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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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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2025.03.31조회수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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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icus
구독자 7명구독중 8명








이창동 감독이 배우 원빈과 신작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에 대해

다음의 트윗 반응이 나왔다.

Kim, Soo @directorsoo

[단독]원빈,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http://t.co/gvEi9GIu4f 후덜덜;; 만약 성사된다면 이건 뭐... 원빈도 좋고 다 좋으니 빨리 신작 좀 찍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ㅠㅠ

2013.05.27 | 리트윗 12

뱅수 :) @pole1214

원빈 근황,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http://t.co/gRyXh0ZLtX

2013.05.27 | 리트윗 7


전남진 @jinmadang

난 기타등등이군“@jedraftbeer: "꽃,비틀거리는 날이면" 노대통령 서거4주기 대한민국 시인들이 보내는 시집/이렇게 시로 다시 만난다. 이창동,유시민,김정은,노혜경,명계남조덕섭,박무,도종환..기타등등 http://t.co/DOMcXzNgbm”

2013.05.24 | 리트윗 9 | 대화보기


G. Shadekeys @giantroot

이창동 감독님의 신작 원한다....

6시간전


ㅈㅇ @mechlab_

이 글은 이창동이 이 글을 읽고 그날 강의를 휴강 때려버린 전설의 글로써...

2013.05.18 | 대화보기


정재욱 @jeongjaeuk11

[단독]원빈, 이창동 감독 극비 만남..신작 의견조율中 | 연예 http://t.co/azPgNrWxXN

13시간전

답글 리트윗 관심글


주니워니 @misojun0625

그런가요? 원빈이 새로운 영화로 어서 팬들 곁으로 돌아오길..기대하고 있어요..RT"@extmcomunity: [영화수다] 원빈과 이창동 감독의 극비 만남 http://t.co/G7EYFVj6zz"

2013.05.27


레디 @1st_rd

이창동 영화 나오고 싶어 안달난 임수정이요

17시간전


레디 @1st_rd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여기에서

레디@1st_rd를 보자.


"내가 볼 때는" -> 여기에 자기 생각이 개입되었음을 명시하고 들어간다.



사실 이건 좀 불필요한 표현이지만

주관성 강조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표기법이라고 봐두자.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객관적이라고 우기지 않겠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식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이 새끼의 추리를 보자.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안되니까, 원빈을 잡아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추리를 하고 있다.



이건 식상한 추리다.

원빈이 출연하면 티켓과 이슈는 보장이 되므로, 어느정도 수익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추리를 했을 수도 있고, 투자자들의 판단요소 중 하나가 배우에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판단일 수도 있고

직감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밝히지 않았으니, 어떻게 추리를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이 아이는 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도 일부는 이 아이에 대한 추리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썼지만,

이 글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 측은 어떤 입장일까?

이창동 감독이 원빈을 캐스팅한 게 어떤 입장인가 하는 점이다.


티켓을 유도한 것인가?

작품에 맞기 때문인가?


아니면

거장의 작품이니 당대 최고의 배우가 출연한다는 게 당연한 것인가?





사실 이건 기술가능성이라고 할만하다.

여러가지가 도출되어 나올 수 있다.









저 아이가 추리한 방식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겟다

1. 상황을 본다. 

그리고 입장을 이창동과 원빈쪽으로 옮겨본다.

이창동의 역할

원빈의 역할

마치 체스판에서 게임을 하듯이, 둘 사이의 수를 읽어본다.


2. 자기 입장으로 돌아온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방금 것이 상대의 입장으로 들어가 추리를 해본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것을 구별하고, (왜냐? 그건 자기가 추리한 것이지, 실제 이창동 감독이 그랬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자기 입장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재밌는 게 발견된다.

바로 이 포지션의 전환이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수수께끼'는 여기서 탄생한다.









잘 생각해보자.

이창동의 입장으로 들어가면

수수께끼를 할 필요가 없다. 왜?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거니까. 선택의 문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빠져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이후 이 문제는 '그렇지 않을까?'라는 추리로 가게 된다.


따라서

전자는 추리자체가 필요없는 영역이지만 (그냥 선택 중 하나다)

후자는 추리로 가는 영역이다. (왜? 내가 이창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아이의 '내 생각에는' 같은 식의 발언은,

사실 자신이 저 사람이 아니라는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벌어지는 게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좋아한다. 중독되어있다.

어떤 여자가 남자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고,

어떤 갤러의 글을 보면서 심리를 추측하는 것도 이런 게임의 일환이다.


