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은 한국 사회과학의 핵심 테마 중 하나다. 그간 사회과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K-모던의 특성을 해명하고자 노력했다. 이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장경섭의 '압축적 근대성', 김덕영의 '환원근대', 문승숙의 '군사화된 근대성', 김상준과 장은주의 '유교적 근대성' 개념이다. 이들은 다음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연구들은 한국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근대로 접어들었는가라는 '역사학적' 질문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나 모순에서 시작하여 그 기원을 찾아가는 '사회학적' 접근법을 공유한다.
이 연구들은 한국 모더니티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무엇이 한국 근대의 특이성이냐'는 문제와 '그 특이성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문제에 천착한다.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이는 한국 모더니티 탐구의 시좌를 설정함으로써 논의의 장을 구축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연구들은 서구의 개념을 한국 사례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 모더니티에 대한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개념'들을 창안하고 제시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장경섭은 한국사회가 서구의 근대적 제도들을 '단축'과 '압착'의 방식으로 수용해 온 과정에 착목하면서 '압축적 근대성' 개념을 제출한다. 압축적 근대성은 "시간과 공간 차원에서 문명적 변화가 극히 응축적인 면들을 가지면서도 시공간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며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문명이 구성/재구성되는 상태"로 정의된다.
역동성과 복합성의 이중 운동 속에서 한국 사회는 전근대적인 것, 근대적인 것, 탈근대적인 것의 혼재, 즉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한국의 다양한 문제와 모순들의 원인으로 제시된다.
벤야민은 서구 근대를 역사적 이성의 자기실현(헤겔)이나 유물론적 변증법의 진행과정(맑스)이 아니라, 꿈과 각성의 변증법이라는 독특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그 결과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다.
벤야민에 의하면, 근대는 꿈이다. 19세기 유럽 근대문명은 (정치적 이념의 좌우를 넘어서서)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할 수 있다는 '진보에 대한 꿈'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 집합적 몽상은 기술, 과학, 건축, 예술, 정치, 문학의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유럽 모더니티를 디자인한다. 말하자면, 벤야민은 '몽상'을 역사의 생산력으로 간주하고 있다.
벤야민이 근대에 대한 꿈의 역사, 즉 '몽상사'를 기획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어떤 근대를 누가, 왜 꿈꾸었는가를 묻고, 그 흔적을 탐색한 것이다.
방법적으로 벤야민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보여준 '비의지적 기억'의 가능성에 착안한다. 프루스트가 과거 기억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마들렌 과자를 베어 무는 짧은 순간이었다. 현재의 감각적 촉발이 망각되어 있던 체험들을 '의도치 않은' 회상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과거의 진정한 모습들은 오직 특정 상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라진다. 벤야민은 과거가 가시화되는 이러한 특권적 순간을 '파국'에서 찾았다. 이는 꿈의 탐구에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역사적 파국의 순간에 비로소 과거의 찬란했던 꿈이 감추고 있던 어두운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벤야민은 20세기 초반 유럽이 겪은 문명적 야만들(세계대전, 파시즘, 나치즘, 홀로코스트) 속에서 19세기 유럽인들이 꿈꾼 '진보'의 허상이 가시화되었다고 본다. 이처럼 역사를 움직인 꿈이 파국적으로 붕괴하며 방출하는 과거의 참된 이미지를 포착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