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세상에 대한 감각, 특히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이런 감각은 심지어 미물이라 여겨지는 개미에게마저 관찰된다. 자신이 지나온 경로를 적분하여 자신의 집까지 최단경로를 찾아낸다. 하지만,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같은 궁궐 안에 있다고 해서, 왕의 위치와 노예의 위치는 결코 같지 않다. 비슷하지도 않다. 인간에게 있어서 위치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격변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것은, 역사 교과서에서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달라진다면, 아무것도 함부로 믿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베이지안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다. 모든 것을 일종의 확률로만 접근하며, 무엇도 섣불리 믿어서는 안된다는 감각은 우리의 생각에 항상 의심의 여지를 남겨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딛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필요하다. 어떤것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허공에 붕 떠있다는 감각은 썩 유쾌한 감각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조차 알기 버거워질 수도 있다. 모든 위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준점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기준점을 세운다는 말은, 대상을 고정한다는 말이다. 얼핏 보기에는 베이지안과 상충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에서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지(餘地)란, 결국 남은 땅을 의미한다. 땅이 남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의심을 할 공간을 조금만 남겨두면 된다. 그 조금의 여백만 있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믿어도 된다. 우리가 틀릴 수 있다는, 아니 언제나 틀리고 있다는 자각 하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사후 확률에 따라 사전 확률을 바꿀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모든 것을 확률로만 접근하며, 섣불리 믿을 수 없다는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감각, 배고플 땐 먹고, 졸릴 땐 자야 한다는 감각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어떤 국가의 국민이고, 돈을 벌고 세금도 내야 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간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베이지안이 되기 위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참이라고 가정해버리거나,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넘기고 넘어가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감각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기존에 나도 모르게 내가 믿어왔던 전제들을 깨닫는 과정을 거치면, 베이지안으로 살면서도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간다는 감각을 체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베이지안이 경계해야하는 사전 확률에 우도(Likelihood)를 곱할 각오를 하라는 의미일 뿐이지,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3가지 예시를 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당연하지 않은 전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원체 책도 안 읽고 인문학적으로도 천박한지라, 과연 이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있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끄적여본다.
김뉴런씨는 전업 트레이더이다. 하루에 8시간씩 꼬박꼬박 트레이딩을 하며, 매일 꾸준히 20만원을 번다. 단 하루도 잃지 않는 성공 비결을 찾았지만, 20만원이 최대 수익이다.쉬는 날은 오직 휴장일 뿐이며,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트레이딩을 시작해서 남들이 퇴근할 시간에 끝난다. 그는 보통 집에서 트레이딩을 하지만, 가끔씩은 여행지에서 트레이딩을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노동이라고 부를까? 일반적인 노동의 이미지라고 하면, 논밭에서 작물을 심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모습이나, 공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생산 라인에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과업을 끝내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사무 업무를 보는 형태도 분명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정해진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끝마치고 보상을 받는 것이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 재택근무는 노동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없는 것일까? 프리랜서들은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도 근로계약서를 쓰며, 회사에서 봉급이나 계약금을 받는다. 노동의 형태가 달라지고, 공간의 제약이 사라졌지만, ...

베이지안을 사고의 틀로 삼고있는 입장에서 관련 글을 보니 반갑네요ㅎㅎ 제 경험상 베이지안 통계에서 놓치기 쉬운 두가지 자유도를 꼽자면 데이터 샘플링 과정, 그리고 모델 복잡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우리는 경험을 순차적으로 습득하게 되는데, 이 경험이란 것이 사실은 전체 분포에서 샘플링 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슬프지만 데이터샘플링 분포와 그 순서에 따라 suboptimal한 사후확률 분포로 수렴하는 것은 숙명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대표성을 얻기 위해, 항상 전체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정보를 습득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2) 사전확률분포, 우도를 다룰 때 우리는 최대한 단순한 가설을 세워야합니다. 내 데이터에 영향을 받지 않는 파라미터들이 내 가설에 존재한다면 생각이 꼬이고 있다는 위험신호로 인식하고 단순화하는 작업을 거쳐야 틀릴 가능성이 줄어들며 유의미한 학습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1. 물론 전체 분포에서 최대한 균등한 샘플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뇌가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도 한계가 있다보니 생각보다 지키기가 어려운 것 같더라구요. 대신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신념을 지우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망상활성계의 역할을 최소화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거죠. 내 경험을 무한히 늘릴 수는 없으니, 결국 내가 겪는 경험에서 필터링을 최소화하는게 최선이라는 느낌이랄까요..?
2. 사전확률분포도 최대한 단순화해야되는군요?? 훌륭한 통찰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가설공간 자체를 단순화하는게 중요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전확률분포도 신경써서 관리(?)할 필요가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