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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단어가 단어를 잡아먹고
개념이 개념을 휘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그러한 시각에서 '무지'라는 단어가 새롭게 보였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이제는 정설로 굳어진 '지동설'
코페르니쿠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전 세대들에게 지동설이란
무지한 자들의 생각 혹은 무식을 드러내는 단어였을 것이다.
지금은 지동설을 믿지 않는 자에게 부여되는 자격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무지는 상황에 따라, 증거와 과학적 발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해 왔다.
제멜바이스 이전에는 손을 씻는 것이 무지
이후로는 손을 안 씻는 것이 무지였던 것 처럼(제멜바이스는 옳은 주장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신병원에 간 일화는 무지에 대한 개념 뿐 아니라 무지를 대하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무언가의 끝은 무언가의 시작이다, 삶의 끝이 죽음이고, 윤회 사상에 의하면 죽음의 끝도 삶이다.
이와 비슷하게 무지의 끝은 대항점에 있는 지혜나 지식을 의미할까?
언젠가 무지에서 지혜로, 지혜에서 무지로 이동하며 연결될까?
한 사람의 삶에서 무지했던 이가 지혜로워지고 다시 무지해지는 경우는 가능하다.(치매....)
하지만 지혜로워진 자는 지혜를 유지하려고 하고
지혜를 추구해보지 않는 무지는 끝까지 무지인 채로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지동설을 믿는 A와 지동설을 믿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