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경제적 가치(feat. 코인의 미래)

신뢰의 경제적 가치(feat. 코인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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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0조회수 407회


이 이야기는 코인에 대한 강경 불신론자가 뒤늦게 코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코인과는 큰 상관이 없지만, 레이첼 보츠만의 '신뢰 이동', 에드워드 챈들러의 '금융투기의 역사', 에르난도 데소토의 '자본의 미스터리'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모두 적극 추천하는 서적들입니다.


난 비트코인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인 불신론자였다. 나는 비트코인 찬양론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주로 아래와 같은 이야기들에 크게 공감하면서 스스로도 직접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니기도 했다.


"튤립은 예쁘기라도 하지. 보이지도 않는 데이터 쪼가리에 버블이 붙는 시대를 살게 될 줄이야. 와 나는 진짜 코인이 인간 버블 역사의 정점일 줄 알았는데, NFT까지 나오는거 보고 진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비트코인은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고? 세상에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게 한두개야? 예를 들면 트럼프의 똥도 공급이 제한되어 있지. 트럼프가 코인 만들고 이틀 후에 멜라니아 코인도 만들었는데, 트럼프 코인 확장팩, 트럼프 코인 시즌2, 시즌10이 안 만들어진다는 보장이 있어? 그에 비해 불로장생의 기술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트럼프의 똥은 확실하게 공급이 제한되어 있지."


"종이화폐도 결국 신용만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 신용의 근원이 뭔데? 한국에서 세금은 원화로 내야 하고, 미국에서 세금은 달러로 내야 하는데 정부가 군사, 경찰, 공권력으로 그 세금을 강제징수할 수 있잖아. 심지어 미국은 '미국에 없는(다른 나라에서 돈을 버는)' 모든 미국 국적 보유자들에게까지 달러로 세금을 내도록 요구하지. 그래서 미국이 어느 날 열 받아서 달러가치를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달러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곧바로 달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재산들은 똥값이 될 수 있어. 그런데 비트코인이 아무리 비싸진들 니들끼리 그렇게 놀아라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들한테 비트코인은 뭘 할 수 있는데?"


"공급이 '완전히' 한정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모든 금융자산은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 자산을 원하는 유동성 수요를 충족시키고, 금융시장에 새로 입장하는 신규 유저들에게 나도 저 자산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줘야 해. 공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디플레이션 자산'이라는 뜻이고, 디플레이션 자산은 스스로 확대될 수 없어. 디플레이션 자산은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고, 가격이 올라갈수록 보유자들은 그 자산을 매도하지 않으려 하고,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 자산을 보유하고자 하는 신규 유저를 확보하지도 못하고, 네트워크 효과는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거래의 유동성도 떨어지게 되지. 그럼 유동성이 없는 그 자산은 더 이상 금융자산이 아니라 우표나 포켓몬 카드, 예술품 같은 극소수 매니아들의 수집품 정도로 남게 되는거야. 이런 수집품들을 오랜 시간 계속 갖고 있으면 가격이 오르긴 하겠지. 니가 원하는 시점에 팔지 못할 뿐. 이런 수집품들은 유동성에 아무 문제가 없는 부자들이 여유를 갖고 보유해야 의미가 있지, 서민들이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시장이 원하는 시점이 아니라 니가 원하는 시점에 팔려고 하면 엄청난 손해도 감수해야 할걸?"


"한 사람이 원유를 독점하거나, 쌀을 독점하거나, 심지어 금, 은이나 달러조차도 누군가 독점한다면, 그 가격은 크게 상승할 수 밖에 없을거야. 그런데 한 사람이 비트코인을 독점하게 되었을 때 과연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할까? 아니면 아무 가치도 없어져서 폭락할까?"


심지어 나는 코인 뿐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모든 사용자들이 원장을 함께 기록하는 것이 혁신이라니... 이렇게 비효율적인 거래 방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 한 번의 거래를 확인하기 위해 수천만명이 매번 그 거래를 기록한다. 이를 위해 끝없이 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거래를 기록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채굴'이라는 형태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고비용, 저효율의 혁신도 있나? 그냥 무조건 변화와 혁신을 쫓다가 다들 주화입마에 빠진 것 아닌가?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우리가 쓰고 있는 현재의 중앙집중적 금융 시스템이 대체 무슨 문제가 그렇게 크다고?



