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되는 모든 것이 언어로 표현되는 게 아니다.
언어만 읽었다면 제대로 읽은 게 아니다.
표현되지 않는 것을 읽어야 된다는 건, 그 나름의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걸 시사한다.
어제 쓴 글이
실용적 유아론,
특수한 형태의 표상은, 일반적인 형태의 기호로 표시되기 때문에,
마치 공유되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 디테일한 부분은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사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다.
애초에 대화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운드를 전달함으로써, 상대가 그 사운드를 조명으로 삼아 앞을 비춰보게 만드는 것이다.
"야 여기 와서 이것 좀 봐"
이 표현이 언어의 본질에 해당한다.
"사과는 맛있어"
-> 이 표현은, 내 체험에 의하면, 사과는 맛있다는 것으로 판명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듣는 너도, 이 체험을 하게 되거나 하게 되지 않거나, 인데, 나는 그러하다는 것이고, 너도 그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사람의 글을 잘 읽어야된다는 것만큼, 귀찮아지는 주장도 없다.
물론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 말은, 너는 자발적으로, 그 수준 떨어지는 사운드를 가져와, 잠시간의 조명으로 써서 세상을 비춰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서 저렙의 느낌이 나타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의 글도 잘 읽어야된다는 강요를 하기 시작할 때,
예컨대 니가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언어시험을 봐야되는데, 그래서 그 지문들을 읽어야될 때, 짜증이 밀려온다.
그러나 정말로 언어를 통해서 내가 알고 싶은 건
언어의 본질이라던가, 언어가 어떻게 되야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다.
위에다 언어의 본질이라 쓴 건, 기레기식 표현이라고 받아둬라.
나는 철저하게 신경학자의 입장에 서고 싶다.
뭔 말이냐?
실제로 내가 언어를 읽을 떄, 내 눈과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어디에 가야 의미가 더 빨리 얻어지는가?
나는 이런 것에 관심있다.
퍼스가 말한 것 중 하나는,
모든 기호는 결국 실세계의 행태에 국한되는, 실제적 효과를 지칭하는 것이라 얘기한다.
이 말은 맞다.
왜 맞을까?
잘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잘 생각해보자'고 했을 때, 생각해주게 하는 실세계의 오브제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조건에 의해서 '생각'을 하는가?
그건 머리다.
머리가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이 '생각한다'라는 말은, 머리의 효과 중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씨발 기분 좆같네' 라고 할 때에도,
이것은 뭘 지칭하는가?
이것은 현재 나의 몸을 지칭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어떤 효과를 지칭하는 것이다.
몸이 좀 그러한 상태에 있는데, 그걸 두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