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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센, 호로위츠, 그리고 a16z⟫ part 1
롤라팔루자 (lollapalooza)[2026 시리즈 연재]

⟪안드레센, 호로위츠, 그리고 a16z⟫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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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팔루자
2026.06.04조회수 3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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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팔루자
구독자 1,768명구독중 38명
*롤라팔루자*는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그 효과가 더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합주 효과'로도 불리는 이 개념은 버크셔해서웨이의 찰리 멍거 부회장이 즐겨 언급했던 현상이기도 합니다. 롤라팔루자 효과는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기업과의 장기 동행, '버핏-멍거 마을의 슈퍼투자자'들이 남긴 통찰, 시대를 이끄는 혁신 기업, 그리고 평생 학습/독서가 한데 어우러질 때 가장 가슴이 뜁니다.

VC의 규칙을 다시 쓰고, 테크 혁신을 주도하고, 이제는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 시점 최고 VC. 마크 안드레센, 벤 호로위츠, 그리고 a16z에 대한 글입니다.

총 5개 파트라 분량은 길지만, 저는 꽤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

VC 산업을 재설계한 두 남자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하루에 두세 시간을 오디오북 듣는 데 씁니다. 걸을 때도, 이동할 때도, 빈 틈이 생기면 어김없이 이어폰을 꽂습니다. 역사, 전기, 인공지능. 장르는 달라도 찾는 것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이 왜 지금 이 모양이고,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단서. 인구 2,554명의 위스콘신 소도시 뉴리스본에는 서점이 없었습니다. 도서관은 작았고, TV 채널도 몇 개 되지 않았습니다. 정보에 굶주린 상태로 자란 소년은 그때도 지금도 읽고 또 읽습니다. 그 소년이 1992년, 모두에게 인터넷을 열어주게 됩니다. 


2001년 3월,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 회의실. 벤 호로위츠(Ben Horowitz)가 슬라이드를 넘기는 동안 앞줄에 앉은 기관투자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습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나스닥은 고점에서 60%가 증발했고, 닷컴의 잔해 위로 회사들이 매주 백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회사 Loudcloud는 연 매출 2,500만 달러에 그보다 큰 적자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회사를 주식시장에 올리겠다고 그는 버티는 중이었습니다. 발표가 한창인데 한 투자자가 조용히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이 시기를 세 단어로 압축합니다. The IPO from Hell. 지옥에서 온 상장이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 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던 그 주에 Sequoia Capital은 창업자들을 불러 "RIP Good Times"를 띄웠습니다. 좋은 시절은 끝났으니 생존 모드로 들어가라는 경고였습니다. 벤처 자금은 얼어붙고 LP들은 약정을 거둬들이던, 펀드를 세우기에 최악의 시점이었습니다. 마크와 벤은 정반대로 읽었습니다. 그 전 몇 해 동안 Twitter와 Facebook에 함께 엔젤 투자를 해온 두 사람은, 당시 벤처 캐피털이 창업자에게 돈만 쥐여줄 뿐 회사를 키우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것을 봤고, 둘 다 그 쓸모없음의 피해자였습니다. 마크는 자신이 만든 회사를 시장에 빼앗겼고, 벤은 투자자에게 공개적으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답은 또렷했습니다. 창업자였을 때 곁에 있었으면 했던 바로 그런 벤처 캐피털을, 모두가 발을 빼는 지금 직접 세우는 것. 위기는 후퇴 신호가 아니라 진입 신호였습니다. 업계 전체가 숨을 죽이던 그때, 두 사람이 메신저를 주고받습니다.

벤: “우리가 벤처 캐피털 펀드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마크: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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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갇힌 인터넷을 모두에게 열겠다는 청년, 모두가 도망치는 장에서 상장을 강행하는 CEO, 자본이 썰물처럼 빠지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펀드를 세우겠다는 두 사람. 이 글은 시장의 합의가 틀렸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크게 건 두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 확신이 대체 어디서 나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a16z의 운용자산은 2026년 1월 기준 9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창업 16년 만입니다. 그동안 두 사람이 짜낸 모델은 업계의 새 표준으로 굳어졌고, 그만큼 새로운 모순도 함께 쌓였습니다. 왜 하필 그들이었는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모델의 진짜 차별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아이오와의 농촌 소년과 버클리의 급진주의자

