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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가 25년 전 제시했던 문제의 해결책들
문샷생각과 드립

로버트 라이시가 25년 전 제시했던 문제의 해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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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중년
2025.04.13조회수 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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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중년
구독자 69명구독중 50명
투자와 투자공부가 너무 재미있는 중년의 아저씨입니다.

무려 25년 전인 2000년에 발간한 책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때 라이시가 했던 우려와, 그에 대한 해결책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러 인사이트를 줍니다. 역시 윤문을 했으므로, 원문을 직접 보세요.



과거의 사회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물질적인 빈곤을 선택하거나, 또는 급격한 변화의 엑셀을 밟아 물질적인 부는 넘쳐나지만 경제적 안정감을 느끼는사람은 없는 사회를 선택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 양 극단은 썩 매력적이지 않다. ... 이 양 극단의 균형에 있는 사회를 위해 다음 몇 가지 목표의 달성이 필요하다.


첫째, 갑작스러운 경제적 충격에 대한 완충 장치를 제공한다. 실업 보험은 '고용'이 일반적이었던 대량 생산 제조업 시대의 유산이다. 이를 소득 보험(earning insurance)로 대체해 수입이 갑자기 떨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도 있다. 소득 보험은 그동안 번 수입이 사라졌을 때, 그 절반 정도를 보상해준다. 만약 수입이 증가하면 그 증가분의 일부를 보험 기금에 적립한다. 소득보험은 고용보험과 달리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가지 확대될 것이다. (이거 기본 소득론의 변형판인데 기본소득론보다 진일보 했네요 ㄷㄷㄷ)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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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The Future of success)>, 로버트 라이시, 좋은 구절

읽다 보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이게 2000년에 발간한 책이라니요. 많은 현인들의 발언의 원전이 이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일부 윤문이 있으므로 원문을 보세요. 몇십 년 전에 미국 하늘에 거대한 요정이 나타나 커다란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상상해보자.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지금 상태대로 계속 일을 하든지, 아니면 다음 조건을 들어보고 선택해라. 다음 세기가 시작할 무렵 너희들 중 일부는 엄청난 부자가 되고, 대부분은 소비자로서 지금보다 훨씬더 좋은 조건을 맞이할 것이며, 경제는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정이 기분 나쁘게 웃는다) 내가 제안하는 조건의 이면은 이렇다. 너희들 일자리는 더 불안해지고, 수입은 예측하기 더 힘들게 될 것이며, 수입과 부에 있어 가정간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사회는 분화 현상을...
생각과 드립
2025. 04. 1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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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 시카라와 마사아키 좋은 구절 2

내용은 윤문을 하였으므로 원문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일반적인 이론은 중앙은행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정부는 추종자 역할을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즉 중앙은행이 결정한 물가 수준에서 정부는 실질 재정 잉여의 현재 가치가 국채 가치와 같아지도록 재정을 항상 조정하는 세계를 생각한다. 정부는 빌린 돈은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물가 수준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가정할 수도 있다. 정부가 주도권을 쥔 채 재정 정책을 펼치고 그에 맞춰 추종자인 중앙은행이 반응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비용 억제를 위해 1951년까지 유지했던 구채 금리 페그제Pegging 정책이다. 이 경우 정부가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중앙은행에 빌려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독립성이 없고 물가 수준은 불안정해진다. "통화주의자의 유쾌하지 않은 산식 unpleasant monetarist arithmetic"이라 불리는 상황이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모두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가졌다고 해도 물가 수준을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정부가 빌린 돈의 대가를 이번에는 민간 부문의 저축과 지출 행태에 떠넘기려 하기 때문이다. 궃채 가치에 비해 재정 흑자의 현재 가치가 작아지면 가계가 지출을 늘리고 물가가 상승하는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중요한 것은 "형식"인가, "내용"인가? 이는 제도 설꼐를 할 때 어느 분양에서나 공통으로 고민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핵심은 "유연한 인플레이션 목표제"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여부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주장하는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이른바 "리플레파"와 "기대파"의 논의를 들어보면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 특히 극단적인 목표치를 채택한다고 선언하면 일본은행은 스스로 의도한 범위를 넘어서 끝없는 구채 매입, 즉 '재정 우위'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물가 안정 아래 지속 가능한 성장의 ...
생각과 드립
2025.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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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0년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것인가>, 시라카와 마사아키, 부키, 2024

