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허용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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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기업연구소
2026.04.13조회수 77회

기준에 대하여, 서서히 흘러가는 변화에 대하여, 그리고 당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맺어온 조용한 합의에 대하여


자신이 원하지 않았을 삶을 받아들이겠다고 앉아서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최종 목적지의 전체 그림을 펼쳐놓고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도 없다. 동의는 언제나 오늘 일어난다. 이 하나의 작은 양보. 다시는 없을 이 한 번의 예외. 굳이 싸울 만한 일은 아닌 이 한 가지.


그리고 내일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모레도.


몇 주가 흐르고, 몇 달이 흐른다.


어느새 출발점과의 거리는 까마득해졌는데, 돌이켜보면 큰 발걸음을 뗀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걸음은 작았다. 모든 걸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어느 것도 맞서 싸울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준이란 그렇게 죽는다. 하나를 문제 삼는 것조차 과민 반응처럼 느껴질 만큼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서. 잘못된 순간을 콕 집어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순간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있었던 것은 방향뿐이다. 너무 오래 유지돼서, 결국 동의한 적 없는 목적지가 되어버린 방향.


이 패턴은 관계에서 작동하고, 일에서 작동하고, 조직이 썩어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습관이 굳어가는 과정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곳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서 먼저 작동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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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하는 것은 계속된다"는 말을 처음 접하면, 대부분 타인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상사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참아내는 것들. 지적하지 않고 넘긴 무례. 처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밟히는 경계.


그 해석은 틀리지 않다. 다만 더 쉬운 쪽이다. 더 어려운 적용은 안쪽을 향한다.


무언가 잘못됐을 때, 자신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떠올려보라. 실패했을 때, 창피당했을 때, 기대에 못 미쳤을 때 튀어나오는 그 목소리.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절대 참지 않았을 것이다. 우울한 화요일 오후, 머릿속 독백이 쏟아내는 말들—그걸 친구가 했다면, 그 관계를 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안에서 울린다. 반응할 사건이 밖에 없고, 선을 그을 순간도 없으니, 그 어조는 한 번도 도전받지 못한다. 처음엔 배경 소음이었다가, 나중엔 원래 그런 것이 된다. 허용하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지고, 그냥 자기 마음의 소리로 느껴지게 된다.


스토아 철학에는 이것에 정확히 대응하는 개념이 있다. 쉰카타테시스(synkatathesis), 동의의 행위다. 마음에 도달하는 모든 인상, 모든 반응, 모든 내적 서사는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 전, 잠깐 눈앞에 놓인다. 문제는 그 수용이 너무 빨라서 자동처럼 느껴진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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