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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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ce with Evidence

미-이란 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3달이 지났습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이후 휴전을 하긴 했으나,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해상 원유의 5분의 1, 하루 2,000만 배럴 넘는 기름이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평상시에는 하루 100척 안팎의 선박이 이 좁은 해협을 오갑니다.

그래프 설명: 호르무즈 해협 일별 선박 통항 추이, 점선은 위기 이전 정상 통항 약 100척/일, 2026년 3~5월 (출처: Windward, 일별 AIS 통항 집계)
위 그림을 보시죠. 위기 이전 100척이던 일별 통항이 3월 이후 10~20척 수준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정상 대비 약 90% 급감, 그러니까 통항량으로만 보면 평소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정상적인 물류가 아니라는 뜻이죠.
원자재 업계에서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과거 골드만삭스 오일 리서치를 담당했던 제프 커리가 지금도 주장하고 있는 말이죠.
You can't print Molecules = 분자를 찍어낼 수 없다
중앙은행은 마음대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고, 회사도 원하면 언제든지 회사채를 더 찍어낼 수 있습니다. (시장이 이를 허락하느냐는 다른 얘기입니다….) 하지만, 원자재는 생산 업체가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생산을 늘릴 수 없습니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더더욱이요.
그렇다면 이 호르무즈 봉쇄로 인한 충격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을까요?
답은 재고입니다. 그래서 지금 미국 재고가 어떤 속도로 줄고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왜 하필 미국인가... 미국이 한계 생산자(Marginal Producer)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5월 29일 기준 미국 주간 재고(EIA)를 보겠습니다.
상업 원유 재고(전략비축유 SPR 제외)는 약 4.34억 배럴입니다. 4월 중순 4.66억 배럴에서 6주 만에 3,200만 배럴 넘게 빠졌습니다. 최근 4주만 떼어 보면 주당 약 587만 배럴씩 줄었죠. 원유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전략비축유, 쿠싱 허브, 정제품까지 한자리에 모아 보면 방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래프 설명: 미국 원유·정제품 재고 현황, 2026년 5월 29일 기준. 주황은 2026년, 파랑은 2025년, 점선은 5년 평균, 음영은 직전 5년 범위, x축은 연중 주차(1~52주). 상업 원유·SPR·쿠싱·증류유 네 항목 모두 올해 선이 평년 아래로 (출처: EIA)
네 칸 모두 주황(2026년)이 아래를 향합니다. 상업 원유는 5년 평균을 깨고 내려왔고, 전략비축유(SPR)는 평년 밴드를 한참 밑도는 자리에서 더 빠지고 있죠. 정제품도 같은 그림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렇습니다.

