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1987년 8월 – 2006년 1월)
1987년 8월 레이건 대통령은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으로 지명
놀랐던건...줄리아드 음대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했데요 ㅋ

입사하자마자 87년 10월 19일 블랙 먼데이가 발생하는데 1) 최종 대부자 역할 2) 은행들에게 일상적인 거래를 계속하고 고객에게 평소대로 대출을 제공하도록해서 금융기관중에 파산한곳이나 문을 닫은 곳은 없었음(실적)
주식시장 하락이 경제 피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앗는데 그 이유는 주식 매입 자금이 부채와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1988년 봄 연준이 예방 차원에서 긴축 조치를 시작했는데 경기가 둔화되고 1990년 7월에 시작되어 8개월간 완만한 불황 발생
이전에는 인플레이션 대응 관련해 연준이 긴축 정책을 취한 후에 오는 경우가 많았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인플레이션은 잘 통제되는데 금융 업계의 규모와 복잡성 증대, 금융시장의 세계화, 각종 금융기법의 혁신, 규제 완화 등 금융시장이 이슈!
고용 성장이 둔화하는 것을 보고 1989년 2월에 긴축 정책을 마감하고 금리 인하를 시작함 → Good job
1989년 10% 기준금리는 1992년 9월 3%까지 떨어짐
1990년 상반기 5.3% 실업률은 1992년 6월 7.8%까지 증가하고 1993년 중반까지 7%
1991년 7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에 재지명(1988년 대선 직전 금리 인상으로 대통령 후보 부시를 화나게 함)
1992년 내내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했지만 인하 속도가 느렸고 실업률은 여전히 7%가 넘어서 빌 클린턴("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에게 패배! → 화끈한 제로 금리는 없던 시절이죠 ㅎㅎ
1998년 부시는 "금리가 좀 더 큰 폭으로 내렸더라면 나는 분명히 대통령에 재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를 재신임했지만, 그는 제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 연준이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1991년 제3의 통합 연방은행 기관을 설립한다는 재무부의 계획을 저지하는데 성공함. 이 계획이 실현되면 연준의 은행 규제 감독 기능을 빼앗겼음.
재정 정책에 관심이 많았는데 백악관 내부 인사와 협력하여 적자 감축 법안을 구상하고 연방 긴축 재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함
이것은 정치적 월권만이 아니라 판단 착오로 보이는데(제 의견이 아니라 버냉키 형님 의견) 미국 정도의 선진국 경제에 정부 예산이 다소 적자가 발생한다고 해서 경제에 큰 위험은 초래하지 않음
클린턴이 당선되고 친분을 쌓은 후(그린스펀은 공화당 지지자임) 다시 한번 적자 감축을 밀어 붙임(긴축)
1994년부터 1996년까지 그린스펀은 연착륙...파월이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연착륙에 성공함!(상상속에 유니콘 같은)
1994년 2월 경기가 회복되면서 실업률도 7.8%에서 6.6%로 떨어졌는데 기준금리는 3%였음. 인플레는 2.5%에서 3%로 안정세.
1994년 2월 인플레가 낮고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를 0.25% 인상했는데 "통화 정책이 인플레에 영향을 미치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1989년 이후 처음 시작된 긴축)
인플레에 대한 선제 조치로 성장을 저해하더라도 나중에 더 큰 폭의 긴축을 하는것보다 낫다고 생각함 → 1950년대 마틴과 비슷한 스타일
1995년 2월 인플레 압력을 의식하고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인상함
1993년 말에 6% 10년물 국채 금리가 1994년 8% 수준으로 급등함 → 2024년 기준금리가 5.5%인데 국채 금리는 4.5%~4.7% 밴드를 형성하고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노란손(옐런)이 막고 있음. 제이미 다이먼 발언대로 국채 금리가 8%까지 가더라도 과거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고 이렇게 된다면 하워드 막스의 의견대로 Sea Change 가 발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이러한 채권 학살을 계기로 민주당 정치인들은 불만을 드러냈고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연준에 대한 비판은 역효과만 낳을 뿐이라고 클린턴을 설득함. 클린턴은 그린스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압력을 가하지도 않음으로서 연준의 독립성에 관한 좋은 선례 남겼고 조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