*일부 윤문을 하고, 내 생각을 덧붙이며 정리했기 때문에 반드시 원문을 보길 추천합니다. 낙관적 기대와 신용 팽창으로 생겨난 버블은 다음 요인들이 가세하면서 더욱 부풀어 올랐다. 첫째, 금융 완화가 장기간 지속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7년까지 정책 금리 역할을 했던 공식 재할인율은 1986년 1월에 4.5퍼센트로 처음 인하된 이후 1987년 2월까지 5차례 연속 인하되어 당시로서는 역대 최저 금리인 2.5퍼센트에 도달했고 1989년 5월까지 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 가운데 낮은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정책 공조로 인하여 저금리 기조가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었다. 둘째,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경기 순응적 상호 작용이 영향을 미쳤다. 금융의 특성상 신용 공급에 의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부동산 관련 대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대출의 수익성이 개선되므로 신용 공급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 또한 금융기관은 차주借主의 건전성 개선과 담보 가치 상승에 힘입어 대출 태도가 더 완화된다. BIS도입은 일본 은행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계감으로 도입된 측면이 있는데, 은행이 보유 주식 평가 이익의 45퍼센트를 자본에 포함하는 것을 허용했다(*그런데 보유 주식의 평가 이익의 45퍼센트를 자본에 산입하는 규정은 BIS 2로 알고 있는데, 글에서 말하는 80년대 후반 적용된 BIS 1에서 해당 규정이 있는지 명확하진 않습니다). 이러한 자본 규제는 최소한 자본 수준만 규정한 것이지만 일본 은행들이 실제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이를 사업에 필요한 경제적 자본으로 간주하면서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은행들이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 이익의 45%를 자기자본에 반영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에 동원할 자기자본이 늘어났다고 판단하여 더 공격적인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이 가능해 졌다는 말). 마지막으로 셋째, 일본의 조세 정책은 부동산 보유에 대해서는 가볍게 과세하는 반면 매매 차익에는 상대적으로 무겁게 과세했다. 자본 이득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은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낮아졌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은 향후 가격 상승에 따른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부동산 매도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했다. 부동산 보유세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이러한 투기의 비용은 저렴했다. 즉 일본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미래의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한 향후 세금 혜택의 현재 가치까지 반영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기대였다. *무언가에 대해 조금 알고 있을 때 음모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 대중의 압력은 엘리트들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결과를 받아들일지라도 결코 마음으로부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본다면 곳곳에서 일본 사회의 공기(-분위기, 대중 압력으로 읽었음)를 알 수 있는데, 한국 사회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1986년 10월과 1987년 2월에 일본은행이 갑작스럽게 금리 인하를 단행했을 때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1988년 1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대통령과 다케시타 노보루 일본 총리의 정상 회담 후 "일본은행은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환율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안정된 물가 상황하에서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낮은 단기 금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라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간의 완화 정책을 오직 정치적 압력 때문으로 치부하는 것도 지나치다. 당시 지배적인 '시대의 공기'와 정치경제적 시대정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대 최적의 정책에 대한 사회 통념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느 1980년대 후반의 금융 완화 과정은 국제적 정책 공조, 엔화 평가 절상 방지, 내수 확대를 통핸 경상 수지 흑자 축소라는 정책 이념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버블 붕괴 이후 10년 간의 낮은 성장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무엇보다 버블 기간에 고용, 투자, 부채가 과도하게 축적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러한 과잉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기업과 가계의 지출이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다. 버블 시기에 낙관적 기대로 시작된 투자가 이후 수익성이 낮은 자본으로 남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둘째, 1990년대 세계 경제를 휩쓸었던 근본 변화에 일본 기업이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대 초 사회주의 경제가 글로벌 시장 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제 무역과 투자를 통해 막대한 노동력이 세계 경제에 유입되었음을 의미했다. 1990년대에는 정보 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계화, IT기술 혁명의 물결 속에서 세계 시장은 더욱 통합되었고 생산 공정의 글로벌 분업화가 확대되었다. 외국 기업들은 생산 기지와 판매 경로를 최적화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량 생산 공정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을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변화를 도모하려 해도 종신 고용제하에서 노동력을 유연하게 재배치하기 어려웠다. 기업의 존속(*을 통한 고용의 유지, 단 유지만 겨우 가능하다)이 우선시되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재정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셋째, 경기 침체 속에 채택된 정책은 오히려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 해결을 미루는 정책으로 인해 비효율적인 기업이 계속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업을 '좀비 기업'이라고 불렀다. 기업의 혁신성은 언제나 생산성의 중요한 토대다. 버블 붕괴는 경제 성장을 저해했지만, 수십 년에 걸친 저성장 기조는 단지 버블 붕괴 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의 인센티브와 이를 좌우하는 제도적 요인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2025현재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낌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벼블 붕괴 이후 장기간 하락세를 보였다. 하락 속도는 점차 느려졌고, 공식적인 토지 가격 데이터는 도쿄의 경우 2006년, 전체 경제는 2007년 바닥을 찍었다.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는 전국적으로 주거지 0.1퍼센트, 상업지 2.3퍼센트로 조금 상승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

