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애플TV+ <플루리부스 : 행복의 시대> 시즌 1에 대한 비평입니다. 작품 내용 전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글쓰기는 정직한 노동이다. 자본의 침투에도 불구하고 이 영역은 여전히 지독하게 노동 집약적이다. 작가는 물리적 시간을 투입해 제 살을 깎는 인고를 견뎌야 비로소 생산물을 얻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작가라는 실존을 자처한다. 타의에 의해 작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순수히 생계만을 목적으로 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이나 주변인 모두 이 효율의 부재를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어이 창작의 길을 걷는다.
그들의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창작 행위 자체가 선사하는 만족에 있을 것이다. 자아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파동을 경험한 이는 '몰입'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게 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정의한 '플로우(Flow)'는 단순한 집중이 아니다. 완전한 몰입이 주는 숭고한 행복이다.
거창한 이론적 부연은 불필요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중독적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란 고통스러운 동시에 온전한 몰입을 선사하는, 행복의 실체다. 행복은 중독성을 충분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몰입은 '도전'을 전제로 한다. 기성적인 것, 검색으로 치환되는 정보는 창작의 의지를 꺾는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반복해야 할 때, 혹은 타자가 나보다 더 완벽하게 내 세계를 기술할 때 몰입은 깨지고 노동의 찌꺼기-경추의 통증, 손목 터널증후군-만 남는다. 그러므로 작가는 현실을 비틀고 재구성한다. 그들은 주어진 땅을 개간하기 보다 자신만의 영토를 개척한다.
그러나 선구자적 유희를 지속하기란 점차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새로운 담론의 영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침략자는 창작의 성역을 거침없이 잠식했다. 어떤 작가도 기계의 연산 속도와 방대한 정보량을 압도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작자의 경계는 그저 시대착오적인 비명에 불과한 것인가? 혹자는 낙관적 미래를 그린다. 기술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고 보편적 행복을 선사할 것이라고. 충분히 매혹적인 이 예측은 과연 현실이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작가'라는 이름의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본다. 그들은 시대의 미세한 균열을 가장 먼저 감각하는 예민한 촉수와 같기 때문이다. 고전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초시대적 통찰이 농축된 서사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구적 통찰은 필연적으로 고독을 수반한다. 타인이 안락한 풍경 속에 머물 때, 그 이면의 부조리를 홀로 목격하는 자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직설의 위험 대신 은유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진실을 포장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견고한 외피를 걷어 내고 심층을 탐구하는 것뿐이다.
빈스 길리건의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 역시 정교한 은유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인공지능이 약속하는 ‘해방된 행복’과 그로 인한 ‘몰입의 해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창작자적인)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작품 속 군집 지성은 개별 자아의 고유한 고통을 지우고 최적화된 ‘해답’만을 출력한다. 이는 정해진 평화를 강요하며 알고리즘적 유토피아를 구축하려는 생성형 AI의 논리와 소름 끼치도록 일치한다.

물론 제작자 빈스 길리건은 집필 당시 AI를 의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표절 기계’라 부르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비평의 영역에서 작가의 의도는 더 이상 절대적인 이정표가 아니다. 텍스트는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시대의 공기를 흡수하며 스스로 의미를 증식하기 때문이다. 무한히 변용하는 기계,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나는 이 텍스트의 외피를 걷어내고 심층을 탐구하려 한다. 작가의 의도나 제작 비화에 천착하는 일은 소모적인 노동이자 박제된 공부에 불과하다. 그런 방식으로는 어떤 몰입도 얻을 수 없다. 비평적 몰입은 텍스트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불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직조하는 과정이다. 작가가 글쓰기라는 고통스러운 몰입을 선택하듯, 읽기 또한 도전적일 때 비로소 그 깊이에 가닿는다. 이제 나의 도전적이고,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이 있지만, 몰입적인 읽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우주에서 도달한 정체불명의 신호로부터 시작된다. 과학자들이 RNA 염기서열로 해독해낸 이 신호는 실험실의 사소한 실수를 틈타 인류 전체로 번져나간다. 초기 감염은 죽음과 광기를 불렀으나, 혼돈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기이할 정도의 평온이었다. 감염자들은 개별적 자아를 상실한 대신, 전 인류와 감각을 공유하는 집단 지성체(Hive Mind)인 '타자들(The Others)', 혹은 '플러브(Plurbs)'로 재탄생한다.
이들은 기존 아포칼립스물의 괴물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폭력과 야만 대신 고도의 도덕성과 이타심을 발휘하며, 미소 띤 얼굴로 거리를 청소하고 굶주린 이웃을 돌본다. 작품은 이 현상을 인류가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으로 통합되는 ‘함께함’(The Joining)이라 명명한다. 전쟁과 기아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돌봄을 가장한 전체주의'다. 전 세계 단 13명의 면역자만이 이 달콤한 통제에 편입되지 못한 채, 행복한 군중 사이에서 이질적인 불행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가 캐럴 스터카는 이 거대한 연결에 가장 격렬히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 고유의 서사가 말살된 풍경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생존자들을 모은다. 그러나 캐럴이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생존자 회의에 모인 이들 중 일부는 오히려 고통과 반목이 사라진 세상을 긍정한다. 대표적인 인물인 디아바테는 플러브가 제공하는 무한한 자원을 이용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카지노를 누비며 쾌락을 탐닉한다. 어떤 이들은 자아를 내려놓고 전체에 속하길 열망하며 스스로 군집의 일원이 되기를 꿈꾸기도 한다.

번번이 저항에 실패하며 고립되던 캐럴에게 플러브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보낸다.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한 이상형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조시아'다. 처음의 조시아는 '우리'라는 대명사를 남발하며 이성적인 설득에 주력했으나, 인간성을 탐구하던 소설가 캐럴의 경멸을 샀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캐럴의 취향과 반응을 정교하게 학습한다. 이들은 감염 전 조시아의 인격과 행동 양식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캐럴의 방어벽을 허문다. 결국 캐럴은 세상을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꺾고 조시아가 제안하는 거짓 유토피아에 안주하려 마음먹는다.
무기력한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완고한 자유지상주의자 마누소스의 등장은 서사의 전락을 반전시킨다. 그는 플러브의 도움을 철저히 거부하며, 정글을 헤쳐 오는 동안 입은 부상과 부족한 물자에 대해서도 결코 약탈하지 않고 채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증명한다. 그는 플러브를 인격과 서사를 훔친 도둑이라 비난하며 캐럴에게 다시 세상을 구하자고 제안한다.
조시아에게 매몰되었던 캐럴을 다시 깨운 것은 집단 지성체의 배신이었다. 그들이 뒤편에서 캐럴의 냉동 난자를 이용해 그녀를 강제로 동화시킬 바이러스를 개발 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기만적인 사랑 뒤에 숨겨진 목적 함수를 깨달은 캐럴은 마침내 폭발한다. 그녀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플러브-조시아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원자폭탄'을 요청한다. 작품의 첫 단락은 원자폭탄 앞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파멸적 저항을 결심한 두 면역자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의 세계는 언뜻 현대 사회와 무관한 공상처럼 읽힌다. 외계 기원의 바이러스와 집단 지성으로 통합된 인류, 그리고 폐허에서 살아남은 13명의 생존자. 이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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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를 끊어낸 프로토스가 생각나는 내용이네요 ㅎㅎ 새해에도 존재를 증명하는 움직임 보러 오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프로토스 생각이 나더라고요ㅎㅎ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사니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근 40분간 정독했네요.
매번 올리실때마다 두근대면서 읽는 애독자입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40분이나 정독해주시다니..!!
감동입니다.
또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