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5년 2월 12일 회사 게시판에 게시한 글입니다.
S&P500의 역사와 투자자의 자세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하얗게 불태워 글을 쓰고는 주말을 누워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번아웃이 오다니….
인생도 투자도, 글쓰기도 페이스 조절을 잘하며 달려야 하는 마라톤임을 잠시 잊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난 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주 가볍게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번 주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예전처럼 그렇게 길게 쓰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양은 조금 줄지언정 질은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도 있을 예정입니다.
작년에는 이거저거 의식의 흐름대로 다루었었는데 그러다보니 저 자신은 신나게 썼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는 있을지언정, 휘발성 강한 투자지식이 침전되어 쌓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번 해부터는 되도록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희토류 광물을 먼저 다뤘다면 국제 희토류 자원의 분포와 생산현황을 다루고
그 다음에는 희토류가 들어가는 주요제품을 다루는 식으로 하는거죠.
그렇게 하면 저도 인텐시브한 공부가 가능하고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이번 주에는 S&P500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저번 주에는 개념과 성격, 그리고 실제 수익률에 대해 말씀드렸고
이번 시간에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투자자가 알아야할 중요사항과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소 중복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사람은 항상 까먹는다. 그래서 기회가 생긴다
강대국들의 쇠락은 뻔한 클리쉐처럼 하나같이
지도층이 부패하고 향락과 유흥에 빠지고 도덕이 무너졌을 때 발생합니다.
투자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아 모두가 부를 갈망하며
노동보다는 일확천금,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갈망,
타인에 대한 착취를 당연시 여기는 도덕불감증, 리스크에 대한 망각,
과도한 레버리지, 비판없는 맹목적 추종에 빠질 때 위기는 터집니다.
투자의 수익이 실현손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증가시키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와 노동소득의 경시와 가볍고 쉬운 편법적 방법의 추종,
금융과 투자업계에 만연한 모럴해저드 등이 총망라되어 탐욕의 파티가 열리고
사람들은 기꺼이 참석하여 피의 칵테일을 나눠마신 후 다함께 순장됩니다.
주변에 투자라는 것을 어떻게 공부해야 되고 어떻게 리스크를 피해야하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사람마다 처방전이 다르겠지만 저는 대체로 과거 금융의 역사를 공부해보길 권합니다.
레이달리오도 젊은 시절 실패만 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투자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과거 금융의 역사를 모두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 헤지펀드 회사 중 하나인 브릿지워터의 설립자 레이달리오의 책
반복되는 금융위기를 거시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금석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서재에 꽂아만 놔도 부티가 나는 버프효과도 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아래의 차트는 1929년 경제 대공황 시절의 모습입니다.
저 때 사놨으면 지금 떼돈 버는 건데라며 아쉬워할 수 있으나
만약 저당시로 돌아간다면 투자할 수 있는 사자의 심장은 거의 없을 것임은 물론
지금의 붙나는 미국증시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주식차트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엄청난 비극입니다.
전체의 모습을 지난 시간에 이어 다시 보겠습니다.
이 차트를 보고 결국은 우상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1929년의 대폭락은 주식시장을 1900년으로 되돌려 놨습니다.
이후 전고점 회복까지는 25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대공황 직전 아빠가 사준 S&P500이 6.25 전쟁이 끝나고도 훨씬 지나
아이가 이십대 중반이 될 무렵에 겨우 본전이 된겁니다.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후 주식투자를 생각지도 않았을테지요.
물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했다한들 쉽게 대응하지 못했을 대사건이었습니다.
여기서 기가막힌 건
주식은 망했다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그 순간부터 20년 넘게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참 투자 뭐 같습니다.
그래도 결국 아픈 사랑의 상처도 시간이 치유해주듯이,대공황의 상처도 천천히 아물었습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전 지금입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2차대전의 승리 이후 미국경제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베트남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주가는 1950년부터 1968년까지 신나게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의 황금기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미국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2차대전과 6.25전쟁에서의 승리가 오만함을 키웠습니다.
