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집필]우주-2
우주-2 (지훈 이야기)
2022년 6월
우주의 아버지 지훈은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지금은 정치인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젊은 시절을 사업에 다 바치느라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우주는 자라면서 지훈과 식사 한 번 제대로 같이 한 기억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의 IT 기업 열풍과 몰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수완을 발휘한 지훈은 굳건하게 본인의 사업을 성공시켜 만인의 주목을 받았다. '최신 기술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 가난한 사람들도, 힘없는 노인들도, 차별받는 모든 사람이 기술 앞에서는 주눅 들 필요가 없으며, 주류 사회도 기술 앞에서는 그 강력한 힘을 잃게 된다.'라는 회사의 모토는 지훈의 사업 성공과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고, 지훈의 회사는 2010년대부터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터넷 포털 및 결제 제공 회사로 거듭났다. 그 성공에는 회사의 전략과 업계의 호황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CEO였던 지훈의 개인적 명성이 마케팅 포인트로 큰 몫을 했다. '한지훈' 이름 석자와 그로 대표되는 '공정함'의 모토는 회사와 그를 동시에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결국 2018년 여름, 지훈은 대국민 인터뷰에서 '국민의 염원에 답하여 끔찍하리만큼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라는 유명한 발언과 함께 회사에서 물러나 정치계로 입문했다. 우주는 깔끔한 검은 정장에 푸른 넥타이를 맨 채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앞머리를 매만지는 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을 집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질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고, 그런 우주를 보며 지훈은 '내가 하는 일에 네가 영향을 받지는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건드리지 않겠다. 넌 그냥 네가 원하는 일들을 하면서 살면 돼.' 라고 얘기했다. 우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지훈 스스로가 그 발언을 어길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지훈의 정치계 입문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최첨단 IT 회사를 이끌던 자리에서 정치에 대해 소위 말하는 '노하우'가 부족한 초보 정치인으로 전락한 그는, 초반 몇 년은 당 내에서 적절한 노선을 타지 못하며 국민의 관심을 조금씩 잃어갔다. 비록 서울 변두리의 한 구에서 전략적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의 명성과 활동 반경은 그가 꿈꾸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계 입문 후 4년이 지난 2022년 여름 어느 날,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훈은 결국 당 내의 다른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사람'을 통해 이 문제를 풀기로 한다. 당시 민주당 최고의원으로 위세를 떨치던 '김준원' 원은, 지훈의 면담 신청에 피식 웃으며 바위같이 단단하고 큰 얼굴 안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한껏 으스러뜨리며 웃었다.
"이 놈한테는 또 뭘 던져야 하나."
지훈이 선택한 접선 장소는 여의도의 한 소고기 집. 전 국민에게 '창의적 정치 인재'로 주목받던 지훈은 좌식 룸과 훌륭한 서빙을 주 무기로 한 전형적인 정치계 단골 음식점을 골랐고, 또한 가장 정치인스러운 모습으로 짧은 앞머리를 치켜 올린 후 긴장한 모습으로 김준원 의원을 기다렸다.
"오셨습니까."
"어, 좀 늦었습니다 의원님."
표정 없는 김준원 의원은 비록 머리숱이 많이 빠져있지만 위엄 있는 인상을 풍겼다. 그는 날렵했던 과거에 비해 살이 많이 올라 있는데, 얼굴의 주름살 사이사이 살이 규칙 없이 튀어나와 그가 활짝 웃을 때에는 한없이 표독하고 욕심 많은 얼굴이 됐다.
한 시간 가량 고루한 덕담과 정치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던 둘 사이 잠시 정적이 흘렀고, 준원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르며 지훈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의원님, 아시다시피 저는 애초에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서 갑작스럽게 정치 쪽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과는 시작 지점이 달랐다는 의미죠. 그 지점이 남들보다 높다는 게 아니라, 제가 딛고 있는 땅이 남들보다 훨씬 위태롭다는 겁니다. 국민의 성원을 한껏 업었으니, 이게 꺼지기 전에 매번 큰 스텝을 밟고 보여드려야 제 기반이 유지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젊은 정치인들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때는 이유가 매번 다르고 매번 그럴듯하나, 결국 원하는 것은 지루하리만큼 똑같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정치인들이 한탄스럽지만, 준원은 한편으론 아직도 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젊은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는 잠시 말없이 생각한 후 눈을 치켜 뜨며 지훈에게 애매한 힌트들을 던졌다.
"감옥에 가 보셨습니까 의원님?"
"감옥이요?"
지훈은 순간 머리가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당내의 주류파를 소개해 주거나, 최고원 회의에서 주최되는 긴급한 정치 사안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등의 실속 있는, 그러니까 너무나도 정치인스럽고 졸렬한 대화를 바랐던 그였다.
"감옥 말입니다. 마침 연지 구청 뒤쪽에도 감옥 큰 거 하나 있지 않습니까? 거긴 이름이 뭐더라, 연지 교도소인가."
"아, 네. 연지 교도소 맞습니다. 근데 갑자기 감옥 이야기는 왜."
"말씀하신 대로 한지훈 의원님은 국민의 성원을 업은 분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 당 안에서 놀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걸 풀어야 지요. 이 참에 감옥 한 번 가보세요."
준원은 거만한 손놀림으로 지훈이 따라준 잔을 높이 올렸다. 준원의 잔보다 낮게 지신의 잔을 올리며 지훈은 머리를 굴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