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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서, 안 올라가네. 스탠스가 곧 스타일이다.
Suldanessellar철학

글이 너무 길어서, 안 올라가네. 스탠스가 곧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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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2025.05.10조회수 33회

원본 글에 동영상이 오래되서 그런지 안보이네요 찾을 수도 없고;;










중간에 끊어져서 

걍 지웠고


짧게 써준다.







위의 동영상을 봐라.

클릭하고 나서,

니가 저 상황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플레이할지 생각해봐라.



추리를 한다고?

추리같은 소리하네.


니가 저기 들어가서 추리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옆에 사람이 너를 보고 "얘 추리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추리는 니 정신세계에서나 일어나는 거고,

상황의 세계에선 그저 너는 '추리행동'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상황.

있음이란 뭐냐? 있음이란 사물이 아니다. 사건이다.

사건이란 뭐냐? 상황의 전이다.


상황이 계속 전이되는 거다.

방금에서 지금으로 지금이 곧 방금이 되고, 또 방금에서 지금으로,


계속 전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얽혀있고, 상호주관이 얽혀서 전략적 충돌을 벌이게 되고, 곧 '태'의 충돌이 된다.







이 때에는 말이야.

뭘 하는 게 아니라.

'태'를 설정하는 게 곧 결과를 끌어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니가 '결과'를 손댈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유를 하면

니가 설렁탕을 끓일 수는 있어도, 냄새가 퍼지는 건 손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그냥 나는 거다. 설렁탕을 끓이면 나는 거다. 나는 건 나는 거고. 효과고. 그건 효과일 뿐인 것이지.

그걸 결과에서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하다. 그 앞 선 것을 조작해야되는 것이다.




예컨대

설렁탕에 페브리즈를 뿌린다거나.

아니면 뚜껑을 닫아서 냄새가 퍼지지 않게 한다거나


이런 식의 조작이 가능한것이지, 효과 자체를 손대거나 소유한다거나, 이런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결과를 소유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과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앞선 것을 조작하는 것이다. 착각해선 안된다. 정신차려라.




근데

이 상황에서는 이 결과에 대한 예측이 방해를 준다. 

머리속에 그 결과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그것이 곧 '반응점'으로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곧 니가 그 이미지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백을 하려다가 까일 것을 생각하면서, 갑자기 좌절을 느끼게 되고, 갑자기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인다.








