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우연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사유의 중요성'을 표현했다는게 특별하진 않아보이는데, 왜 유명한건가?
데카르트가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강조하며 근대를 열었다면(1596-1650), 이후 등장한 로뎅(1840-1917)은 <생각하는 사람(thinker)> 조각으로 사유의 중요성을 표현했습니다. _당신의 투자가 심플했으며 좋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지금 우리한텐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라는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당시의 세계관, 즉 로뎅이 이 조각을 만들던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당시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었으며 신의 질서 속 한 존재였다.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한다는 선언었으며, 일종의 정신적 독립선언이었다.
로댕이 살던 시기(1850~1910년대)는 공장, 자본, 제국주의가 세상을 휩쓸던 때이다. 사람들은 점점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했고, 생각하기보다는 복종하거나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이 늘어났다.
19세기에는 종교와 산업 자본으로 인해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면, 현대에는 알고리즘, 숏폼으로 인해 생각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시대만 다를 뿐 ‘사유의 외주화’라는 문제는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사유의 외주화'는 대상만 바뀔 뿐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 인간 사회는 그렇게 흘러가도록 되어 있는가?
인간은 '생각'보다 '확신'을 좋아한다. 사유는 불편하고 확신은 편하다. 사유는 '모른다'에서 출발하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