마크 안드레센: 정보에 굶주린 소년

마크 안드레센은 1971년 아이오와주 시더폴스에서 태어나 곧 위스콘신주 뉴리스본으로 옮겨갔습니다. 밀워키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반, 인구 2,554명의 매우 작은 마을입니다. 아버지 로웰은 종자회사 Pioneer Hi-Bred International의 지역 영업 매니저였고, 어머니 팻은 카탈로그 의류업체 Lands’ End의 고객서비스 직원이었습니다. 마크는 가족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인터뷰를 통틀어 가족을 입에 올린 건 사실상 한 번뿐입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안 하드코어였습니다. 극도로 자기 부정적인 사람들, 인생에서 행복을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정을 억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기질에, 서점조차 없는 작은 마을의 정보 결핍이 더해졌습니다. 마크의 평생을 이끈 집착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직접 이 둘을 연결해 설명합니다. “나는 정보에 굶주린 소년이었습니다. 나중에 내가 인터넷을 모두에게 개방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겁니다.” 기술 낙관주의*는 거창한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보가 부재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갈증에서 왔습니다. 이러한 독서 습관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그의 강력한 투자 무기가 되었습니다. 마크의 직관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역사와 전기 속에서 패턴을 추출해낸 결과물입니다. 과거의 기술 전환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났는지를 통째로 파악하고 있기에, 새로운 기술이 그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챕니다.

*기술 낙관주의(Techno-Optimism)는 기술 발전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며 성장과 가속 자체가 도덕적 선(善)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2023년 마크 안드레센이 발표한 「기술 낙관주의 선언(The Techno-Optimist Manifesto)」이 그 대표적 정식화다


중학교 때 부모가 사준 Radio Shack의 TRS-80이 출발점이었습니다. 마크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혼자 BASIC을 떼었고, 첫 프로그램으로 수학 숙제를 자동으로 푸는 도구를 짰습니다. 게임이 아니라 귀찮은 일의 제거. 이 실용주의가 이후 그의 모든 결정에 깔립니다. 1989년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에 들어갑니다. 전기공학을 첫 전공으로 고른 이유는 “평균 급여가 제일 높아서”, 컴퓨터공학으로 갈아탄 이유는 “덜 힘들어서”였습니다. 멋보다 실속을 먼저 따지는 사람다운 답입니다. National Merit Scholar 장학생이던 그는 재학 중 NCSA(국립 슈퍼컴퓨팅 응용센터)에서 시급 6.85달러짜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공식 업무는 슈퍼컴퓨터용 3D 시각화 소프트웨어였지만, 머릿속에 든 건 따로 있었습니다. 정보를 세상 모두에게 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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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재 소년: 마크 안드레센 The Whiz Kid: Marc Andreessen (출처: WIRED)


벤 호로위츠: 혁명의 아들

같은 시기 미국 반대편에서, 전혀 다른 결핍을 겪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벤저민 에이브러햄 호로위츠는 1966년 1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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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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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
2026.06.05

운영체제랑 브라우저는 거리가 멀어보였는데, 넷스케이프가 윈도우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보고 IE 를 만들었다는 부분이 놀랍네요.


제가 사람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인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직 part 가 4개나 남아서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룰라팔루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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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aloo
2026.06.05

잼있습니다. 읽고보니 무지 기네요. 읽을때는 몰랐는데 스크롤 벡 하다가 알았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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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nachachacha
2026.06.05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넷스케이프 이전 얘기부터 시작하니까 몰랐던 신선한 부분이 더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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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2026.06.05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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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2026.06.05