좆백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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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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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씨의 고민에 대해서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109077 참조 내 입장을 쓴다. 여러 입장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내 한정된 입장을 제시할 테니, 정신적으로 부비부비해봐라.  그렇게 해서 얻는 게 있을 거라고 본다. 이는 관점의 다양성이 있다는, 그런 문제제기를 차단하고자 미리 깔고 간다. 그거 모르는 사람 없다. 하지만 뇌에 충격을 줄 때에는 한 두개 강렬한 생각을 부비부비시키는 것이 도움된다. 대충 이렇게 보고 본론으로 가자. 문제점 진단 나는 도로씨가 다음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1. 번뇌 2. 아다정신 3. 전략적 마인드의 결핍 이를 기억하기 쉽게 하나로 통합시키면  아다정신 이게 도로씨의 문제점이다. 편의상 간략하게 터치한다. 1. 번뇌 욕망에 찌든 상태인데 대표적으로 2가지를 제시한다. 근시안적 사고방식 자기애의 충족 한마디로 말해서 이 상태에 놓이면 시야가 굉장히 좁아진다. 상대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한다. 따라서 상대의 정보는 종범이고, 상대의 관심사도 종범이고, 상대의 컴플렉스에 대한 생각도 종범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만 하게 된다. 자기 생각을 하게 되므로,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고,  걱정하다 보니까 답답해지고, 그러다 보니까 답답함을 말해보고 싶고,  내가 말했으니 그것이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심리도 갖게 되고, 한마디로 악순환의 자궁이기도 하다. 자기애의 충족은 이 순환 내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것이다 나를 좀 받아들여줘 같은 사고방식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주 발견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표현해봤다. 하지만 이것의 시작은 근시안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비즈니스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는 건 판매자가 자기가 생각한 기획에 너무 확신을 갖는 경우다. 즉 소비자의 심리를 고려하지도 않고,  욕망에 찌들어서 (뭔가 하겠다는) 근시안적 사고방식에 빠지고, 자기 의견이 거부될거라는 생각에도 부정적이게 되는 것이다. 요는 조금 다른 케이스이긴 하나, 이런 경우로 변주될 수도 있음을 상기해보라는 차원에서 써둔다. 도로씨가 보이는 태도는 여기에 해당한다. 2. 아다정신 이를 유발하는 3가지를 보자. -정보의 부족 -판타지 -전략적 마인드의 결핍 (이건 별도로 3번으로 해놓았는데, 중요해서 구별시킨 것이고, 아다정신에 끼워넣어라.) 도로씨는 다음의 물음에 답해봐라. - 넌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 (여자의 특성에 대해서 말해봐라.) - 여자가 뭐에 반응하냐? 뭐에 환장하냐? 뭐를 기피하냐? (어떤 남자에 반응하냐? 이런 물음을 던져봐라.) - 여자가 의존적이라는 건 아냐? - 여자들이 라이 투미를 굉장히 좋아한다. 왜 좋아할까? - 여자들이 고민상담을 하면 주로 쓰는 말이 "남자친구의 심리가 궁금해요" 같은 글이다. 왜 그럴까? - 여자들이 섹스를 할 때 불만을 갖는다는 걸 아냐? 어떤어떤 불만이 있는지 넌 알기는 아냐? - 여자들이 갖는 죄책감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 정보의 부족이라는 게 문제다. 내가 볼 땐 도로씨는 여자에 대한 특성을 거의 모르는 것 같다. 안다 하더라도 지가 생각한 정도이고,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목소리를 들어본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이건 쓰여진 글을 읽으면서 판단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에 대한 정보가 많다면, 너가 그런 글을 쓸 일이 없지. 왜? 안되면 안되는거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 이건 경험이 있으면 알아. 안되면 안되는 거야. 오래 끌 이유가 없는 거지. 그리고 정보가 많으면 애초에 언제 찌르고 언제 빠져야될지도 대강 알게 된다. 따라서 회의에 빠질 일은 별로 없다.  빠진다하더라도 신에 대한 고민처럼, 풀리지 않는 문제를 씨름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는 거지.  그건 니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여자의 호감 같은 문제를 어떻게 니가 해결하겠니? 그러니 안되는 건 안되는 거지. 이기적이라고 한 것부터가 이미 상대의 정황은 파악하지도 못한다는 얘기고 그 혼란의 일기는 더 안봐도 다본 것이나 다름없지. 그리고 그 얘기가 곧 근시안에 빠져있다는 얘기이니, 니 혼란은 니가 자초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정보가 부족하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는 걸 알아라. 왜냐하면 ...
철학
2025.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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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놀이