<아메리칸 네이션들> 좋은 구절 3

<아메리칸 네이션들(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글항아리, 2017 19세기에 파웨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룹은 거대한 외부 기업이나 그 기업들이 참여한 연방정부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연관된 사람들뿐이었다. 미 정부는 강과 개울에 댐을 세우고, 수원을 분산시키기 위한 송수관을 건설했으며, 광범위한 관개 수로를 내고 유지·보수했다. 그러나 그 혜택으로 사막에서 농작물을 키울 수 있었던 농부는 소수에 불과했다. 광산 기업은 새로운 지역과 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그곳들을 자신들의 봉건 영지처럼 운영했다. 사업을 독점하고 요금을 마음대로 매긴 철도 회사들 때문에 파웨스트를 오가는 열차는 레프트코스트에서 동부 지역까지 오가는 열차보다 요금이 마일당 몇 배는 더 비쌌다. 20세기에도 시카고에서 몬태나의 헬레나까지 상품을 운송하는 비용이 같은 기차로 시카고에서 헬레나를 거쳐 시애틀까지 운송하는 것보다 더 비쌀 정도였다. 또 철도 회사들은 완성품에는 원자재보다 더 비싼 운송료를 매겼다. 이는 제조업체들이 파웨스트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막고 파웨스트에 대한 레프트코스트, 양키덤, 미들랜드, 뉴데널란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철도 회사의 의도적인 꼼수였다. 이민자가 남부의 세 지역을 기피한 이유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귀족이 지배하는 압제적인 봉건국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1866년 남북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딮사우스와 타이드워터는 귀족이 다스리는 억압적인 봉건제 사회와 똑같았다. 그들은 1877년 재건의 시대가 끝나고 연방군이 철수하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농업 역시 대농장주의 지배를 받았던 딮사우스와 타이드워터는 이주민들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는 몹시 가난해서 도시가 형성되지 않았고 일자리가 없었다. 지역적인 관습에 집착하면서 '미국인'이 아닌 자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 점도 외국인이 이곳을 꺼리게 만든 요소였다. 양키는 19세기에 '거대한 물결'이 미국을 덮치자 이주민을 '미국인'의 기준, 즉 뉴잉글랜드의 가치에 순응시키기 위해 두 배로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들의 성전은 이주민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집중됐다. 뉴잉글랜드와 양키 식민지에서 학교는 이주민을 동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20세기까지도 읽고 쓰고 계산할 수 있는지 여부는 농부, 임금노동자, 산업노동자로 채용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양키의 가치관을 주입시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쉬족층의 형성을 막고 공화국을 지켜내기 위해 존재했다. '거대한 물결'은 양키의 위기의식을 더욱 강화했다. 버몬트 태생의 유명한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1915년 "모두 한 교실에서 공부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기회의 평등을 실현시키려면 공동체를 위해 학습, 사회 적응, 신념, 실천, 일, 자신의 행동이 갖는 의미에 대한 인식을 처음부터 통일해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양키는 사회와 문화의 연속성을 위해 공립학교에서 공통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아이들을 함께 교육시켜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뉴잉글랜드 정부는 19세기 중반부터 모든 도시에 무상 교육을 의무적으로 도입했다. 19세기 말에는 양키가 장악한 다른 많은 주도 의무 교육을 잇달아 도입했다. 반면 딮사우스에는 제대로 된 공립학교 시스템이 없었고, 계급과 카스트의 구분 없이 교육시키는 것을 꺼렸다. 딮사우스와 타이드워터는 그들의 제도와 인종 카스트가 위협을 받게 되자, 당시 유일하게 자신들의 수중에 남아 있던 시민 조직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을 펼쳐나갔다. 그 조직은 바로 교회였다. 남부 지역의 여러 교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복음주의 교회는 전쟁 전의 사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남부 침례교 등 복음주의 교회들은 양키덤의 교파와 달리, 종교학자들이 말하는 '내면적 개신교 Private Protestants'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는 북부 지역의 '공공적 개신교 Public Protestants'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내면적 개신교', 특히 남부 침례교, 남부 감리교, 남부 성공회는 이 세계가 애초부터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으며, 남북전쟁 후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복음을 전파해 이 땅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휴거가 일어나기 전 각 영혼이 영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개인의 구원에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내면적 개신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아무 관심이 없었고 기존 질서와 복종만을 강조했다. 이들에게 노예제, 귀족계급, 일반 서민들의 비참한 가난은 타도해야 할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양키 이단으로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냐야 할 신성한 것이었다. 애팔래치아 지역의 스콧-아이리시 역사학자와 미국 상원의원인 짐 웨브는 "신선하고 새로운 의견은 위에서부터 묵살됐고, 때로는 폭력으로 입막음 됐다. ... 그 결과 흑인뿐 아니라 수많은 백인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기록했다. 교육 수준은 추락했고, 연방에서 경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은 더 심해졌다. 19세기 후반...