비트코인에 대해 처음 태도를 조금 바꾸게 된 것은 역시 비트코인 비관론자였다가 낙관론자로 변해갔던 유튜버이자 투자자 디피 님의 영상을 본 후였다. 평소에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듣기에 말이 되는,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디피님 영상을 좋아하는데, "나는 비트코인을 나쁘게 보는데, 금융에 대해 전세계에서 누구보다 이해도가 높은 잭 도시,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좋게 본다. 이렇게 잭 도시, 일론 머스크와 내가 정반대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병x이라는 뜻인데, 과연 어느 쪽이 병x일 가능성이 높을까?"라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이야기 자체는 내게도 합리적인 이야기로 들렸다. 다만 디피님도 여전히 도대체 잭 도시와 일론머스크가 비트코인에서 뭘 보고 있는 것인지, 왜 비트코인 투자가 '말이 되는 것'인지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도 디피님은 다시 한번 왜 비트코인을 거대한 폰지 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당히 큰 비중으로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영상을 올렸지만 여전히 그 설명도 부족한 내 머리로는 납득이 가진 않았다.


그 이후 코인에 대한 미국 주류의 입장 변화가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특히 이더리움 ETF 승인과 SEC의 이더리움 증권성 조사 중지가 결정적이었다. 도대체 미국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은 코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나름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레이첼 보츠만의 '신뢰 이동'을 읽으면서였다. 다만, 이 책에서도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해 상당히 큰 비중으로 서술하긴 하는데, 정작 이 부분에서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비트코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찾지 못했다. 오히려 특히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사례에서 '신뢰'의 경제적 가치를 새롭게 주목하게 되면서 블록체인과 코인에 대한 생각도 변하게 된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타다'를 편리하게 이용하면서도 역시나 평소의 나처럼 "타다의 혁신이 대체 뭔데? 타다의 유일무이한 최고의 혁신은 창의적인 법해석 아닌가?"라고 하는 회의론자들에게 더 공감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우버'나 '타다'의 혁신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 있었다.


나는 나를 믿지만 상대방은 나의 실체를 구분할 수 없다. 산업혁명과 세계화 이후, 소규모 인맥 경제활동을 넘어선 대규모 경제활동에서 경제적 가치는 알맹이보다 껍데기에서 나온다. 원래 상대방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심지어 나와 관계가 있는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넘어서 불특정 다수의 신뢰를 얻는 것은 훨씬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만약 그러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


만약 2개의 어떤 자산이 완전히 동일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자산만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그 실체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그러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자산과 그러한 신뢰를 확보할 수 없는 자산의 경제적 가치는 완전히 다르다. 이 신뢰라는 요소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브랜드 가치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생각해보면 '택시'와 '숙박'은 엄청난 신뢰를 요하는 일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택시'와 '숙박'을 이용한다는 것은 내가 일반적으로는 거주하지 않는 도시인 경우가 많다. 만약 외국에서 교통, 숙박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처음 보는 이 운전기사만을 믿고 이 차에 타서 '이동'하고, 이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대체 뭘 믿고 나의 안전과 내가 지금 소지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한편,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 손님은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을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힐튼, 하야트, 메리어트 같은 세계적인 대형 브랜드가 아닌 이상, 택시 운전사나 모텔 운영자의 입장에서 지금 만난 손님이 나의 '단골'이 되어 내가 제공하는 운송, 숙박 서비스를 다시 이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나마 숙박업소는 소비자가 직접 찾아보고 외양이라도 보고 선택한다. 그에 비해 그저 택시가 필요한 그 순간, 그 지점에 그 택시가 지나가고 있었을 뿐, 소비자가 공급자를 직접 선택하기 어려운 택시는 훨씬 더 심하다. 택시 영업은 최대한 비용을 아껴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바가지를 씌우고, 심지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매우 쉬운 구조다.