이창동 감독이 배우 원빈과 신작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에 대해 다음의 트윗 반응이 나왔다. Kim, Soo @directorsoo [단독]원빈,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http://t.co/gvEi9GIu4f 후덜덜;; 만약 성사된다면 이건 뭐... 원빈도 좋고 다 좋으니 빨리 신작 좀 찍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ㅠㅠ 2013.05.27 | 리트윗 12 뱅수 :) @pole1214 원빈 근황,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http://t.co/gRyXh0ZLtX 2013.05.27 | 리트윗 7 전남진 @jinmadang 난 기타등등이군“@jedraftbeer: "꽃,비틀거리는 날이면" 노대통령 서거4주기 대한민국 시인들이 보내는 시집/이렇게 시로 다시 만난다. 이창동,유시민,김정은,노혜경,명계남조덕섭,박무,도종환..기타등등 http://t.co/DOMcXzNgbm” 2013.05.24 | 리트윗 9 | 대화보기 G. Shadekeys @giantroot 이창동 감독님의 신작 원한다.... 6시간전 ㅈㅇ @mechlab_ 이 글은 이창동이 이 글을 읽고 그날 강의를 휴강 때려버린 전설의 글로써... 2013.05.18 | 대화보기 정재욱 @jeongjaeuk11 [단독]원빈,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 연예 http://t.co/azPgNrWxXN 13시간전 답글 리트윗 관심글 주니워니 @misojun0625 그런가요? 원빈이 새로운 영화로 어서 팬들 곁으로 돌아오길..기대하고 있어요..RT"@extmcomunity: [영화수다] 원빈과 이창동 감독의 극비 만남 http://t.co/G7EYFVj6zz" 2013.05.27 레디 @1st_rd 이창동 영화 나오고 싶어 안달난 임수정이요 17시간전 레디 @1st_rd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여기에서 레디@1st_rd를 보자. "내가 볼 때는" -> 여기에 자기 생각이 개입되었음을 명시하고 들어간다. 사실 이건 좀 불필요한 표현이지만 주관성 강조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표기법이라고 봐두자.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객관적이라고 우기지 않겠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식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이 새끼의 추리를 보자.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안되니까, 원빈을 잡아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추리를 하고 있다. 이건 식상한 추리다. 원빈이 출연하면 티켓과 이슈는 보장이 되므로, 어느정도 수익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추리를 했을 수도 있고, 투자자들의 판단요소 중 하나가 배우에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판단일 수도 있고 직감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밝히지 않았으니, 어떻게 추리를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이 아이는 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도 일부는 이 아이에 대한 추리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썼지만, 이 글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 측은 어떤 입장일까? 이창동 감독이 원빈을 캐스팅한 게 어떤 입장인가 하는 점이다. 티켓을 유도한 것인가? 작품에 맞기 때문인가? 아니면 거장의 작품이니 당대 최고의 배우가 출연한다는 게 당연한 것인가? 사실 이건 기술가능성이라고 할만하다. 여러가지가 도출되어 나올 수 있다. 저 아이가 추리한 방식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겟다 1. 상황을 본다.  그리고 입장을 이창동과 원빈쪽으로 옮겨본다. 이창동의 역할 원빈의 역할 마치 체스판에서 게임을 하듯이, 둘 사이의 수를 읽어본다. 2. 자기 입장으로 돌아온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방금 것이 상대의 입장으로 들어가 추리를 해본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것을 구별하고, (왜냐? 그건 자기가 추리한 것이지, 실제 이창동 감독이 그랬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자기 입장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재밌는 게 발견된다. 바로 이 포지션의 전환이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수수께끼'는 여기서 탄생한다. 잘 생각해보자. 이창동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수수께끼를 할 필요가 없다. 왜?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거니까. 선택의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이후 이 문제는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리로 가게 된다. 따라서 전자는 추리자체가 필요없는 영역이지만 (그냥 선택 중 하나다) 후자는 추리로 가는 영역이다. (왜? 내가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아이의 '내 생각에는' 같은 식의 발언은, 사실 자신이 저 사람이 아니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벌어지는 게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좋아한다. 