정말 재밌고 유익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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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투자
2026.06.08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지금 시점에 생각거리가 많네요. 다음 글도 너무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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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로잉
2026.06.08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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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s77
2026.06.1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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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지능은 아닙니다”: 트랜스포머 혁명을 놓친 천재의 대가 2017년 6월 12일, 구글 브레인 연구자 8명이 논문 하나를 올렸습니다. 제목은 “Attention Is All You Need”였습니다. GPT 모먼트 이전에 'Attention Is All You Need'가 있었습니다. 이게 모든것의 시작이었습니다. *2017년 구글 브레인 팀이 발표한 논문으로, '트랜스포머'라는 새로운 AI 아키텍처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문서입니다. 기존 AI가 단어를 순서대로 처리하던 방식을 버리고 문장 전체를 동시에 파악하는 '어텐션 메커니즘'을 핵심 구조로 삼았으며, 이후 등장한 GPT·BERT·제미나이·클로드 등 모든 대형 언어모델이 이 구조를 뼈대로 삼습니다. 이 논문 한편이 AI 전체의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오픈AI의 수츠케버는 그날 논문을 읽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동료 래드포드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던 거 다 던져. 트랜스포머에 집중 해야 해. 이거 엄청날 거야.” 래드포드가 처음엔 영문을 몰라 했는데, 수츠케버가 워낙 밀어붙여 결국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사비스는 논문을 읽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의자에서 자빠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프로젝트 마리오 협상 실패와 구글과의 법률 공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기다 강화학습으로 위대한 걸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여전했습니다. 이 차이가 나중에 엄청난 값을 치르게 됩니다. 딥마인드의 초창기 사업계획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언어가 지능이라는, 잘못됐지만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개념.” 창업 첫날부터 언어 AI에 회의적이었던 거고, 이건 그냥 기술 판단이 아니라 하사비스라는 사람의 오래된 세계관이었습니다. 데미스가 맬러비에게 설명한 방식을 통해 이해해보겠습니다. 술집 테이블 위의 유리잔을 들어 올리면서. “이 컵을 떨어뜨리면 깨지겠죠. 위키피디아를 다 읽어도 이게 이해됩니까? 무게를 실제로 느껴본 적 없으면 무게가 뭔지 어떻게 압니까?”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논리였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안에서 직접 행동해야 한다. 언어는 현실을 가리키는 기호일 뿐이고, 기호가 물리 세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지능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딥마인드가 창업 때부터 '그라운딩 문제(grounding problem)'라고 불러온 핵심 명제였습니다. 두 번째 오판은 더 근본적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경험의 총량을 잘못 계산했습니다. "예전에 저한테 '인간 문명은 얼마나 복잡한가'라고 물었다면, 저는 10의 50승 비트쯤 된다고 했을 겁니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동과 사고의 가능성이 거의 무한하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인터넷에 14조 단어가 있고, 이는 충분한 테이터였어요. 10의 13승 정도. 나는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 못 했습니다." 처음 나온 GPT들은 그의 예상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조악한 암기 기계였거든요. First day of OpenAI (출처: 샘 알트먼 X) 그 사이 수츠케버는 트랜스포머를 들고 달렸습니다. 원래 구글이 번역용으로 만든 걸 래드포드가 대화형으로 뜯어고쳤습니다. 인간이 붙인 라벨 없이 원시 텍스트만 먹여 다음 단어를 예측하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18년 6월 나온 결과물 이름이 GP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형 사전 훈련 트랜스포머)였습니다. 