그렇다보니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택시와 숙박업을 규제하고, 특히 택시는 면허 제도를 두고 진입장벽을 세워 공급조절을 하고 있다. 택시 면허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택시기사들에게는 그 진입장벽으로 인한 일정한 '경제적 지대'를 인정해준다. 택시기사들이 너무 질이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괜히 헛짓거리를 하다가 신고라도 당하면 국가가 보장해 준 경제적 지대인 택시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일정한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국인들까지도 'taxi'라는 모자를 달고 있는 자동차를 보면 일단 이 나라의 정부가 인정해준 운송서비스라는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 공항에서 만난 호객하는 아저씨가 호텔까지 싸게 데려다준다고 하길래 적당히 쇼부 쳐서 따라갔더니 썬팅 찐한 낡고 검은 자동차 한대가 서 있다면 괜히 여기 탔다가 내 소중한 신장, 간, 장기들이 전부 털리고 인체의 신비전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머리 속이 복잡해지면서 어떻게 도망가면 좋을지 멘트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에 단지 taxi 모자 하나만 붙어 있으면 특별한 의심 없이 타게 되는 것이다.


택시 면허의 본질이 '신뢰의 제공'에 있다면, 우버는 그 신뢰 자산을 성공적으로 확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간단한 '별점 시스템' 덕분이다. 일반적으로는 택시 기사가 편안한 운전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고맙다'는 인사와 아주 운이 좋으면 많은 팁을 받을 뿐 일회성으로 휘발된다. 그런데 우버는 양질의 서비스가 '별점'을 통해 '평판'이라는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건 우버 운전사들이 지속적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할 유인이 되었고, 심지어 쌍방향 별점 시스템 덕분에 우버 이용자들도 향후 전세계 여행에서 편리하게 우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우버 운전자를 친절하게 대해야 할 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운전자와 이용자 모두 taxi 모자 없이도 누적된 별점만을 보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부여한다. 이렇게 자산으로 축적된 별점은 운전자와 이용자 모두의 자산일 뿐 아니라, 우버의 자산이기도 하다. 우버 운전사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완전히 이동한다면 그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수천개의 5점 별점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에어비앤비는 처음 탄생한 공유숙박 사업이 아니다. 인터넷이 깔리고 2000년대 IT버블 시기부터 이 공유 숙박 사업이 여러번 시도되었다. 그러나 집을 제공하는 사람과 숙박을 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누적되었고, 수많은 범죄가 계속 발생했다. 에어비앤비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고 집주인도 그 집에 같이 있는다는 미친 아이디어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해보면 알 수 있다. 에어비앤비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우선 별점으로 필터링을 하고, 댓글부터 읽어본다. 그렇기 때문에 숙소 제공자들도 그 무엇보다 별점에 매달린다. 좋은 별점과 후기를 받기 위해 이용자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들어주고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숙박서비스 제공자들이 스스로 내세우는 사진과 광고 문구만으로는 이게 정말 새로운 경험을 주는 호텔보다 좋은 숙소인지, 내 휴가를 망칠 과대광고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다수 이용자들의 별점과 후기를 통해 이 숙박서비스 제공자가 내세우는 설명이 진짜라는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에도 대학생들이 유럽여행에서 자주 이용하는 한인민박들은 유럽여행 관련 커뮤니티의 후기를 많이 의존했으나, 그 후기들은 주관적인 경험으로만 남았고 '별점'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가 어려웠다. 시기에 따라 유행을 탔고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던 소수만이 '극단적인 좋은 후기'와 '극단적인 나쁜 후기'를 남기면서 극소수의 사례가 전체적인 평판을 지배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에어비앤비에서 '별점'과 '후기' 독려 시스템, 그리고 '별점'과 '후기'의 결합은 확실하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다. 힐튼, 메리어트 같이 수십년간 대형 자본이 투입되면서 확보했던 대형 호텔 브랜드의 신뢰 자산을 소규모 숙박업체도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통해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당근마켓은 3조 기업가치평가를 받았다. 그에 비해 당근마켓의 원조 격으로 오랜 기간 이용자 수, 거래액으로 네트워크 효과가 압도적이었던 중고나라의 기억가치는 겨우 1000억 수준에서 더 올라가지 못했다. 그 차이도 '신뢰 자산'의 유무로 갈렸다. 중고나라는 그 오랜 운영기간 동안 끝내 '중고 사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당근마켓은 '지역 기반'과 '온도' 시스템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뢰 자산'을 확보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시 말하지만 '브랜드 가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결국 '신뢰 자산'이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 소고기를 먹고 맛을 구분할 능력이 없다면 이 소고기가 정말 한우인지 믿을 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 짝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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