<아메리칸 네이션들> 좋은 구절 2

<American Nations>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글항아리, 2017 일부 윤문이 있으므로 원문을 직접 보세요.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정작 그 제도를 만든 부유한 백인 남성들은 매우 편리하게 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쾌락'을 위한 목적일 때에만, 백인 노예 소유주가 노예 여성이나 소녀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완전히 허용됐다. 타이드워터와 디프사우스의 수많은 지배층은 노예와 하녀를 성폭행하고 정부로 삼았다. 이 당시 뿐만 아니라 사우스캘로라이나 상원의원이었던 스트롬 서먼드(2003년 사망)처럼 비교적 최근의 인물도 마찬가지였다.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들은 법에 따라 흑인 카스트에 속하게 되며, 자식으로서의 권리는 전혀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한 관행은 지난 20세기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많은 농자주가 사생아를 나 몰라라 하기보다는 하인으로 배치하거나, 흑인 학생 입학이 허용되는 양키덤의 학교로 보냈다. 이러한 특혜를 받은 물라토들은 흑인 카스트의 중상위 계층을 형성하면서 훗날 무역,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독일인과 퀘이커교도들은 둘 다 노예제를 실헝했다. 이는 미들랜드가 뉴네덜란드, 타이드워터, 딮사우스와 가장 달랐던 점 중 하나다. 가족농 형태로 일했던 독일인들은 사실 노예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노예제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은 그들의 문화적 근본 가치 중 하나였다. 딮사우스(뉴번, 노스캐롤라이나, 뷰브라운펄스, 텍사스 등지)에 정착한 독일인과 영국인, 프랑스인 소농을 비로교해봐도 독일인의 노예 소유 비율이 훨씬 더 낮았다. 대부분의 퀘어커 노예 소유주는 노예를 해방시켜줬고, 일부는 노예에게 과거 임금까지 소급해서 보상해주려고 했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 때문에 미들랜드는 훗날 양키덤 편에서 남부의 야욕에 맞서 싸우게 된다. 초기 펜실베이니아는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퀘이커교도들이 운영하는 정부는 완전히 재앙 수준이었다. 퀘어커의 교리는 정치와 맞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닮아 태생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퀘이커교는 자율 규제와 황금률만으로도 충분히 자치를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바람일 뿐이었다. 보스턴 양키 출신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러한 '신의 친구들'을 격렬히 비난했다. 그는 1747년, "자기방어, 즉 국방을 스스로 거부하다니 이는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 아마 적들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적들은 끊임없이 강 상류까지 올라와 우리 선박을 점령하고 농장과 마을을 약탈한 다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유유히 돌아가고 있다"고 기록했다. 평화주의에 함몰된 퀘이커교도들은 프랭클린이 식민지 경비대 조직 결성을 명목으로 돈을 끌어모으려는 속셈이라면서 그를 무시했다. <American Nations>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글항아리, 2017. 좋은 구절 4번째. 스콧-아이리시들은 궁핍했던 데다 토지 소유욕이 강했다. 궁경지대인인 그들은 오히려 변방으로 가는 것을 더 행복해했다. 그들은 애팔래치아 산맥 곳곳의 정착촌에 자신들이 떠나온 곳의 지명을 붙였다. 가장 가까운 법원도 며칠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경지대인들은 주민이 직접 재판을 하는 구시대의 관행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스코틀랜드 관습인 '블랙메일Blackmail(오늘날 협박을 뜻하는 이 단어는 스코틀랜드에서 부족장에게 도둑이나 약탈자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요청하며 그 대가로 지불한 돈을 뜻했다)', 가문의 복수, 애팔래치아 국경지대인인 윌리엄 린치의 이름에서 유래한 '린치의 법'등에 영향을 미쳤다. 린치는 무법 지역이었던 버지니아의 변방에서 범죄 용의자에게 직접 사적인 형벌을 가했던 자경단을 이끈 사람이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일컫는 단어인 '린치'는 여기서 유래했다. 1730년대에 펜실베이니아와 메릴랜드 사이에 국경 분쟁이 벌어지자 양쪽 지역에 살던 스콧-아이리시들은 각자의 땅을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편이 되어 싸워야 했다. 이들은 무력ㅇ르 사용해 독일인을 좇아내는 일은 신이 나서 했지만, 서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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