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맘때가 되면 자유공원에 가곤 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로썬 거의 매년 있는 일이였다.
최근 몇년 자유공원을 못갔던 나는 가족들과 지인들과 함께 반가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공원에 갔다.
벚꽃이 만개한 공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오랜만에 간 공원에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백인들이 돌아다니고, 한국인 가족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중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제물포항과 인접한 이 자리는 구한말 개항 때부터 외국 공사관과 외래 문물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서울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 조성된 한반도 최초의 서구식 공원. 이름도 각국공원이었다.
서양, 일본, 중국 세력이 뒤섞이던 곳. 구한말 이 거리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동네였다.
그때 들어온 중국 세력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공원 아래 차이나타운의 화교들은 청나라 시절 건너온 사람들이다.
대륙의 공산화(共産化)는 이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공원의 이름이 바뀌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고, 공원은 자유공원이 됐다.
우리에게 자유를 준 전쟁,
자유를 준 장군을 기리는 이름.
그 자유공원에 지금 또 중국인과 백인과 한국인이 뒤섞여 벚꽃을 구경하고 있다.
130년 전에도 이곳엔 중국인과 백인과 한국인이 뒤섞여 있었다.
75년 전엔 이곳에서의 상륙작전이 중국인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다.
지금의 갈등들도, 불과 몇십 년 뒤엔 이렇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위안인지 허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모든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지금 사람들은 그냥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는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마치 하워드 막스의 마켓사이클처럼 갈등은 그저 피고 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워드막스의 마켓 사이클 비유 좋네요ㅎㅎ 사이클이 돌고 돈다면, 지금의 긴장도 언젠간 벚꽃 필무렵 있었던 어떤 일 정도로 기억되려나요? 항상 읽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