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피아노홀릭님께서 "국민연금 스왑이 신뢰를 점진적으로 마모해간다로 생각하시는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대댓글을 쓰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까 제가 이 스왑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스왑을 "노후 자금을 환율 방어에 곧장 쏟아붓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국민연금과 정부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애매하게 묶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뭉뚱그린 위에 "신뢰가 마모된다"는 결론을 만든게 되었습니다.
대댓글을 만들다보니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피아노홀릭님께 최대한 제 생각을 정확히 답변하기 위해 아티클로 올립니다.
먼저 환헤지부터 보겠습니다. 국민연금이 미국 주식 같은 해외자산을 달러로 사면 수익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자산 자체의 수익(주가)과 환율 손익(달러–원)입니다. 환헤지는 선물환으로 달러를 미리 팔아 두어 이 환손익을 상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든 자산 수익만 순수하게 남습니다. 이때 국민연금이 선물환 매도를 늘리면 시중은행이 그것을 받아 외화를 시장에 내다 팔게 되고, 결국 시장에 달러가 공급되어 원화 하방 압력을 눌러 줍니다.
국민연금은 원래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2018년 이후 해외자산에 대해 100% 환오픈을 유지해 왔습니다. 환노출이 오히려 포트폴리오 변동성을 낮춰 주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오면 대개 원화가 약해지는데(달러 강세), 그때 국내자산은 떨어져도 해외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는 올라 전체를 받쳐 줍니다. 일종의 자연 헤지인 셈입니다. 저희같은 개인도 미국주식 사면서 많이 경험하는 그 매커니즘입니다. 통상적으로 주식이 빠지는 국면에 환율이 올라 충격을 덜어 주니까요.
스왑은 다른 물건입니다. 국민연금이 새로 하는 해외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시장에서 곧장 사들이는 대신, 외환당국과 원화·달러를 일정 기간 맞바꾸는 거래입니다. 시장으로 나갈 뻔한 달러 수요를 시장 바깥에서 흡수합니다.
그러니 방향이 반대입니다. 환헤지는 달러를 시장에 공급하고, 스왑은 달러 수요를 흡수합니다. 둘 다 원화 약세를 누르는 효과는 있지만 작동 방식이 다릅니다.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환헤지를 꺼립니다. 비싼 헤지로 막을 수 있는 손실보다, 해외 주식 수익률이 가져다주는 성과가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규정상 100조 원이 넘는 헤지 여력이 있어도 실무에서는 사실상 손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2026년 4월,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10%에서 15%로 올린 건 누구의 뜻이었을까요.
다들 알다시피 정부입니다.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자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을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늘리면 선물환 매도를 해야하고 이건 시중에 달러로 풀리게 되고 풀린 달러는 원화 가치하락을 막아줍니다.
그 대가는 국민연금이 집니다. 헤지 비율을 높이면 앞으로 달러가 더 오를 때 누릴 환차익을 포기해야 하고,
선물환 계약 비용도 듭니다. 실제로 의결 과정에서 기금 수익성이 나빠질 거라는 우려가 컸습니다.
비용(환차익 포기와 헤지 비용)을 지는 쪽은 국민 노후자금이고,
그 비용을 지게 만든 이유는 국가의 환율 방어입니다.
이게 얼마나 예민한 문제냐면, 정부는 운용역 성과평가에서 환율 변동 효과를 빼는 '환 중립적 성과평가' 도입까지 검토했다고 합니다.. 원화 기준 수익률로 성과급을 주면 환율이 오르기만 해도 보상이 늘어나는 왜곡이 생기고, '국민연금이 성과급을 노려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이 국민연금을 두고 "외환시장 공룡"을 걱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이건 가입자 수익률과 거시 안정 사이의 맞교환입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신뢰가 마모된다"는 표현을 거듭 썼지만, 그 신뢰가 무엇인지는 잘 짚지 않았습니다.
비유로만 신뢰를 썼던게 논리를 약하게 만든것 같습니다. 여기서 신뢰를 한번 정의하고 가겠습니다.
한 국가의 환율의 신뢰란,
공시된 외환보유고와, 위기 때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실탄 사이의 간극을 시장이 어떻게 인식하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5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약 4,27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 국민연금 스왑으로 묶인 부분이 있고,
당국은 "만기에 전액 돌아오니 실질적인 감소가 아니다"라고 봅니다. 평시 회계로는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위기가 그 만기 전에 닥치는 경우입니다. 그때 묶인 달러는 당장 쓸 수가 없습니다.
평시 회계로는 "돌아올 돈"이지만, 위기 순간의 실효성으로 따지면 "지금은 못 쓰는 돈"입니다.
평시와 위기 사이의 이 간극, 그리고 시장이 그 간극을 알아채는 정도, 바로 이것이 마모의 대상입니다.
정의를 짚었으니 마모되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도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근거를 통해 설명해주시니 더 명확하게 보이는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