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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 ‘하’
VㅤIㅤRㅤTㅤUㅤEㅤKㅤIㅤNㅤG2026 시리즈 연재 지식한스푼

크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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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2026.06.11조회수 2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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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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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환생한 삼국지의 진정한 덕왕은 지혜와 덕을 베풀고자 오늘도 수련에 매진한다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https://blog.naver.com/virtueking

모두가 기다려온 그 회사, 과연 화성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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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불과 이틀 전이지만, 상편에서는 역대 최대 몸값으로 상장하는 스페이스X에 대해 규모와, 회사의 역사, 그리고 사업구조와 매출 현황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시간에는 가장 중요한, 적정가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공모주가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일반 투자자가 살 수 있는 물량은 미미하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투자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시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기업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망하고 살펴보는 것은 향 후 다른 회사의 상장 이벤트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반기에는 또 하나의 거대 공룡 OpenAI의 상장도 예고되어 있으니까요.


그럼 두 번째 시간 출발하겠습니다.


제4부. 그래서 이 회사, 얼마면 되는데

11. PER로는 잴 수 없는 적자기업, 그럼 무엇으로 재는가

지난 시간에는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고 있는 스타링크와 로켓 발사 사업부, 반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중인 AI 사업부의 혼재로 인해 번듯한 집과 불타는 농장이라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혼란한 회사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인데, 기관과 전문가 사이에도 그 평가가 각기 다릅니다. 하물며 붙은 가격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부족하나마 원기옥을 모으는 심정으로 있는 능력, 없는 능력 모두를 모아서 스페이스X의 몸값으로 책정된 1.77조 달러가 비싼지 싼지를 따져야 하는데, 아차, 여기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힙니다.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잣대인 PER을 쓸 수 없다는 점입니다.


PER은 주가를 순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P/E, P: 시가총액 혹은 주가, E: 순이익 혹은 주당순이익) 이론적으로 적자인 기업의 순이익은 마이너스이므로 계산 시 마이너스 PER이 나올 수 있는데, PER 자체가 가치평가를 하기 위한 지표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PER의 비교는 무의미하며 실무에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쉽게, 순이익이 적자인 회사는 PER로 계산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편합니다.)


스페이스X도 연결 기준으로는 적자인 기업입니다. 사실 우주항공 기업 대다수가 적자라 PER이라는 자를 이 산업에 적용하기는 무리입니다. 그렇다면 비교를 할 수 없는 걸까요? 느낌적인 느낌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싸다는 생각이 전두엽에 스치면 매수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되는 걸까요? 그럴 리가요. 인터스텔라에서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았듯이, 월가의 똑똑한 사람들도 적자 기업들을 평가하기 위한 기발한 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PSR과 EV/Sales, 적자기업을 재는 두 개의 자

PER을 쓸 수 없는, 적자이면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나온 비율이 바로 'PSR(주가매출비율, Price-to-Sales Ratio)'입니다. 이 지표는 미국의 위대한 투자 구루 중 한 사람인 필립 피셔의 아들이자, 자신도 유명한 투자자이면서 자산운용가이기도 한 '켄 피셔(Ken Fisher)'가 대중화한 것으로, 시가총액을 매출로 나눈 값입니다. 



TMI: PSR(주가매출비율)이란?

기업의 전체 가치를 주가와 매출비율로 구하는 방법입니다. 당기순이익이 없어 PER(주가/주당순이익)을 계산할 수 없는 초기 성장 기업이나 스타트업, 바이오/테크 기업을 평가할 때 유용합니다.  PSR 값이 낮을수록 매출액 대비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음을 뜻하며, 보통 1.0 이하일 때 투자 매력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합니다. 단, 이는 모든 종목에 일률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되며 업종별 평균과 비교해야 신뢰도가 높습니다. 


PSR = 시가총액 / 연간 총매출 

= 현재 주가 / 주당 매출액(SPS)

주당 매출액(SPS, Sales Per Share) = 연간 총 매출액 / 발행 주식 수




어떤 회사든 이익은 안 날지언정 매출은 나오므로, PSR은 어떤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특히 적자 성장기업을 잴 때 자주 쓰입니다. 


