울 때는
(a) 그 장점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쉽고,
(b) 아직 검증된 적이 없기 때문에 결함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조건은 투자 열풍이 버블로 확대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대개는 일정 부분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는 실제로 훌륭한 기업들이었고, 인터넷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세상을 바꾸었다. 또한 모기지는 일반적으로 안전한 투자다. 이러한 사실들이 결국 매우 파괴적인 버블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새로운 투자 대상에 초기 진입하는 것은 종종 높은 수익을 가져온다. 초기 투자자들은 아직 인기가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시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자들의 성공은 외부에 있던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극하고, 결국 그들도 시장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찰스 킨들버거는 『광기, 공황, 붕괴(Manias, Panics, and Crashes)』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인간의 평정심과 판단력을 흔드는 것은 없다.”
어쩌면 ‘질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일지도 모른다.
큰 성공 가능성은 투자자들의 기대를 과도하게 부풀린다. ‘가능성’은 ‘확률’로 오해되고, 결국 ‘확실성’으로 변질된다.
이 과정에서 회의적인 시각과 위험 회피 성향은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거의 제기되지 않는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 투자에 참여하기 위해 얼마를 지불하는 것이 적절한가?”
질투, 흥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놓칠까 두려운 마음(FOMO)은 신중함과 군중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태도의 가장 큰 적이다.
후발 투자자들은 장밋빛 약속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낮은 기준을 적용하며, 가격을 끌어올린다. 그 결과 대부분의 투자 트렌드는 과도한 수준으로 확대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 격언은 이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처음에 하는 일을, 어리석은 사람은 끝에 가서 한다.”
워런 버핏은 이를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혁신가가, 그 다음에는 모방자가, 마지막에는 바보가 등장한다.”
상승 국면에서는 쉽게 간과되는 결함, 잠재적 위험, 실현 불가능한 약속들이 결국 드러나면서, 과도한 낙관이 깨지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투자자들은 실망과 손실을 겪게 된다.
마크 트웨인이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운율처럼 되풀이된다”고 말했을 때, 아마 이런 패턴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투자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직접 대출에도 적용될까?
지난 15년간 프라이빗 크레딧의 한 축인 직접 대출(direct lending)에서도 이러한 흐름의 일부가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새로운 형태의 금융 조달 방식이 등장했다.
은행들이 대출에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프라이빗 에쿼티의 자금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이로 인해 초기 직접 대출 기관들은 높은 금리와 강력한 보호 조항(견고한 대출 계약)을 요구할 수 있었다.
2010년대의 저금리 환경은 직접 대출의 상대적으로 높은 기대 수익률을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특히 저비용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을 더했다.
기관 투자자들은 초기 대출의 매력도를 인식하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매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더욱 부각되었다.
프라이빗 대출은 거래 시장이 없어 시가평가(mark-to-market)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격 변동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높은 위험 대비 수익률(risk-adjusted returns)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합리적으로는 “변동성 대비 수익률(volatility-adjusted returns)”이 높다고 볼 수는 있다(샤프지수의 개념). 그러나 나는 위험(risk)과 변동성(volatility)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강조한다.
직접 대출은 하이일드 채권이나 신디케이트 대출과 같은 유동성 있는 크레딧 상품과 비교해도 결코 신용 위험이 낮지 않다. 단지 그 위험이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을 뿐이다.
수백 개의 투자 운용사들이 직접 대출 시장에 진입했다. 이들 대부분은 글로벌 금융위기(GFC) 이후 시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려운 시장 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게 되었다.
다수의 신규 운용사와 막대한 자금 유입은 경쟁을 촉발했고, 대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더 낮은 금리, 더 좁은 스프레드, 더 약한 보호 조건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일부 운용사들은 많은 자금을 빠르게 집행하기 위해 기준을 낮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간 이어진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투자 환경은, 대출 심사 기준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대출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강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총합은 저금리 환경에서 수익을 갈망하던 개인 투자자 및 연금 자금에 직접 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직접 대출 시장에 유입된 막대한 자금은 일종의 ‘골드러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 15년 동안 약 2조 달러 규모의 직접 대출이 이루어졌다. (20년 전 전체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 규모는 약 1,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일부 운용사들은 과도한 자금을 유치하고 이를 지나치게 빠르게 투자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