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3대진미홍진미채 대표님이 써주신 「AI 에이전트 단상들」이라는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이 병목이다.
AI가 코드를 순식간에 짜오는데, 그걸 리뷰하고 다시 지시하는 인간의 시간이 가장 느린 구간이라는 뜻입니다.
글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은 도구가 아니라 경험과 책임을 내재화하는 관계의 주체, 즉 목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병목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역시 진미채는 구수하구나..)
깊이 공감했고, 여러 번 곱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을 조금 다른 맥락에서 체감한 적이 있습니다.
AI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이 때의 병목은 인간과 기계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했습니다.
1. 수십 개의 목소리, 하나의 영상
몇 년 전, 계열사가 수십 개가 넘는 대기업 그룹의 브랜드필름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룹 차원의 니즈는 명확했습니다. 신사업들을 중심으로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계열사를 무시할 수는 없고, 모든 계열사를 담으면 영상이 끝없이 길어지고, 하나라도 빠뜨리면 빠진 계열사에서는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목소리를 수용하면 전통 산업의 비중이 커져서 애초의 '미래지향'이라는 목적이 흐려졌고요..
그리고 그 각각의 입장은 하나하나가 다 일리가 있었습니다. 틀린 의견은 없었습니다. 다만 전부 맞는 의견을 하나의 영상 안에 우겨넣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고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룹 담당자도 곤란해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걸 효율적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각 계열사의 의견을 한꺼번에 모으고, 정리해서, 깔끔하게 정돈된 보고자료를 만들어서, 한 번에 컨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이클을 최대한 완결성 있게 만들면 뒤탈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죠. 좋은 의도였습니다. 모두의 시간을 아끼고 싶었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But, 결과는 의도와 달랐습니다.
공들여 올린 보고가 윗선의 한 마디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미 다 합의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무색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이런 큰 조직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엎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온도가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자들은 점점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긴 한 건가?"라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회의에서는 열띤 토론이 사라지고, "네 알겠습니다."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의도적으로 등을 돌린 건 아니었을 겁니다. "우린 원래 그래왔다.", "어쩔 수 없는거다."는 무기력이 고개를 들었을 뿐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마주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계열사 담당자들도, 윗선도 각자의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다만 소통의 구조가 서로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2. 메시지의 주파수
그 경험을 계기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는데, 메시지에는 세 가지 변수가 있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무게 — 가볍거나 무겁거나.
빈도 — 잦거나 드물거나.
초점 — 상대방의 입장에 가깝거나, 나의 입장에 가깝거나.
이 셋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움직이면 나머지도 따라 움직입니다.

빈도가 높으면 한 번에 담을 내용이 적어지니 메시지가 가벼워지고, 가벼우니까 상대의 맥락까지 살필 여유가 생깁니다.
반대로 빈도가 낮으면 한 번에 담아야 할 내용이 많아지니 무게가 올라가고, 무거우니까 내 정리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져서 초점이 나에게로 쏠립니다.
저는 이걸 '주파수'라는 단어로 묶어봅니다.
가볍고, 잦고, 상대 중심인 소통 = 높은 주파수.
무겁고, 드물고, 내 중심인 소통 = 낮은 주파수.
그렇다면 높은 주파수가 더 효과적이라는 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꾸 낮은 주파수 쪽으로 기울게 될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효율에 대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한 번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느낍니다. 미완성 단계에서 공유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까지 생각하죠. 그래서 의견을 최대한 모으고, 논리를 다듬고, 빈틈없는 보고서를 만들어서 한 방에 끝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 방'을 준비하는 사이에 상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