중독되어있다. 어떤 여자가 남자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고, 어떤 갤러의 글을 보면서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다. 입장을 바꾸면 수수께끼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그는 단지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장을 구별해서 쳐다보면 수수께끼의 세계가 펼쳐진다. 왜? 내가 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 남는 건 추리의 영역이다. 이건 포지션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창작자가 관객의 포지션에 서면, 그냥 선택하면 된다. (좀 더 나아가면, 관객이 창작자를 추리한다는 사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가 '나는 관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는 관객을 추리하게 된다. 수수께끼의 놀이는 이런 원리에서 작동된다. * 사족인데, 이 부분이 재밌는 건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창동 감독과 저 트윗의 작성자가 만난 상황을 생각해보자. 레디 @1st_rd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이렇게 이런 말을 이창동 감독에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어떨까? 이것역시 추리가 되겠지만, 다음의 것이 예상된다. 1. 잘 아네 2. 어쩌라고? 3. ㅇㅇ 4. 추리 잘했다. 물론 그가 기대한 건 5. 어떻게 아셨어요? 6. 눈썰미 예리하시군요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요지는 뭐냐면 저런 말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단지 추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나온 표현법에 해당한다. 왜냐? 이창동의 입장에선, 저런 추리가 의미없기 때문이다. (저런 발견이 이창동에게 주는 바가 뭐가 있겠나?) 댓글 물론 이창동의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회자되고 있는가? 측정하는 바로서 살필 수 있는 단서 정도로는 쓰일 수 있겠다만 이 글은 다른 의도가 아닌, 창작자의 선택과 관객의 추리에 대한 관계를 다뤄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관객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그들은 구별점을 갖고 있다. 타인은 자신이 아니다 라는 전제 하에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추리가 일어난다. 이 추리의 정체는 뭐냐? 이 경계의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적절한 이유다.) 다만 이 추리 게임이 가끔은 맞추고 맞춘 것에 대해 기뻐하는 식으로만 구획이 잡히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거 맞춰서 뭐할래? 싶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이런 고민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관객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 단순하다. 감독의 의도를 추리하려 들고, 수수께끼를 찾으려 든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것이 메시지고 주제고 따라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고, 나는 이걸 알았으니 우월한 존재다 같은 식의 전개로 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감독을 추리하는 게임에 빠져서, 그 게임에서 스스로 미션을 부여하고 달성하는 것을 틀로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저 나름의 추리게임의 플레이와 보상/실패의 구도 안에서 노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게임을 강하게 부추기는 감독일수록, 당대의 거장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놀런, 워쇼스키, 핀처, 박찬욱, 이들의 특징이 뭐냐? 그건 관객들에게 강렬한 수수께끼 게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들에게서 \'유도되었다고 믿는\' 추리게임을 시도하고, 저마다의 해석을 올려놓으려 한다. 그리고 마치 그것에 행정평가가 있다듯이 행동하게 된다. 영화 비평의 최상의 방식은, 다른 영화를 제작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비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영화를 영화로 비평하고, 스토리로 비평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수수께끼 게임이 될 뿐이다. (물론 수수께끼 게임도 재밌고 유익한 효과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기껏해야, \'그렇지 않을까?\'라는 게임에 들어가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 틀에 빠지는 꼴이다. 오히려 더 ...
철학
2025.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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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놀이