테이블 설명: 미국 휘발유·증류유 재고 추이, 2026년 2월 6일 대비 5월 29일 (출처: EIA Weekly Petroleum Status Report)
휘발유는 석 달 반 동안 4,400만 배럴 빠졌고, 증류유는 1.02억 배럴까지 내려와 5년 평균을 밑돕니다. 위 현황 그림에서 보듯, 올해는 증류유와 휘발유 둘 다 5년 밴드 아래로 내려가 있습니다. 최근 5년 같은 주차 중 가장 낮은 자리라는 뜻이죠.
그리고 가장 예민한 곳이 쿠싱입니다. 오클라호마주 쿠싱은 WTI 선물의 인도 지점이라 시장이 제일 주시하는 저장 허브인데요. 현황 그림 왼쪽 아래 칸의 쿠싱도 5년 평균과 밴드 하단에 바짝 붙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한 달 전 2,910만 배럴에서 5월 29일 2,244만 배럴까지, 주당 약 167만 배럴씩 빠졌습니다.
(쿠싱과 미국 원유 시장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아래 글을 보시면 됩니다!)
[시리즈 연재] 2부-3 WTI는 왜 Cushing과 basis로 읽어야 하나: 미국 원유 가격을 읽는 지도
원유·휘발유·증류유 가릴 것 없이 같은 방향입니다. 빠르게, 그리고 계절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속도로 내려가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시장 한쪽, 특히 커뮤니티에서 이런 반론이 나옵니다. "재고가 준다고 호들갑인데, 그래프 보면 아직 멀었다." 논리는 이것입니다. Y축을 0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바꾸면, 사실 지금 감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장이죠. 마치 일부러 Y축을 조정하여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실제로 그렇게 그려보면, 4.42억 배럴이라는 숫자는 0에서 한참 위에 떠 있습니다. 1년 전(4.40억 배럴)과 비교해도 비슷하고요. 이렇게 보면 "바닥까지 아직 4억 배럴이나 남았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여기엔 결정적인 가정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재고를 0까지 쓸 수 있다는 가정이요.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안 됩니다. 갈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보는 재고 숫자 안에는 "장부에는 잡혀 있지만 실제로는 꺼낼 수 없는 기름"이 꽤 큰 몫으로 섞여 있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어도 빨대로는 바닥의 마지막 한 모금을 못 빨아올리는 것과 비슷하죠. 그 "마지막 한 모금"이 생각보다 큽니다.
이 꺼낼 수 없는 기름은 크게 세 군데에 묶여 있습니다.
첫 번째는 파이프라인 필(line fill)입니다.
송유관은 펌프로 액체 기둥을 밀어서 기름을 옮깁니다. 그런데 이게 작동하려면 파이프 안이 항상 기름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라인이 비면 펌프가 헛돌고, 압력이 안 잡혀서 송유 자체가 멈춥니다. 그러니까 이 기름은 빼는 순간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구조적으로 못 빼는 기름입니다.
규모도 작지 않습니다. 미국 파이프라인 안에 들어 있는 원유와 정제품은 2026년 1월 기준 약 1.37억 배럴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입니다. 장부상 재고에는 잡히지만 시장에 풀 수 있는 기름은 아니죠.
두 번째는 탱크 ...

시기 적절한 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쿠싱 관련해서 오늘 X 에서 글이 많더라구요.
대충 이제 재고 바닥까지 몇 주 안남았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SPR 같은 경우는 제 생각보다 여유가 훨씬 없었군요!
재고 얘기가 많이 나와서 디테일한 매커니즘이 궁금했는데 정독하고 갑니다^^

근데 쿠싱 재고 수준 자체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아직 미국 전역 내 재고가 남아있으니까요. 문제는 그 재고가 다 소진되는, 즉 전체 재고가 4억 배럴 이하로 떨어지는 시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최고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장이 바라보는 곳과 재고 현실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무섭습니다..

무려 3달 넘게 호르무즈가 사실상 봉쇄 상태인데 (de facto), 가격이 100불을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이것도 한 10년 뒤에는 공부하기 좋은 케이스 스터디가 되지 않을까... ㅎㅎ

항상 많이 배우고 갑니다...감사합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호르무즈 봉쇄장기화와 원유 기업의 CAPEX감소에 따른 원유 공급이 줄어드는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XLE 같은 에너지 섹터 ETF를 투자하는 것은 어떠신가요? 원유 선물은 롤오버 비용때문에 손이 잘 안가더라고요. 원유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백워데이션때문에 괜찮을려나요.

1. 우선 유가가 높은 수준(higher for longer)을 유지한다면 CAPEX는 앞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폭발적으로는 힘들겠지만요.
2. XLE 보시면 업스트림, 다운스트림 등 다양한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전부 다 미국 기업들인 점 (미국에서 가장 큰 유전인 퍼미안(Permian) 유전은 점점 더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유 강세 투자 논지에 비해 다운스트림 비중이 꽤나 높은 점 (엑손과 셰브론은 통합 기업이라 원유 강세가 무조건 좋지는 않습니다)을 보면 그렇게 매력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매력적인 기업을 찾거나, 원유 강세에 맞는 ETF를 찾을 것 같습니다.
3. 원유 ETF는 급격한 백워데이션이 오히려 수익률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