소비자 제품 이름으로는 최악이었지만, 안에 든 건 달랐습니다. 그때 딥마인드는 가이아(Gaia) 프로젝트를 밀고 있었습니다. 인간 데이터 없이 환경과 직접 상호작용해서 스스로 경험을 만들어낸다는 패러다임은 그들이 생각하는 AGI의 청사진이었습니다. 기계가 세상을 직접 경험하며 배워야 한다. 텍스트를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가이아는 자연 생태계를 시뮬레이션한 가상 환경에서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개념을 발견하며 지능을 키우는 실험이었습니다. 하사비스는 킹스크로스 신사옥의 벽 한 면을 통째로 가이아 화면으로 채우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정말 멋졌을 텐데." 나중에 가이아의 실패를 회상하며 한 말입니다.  가이아는 실패했습니다. 에이전트가 단순한 환경은 처리했지만 진짜 불규칙한 자연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복잡한 데이터를 많이 먹을수록 강해지는 건 언어 모델이었고, 강화학습 에이전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020년 5월, GPT-3가 나왔습니다. 파라미터 1,750억 개. 딥마인드가 쫓던 640억의 세 배 가까이였습니다. 수츠케버는 “처음 써보면 거의 영적인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하사비스도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GPT와 GPT-2는 내가 예상하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GPT-3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딥마인드는 부랴부랴 목표를 2,800억 파라미터로 올렸습니다. 코드명 고퍼(Gopher). “셰인 레그가 초기 AGI는 쥐 수준일 거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설치류(Gopher) 이름 붙였죠.” 2021년 초 완성된 고퍼 앞에서 하사비스가 물었습니다. “프랑스 수도가 어디야?” 고퍼가 답했습니다. “영국 수도는 어디야? 이탈리아 수도는?” 아는 건 많은데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몇 가지 사후 훈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고퍼챗이 내부에서 꽤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공개를 안 했습니다. NHS 데이터 스캔들 이후 자리잡은 분위기였습니다. 공개를 밀어붙이던 잭 레이는 2022년 초 오픈AI로 떠났고, 다른 엔지니어들도 뒤따랐습니다. * NHS 데이터 스캔들: 2016년 5월, 딥마인드 헬스가 런던 왕립 자유 병원과 맺은 데이터 협약에서 160만 명의 환자 기록이 본인 동의 없이 넘겨졌다는 데일리 메일 보도로 불거진 사건으로, 딥마인드는 계약서가 NHS 표준 템플릿을 따랐고 구글의 데이터 접근도 차단했다고 반박했지만, 빅테크 불신 정서와 맞물려 딥마인드 의료 AI 사업 전반에 오랜 오명을 남겼습니다. 하사비스가 연구 방향을 “세 개의 동등한 패러다임”으로 나눈 것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강화학습, 신경과학 기반, 데이터 기반 신경망. 이 개방성이 알파폴드를 낳았지만, 언어 모델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전력을 집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수츠케버의 오픈AI는 달랐습니다. 언어 모델 하나만 봤습니다. 다른 건 없었습니다. 젊고 작은 조직이 크고 명성 높은 연구소를 앞서나간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22년 11월, 챗GPT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5일 만에 100만 명, 두 달 만에 1억 명. 딥마인드는 세계 최고 AI 연구소라는 자리를 잃었습니다. 너무 자주 들어 진부하지만, 괴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속도의 ChatGPT 성장 속도 그 대단한 OpenAI를 매출성장속도로 역전해버린 Anthropic 하사비스가 나중에 한 말이 남습니다. “이건 저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어요. 어쩌면 일랴와 그 주변 몇 사람을 빼고는요. 항상 노스트라다무스가 될 수는 없죠.” 그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실수를 인정했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제미나이의 반격 — 실패한 데뷔에서 업계 최고까지 2022년 11월 챗GPT가 터졌을 때, 구글 내부에는 두 개의 세계 최고 AI 연구소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구글 브레인과 딥마인드. 두 조직은 10년 가까이 각자의 방식으로 AI를 연구해왔고, 논문 수에서는 세계 최고였지만 제품으로는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챗GPT에 맞서 서둘러 공개한 바드(Bard)가 첫 데모에서 사실 오류를 냈고, 투자자들이 패닉 매도에 나서며 구글 시총이 하루 만에 9% 증발했습니다. 딥마인드도 챗GPT에 견줄 만한 스패로우(Sparrow)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피차이가 바드에 전력 집중을 결정하면서 출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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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4.