슈퍼파워를 이용해 일방적 금태환 제도의 폐지, 베트남전 참전에 무제한 예산 투입 등으로
국가재정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한 전쟁이 패한다면 뭐가 온다?
이자가 제곱으로 돌아옵니다.
위의 차트를 잘 보면 닉슨이 금태환제도를 폐지하기 전부터 낌새를 잘 알아채는 미스터마켓은
이미 그 상승세가 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베트남전 패배 이후에도 추락하지 않고 그나마 횡보했던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다뤄보겠습니다.
1960년대말부터 11년간의 횡보
사업을 벌이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는데 회사가 망하면
채권자들은 내 돈 갚으라고 집앞까지 찾아와 난리칩니다.
베트남전에서도 망했기에 여지없이 청구서가 날아들었습니다.
많이는 투입한 것 같은데 감이 잘 안오네요.
아래 그림으로 다시 봅시다.
정말 많이도 썼네요. 2차대전 + 한국전쟁을 합한 것보다 많이 썼습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퍼부은 직접군사지출은 약 1,110억 달러이며
2023년 말 기준 비용으로 환산하면 5조 4250억 달러 (한화로 약 7,800조)에 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쟁채권이 고금리로 대량발행되었으며
전후 아래와 같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 스태그플레이션:
1970년대부터 과도한 전쟁지출과 산업자본 투입 부족으로
경제 침체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모든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침체의 나선구조입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기에 기업은 생산하지 않으며,
생산하지 않기에 고용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시 기업 실적이 저조했고 이는 투자자들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2. 높은 인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는 침체인데 물가는 상승하는 그야말로 최악의 경제현상입니다.
1960년대 초반 1-2% 수준이던 인플레이션율이 1965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970년에는 6%까지 치솟았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국민들의 삶은 물론 투자의지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는 1965년 베트남전 확대 결정 이후 적절한 전시 경제 조치
(초과이윤세, 임금-물가 통제, 전시 소득세 인상 등)를 취하지 않았던 것과 1973년의 석유파동이 있습니다.
돈을 엄청나게 쏟아 넣으면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유동성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닉슨은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일쇼크는 미국의 국제정세 파악의 실패사례입니다.
→ 70년대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연준은 이 후 강력한 금리정책을 펴야한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후 80년대 폴볼커라는 어마어마한 고금리 정책을 펼친 대마왕급 연준의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3. 석유 위기:
1973년 OPEC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인한 석유 파동이 발생했습니다.
석유수출금지조치의 이유로는 중동전쟁 때문인데 가볍게 쓰기로 했으므로 이번 시간에는 깊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어쨋든 석유파동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특히 에너지 비용을 급격히 상승시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석유는 모든 화학공업의 근간이 되는 어머니같은 존재니까요)
→ 미국은 석유가 경제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에 있어서 최우선 사항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페트로 달러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페트로달러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아 가볍게 쓰려고 했는데…이건 알아야 해요.
잠시 살펴보고 가죠.
페트로달러
1971년 미국은 닉슨대통령의 일방적 선언으로 금 태환을 중단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스태그 플레이션의 징조가 발생하던 때였는데 마침!!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욤 키푸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아랍 OPEC 회원국들은
석유 생산을 대폭 감축하고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원유가격은 5개월만에 5배 상승했고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석유가 무기임을, 미국은 뼈저리게 느꼈고 전략자원으로서 통제해야함을 깨달았습니다.
즉 미국에게 석유는 경제이자 안보가 된 것입니다.
그럴려면 OPEC의 대장에게 당근을 흔들어, 아니 줘야 했습니다.
1974년, 외교천재 헨리 키신저의 활약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협정이 체결되어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페트로 달러 도입의 일등공신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사우디 국왕, 마오저뚱 등 다 만나고 다녔던 외교천재 / 100세까지 살고 가심
이 시스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원유 거래의 달러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석유 생산국들이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현재 페트로달러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