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아주머니랑 언성 높이다가 든 생각

집주인 아주머니랑 언성 높이다가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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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팬티
2026.04.03조회수 785회

얼마 전 집주인 아주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습니다. (TMI..)


상황은 이랬습니다. 만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제가 나가면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벌어드리는게 좋을 거 같아 만기보다 한두 달 먼저 나가드리면 어떻겠냐 여쭤봤고요. 그런데 구체적인 날짜를 정해야할 순간마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3월 중이라 하셨다가 3월 말로, 4월 초로, 다시 4월 중순으로 조금씩 시점을 미루셨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맞춰드리려고 했지만 결국 여의치 않았고, 원래 계약상 만기일에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버럭 화를 내시는겁니다.

"내가 4월 중순이라고 말하지 않았냐 어쩌고저쩌고, 젊은 사람이 말이야 신의가 있어야지. 저쩌고어쩌고.." 저는 어이가 없어 "지난번에 3월에 미리 나가드린다고 했을 때는 급하게 하지 말자고 하셨잖아요"라고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그녀의 감정은 더 격해졌습니다. "지나간 건 얘기하지 말고! 아니 내가 분명 4월 중순에는 빼야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내 말을 무시하는건가?!"


그러더니 갑자기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부동산 매매를 언제부터 해왔는지, 이런 계약을 얼마나 많이 다뤄봤는지 등등...?

저는 절제의 우위를 발휘(?)해 톤을 낮췄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중간에 설연휴도 끼고 정말 방법이 없었어요.."
감정을 달래니 아주머니의 진짜 속사정이 나왔습니다. 지금 본인이 살고 계신 집은 매매를 추진 중인데, 집 보러 오는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으셨다는 겁니다. 아주머니의 진짜 스트레스 원인은 제가 아니었을수도..?


아무튼 기빨리는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누구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비슷한 행동을 하죠. 제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패턴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의 갈등 앞에서 과거의 자격을 꺼내드는 것. 학력, 경력, 경험 등 — 지금 이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들을 소환하게 되는 그 순간. '왜 그러는 걸까?'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붙잡고 있다 보니,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1. 강원도 별장의 라이브

제가 처음 주식 투자에 발을 들였을 때(2020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재테크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없는데, 계좌의 숫자는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당장의 수익률에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실력을 키울 방법을 찾는 대신, 의지할 곳을 찾았습니다. 잘 맞추는 사람, 유명한 사람,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 실력보다 외형을 본 거였죠.

그러다 한 투자 유튜버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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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보면 투자계의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기사가 널려 있었습니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별장에서 아침마다 라이브도 하고, 자체 앱도 개발해서 운영하고, 추종자도 많았습니다. 주식 공부의 정석을 가르쳐준다고 했고, 저도 꽤 오래 출근시간마다 그 사람의 라이브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가끔 논리에 허점이 보였습니다. 분명 이해가 안 되는 맹점들이 있었는데, 댓글로 그 부분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 사람도 버럭 화를 냈습니다. 논리로 답하는 대신 자기의 성공신화와 수익률을 방패로 들며 "듣기 싫으면 꺼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열혈추종자들이 댓글로 합세해 버르장머리 없는 놈으로 만들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머니가 대뜸 자기 배경을 꺼내든 것과 같았습니다. 현재의 논리적 빈틈을 지적받으면, 과거의 자격을 소환해서 방어하는 것 말이죠.


당시의 저는 "내가 더 모르니까 이해가 안 가는 거겠지"라고 넘겼습니다. 논리보다 권위에 먼저 설득당한 겁니다. 나중에 이 사람은 선행매매로 적발되어 법적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런 패턴은 투자 세계에서 꽤 흔합니다. 이른바 '리딩방'이라 불리는 공간들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내가 A 종목 오른다 했잖아", "내가 트럼프가 어쩔거라고 그랬잖아" — 이런 말들이 반복적으로 소비됩니다. 한두 번 맞춘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권위가 되고, 그 권위에 기대어 틀린 판단도 정당화됩니다. 질문이 들어오면 논리로 답하는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반론이 나오면 경력과 수익률 인증으로 덮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이 사람 말이 맞더라"라는 댓글로 자신의 안목을 추켜세우면서 합리화합니다. 그게 훨씬 편하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안일했던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실력을 키우는 대신, 누군가의 자신감에 기대버린 겁니다. 그 사람의 과거 수익률, 별장의 화려함, 자신만만한 말투 — 그게 실력인지 허세인지 구분할 눈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이 없었던 건, 제가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고통을 회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 그 때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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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투자에서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 직장에서의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방향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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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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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팬티씨는 언제쯤 빤스를 걸칠 수 있을까요? (현재 망사팬티 정도 된거 같다고 합니다.) + (아는게 많이 없어서 주식 얘기는 잘 못하고 주로 딴 소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