입장을 바꾸면

수수께끼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그는 단지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장을 구별해서 쳐다보면

수수께끼의 세계가 펼쳐진다. 왜? 내가 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 남는 건 추리의 영역이다.


이건 포지션의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창작자가 관객의 포지션에 서면, 그냥 선택하면 된다. (좀 더 나아가면, 관객이 창작자를 추리한다는 사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가 '나는 관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는 관객을 추리하게 된다.





수수께끼의 놀이는 이런 원리에서 작동된다.













* 사족인데, 이 부분이 재밌는 건 다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창동 감독과 저 트윗의 작성자가 만난 상황을 생각해보자.


레디 @1st_rd

내가 볼 때는 이창동 영화가 투자가 쉽게 안 되니까 원빈을 캐스팅 해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 고사왕 원빈은 과연 이창동 영화마저 거절할 것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창동 영화는 힘들어도 출연료 삭감해서라도 배우로서 출연할 만한..




이렇게

이런 말을 이창동 감독에게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창동 감독의 반응은 어떨까?




이것역시 추리가 되겠지만,

다음의 것이 예상된다.


1. 잘 아네

2. 어쩌라고?

3. ㅇㅇ

4. 추리 잘했다.




물론

그가 기대한 건

5. 어떻게 아셨어요?

6. 눈썰미 예리하시군요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요지는 뭐냐면

저런 말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단지 추리를 작동시켰기 때문에 나온 표현법에 해당한다.



왜냐?

이창동의 입장에선, 저런 추리가 의미없기 때문이다. (저런 발견이 이창동에게 주는 바가 뭐가 있겠나?)





댓글


물론 이창동의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회자되고 있는가? 측정하는 바로서 살필 수 있는 단서 정도로는 쓰일 수 있겠다만


이 글은 다른 의도가 아닌, 창작자의 선택과 관객의 추리에 대한 관계를 다뤄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관객의 입장에 선다. 그리고 그들은 구별점을 갖고 있다. 타인은 자신이 아니다 라는 전제 하에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번 추리가 일어난다. 이 추리의 정체는 뭐냐? 이 경계의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적절한 이유다.) 다만 이 추리 게임이 가끔은 맞추고 맞춘 것에 대해 기뻐하는 식으로만 구획이 잡히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거 맞춰서 뭐할래? 싶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이런 고민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관객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할까? 단순하다. 감독의 의도를 추리하려 들고, 수수께끼를 찾으려 든다. 그리고 찾았다면 그것이 메시지고 주제고 따라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고, 나는 이걸 알았으니 우월한 존재다 같은 식의 전개로 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감독을 추리하는 게임에 빠져서, 그 게임에서 스스로 미션을 부여하고 달성하는 것을 틀로 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저 나름의 추리게임의 플레이와 보상/실패의 구도 안에서 노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게임을 강하게 부추기는 감독일수록, 당대의 거장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놀런, 워쇼스키, 핀처, 박찬욱, 이들의 특징이 뭐냐? 그건 관객들에게 강렬한 수수께끼 게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들에게서 \'유도되었다고 믿는\' 추리게임을 시도하고, 저마다의 해석을 올려놓으려 한다. 그리고 마치 그것에 행정평가가 있다듯이 행동하게 된다.


영화 비평의 최상의 방식은, 다른 영화를 제작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비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영화를 영화로 비평하고, 스토리로 비평하는 것이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수수께끼 게임이 될 뿐이다. (물론 수수께끼 게임도 재밌고 유익한 효과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기껏해야, \'그렇지 않을까?\'라는 게임에 들어가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 틀에 빠지는 꼴이다. 오히려 더 강력한 비평은 반 또는 새로운 관점에 해당되는 구조를 충돌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범위에 종속되지 않고, 배틀을 벌이게 된다. 감독과 배틀을 벌인다. 이게 더 강력한 비평이지 않은가?