S+P에 대해서 (2) 극장/당구장/카메라 모형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전제를 먼저 갖고 가자. 1. 표음이 있다면 표의가 있고, 표의가 있다면 사태가 있다. 이 사이의 유추관계를 놓치면 다 놓친다. 2. 가장 밑바닥의 기저는 \'신체영역\'이다. 눈코귀입손다리. 이런것들이 가장 최밑바닥이 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납득이 안되면 신체를 한번 환기하면 된다. 그러면 대부분은 다 해결된다. 3. 하나에 하나가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에 복합적인 것이 들어간다. 뇌를 생각해보자. 감각이라는 것은 복합적으로 다들어오는 것이다. 시각이 들어왔다고 청각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보면서 냄새도 맡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기호에는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설령 그렇게 정의내리고 있다 하더라도) 무수한 질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 4. 기호를 쓸 때에는 \'기술가능성\'을 깔고 간다. 몇 가지 비유를 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이것은 1번 때문인데,  언어를 쓰거나 언어를 읽을 때에는 명시되어있지 않은 이 해석틀 부분을 떠올리면서 가야 하기 때문인데,  그걸 표음으로 해버리면 1번에서 볼 때 표의와 사태에 대한 부분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유추관계로 볼 때, 자연히 투영되는 부분이 비어있기 때문에,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델에 대한 전제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것은 사태(또는 도상)의 형태여야 하는데, 그것이 있냐 없냐에 따라, 뭐냐에 따라 갈린다.  여기에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모델을 쓰기로 한다. 하나가 극장모델이고 하나가 당구장 모델이다. 이게 인지언어학에서 모형으로 제시한 것인데, 극장 모델은 단순하다. 무대가 있고 참여자가 있고 소품이 있다. 그 안에 관계가 있고 (행위/공간/시간) 그 안에 초점을 부여하는 관찰자가 있다. 관찰자는 이입을 하거나 관조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본다\'라는 행위로 인한 \'특성파악\'같은 것도 일어난다. (사이작용에서 얘기했던 것들이다.) 이것이 사태와 마주한 인간이라는 것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가장 원형적이다. (즉 글을 쓰거나, 글을 읽을 때에, 이 모델을 기저영역으로 설정을 한다.) 당구장 모델을 타동사를 설명할 때 주로 쓰이는데 공 하나에 힘이 들어가고 (힘을 준 쪽이 있고) 공이 이동해가면서 다른 공을 툭툭 치게 되고 (충돌) 힘을 받은 공은 또 이동해서 다른 곳으로 가거나 다른 공을 치게 되고, 연쇄 파문이 일어나거나 이동이 멈추는 일이 발생한다. (즉 힘은 발동되고 어느순간 가라앉는다.) 그리고 여기에 \'신체 모델\'을 넣는다. 인간의 표현은 바로 저 극장모델을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결국 본다 라는 행위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본다\'와 관련된 표현들의 한 묶음이 있고 그 참여자들이 신체기관 또는 행동에서 비롯되는 범위의 묶음이 있다. 여기서 \'범위\'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손과 관련된 범위가 있고 다리와 관련된 범위가 있고 입과 관련된 범위가 있다. 뱉었다 먹었다 들여놓았다 이런 것들은 소위 In&Out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명명은 무한대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될 수 있게끔 \'기술가능성\'으로서 기능하는 \'토대\'는 한정적이다. 그 토대의 실질적인 범위를 찾고, 도상의 ...
철학
202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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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에 대해서

