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 ‘상’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요즘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글 올리기가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분노, 좌절, 체념, 비난 같은 거칠고 날카로우며 프래질한 감정들이 안개처럼 자욱합니다. 그래서 조금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은, 행여나 기다리시는 독자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은 염려, 돌아올 수 있는 등대가 되겠다고 한 약속, 그리고 별셋에서의 경력이 끝날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한 스스로와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도 덕왕은 더딜지언정 ‘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물론 잠시 쉴 수는 있겠지요)
표지 이미지에서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2026년 6월 12일, 자본 시장이 열린 이래 역대 최대 몸값을 자랑하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무려 1조 7,7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뽐내며 나스닥에 상장됩니다. 말이 1조 7,700억이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1달러 1,500원 기준) 대략 2,655조 원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GDP 규모를 뛰어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현대차를 사고도 돈이 남습니다. 전체 기업가치 중 주식 공개를 통한 조달액은 무려 750억 달러(약 113조 원)로, 종전 기록 보유자였던 사우디 아람코(약 294억 달러 조달)의 2.5배를 가뿐히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화려한 데뷔입니다.
낭만과 신비로움이 가득했던 밤하늘에 숫자가 새겨진다는 것은 낯선 경험입니다. 덕왕은 그 옛날 동오(東吳)의 땅에서 긴 칼을 차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 큰 뜻을 닮고자 하였으며, 동이(東夷)의 땅에 이르러서도 센티해진 마음을 한잔 술에 담아 별을 향해 건배하면서 여전히 신비로운 하늘을 동경했습니다.
그런 감성 넘치는 덕왕에게 있어서, 우주에 민간기업이 진출하는 시기는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스페이스X라는 우주기업의 상장 뉴스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우주의 시대가 정말로 빨리 오는구나!"라는 감탄이 절반이었고, "그런데 이 가격이 맞는 건가?"라는 의심이 나머지 절반이었지요.
TMI: 별 헤는 밤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덕왕이 쓴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사랑할 듯 의심할 듯 헷갈리는 두 마음 사이를 살펴보며, 우주 산업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스페이스X는 왜 이렇게까지 주목받는지, 그리고 그 1.77조 달러라는 가격표가 과연 화성에 갈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인지를 데이터와 추론을 통해 따져보겠습니다.
1.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NASA의 독식은. It's over tonight." 우주 시대가 옵니다. 세계 우주경제는 2024년 약 6,130억 달러에서 2035년 1조 8,000억 달러로 커진다는 전망이고, 스페이스X는 그 한복판에서 전 세계 로켓 발사의 절반, 궤도에 올린 화물 질량의 80% 이상을 혼자 처리하는 압도적 1등입니다.
2.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보랏빛처럼 환상적인 회사지만, 1.77조 달러라는 가격표는 비싸 보입니다. 공모가의 밸류에이션은 매출 대비 주가비율(PSR)로 약 95배인데, 사업부를 쪼개서 동종업계 잣대로 다시 더해보면 적정가치는 잘 봐줘야 9,000억에서 1조 3,000억 달러 선입니다. 모닝스타도, 뉴욕대 다모다란 교수도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이름은 모자란 듯 보이지만 실은 엄청 유식한 분입니다.)
3.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공모주는 원래 유망한 만큼 비싼 게 당연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버핏 옹이 평생 공모주를 멀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통계도 고 PSR 공모주의 처참한 3년 성적표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거시경제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최근의 여러 경제지표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점 낮게 전망하게 만들고, 2026년 하반기부터 2027년까지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표를 보면 두 가지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첫째, 보통의 공모는 가격을 '범위'로 띄워 시장 수요를 먼저 떠보는데, 이번엔 1주 135달러의 단일 정찰제라는 점입니다. 백화점 명품관에 세일이 없듯이, 스페이스X의 가격에서도 엄청난 자신감 혹은 배짱이 느껴집니다.
둘째, 이번 상장이 대규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니! 덕왕!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시오? 무려 5억 5,000만 주가 넘는 주식을 공모한다 하지 않았소?"
5억 주가 넘는 공모 규모는 숫자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전체 지분의 약 4.3%에 불과하며, 상장을 해도 머스크의 의결권은 82%가 넘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 우주 택시에 올라타도 조종은커녕 라디오 채널 하나도 못 바꾼다는 뜻입니다. 2,655조 원짜리 택시에 올라타는데, 기사님이 핸들을 절대 놓지 않고 목적지도 혼자 정하는 구조. 거기에 기사님이 "오늘은 화성으로 갑니다" 하면, 승객은 그냥 화성에 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 우주 택시에 타시려거든 그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스페이스X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주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낭만을 먼저 떠올립니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든가, 밤하늘의 별이라든가요. 그런데 그 하늘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거대한 시장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 우주재단(Space Foundation)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우주경제는 2024년 약 6,130억 달러 규모에 이르며, 민간 컨설팅 기업인 노바스페이스(Novaspace)의 조사에서는 2025년 수치를 약 6,260억 달러로 예상하는데, 이는 2024년 세계 반도체 산업 시장 규모인 약 6,300억 달러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물론 위성산업협회(SIA)처럼 좀 더 좁게 잡는 곳은 4,150억 달러 수준이라고도 하지만, 어차피 급격한 성장이 중요할 뿐, 비약적으로 커지는 우주 산업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시장의 약 78%가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민간 상업 영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깃발 꽂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장사꾼들의 무대입니다.