적자 성장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지표로 EV/Sales도 있는데, 이는 시가총액에 순부채까지 더한 기업가치(EV)를 매출로 나눈 것으로, 빚까지 감안한 좀 더 깐깐한 측정도구입니다. EV/Sales가 좀 더 신뢰성 높고 현업에서도 자주 쓰이는 도구지만, 개인투자자 수준에서는 PSR끼리 비교해도 크게 무리가 없으니 여기서는 PSR 기준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PSR이 10배라면 "이 회사의 주식은 1년 매출의 10배 가격에 거래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숫자가 클수록 비싼 겁니다.


PSR로 스페이스X의 덩치를 재봅시다. 스페이스X의 몸값 1조 7,700억 달러를 2025년 매출 187억 달러로 나누면 PSR이 약 95배가 나옵니다. 적자인 xAI를 뺀 우주 사업 단독 매출 약 155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114배입니다. 많이 양보해서 그나마 적은 95배라는 숫자를 기억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12. 동종업계 줄 세우기, 95배라는 숫자의 정체

상점에서 본 물건 가격이 싼지 비싼지 알기 위해서는 네이버나 쿠팡 가격과 비교해봐야 하듯이, 95배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면 이웃 기업들과 줄을 세워봐야 합니다. 우주와 위성, AI, 방산 기업들을 한 줄로 세워봤습니다. 2026년 6월 5일 종가 기준입니다.                    

※ 2026년 6월 5일 종가 기준. PSR = 시가총액 ÷ 최근 12개월(LTM) 매출. AST·로켓랩처럼 적자이거나 매출이 작은 초기 성장주는 어떤 매출(LTM·당해·선행)을 쓰느냐에 따라 배수 편차가 큽니다(예: AST는 LTM 기준 700배를 넘기도 함). 팔란티어는 2025년 매출 기준 약 65~70배, 최근 12개월 기준으로는 더 낮게 잡히기도 합니다.



표를 보니 다음과 같은 그림이 보입니다. 사업이 무르익은 위성 운영사와 방산 거인들, 이를테면 이리듐·SES·록히드마틴의 PSR은 대체로 1배에서 6배 사이로 낮습니다(특히 록히드마틴·RTX 같은 방산주는 1~3배로 더 낮습니다). 이 중 이리듐은 2025년에도 1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낸 꾸준한 흑자 기업이고, SES는 인텔샛 인수에 따른 대규모 상각 탓에 2025년 보고 기준으로 순손실을 봤지만 본업의 현금창출력(EBITDA)은 여전히 탄탄한 플러스이기에 낮은 PSR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적자를 내며 꿈을 파는 성장주들의 PSR은 기가 찰 정도로 높습니다. 로켓랩과 플래닛랩스는 각각 94배, 34배에 달하며 AST 스페이스모바일은 무려 400배가 넘습니다. 우주 순수 기업들의 중앙값이 대략 20배쯤 되는데, 이건 가도 너무 갔습니다.


그렇다면 스페이스X의 95배는 어디쯤일까요. 신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성층권 아득히 높은 곳에서 흑자 위성회사(1~6배)와 방산 거인(1~3배)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흑자를 내고 있는 AI 대장주 팔란티어(65~70배)보다도 높습니다. 거의 무매출이나 다름없는 AST 스페이스모바일(428배)을 빼면 밸류에이션은 사실상 시장의 최상단에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고평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매출 규모로는 우주업계 압도적 1위에, 성장성 끝내주는 본업마저 흑자, 이런 끝내주는 배경으로 인해 높은 값을 불러도 사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드니 할인은커녕 오히려 초기 성장주처럼 비싸게 매겨진 것입니다. 비싸도 살 만하다는 사람들의 논리도 나름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싸지만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몇 년 후를 생각하면 오히려 싼 거라고. (응? 이건 지금이 가장 싸고,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는 쇼핑의 격언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하지만 꿈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언젠가 터질 '거품 목욕'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실제로 스페이스X 상장 소식이 전해진 뒤 우주 관련 종목 전반이 들썩여, 버진갤럭틱이 하루 14~18% 급등하는 날이 있었고, 로켓랩 주가는 지난 1년 새 52주 최저가(약 25달러)에서 4배 넘게 뛰었습니다. 그러니 "동종 대비 95배가 그렇게 안 비싸 보인다"는 착시는, 비교군 자체가 달아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끓는 물에 손을 담그면 옆의 끓는 물이 미지근해 보이는 법이지요.