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3.

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트럼프, 일론 머스크, 샘 알트먼..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구글딥마인드의 수장인 데미스 하사비스도 인류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는 기업 창업기나 중요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것을 즐겨합니다.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출간 전 이지만 (번역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전기 [The Infinity Machine (무한의 기계)]를 먼저 읽어보고 최대한 자세하게 아티클로 작성해보았습니다. 5 part 중 part 2 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저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알파고의 37수, 이세돌의 78수 - 목표는 바둑이 아니라 그 너머의 과학 2016년 3월 9일, 서울. 한 어두운 방의 검은 가죽 의자에 딥마인드의 아자 황(Aja Huang)이 앉았습니다. 그의 앞에는 19줄의 격자가 있는 바둑판이 놓여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알파고의 수 선택을 보여주는 컴퓨터 스크린이 있었고, 그 수들은 태평양 건너편 서버에서 계산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맞은편에는 이세돌이 앉았습니다. 이세돌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파고의 이전 경기, 즉 2015년 10월 유럽 챔피언 판 후이와의 대국 기보를 분석한 결과 5-0이나 4-1로 자신이 이길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대부분의 바둑 프로들도 동의했습니다. “딥마인드를 이기는 건 톱 프로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쉬운 100만 달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간 지능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세돌이 진지하게 약속했습니다. 전 세계 2억 명이 이 대국을 시청했습니다. 카스파로프 대 딥블루 대국의 두 배가 넘었고, 슈퍼볼보다 많았습니다. 거리 곳곳에 거대 스크린이 설치됐습니다. 게임이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인간이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세돌은 비정통적인 세 번째 수와 즉각적인 충돌로 알파고를 혼란시키려 했습니다. 일부러 컴퓨터의 훈련 세트 바깥의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은 5개월 만에 인간 수준의 기능에서 무적으로 진화했었고, 이세돌은 그 발전 속도를 과소평가했습니다. 이세돌은 충격받고, 웃겨하고, 어둡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번갈아 보였습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미소 지었습니다. 목을 마사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항복했습니다. “알파고가 그렇게 완벽한 방식으로 게임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게임 후 기자회견에서 고백했습니다. 다음 날 두 번째 게임에서 그는 다른 전략을 시도했습니다. 신중하게 두면서 알파고가 실수하기를 기다렸습니다. 36수 만에 그는 담배를 피우러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알파고가 37번째 수를 두었습니다. 거의 비어 있는 영역에 검은 돌 하나, 이세돌의 우측 측면을 노리는 한 수. 이세돌이 돌아와 그 수를 보는 데 12분이 걸렸습니다. 그는 그런 수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방에서, 세계 톱 서양 바둑 플레이어 마이클 레드몬드(Michael Redmond)가 비디오로 게임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도 당황했습니다. 알파고가 선택한 자리에 검은 돌을 놓아봤다가 다시 빼냈습니다.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그가 중얼거렸습니다. 다시 화면을 확인하고, 그 이상한 자리에 돌을 다시 놓았습니다. “좋은 수인지 나쁜 수인지 모르겠어요.” 그가 라이브 스트림 시청자들에게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수였습니다. 게임이 100수 후에 끝났을 때, 37번째 수가 결정적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수를 봤을 때… 알파고가 창의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세돌이 게임 후 기자회견에서 말했습니다.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은 휴식일이었습니다. 딥마인드 과학자들이 도시를 산책하다 신문 가판대에서 멈췄습니다. 모든 신문 1면에 알파고가 있었습니다. 한 젊은 여자가 데미스를 알아보고 그가 팝 아이돌인 것처럼 기절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세 번째 게임에서도 기계가 이겼습니다. 이세돌은 자기 인생 최고의 바둑을 두고 있었지만, 알파고가 그를 능가했습니다. 