TMI: 우주경제 6,130억 달러, 대체 뭘 파는데?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의외로 시시합니다. 우주경제의 가장 큰 부분은 로켓일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큰 덩어리는 위성 지상장비로 약 1,553억 달러 규모이며, 여러분 차의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GPS가 다 여기 들어갑니다. 그다음이 위성 서비스로 약 1,083억 달러(위성방송, 위성인터넷), 위성 제조 약 200억 달러, 그리고 정작 로켓 쏘는 발사 서비스는 약 93억 달러로 가장 적습니다. 어라? 우주의 꽃인 로켓발사가 이렇게 비중이 적을 수가? 로켓 발사 뉴스가 티비에 자주 나와서 꽤 큰 시장 규모가 된 줄 알았는데, 그 부분은 의외로 적고 대부분의 돈은 땅에서 더 법니다.
우주의 고객은 크게 셋입니다. 정부, 군대, 그리고 민간이지요. 마치 삼국지처럼 세 세력이 각자의 이유로 우주에 돈을 붓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와 군대입니다. 노바스페이스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정부의 우주예산은 1,350억 달러였고, 그중 절반이 넘는 730억 달러가 국방 관련이었습니다. 이는 우주가 더 이상 NASA가 주도하는 낭만적인 과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안보의 최전선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전 세계 예산 1,350억 달러 중 약 59%인 약 797억 달러는 미국 정부가 씁니다. 약 8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 중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한 해 약 250억 달러를 쓰고, 미 우주군(Space Force)이 약 290억 달러, 그리고 나머지를 미국 국방부가 사용합니다. 우주에서도 천조국의 클래스는 여전합니다.
나머지 한 축은 상업 시장입니다. 위성방송을 보고, 위성인터넷을 쓰고, 기업이 위성사진을 사는 그 모든 것이지요. 전체 우주경제의 약 78%가 여기에 속합니다.
스페이스X가 엄청난 기업가치를 갖게 된 건, 이 세 시장에 전부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발사를 따내고, 군사 위성망을 깔고, 민간한테 인터넷을 팝니다. 한 회사가 군인과 공무원과 일반인의 지갑을 동시에 노리고 있는 모습은, 흡사 우주세기(U.C.) 건담 시리즈에서 전쟁 중에도 연방과 지온 양측 모두에 모빌슈트와 무기를 공급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거대 군수 복합기업,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Anaheim Electronics, AE)'를 떠올리게 합니다.
상장회사 아님. 찾아보시지 말 것
여기까지가 현재라면, 미래는 어떨까요. 세계경제포럼(WEF)과 맥킨지가 2024년 4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2023년 6,300억 달러였던 우주경제가 2035년에는 1조 8,000억 달러로 커진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연평균(CAGR) 약 9%의 고속 성장입니다.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조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비관적 시나리오도 1조 4,000억 달러이니, 보수적으로 봐도 10여 년 만에 거의 세 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을 품어야 합니다. 이런 거시적 전망은 늘 화려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읽어야 합니다. 그 약속어음이 진짜 현금으로 돌아오는 건 한참 뒤의 일이고, 그사이에 누가 살아남느냐가 진짜 게임이지요. 우주의 시대가 온다는 것과, 지금 우주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을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두고, 잠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오늘의 주인공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봅시다.
지금은 1.77조 달러를 부를 정도로 호쾌한 회사가 되었지만, 스페이스X도 한때 통장 잔고가 바닥인 거지시절이 있었습니다.
2002년 3월,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을 매각하여 번 돈에서 약 1억 달러를 털어 우주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6년간 '팰컨 1'을 세 번 쏴서 세 번 다 폭파시켰지요. 2008년, 금융위기발 대침체가 겹치며 회사는 말 그대로 마지막 로켓 한 발을 쏠 돈만 남았습니다.
2008년 9월 ...

하편이 기다려지는 글입니다. 👍👍👍

저녁에 마저 올립니다. 많관부.

금요일 장이 흥미진진하겠네요. 깊이 있는 글 잘 봤고, 하편도 정독입니다^^

저도 일주일에서 석달정도 지켜보고 제 예상이 틀렸을 경우 복기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런글은 어떻게 하면 쓸수 있는건가요..?

역시 책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을 통해 글을 쓰고 글을 쓰며 읽었던 내용을 정리하고 기록하다보니 스스로 발전함을 느낍니다.

다음 편도 기다리겠습니다 ㅎ

야식타임에 올리겠습니다.

하편도 재미있네요~ 대단하십니다.

맛있게 드셨길 바라는데... 올라가지도 않은 하편을 재미있으셨다고 한 걸 보니... 설마 💫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왕님!

밸리 인플루언서 전공께서 친히 와주셨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 눌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술술 읽혀지는 아주 유익한 내용 잘보았습니다!!

술술 읽힌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실은 정작 저는 쉽게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웃겨서 그런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