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 시라카와 마사아키, 부키, 2024

<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 시라카와 마사아키, 부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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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중년
2025.03.16조회수 7회

*일부 윤문을 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며 정리했기 때문에 반드시 원문을 보길 추천합니다.


낙관적 기대와 신용 팽창으로 생겨난 버블은 다음 요인들이 가세하면서 더욱 부풀어 올랐다.

첫째, 금융 완화가 장기간 지속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7년까지 정책 금리 역할을 했던 공식 재할인율은 1986년 1월에 4.5퍼센트로 처음 인하된 이후 1987년 2월까지 5차례 연속 인하되어 당시로서는 역대 최저 금리인 2.5퍼센트에 도달했고 1989년 5월까지 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 가운데 낮은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정책 공조로 인하여 저금리 기조가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었다.

둘째,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경기 순응적 상호 작용이 영향을 미쳤다. 금융의 특성상 신용 공급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부동산 관련 대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출의 수익성이 개선되므로 신용 공급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또한 금융기관은 차주借主의 건전성 개선과 담보 가치 상승에 힘입어 대출 태도가 더 완화된다.

BIS도입은 일본 은행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계감으로 도입된 측면이 있는데, 은행이 보유 주식 평가 이익의 45퍼센트를 자본에 포함하는 것을 허용했다(*그런데 보유 주식의 평가 이익의 45퍼센트를 자본에 산입하는 규정은 BIS 2로 알고 있는데, 글에서 말하는 80년대 후반 적용된 BIS 1에서 해당 규정이 있는지 명확하진 않습니다). 이러한 자본 규제는 최소한 자본 수준만 규정한 것이지만 일본 은행들이 실제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이를 사업에 필요한 경제적 자본으로 간주하면서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은행들이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 이익의 45%를 자기자본에 반영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에 동원할 자기자본이 늘어났다고 판단하여 더 공격적인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이 가능해 졌다는 말).

마지막으로 셋째, 일본의 조세 정책은 부동산 보유에 대해서는 가볍게 과세하는 반면 매매 차익에는 상대적으로 무겁게 과세했다. 자본 이득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은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낮아졌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향후 가격 상승에 따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부동산 매도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했다. 부동산 보유세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이러한 투기의 비용은 저렴했다. 즉 일본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미래의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한 향후 세금 혜택의 현재 가치까지 반영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기대였다.




*무언가에 대해 조금 알고 있을 때 음모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 대중의 압력은 엘리트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결과를 받아들일지라도 결코 마음으로부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본다면 곳곳에서 일본 사회의 공기(-분위기, 대중 압력으로 읽었음)를 알 수 있는데, 한국 사회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1986년 10월과 1987년 2월에 일본은행이 갑작스럽게 금리 인하를 단행했을 때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1988년 1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대통령과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총리의 정상 회담 후 "일본은행은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환율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안정된 물가 상황하에서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낮은 단기 금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간의 완화 정책을 오직 정치적 압력 때문으로 치부하는 것도 지나치다.

당시 지배적인 '시대의 공기'와 정치경제적 시대정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대 최적의 정책에 대한 사회 통념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느 1980년대 후반의 금융 완화 과정은 국제적 정책 공조, 엔화 평가 절상 방지, 내수 확대를 통핸 경상 수지 흑자 축소라는 정책 이념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버블 붕괴 이후 10년 간의 낮은 성장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 버블 기간에 고용, 투자, 부채가 과도하게 축적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과잉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기업과 가계의 지출이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다. 버블 시기에 낙관적 기대로 시작된 투자가 이후 수익성이 낮은 자본으로 남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둘째, 1990년대 세계 경제를 휩쓸었던 근본 변화에 일본 기업이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대 초 사회주의 경제가 글로벌 시장 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제 무역과 투자를 통해 막대한 노동력이 세계 경제에 유입되었음을 의미했다. 1990년대에는 정보 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계화, IT기술 혁명의 물결 속에서 세계 시장은 더욱 통합되었고 생산 공정의 글로벌 분업화가 확대되었다. 외국 기업들은 생산 기지와 판매 경로를 최적화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량 생산 공정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을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변화를 도모하려 해도 종신 고용제하에서 노동력을 유연하게 재배치하기 어려웠다. 기업의 존속(*을 통한 고용의 유지, 단 유지만 겨우 가능하다)이 우선시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재정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셋째, 경기 침체 속에 채택된 정책은 오히려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 해결을 미루는 정책으로 인해 비효율적인 기업이 계속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업을 '좀비 기업'이라고 불렀다.

기업의 혁신성은 언제나 생산성의 중요한 토대다. 버블 붕괴는 경제 성장을 저해했지만, 수십 년에 걸친 저성장 기조는 단지 버블 붕괴 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의 인센티브와 이를 좌우하는 제도적 요인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2025현재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낌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벼블 붕괴 이후 장기간 하락세를 보였다. 하락 속도는 점차 느려졌고, 공식적인 토지 가격 데이터는 도쿄의 경우 2006년, 전체 경제는 2007년 바닥을 찍었다.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는 전국적으로 주거지 0.1퍼센트, 상업지 2.3퍼센트로 조금 상승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쿄는 주거지가 8퍼센트, 상업지가 13.9퍼센트로 훨씬 더 가파른 상승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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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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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투자공부가 너무 재미있는 중년의 아저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