4번째 게임에서, 그는 78수—후일 “신의 한 수”로 불리게 되는 수—로 깜짝 놀라운 역전승을 만들어냈습니다. 알고리즘적으로 절망적이 된 알파고는 환각을 보기 시작했고, 무의미한 수를 두기 시작했고, 결국 항복했습니다. 이세돌은 흥분했고, 인간이 아직 굴복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한쪽 팔에 37수, 다른 팔에 78수를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이때 데미스의 동료 토르 그라펠(Thore Graepel)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결정적입니다. “초기 버전의 우리 바둑 시스템은 인간처럼 두었어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학습한 특정 전략을 다시 발견했죠. 우리에게는 매우 안심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시스템은 시간이 흐른 인간의 전략들이 사실 반박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버렸죠.” “그리고 시스템이 더 강해지면서, 우리가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두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외계의 스타일이었어요.” 시리즈가 끝난 뒤 한 한국 바둑 평론가가 데이비드 실버에게 다가와 실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45년 동안 바둑을 두었지만, 오늘 알파고가 둔 수들은 제가 평생 꿈꾸던 아름다움을 넘어섰습니다.” 이 이벤트가 마무리 되고 한참 후. 실버가 신혼여행 첫날 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호텔 침대에서 문득 떠올린 것이 바로 알파고 제로(AlphaGo Zero)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인간 데이터 없이 강화학습만으로, 자기 자신과 대국하면서 처음부터 배우는 시스템. 2017년 10월 발표된 알파고 제로는 인류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3일 만에 알파고 제로는 이세돌을 이겼던 원조 알파고를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40일이 지나자, 인류가 4천 년 동안 축적한 바둑의 모든 지혜를 넘어섰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알파고 제로가 발견한 새로운 정석들이었습니다. 인간 바둑계가 수백 년 동안 당연시해온 정석 몇 가지를 알파고 제로는 비효율적이라며 폐기했고, 완전히 새로운 전략들을 제시했습니다. 이어 발표된 알파제로는 바둑뿐 아니라 체스와 쇼기까지 학습했고, 체스에서는 당시 세계 최강의 엔진 스톡피시를 압도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하사비스의 인생이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여섯 살에 전화번호부 위에서 체스를 두던 소년이, 42세에 자신이 만든 AI가 체스의 모든 인간적 지혜를 넘어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대중에게 알파고는 게임 승리였습니다. 하사비스에게 게임은 결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바둑판은 그저 통제된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는 이세돌 대국 직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바둑을 풀기 위해 이 회사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기술로 의학, 기후, 재료 과학, 우주를 풀어내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알파고의 승리로부터 4년 후, 딥마인드는 알파폴드를 발표하게 됩니다. 알파고가 AI 산업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글로벌 AI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가 2016년 직후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시진핑이 직접 알파고 사건을 언급하며 2017년 7월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국가전략으로 공식화했습니다. 머스크와 알트만이 오픈AI를 세운 배경에는 딥마인드의 AGI 독점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구글 내부의 AI 우선순위가 재편됐고, AI 인재 전쟁이 본격화됐습니다. “과학을 하는 것은 신의 마음을 읽는 것” — 단백질의 암호를 풀다 케임브리지 학부 시절의 어느 점심, 한 생물학자 친구가 데미스에게 지나가는 말로 단백질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단백질의 모양을 정확히 그릴 수 있다면 의학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모든 신약 개발 시간이 10분의 1로 줄어들 거라고. “하지만 그건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거야.” 친구의 기억에는 남지...
[2026 시리즈 연재]
2026.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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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3.