윗 마지막 문장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예 추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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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생각을 훔치는 방법

[기술가능성과 태도] 아래의 글을 읽엇다는 전제 하에 시작한다. 인간의 기호는 어떤 사태에 충돌하여 대처가 있었다는 사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기호가 발생되었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로 인한 것인데, 그 중에서 기호를 채집하고 선별하여 이어놓은 것에 해당한다. 이 작업을 손수 한 것이 \'발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이러한 \'행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걸 읽지 못하면, 그는 다른 것을 읽게 되는 셈이다. 이걸 알고 모르고에 따라 독해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관점에 의해 글이 나오지만 그 글은 관점에 의해 해독된다. 따라서 관점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A관점에서 썼지만 B관점에서 읽히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건 관점을 통제하지 못하면 막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예컨대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108891&page=1&bbs= 이 글을 보자. 이 글에는 마치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역시 사태에 대한 자신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는데, 그 결정의 근거가 뭐냐?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잘 보면 \'한다한다한다\'가 밀집되어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이게 바로 그가 선택한 \'술어\'에 해당하는데, 이 부분이 이 사람의 태도에 해당한다. 즉, 이게 바로 \'결정\'이라는 사태에 대해서, 저 사람이 반응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 때에 저 사람이 선택한 방식이 곧 저 글에 나타난 기호들로서 나타나 있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글을 읽지 않는다면 저것은 단순한 어떤 진리체계로서 전달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논증을 했고 나는 근거를 찾아야 되고, 그에 대해 평가해야되는 초보적인 수준의 분석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행위로서 접근하게 되면 저 사람이 사태에 대해서 어떤 충돌의 형태를 보이는지 보게 되고, 그것을 태도로만 받아들이게 되어, 내가 저 사태와 충돌할 때 살필 수 있는 하나의 유형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저 사태에 마주할 때, 저런 태도를 로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로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로직을 한차원 업그레이드한 방식이다.  왜? 타당성은 기본으로 갖고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건전성을 따지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천을 전제하여 실용성을 따진다. (또는 내게 적합한지 나에로의 적합성을 따진다.) 한 사람의 견해는 솔직히 말해서, 그저 견해일 뿐이다. 그것은 진리체계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한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 진리증명은 이후에 사후적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견해\'에 해당한다. 그냥 내가 보는 바, 그렇다는 것이다. 즉 사태에 대한 일단의 나의 대처방식이다. 일단 이렇게 깔고 들어간다. 이 때에 상대의 이야기는 가치가 폄하되어 있는 상태다. 그는 필시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니가 이 글에 깔려있는 함의는 알기는 아냐?" 이것은 필시, 그가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생각을 훔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이뤄진다. 1. 도려내기 2. 튜닝하기 도려내기란, 한 사람의 태도를 도려내어 가져가는 것이다.  앞서 기술가능성과 태도에서 말했듯이,  저 패턴을 머리속에 환기시킨다음에, 해당되는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내서, 각각에 조각칼을 꽂고, 긁어서 파내가면 된다.  이 비유가 와닿길 바란다. 여기서 얻어야 될 것은, 한 사람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있는가? 그걸 가져가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내 몸에 이식시킨다. 근데 이 순간 저항이 일어난다. 일단 뉴런의 배열에 맞지 않는 새로운 것이기도 하고, 또한 낯선이의 것이라는 점에서, 에고가 격하게 저항을 보인다. 에고는 나의 것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고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것이 권력적인 것, 뭔가 동경할 수 있는 것, 매혹적인 것, 허락받은 것,  이런 것들이다. 도려낸 것에 대해서 에고의 저항을 가라앉히는 관념의 작업 이것이 튜닝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저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그것을) 나의 것으로 또는 괜찮다 괜찮다 ...
철학
202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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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가능성과 태도에 대해서

밑에 글이 되게 기니까 이거를 보자. 기술가능성이란 무엇이냐? 단순하다.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위의 그림을 보고 저게 뭔지 설명해보려고 해보자. 가능한 많이 해보려 해보자. 나는 다음과 같이 해본다 - 타이어 - 자갈돌이 놓인 것 - 건축모형 - 송편 일단 나는 저 그림을 보고 다음의 단어들을 뽑아냈다. 이 '뽑'아내다. 라는 표현이 좀 중요한데, 풀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뽑아내는 것일 수도 있고 규정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쨌건 뭔가 뽑혀나오는 느낌이 있기는 하다. 역시 이것도 기술가능성이다. 나는 이 과정에 대해서 수많은 표현 가능성 중 '뽑아냈다'란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밑 글에 언어를 쓴다는 건 '선택적 행위'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어떤 사태에 대해서 이런 기술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이 가능성 중에서 택하는 것이 어느정도로 한정되어 있고 바로 이러한 선택이 곧 그의 태도와 관련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말한 것 중 한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태도에 있다고 말한 것은 기술가능성 중에서의 선택이자 그의 판단기준에 있단 얘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더 다른 표현들도 많겠으나 일단은 ...
철학
2025.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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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02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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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가능성과 태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