이 주제로 또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그 글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쓰도록 하고 일단은 좀 간단하게 해둔다. 지금 쓰는 내용은 해석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S+P라는 형식을 마주하게 되면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 체크리스트로 살펴야 되는 것이지 이것을 보이는 S+P 자체에서 찾아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명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할 것이다. 달리 말해 '앞서서 이해해놓아야 하는 것'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이걸 이해하는 것부터, 이와 관련된 기능들을 깔면서 들어가게 되므로 어려움이 생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 SP에 대해서 쓰겠다는 얘기는 어떻게 보면 '언어'에 대해서 쓰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 언어에 대해서 설명을 언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서 어느정도는 '언어'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기를 전제하고 있다. 이런 글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글이 쓰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를 설명하고 잇는데, 쓰여진 형식은 언어의 형식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언어를 알고 있기를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읽겠냐는 것이다. 나는 다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인지과정 2. 유추 3. 해석틀 (모델링) 4. 연역  5. S+P의 조작법 6. 사이작용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 위의 표현들은 임의로 붙여놓은 것이니 대략 저런 주제가 있다고 여기고, 저기에 순차성을 부여하지 말자. 순서가 정확하지 않다. 인지과정은 전에 표현했던 사태와 몸이 충돌하는 것을 포함한다. 유추는 좀 독립시켜놓을 정도로 각별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타냈고 해석틀(모델링)도 마찬가지다. 괄호로 모델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것을 한측면에선 또 달리 봐야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고, 모델링은 수학에서 '식을 세우는'것으로서 의미를 쓰고 있다.  이것을 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잡스러운 지식을 다 빼고, 식을 세웠을 때 그 식에 뭐가 들어가는가? 이런 관점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인명'은 삭제된다. 누가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사고'다. 그것밖에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성은 무시한다. 따라서 존경이니 권위니 존엄이니 다 무시한다. 계급장 다 떼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아이디어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턴이 뭐든 간에, 뉴턴이 1+1에 대해서 어떻게 답변을 해야하겠는가? 뉴턴이 5라고 하면 뉴턴이기 때문에 이제 5라고 바뀌는가?   아이디어의 세계에서는 그게 먹히지 않는다. 뉴턴이 중요한 게 아니란 얘기다. 이게 모델링이 필요한 이유이고 모델링을 제시한 이유다.) 연역 이것은 전에 귀환법의 필요성이라는 글에서 쓴 것과 같은데 사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이유는 전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연역은 수학의 원리를 따른다. 1이 1이라면 1은 1이어야 된다. 단순한 원리다. 어떤 개념이 이렇게 적용된다면, 나중에도 또 그렇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순간 불안할지는 몰라도 불안과 적용은 무관하다. 불안한 건 마음이 그런 것이지, 사고의 적용에는 관계가 없다. 달리 말해 인간이 인지과정의 원리가 있다면, 내가 그것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라는 불안과 별개로, 그것은 그 아이디어의 형태에 따라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델링을 제시한 것이다 모델링으로 보자.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이디어만 들어간다. 거기에는 불안은 들어갈 수가 없다. 아이디어만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인간의 몸의 차원을 빼놓고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게 가능하다. 근데 이 때에도 비슷한 얘기로 간다. 이것은 '적용'의 차원에서 연역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라는 것이 아이디어로서 포장이 되고, 반영이 될 수 있다면 이후에는 기분의 메커니즘이 연역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건 조금 어렵다. 근데 생각을 하다보면, 결국 연역적인 접근을 쓸 수 밖에 없다. 인간이 풀어내는 방식은 연역으로 이뤄진다. S+P의 조작법 이걸 지금 쓰려고 한다. 사이작용 이것도 지금 쓰려고 한다. 해석틀의 문제가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한다. 이 글을 잘 생각해보자.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대처'하고 있다. 이 글의 작성자가 밝히는 것이니 좀 분명하게 이 부분을 짚고 가길 바란다. 이 글을 아무런 생각없이 걍 읽지 마라. 이 글에 작성자가 있다는 전제 하에 읽어라. 그러면 내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진리체계 자체를 일단은 거부해라. 이것을 맞다 아니다 라는 차원에서 보려고 하지 말아라. 왜? 그게 바로 니 해석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걸 제껴놓고 어떤 입장과 어떤 결과가 있는지, 관계만 보자. 그 다음에 평가를 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크게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한다. 1. 유추 2. SP 3. 사이작용 유추는 전에 말했던 것과 같은데 좀 다른 방식으로 말해본다. 가설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말해본다. 유추는 기저영역이 목표영역에 사상되는 것이다. 이걸 구체적으로 보여주면 다음과 같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이 때에 기저영역 : 마라톤 목표영역 : 인생 이것이 작동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마라톤의 이모저모 이걸 이해하면 곧 이것이 인생과 같다는 것으로 간다. 따라서 마라톤만 이해하면 끝이다. 나는 이것이 언어 자체에 반영되어있다고 본다. [도상영역이 곧 상징영역이다.] 이것이 언어를 지배하는 유추에 해당한다. 晶을 이해할 때 도상영역을 보자. 도상영역이 뭐냐면 사태를 닮게 표현한 것이 도상영역이다. 이해가 되나? 사태에 해당하는 게 있다고 하자.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있다고 하자. 이를 *  이렇게 표현하면 이게 도상영역에서 표현된 방식이다. 닮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제 이해가 됬으리라 본다. 근데 상징영역이라고 했는데 이건 편의상 붙인 이름이고 달리 표현하면 [표의영역과 표음영역은 유추관계로 이뤄져있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다. 따라서 *은 곧 별이다. *은 곧 정이다. 이해가 되나?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면, 별에 대해서 언어로 설명해서는 안되고, 도상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 달리 말해  별은 곧 *이다. 이러면 끝나는 문제다. 더 이상 말할 필요없고 '음미'하면 된다. 재밌는 것은 한국어가 표음인데 그래서 한국어는 매번 유추관계에 있는 표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근데 한국어는 이게 없다. 달리 말하면 한국어에 별도로 표의로 지정해둔 영역이 없다. 어디에 있냐면 한자에 있거나. 한국말 어원이라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고맙다'라는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가설이 있긴 한데, '곰답다'라는 표현에서 왔다고 한다. 달리 말해, '사태'와 관련된 것 중 니가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을 ...
철학
202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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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생각을 훔치는 방법 (짧게 썼지만 결국 길게 됨)

