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만드는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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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백
2026.02.13조회수 178회

한 때의 대장주, 인문학


아이패드는 이미 PC다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들어 올리며 이 문장을 남겼다. 언론은 즉각적으로 잡스의 인문학적 이력에 주목했다. 그는 리드 대학 철학과를 중퇴했고, 이후에도 다양한 수업을 청강하며 교양을 쌓았다. 특히 서체 수업을 통해 아름다운 글꼴의 가치를 배웠고, 인도 여행과 선불교 같은 동양 철학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애플의 핵심 구호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Think Different)는 이러한 인문학적 배경과 맞닿아 있었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성공을 통해 기술적 우위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적 감수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그 믿음은 빠르게 확산됐다. 대학에는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융합 전공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창의적 인재를 채용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삼성그룹은 인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임원을 대상으로한 인문학 특강이 유행했고, CEO들은 인문학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투자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워렌 버핏이 하루 다섯 시간씩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됐고, 그와 찰리 멍거의 어록은 유행처럼 소비됐다. 인문학의 길을 걷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희망찬 시기였다. 나에게도 길이 있겠구나.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인문학 열풍은 온데간데 없고, 문과 전반에 대한 조롱과 패배감만 남았다. 이는 마치 어떤 운동이 유행하는 것과 비슷했다. 테니스가 그랬고, 골프가 그랬고, 러닝이 그랬다. 정작 그 운동을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갑작스럽게 관심이 쏠렸다가 사라지면서 안 좋은 인식만 남는다. 돈이 많이 드는 운동, 무릎에 위험한 운동.

그와 같은 낙인이 인문학에도 찍혔다. 학부 수준이거나 혹은 워크숍을 몇 번 들은 소위 "융합형 인재"가 인문학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그들은 니체의 인용구 몇 개를 프레젠테이션에 배치하고 기존의 문법을 반복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아무런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인문학은 돈벌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만 남았다. 문학도로서 나는 이 풍경을 씁쓸하게 지켜봤다.


관련 글 : 두쫀쿠와 대장주의 현상학

사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전 글에서 우리는 대장주 쏠림 현상을 이야기했다. 두쫀쿠에서 탕후루로, 차화정에서 조방원으로, 다시 반바지로. 모두가 같은 정답에 몰려들고, 그 정답이 바뀌면 일제히 발을 돌리는 한국 시장의 특성. 인문학 열풍은 정확히 같은 구조였다.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유행하는 정답만 따라했고,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누군가 내려주는 '해설'을 소비했다.


앞서 진단한 세 가지 사회적 기제도 그대로 작동했다. 동질성 압력은 "인문학 안 하면 뒤처진다"는 조급함을 만들었고, 파놉티콘의 시선은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어쩌나"라는 불안을 심었다. 고맥락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인문학의 실체보다 "지금 분위기는 인문학이다"라는 암묵적 합의에 더 민감했다. 대장주든 인문학이든, 왜 매번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만 쫓는 걸까? 어째서 누군가 중요하다고 정해준 관점을 소비만 하고,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 내지 못할까?


인문학 열풍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인문학을 '지식'으로만 소비했기 때문이다. "니체가 뭐라 했다"를 아는 것은 10분이면 된다. 하지만 "니체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평생의 훈련이다. 영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목록을 외우거나 햄릿의 줄거리를 암기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작가 창조한 세상과 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 공부는 고정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텍스트와 대면하는 능력 자체를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의 결과만을 수집해서는 어떠한 능력도 얻지 못한다.


나는 세상을 주체적으로 읽는 능력, 즉 인문학적 감수성이 '투자'라는 영역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진정한 의미의 인문학 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을 만드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능력이야말로 독립적인 투자관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 시장이 정해준 해설을 소비하는 대신, 스스로 해설을 써 내려가는 투자자. 이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하나씩 살펴보겠다.


현상 너머 구조를 읽는 능력

대장주를 쫓는 투자자에게는 공통된 맹점이 있다. 그들은 이미 일어난 현상을 보고 움직인다. 가장 많이 오른 종목, 가장 많이 회자되는 테마, 가장 뜨거운 섹터. 그러나 그것이 보일 때쯤이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현상 너머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현상은 구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장주가 오르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 산업의 사이클, 집단 심리의 동기화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현상만 보는 투자자는 항상 후행할 수밖에 없다. 결과가 눈에 보일 때 진입하고, 결과가 사라질 때 공포에 빠진다. 반면 구조를 먼저 읽는 투자자는 다르다.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그것이 만들어질 조건을 본다. 필요한 것은 현상에 반응하는 속도가 아니라,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묻는 습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적 훈련이 힘을 발휘한다. 인문학의 핵심은 질문이다. 인문학은 언제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묻는다. 문학은 인물의 행동 너머에 있는 욕망과 구조를 읽고, 역사학은 사건 너머에 있는 사회적 힘을 추적하며, 철학은 현상 너머에 있는 전제와 논리를 해부한다. 이것은 현상을 소비하지 않고 현상을 만들어낸 메커니즘을 묻는 훈련이다. 오랜 시간 이런 질문을 반복한 사람은, 어떤 현상 앞에서도 본능적으로 "이것은 왜 지금 일어나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이 사고방식의 좋은 예다. 그의 출발점은 단순한 질문이었다. "왜 어떤 문명은 발전하고, 어떤 문명은 그렇지 못했는가?" 당시의 지배적인 답은 민족의 우열이었다. 더 영리한 민족이 더 발전했다는 논리다. 다이아몬드는 이 표면적 설명을 거부했다. 그는 개별 민족의 특성이 아니라, 지리와 기후와 작물이라는 구조적 조건으로 파고들었다. 왜 유라시아에서는 가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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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자이자 금융강사. 단순히 재무적 안정이나 부자되기를 넘어, 물질과 정신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철학으로 삼고, 이곳 <멋나들 연구소>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