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2.

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트럼프, 일론 머스크, 샘 알트먼..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구글딥마인드의 수장인 데미스 하사비스도 인류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는 기업 창업기나 중요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것을 즐겨합니다.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출간 전 이지만 (번역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전기 [The Infinity Machine (무한의 기계)]를 먼저 읽어보고 최대한 자세하게 아티클로 작성해보았습니다. 5 part 중 part 2 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저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특이점(컨퍼런스)에서 만난 사람들 2010년 7월 15일 밤, 런던의 빅토리아 카지노(The Vic). 데미스 하사비스는 셰인 레그, 무스타파 술레이만, 그리고 동생 조지와 함께 포커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지와 무스타파가 먼저 탈락했고, 데미스는 5위로 약 2,000달러를 챙겼습니다. 실망한 조지가 집으로 돌아간 뒤, 데미스와 무스타파가 식당 한구석에 앉아 초콜릿 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습니다. 도파민과 설탕에 취한 데미스가 무스타파에게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스텔스 모드로 AI 회사를 설계해왔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AI가 아니라 AGI를 추구하는 회사였습니다. 계획이 있었고, 뛰어난 공동창업자도 있었으며, 잠재적 협력자 명단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건 단 하나, 투자자였습니다. 무스타파 술레이만은 이질적인 인물이었습니다. 1984년 8월, 데미스보다 8년 늦게 런던 북부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리아에서 온 독실한 무슬림 아버지는 깨진 영어를 쓰며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택시를 몰았습니다. 어머니는 영국에서 자라 이슬람으로 개종한 간호사였습니다. 집에는 음악도, 책도, 신문도 없었습니다. 무스타파는 부모의 종교를 받아들였고, 금요일마다 북런던의 모스크에서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 소말리아인, 수단인, 터키인, 아랍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기도했습니다. 15세 때 부모가 별거했습니다. 어머니는 새 파트너를 따라 뉴질랜드로 갔고, 아버지는 시리아로 돌아가 재혼했습니다. 무스타파는 14세였던 동생과 둘이 런던에 남겨졌습니다. 갈 집이 없어 친구들의 집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1세 때부터 학교 친구들에게 사탕을 도매가에 사서 마진을 붙여 팔았고, 18세에는 BMW와 메르세데스를 사들여 손질해 되팔았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2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무슬림 정체성과 9·11 이후의 이슬람포비아 사이에서 옥스퍼드의 좁은 학문적 세계가 답답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이슬람 청소년 헬프라인을 운영했습니다. 그러던 중 데미스를 만났습니다. 데미스의 동생 조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무스타파였기 때문입니다. 빅토리아 카지노에서 데미스가 무스타파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네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AGI보다 더 큰 도구가 있을까. 무한 기계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질거야.” 세 명의 창업자가 모였습니다. 비전과 과학을 담당하는 데미스 하사비스. 이론과 안전을 담당하는 셰인 레그. 실행과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무스타파 술레이만. 세명의 파운더는 서로를 보완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딥마인드(DeepMind). 제프리 힌튼이 개척한 딥러닝, 카스파로프를 이긴 컴퓨터 딥블루, 더글러스 애덤스의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 등장하는 슈퍼컴퓨터 딥소트(Deep Thought)에 보내는 오마주였습니다. 앳된(?) 모습의 딥마인드 3명의 창업자 (출처: mr.web) 자금 조달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엘릭서를 후원했던 투자자들은 누구도 AGI 회사를 후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적으로 무모했고, 상업적으로 의심스러웠습니다. 데미스는 MIT 시절 지도교수 토마소 포지오에게서 10만 파운드의 약속을 받아냈지만(포지오는 후일 자신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데미스를, 리처드 파인만,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어떤 연구 주제를 선택해도 노벨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예외적 천재” 카테고리에 넣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피터 틸에 대해 듣게 됩니다. 페이팔 창업자, 팰런티어 창업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2010년 그는 이미 전설이었습니다. 데미스, 셰인, 무스타파는 샌프란시스코의 <싱귤래리티(특이점) 서밋>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벤 괴르첼이 등장했고,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부르는 캐나다 발명가 스티브 만이 검은 털모자와 컴퓨터 안경을 쓰고 나타났습니다. 한 기자가 데미스에게 “당신도 싱귤래리테리언*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영국 특유의 화법으로) 답했습니다.”아마도 내 영국적 측면 때문일 텐데, 그 표현은 좀 캘리포니안 같습니다.” * 싱귤래리테리언이란 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술적 특이점’이 반드시 온다고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010년 싱귤래리티 서밋에서 하사비스의 발표. 제목은 "시스템 신경과학(Systems Neuroscience) 기반의 범용 인공지능(AGI) 개발" https://youtu.be/Qgd3OK5DZWI?si=lADUy4i5EppGydlT 피터 틸은 컨퍼런스 발표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컨퍼런스에 참석한 셰인 레그가 피터 틸이 발표자들을 위한 애프터 파티를 열 거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딥마인드 팀은 애프터 파티에서 피터 틸을 노리기로 합니다. 파티에서 그들은 어색하게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관련없는 무명의 인간들이었어요. 그는 거인이었습니다.” 무스타파가 회상합니다. 여기서 셰인의 인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가 싱귤래리티 커뮤니티의 구루 엘리저 유드코프스키를 통해 피터 틸을 소개받았습니다. 데미스는 1년 동안 이 만남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는 또 다른 30초 엘리베이터 피치로 시끄러운 파티 한가운데서 틸의 주목을 끌 수 없다는걸 알았습니다. 대신 그는 체스로 틸을 ...
[2026 시리즈 연재]
2026. 05. 21
87
14
844
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2.

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1.