이 논의를 하기 전에 '기술가능성과 태도'라는 글을 읽었음을 전제한다. 그 내용에서 나타나는 '기술가능성'이라는 것을 모르면 이 얘기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크게 2가지로 나눠진다. 1. 도려내기 2. 튜닝하기 도려내기는 한 사람의 판단방식을 추출하는 것이다. 이 때에 핵심은 그 사람을 진리체계라는 쪽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사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순환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사태 직관/사유/판단 (충돌) 발화 이게 글이 나오는 과정이고, 이를 분석하여 갖고 가는 것이 핵심이다. 당신은 진리체계에 관심갖지 말아야 한다. 유일한 검증은 사태에 대한 판단이 어떤 결과와 관계맺고 있는가? 이를 찾아내는 것이다. 나머지는 홍보에 해당한다. 탐스럽게 보이게 만들면 된다. 사태 -> 태도 -> 작용(으로 인한 이후의 사태) -> 태도 -> 반복 이 관계를 습득했다면 그것을 도려낸다. 그 다음에 내 쪽으로 갖고 온다. 박태환이 이런 얘길 한다. 해외에 선수들을 보면, 관찰을 하고 비디오를 찍는다. 그 다음에 유심히 연구를 하고, 그 사람의 테크닉을 내게 적용시켜본다. 되면 쓰고 안되면 버린다. 도려낸다는 건, 이런 걸 하는 것이다. 2. 튜닝하기 여기에 점 하나를 추가시키는 작업, 색을 덧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 마치 내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튜닝하기란 에고의 투덜거림. (반항심)을 진정시키는 작업이다. 제거시킨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튜닝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존경-창피-마조히즘 예컨대 내가 훔쳐가는 것을 권위에 짓눌려서, 존경심에 의해서, (또는 창피함을 느끼면서도) 그 피학성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 앵무새가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충실히 복제될 수록, 쾌감을 느낀다. 상대가 그런 나를 좋아할 수록 쾌감을 느낀다. (즉 충실하게 복제된 나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을,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일본의 코스프레를 생각해보자. 이 튜닝방식은 코스프레와 유사하다. 너무 좋아해서 아예 복제되고 싶은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의 스킬이 내 쪽에 이식된다. 이런 것을 말한다.  즉 나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너무 존경해서 그랬다." -> 이런 땡이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세간에 사람들은 "앵무새다" 뭐라뭐라 하겠지만, 너는 한마디만 하면 된다. "난 앵무새도 좋아 ㅎ" 어쨌거나 이식 되었다는 점에서, 학습은 끝난 셈이다. 2. 피를 강조한다. 이게 스티브 잡스 스타일인데 "난 원래 그래" 이러면서 다 훔쳐버려라. "나도 원래 그랬어." "내 생각과 다를 게 없어." "얘가 먼저 선수쳤을 뿐이야. 내가 왜 문제가 되냐?" 우기면 장땡이다. 3. 상대를 다르게 프레이밍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개자식을 엮어서, 혼성시킨 다음에, 가치를 폄하시키는 등, 의도적으로 관념을 변형시켜서, 뭔가 접근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예컨대 칸트가 독창적이라고 하는데 칸트의 아이디어는 대개 중세에서 이미 논의된 것들이라고 한다. 그러면 칸트도 크게 독창적이진 않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의 시학이 아주 강력한 이론서이긴 하지만 사실 그건 소포클레스가 없으면 쓰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 겸손한 사람에 해당할 뿐이다. 이것의 핵심은 '접근하기 쉬운 상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면 접근이 쉬워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비하하거나 (가치폄하) 상대의 것이 유일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거나 (상대의 역사를 보는 것) 상대의 것에 ...
철학
202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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