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기술>은 연애에 관해 고민하는 독서인은 물론이거니와 상당수 고등학생도 제목만큼은 들어봤을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내용이 현재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과목의 ‘성과 사랑의 윤리’ 단원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롬의 사랑관은 수능이나 모의평가에도 몇 번 출제된 적이 있다. 어렵게 출제되지는 않기에 배경지식이 없어도 제시문을 꼼꼼히 읽는다면 풀 수 있다.

(2023 대수능 생활과 윤리 17번 문항)
(위 문항의 답은 4번이다. 혹시 매력적인 오답에 속았다면, 이 글을 읽고 난 다음에는 확실하게 정오를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롬은 근대 자본주의 체제하의 현대인들이 사랑에 관해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첫째, 현대인들은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기’에 주목한다. 남녀 모두 사랑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남자는 더 많은 부와 권력을 획득하려고 하고, 여자는 화장과 옷치장을 통해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자 한다. 둘째, 현대인들은 사랑을 능력이 아닌 대상의 문제로 간주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는 일을 어렵다고 생각한다. 셋째, 현대인들은 사랑을 시작할 때 경험과 사랑을 지속하는 상태를 혼동한다. 그래서 사랑은 배울 필요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프롬은 진정한 사랑은 이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한순간의 감정도 아니고, 유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지식과 노력이 요구되는 기술이다.

(출처: 나노 바나나)
프롬은 성숙한 사랑을 논하기 전에 미성숙한 사랑의 여러 종류를 검토한다. 미성숙한 사랑의 대표적인 사례는 공서적 합일이다. 이것은 마치 생물학적인 공생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종속되어 있는 합일의 상태이다. 예를 들어 임신한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가 있다. 산모와 태아 모두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 (혹자는 인공임신중절을 들어 ‘태아’ 없이도 ‘산모’가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태아가 없다면 ‘산모’도 죽는다. 물론 산모였던 여자는 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공서적 합일은 성인과 성인 간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피학대 음란증(마조히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맡긴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과 결정을 자기 생각과 결정으로 삼음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그는 절대 독립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상태의 반대편에는 가학성 음란증(사디즘)이 있다. 이것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을 전적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마조히즘에 빠진 사람이 상대방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디즘에 빠진 사람도 상대방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서로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는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