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트럼프, 일론 머스크, 샘 알트먼..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구글딥마인드의 수장인 데미스 하사비스도 인류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저는 기업 창업기나 중요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는것을 즐겨합니다.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출간 전 이지만 (번역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전기 [The Infinity Machine (무한의 기계)]를 먼저 읽어보고 최대한 자세하게 아티클로 작성해보았습니다. 5 part로 나눠서 올릴 계획입니다. 내용이 길지만, 저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새벽 두 시, 진실이 나에게 소리친다 “새벽 두 시에 제 책상에 앉아 있으면, 진실이 저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요.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내가 들을 수만 있다면…” 이 고백은 데미스 하사비스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입니다. 그는 자신을 야심 찬 테크 기업의 CEO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주가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는 번역자에 가깝게 봅니다. 이 기묘한 자의식이 오늘날 알파벳(Google의 모회사)이 가진 강력하면서도 중요한 무형 자산입니다. 그의 출신은 실리콘밸리식 성공 신화와 결이 다릅니다. 1976년 7월, 런던 북부 핀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싱가포르계 중국인. 어린 시절 일부를 싱가포르 길거리의 고아로 지내다 친척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영국으로 건너와 간호학을 공부했습니다. 데미스가 자라던 무렵 어머니는 백화점 존 루이스의 판매원이었고, 부업으로 청소부 일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리스계 키프로스 출신, 가문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었지만 회사 일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한 보헤미안이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꿨고, 망가진 빨간 폭스바겐 밴 뒷자리에서 장난감을 팔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테크 리더들은 모두 ’부와 권력’을 쫓는다면, 하사비스가 쫓는 것은 결이 달랐습니다. 그는 과학적 계몽에 더 가까운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어린시절 데미스와 부모님 (왼쪽), 그리고 싱가폴에 있는 친척들 지금 하사비스는 인류 최후의 발명품이 될지 모를 인공일반지능(AGI)을 만들면서,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뒤에 마주했던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기계는 암을 치료하고 무한한 청정에너지를 설계할 신의 도구일 수도,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통제 불능의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진합니다. 투자자가 그를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알파벳 주식을 산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 이 남자의 집착, 판단, 속도감, 그림자에 베팅한다는 뜻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에 알파벳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월스트리트는 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미나이 벤치마크와 TPU 투자 규모를 숫자로 쪼개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자주 뒤로 밀립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금 정확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이 글은 그 세 질문을 따라갑니다. 전화번호부 위에 앉은 꼬마 천재 — “죽기 직전까지 나를 밀어붙였다” 네 살이었습니다. 북런던의 작은 아파트 거실, 의자 위에 올라가 아버지와 삼촌이 두는 체스 경기를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두 어른을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에는 토너먼트에 나갔습니다. 키가 작아 의자 두 개를 쌓고 그 위에 전화번호부를 깔고 앉아야 보드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아이들을 이겼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한 명이 그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스파클링하다(sparkling-빤짝인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경쟁적이다.” 여섯 살, 영국 14세 이하 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두 경기를 이긴 다음, 게임이 저녁까지 늘어지자 그는 테이블 위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잠자리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국 체스의 살아있는 전설, 레너드 바든이었습니다. 1950~60년대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이자 TV 해설가가 된 인물입니다. 그가 데미스의 아버지에게 다가와 부모들이 사랑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종류의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당신 아들은 제가 본 여섯 살 중에 최고입니다.” 이 한마디가 가족의 6년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말마다 어린 데미스를 빨간 폭스바겐 밴에 태워 외딴 교회 회관의 토너먼트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둘째와 셋째 아이를 보살피며 여러 일을 떠맡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때로 밴 뒤편 엔진 위에 침낭을 깔고 잤고, 때로는 싸구려 호스텔의 이층 침대를 함께 썼습니다. 아들이 우승하면 상금이 호스텔 비용을 메웠지만, 어머니는 늘 여행경비를 걱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절대적인 가난 속에서 자라셨거든요. 부모님이 돈 때문에 다투는 일도 많았을 거예요. 우리 집에 돈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체스 커리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홉 살에 잉글랜드 11세 이하 대표팀 주장이 됐고, 열세 살에 체스 마스터 등급에 도달했으며, 동연령대에서 세계 두 번째로 강한 선수였습니다. 동시에 압박은 무거워졌습니다. 체스가 모든 주말과 모든 학교 방학을 잡아먹었습니다. 보통 아이의 일상은 사라졌습니다. 토너먼트는 잔혹했습니다. 테이블 아래에는 선수들이 서로의 다리를 차지 못하도록 나무판이 깔려 있었습니다. 의자에 배게 두개를 쌓아야 테이블이 닿았다는, 어린시절의 데미스. 때론 아버지가 폭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외딴 호스텔에서 데미스가 룩 한 개를 더 가지고도 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격분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이걸 던질 수가 있어! 이게 말이 되느냐!” 어느날 데미스가 처음으로 맞섰습니다. “이건 말이 안 돼요. 저는 분명히 최선을 다했어요. 일부러 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날 이후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아이의 평생을 지배할 철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늘 말했습니다. “이기든 지든,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하는 거야.” 데미스는 그 말을 다소 기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그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 붙였을 때만 알 수 있다. 만약 죽으면, 그러니까 번아웃되면, 살짝 지나친 거다. 마치 마라톤 같다. 결승선 통과하고 바로 탈진해서 쓰러져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병원에 실려가야 하지만, 죽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만약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고 여전히 서 있다면, 더 노력할 수 있었던 것 ...
[2026 시리즈 연재]
2026.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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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스 하사비스, 무한의 기계를 설계한 사람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