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백수의 아다라시즘에 대해서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philosophy&no=109284&page=2536
참조
* 고민상담해결글이 아니다.
좆백수의 상황으로 보는 상황-태 이론에 가깝다.
나의 이론적 관심에 치중해있으니,
알아서 가려읽기 바란다.
도로씨의 고민과 크게 다를 건 없는데,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109101 참조하고 와라.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philosophy&no=109077 도로씨의 고민요청
먼저 철학적 문제부터 짚고 들어가자.
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 ㅇ 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ㅁㅁ
ㅇ = 좆백수
ㅁ = 철갤러
대략 이렇게 해두자. ㅁ이 ㅇ을 둘러쌓서 보고 있고,
이 그림은 전체를 헬기샷으로 보고 있다고 해보자.
저기 ㅇ이 좆백수 라고 해보고 ㅁ이 철갤러들이라고 해보자.
비유컨대, 파이트클럽처럼 빙 둘러 싸서 좆백수를 보고 있는거지.
이게 시작이다.
철갤러 A가 좆백수를 본다면,
외부존재 좆백수
인식자 철갤러 A
이렇게 나뉠 수 있다.
근데 인식자 철갤러 A에게서는 2가지가 고려되는데,
첫째로 철갤러 A의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의 정체
둘째로 외부존재로서 좆백수
이렇게 나뉜다.
철갤러 A에게서 떠오른 이미지가 좆백수는 아니다. 다만 좆백수에 의해서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좆백수는 아니다. 왜? 좆백수의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봐야 되기 때문이다. 좆백수는 좆백수다. 좆백수가 있는 곳이 좆백수가 있는 곳이다.
철갤러 A에 의해서 철갤러 A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좆백수가 위치한 곳이 아니란 얘기다.
이 때에
철갤러 A가 이 이미지를 활용하게 되면, 이를 어떻게 봐야되는가?
예컨대 좆백수를 봄으로써 떠오른 이미지를 '모방'해버렸다고 해보자. 이것은 좆백수를 모방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지를 활용한 것인가?
또 이 좆백수를 봄으로써, 철갤러 A에게서 떠오른 이미지는, 기술가능성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수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는데,
제각각이다.
개콘에 나오는 상황을 빗대본다던가,
자기 기억을 떠올려서 대조해본다거나,
자기가 느낀 것을 통해서 이입을 해본다거나,
또 기질적인 문제로,
호전적인 성향이라면, 약간 공격적인 태도로 이미지를 대하게 될 수도 있고,
부드러운 성향이라면, 이정섭처럼 부들부들한 목소리를 가지고 대할 수도 있고,
약간 정신병이 있는 성향이라면, 그 좆백수를 봄으로써 떠오른 이미지를 두고, 약간 이상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다.
요는 '그것에' 대응하는 '태'의 문제다. (모양새)
여기서 이런 문제도 가능하다.
그러면 철갤러 A가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해보자.
근데 이것을 외부존재와는 괴리가 있다고 판단하고 영역을 구별했다고 해보자.
그럼 이것은 철갤러 A의 것일 거다.
근데 과연 그럴까? 그게 철갤러 A의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건 다음과 같다.
첫째 - 그가 그 이미지를 내뱉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본다.
곧 그것이 좆백수라는 것을 알아보게 되고, 그것이 철갤러A가 내뱉은 것임을 알아보게 된다. 둘은 섞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걸 접하는 순간, 철갤러 A와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
즉, 외부존재를 봄으로써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면 이것은 철갤러 A의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위에 언급한대로,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마치 가족오락관에서 말을 건네면 말이 변형되서 옮겨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철갤러 A는 '내가 내뱉었어'라는 자기의식에 중독될 수도 있다.
둘째 - 철갤러 A가 기억상실증이라던가, 망각에 빠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철갤러 A는 자기가 내뱉은 것에 대해서도 자각하지 못한채로, 다시 그것을 '외부존재'로서 받아들이고,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가 '마치 데자뷰같다'라고 말하게 될지는 몰라도, 어쨌건 이런 상황일 때, 이것은 철갤러 A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셋째 - 첫째의 상황을 좀 더 얘기해보자. 이제 철갤러 A가 내뱉은 것을, 타인이 접함으로써,
예컨대 철갤러 B가 철갤러 A에 의해 나온 이미지를 접했다고 하자. 이번에는 그 이미지가 외부존재고, 철갤러 B가 형성한 게 철갤러 B의 이미지가 된다
이 때 '명명'의 문제가 생긴다.
이것을 누구의 것이라고 봐야하는가?
좆백수의 것인가?
철갤러 A의 것인가?
철갤러 B의 것인가?
원본이 어디에 있는가?
좆백수인가? 철갤러A인가?
이 때 원본의 정체는 이미 지나쳐버린 것이고, 그 자리에는 원본이 없음을 알게 된다.
있다 하더라도 기억이다. 그리고 태생 부터가 이미지다. 기억이다. 이미지는 또 섞인다.
철갤러 B가 이걸 내뱉는 순간,
좆백수도 그렇고, 철갤러 A도 그렇고, 철갤러N도 다시 그것을 '외부존재'로서 접하게 된다.
바야흐로
이것의 문제는 시작과 끝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상호주관의 관계의 문제이고, (얽힘의 문제이고)
이 안에서의 경로의 진화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태'를 요한다. 태가 반영된다.
바로 이것이
ㅁㅁㅁㅁ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 ㅇ 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ㅁㅁ
이 둘러쌈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식의 사건이다.
아다라시즘은, 이 중에서 나오는 하나의 '태'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을까?
아다라시즘은 근본적으로 다음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한번 더 언급한다.
1. 정보의 결핍.
2. 전략적 마인드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