13. 사업부를 쪼개서 다시 더해보자

여기서 한 가지 영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X는 성격이 전혀 다른 세 사업부를 가졌으니, 단지 95배가 비싸다고 욕할 게 아니라 사업부마다 알맞은 잣대를 대서 따로 값을 매긴 뒤 더하면 어떨까요. 이러면 전체 기업의 가치가 더욱 정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런 방법을 '부분의 합(SOTP)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사업부별 매출 비중대로 가중치를 주고, 각 사업부에 어울리는 동종업계 PSR을 곱한 뒤 합산하는 것이지요. 신기하게도 이 매출가중평균 방식은 수학적으로 부분의 합과 정확히 같은 답을 냅니다. 사업부별로 적정 배수를 매긴 뒤, 보수적(저), 중립, 그리고 공격적(고)까지 세 가지 시나리오로 계산해 봤습니다.                    


이 잣대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이 적정가치가 나옵니다.


가장 후하게 쳐준 공격적 시나리오에서 가중 PSR을 52.9배로 잡아도 적정가치는 약 9,870억 달러 수준입니다. 이는 공모 기준 몸값인 1조 7,700억 달러의 약 56%에 불과합니다. 어지간히 다 얹어줘도 호가의 절반 남짓밖에 안 나온다는 뜻이지요.


정가표에 1,770만 원이 붙은 명품 가방을 앞에 두고, 가죽값, 바느질값, 브랜드값, 희소성까지 인색하지 않게 다 후하게 쳐주었지만, 가방의 실제 값어치는 980만 원에 불과합니다. 그럼 차액 790만 원은 대체 무엇이냐! 그건 "이 가방을 메고 다니면 언젠가 화성에 갈지도 모른다"는 스토리값입니다. ‘질’이 아닌 ‘꿈’에 매기는 값이지요. 명품백을 들고 다니면 잠시 동안 우월감이나마 느낄 수 있을 테지만, 꿈을 모아 산 주식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고 교환도, 환불도, A/S도 안 됩니다. 심지어는 배당도 안 나옵니다.


물론 이 계산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매출이 거의 없지만 성장 가능성은 큰 스타십의 미래 가치(옵션 가치)는 이 방식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부 분석가들은 여기에 스타십 옵션과 정부 계약 가치를 얹어 1조 2,500억 달러쯤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걸 다 더해줘도 여전히 책정된 가치보다 30%가량 낮습니다. 덕왕의 자체 계산, 다른 분석기관들의 계산도 약속이라도 한 듯 9,000억에서 1조 3,000억 달러로 모입니다. 같은 답을 적은 사람들이 여럿이라면, 다른 답을 적은 사람의 의도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14. 골드만삭스의 꿈과 다모다란 선생님의 계산

IPO 주관사인 골드만삭스는 스페이스X의 미래에 대해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2025년 187억 달러였던 매출이 2030년 4,740억 달러로, 5년 만에 약 25배가 된다는 시나리오였지요. 그 폭증의 대부분은 AI 사업부(2030년 3,220억 달러)가 책임진다는 그림입니다. 현재 돈 빨아먹는 하마들이 5년 후에는 환골탈태라.


무려 5년에 25배라.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곡선을 그려낸 회사는 인류 역사에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같이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상장 주관사가 그린 그림인데, 백화점 직원이 자기네 물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례를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사회자가 신랑 칭찬하는 걸 그대로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축하의 장에서 헛소리를 하면 돈도 못 받을 텐데 말입니다.


화려한 그림이 주관사만이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또 다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술 더 떠 2040년이면 스페이스X 매출이 3조 4,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봤습니다. 주관사도 아닌 곳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야! 잠깐, 이 그래프에는 2040년 우주산업 전체 시장규모가 1조 달러인데, 스페이스X 매출이 이거보다 크다고? 

모건스탠리 장난해?



'돈나무 누나' 캐시 우드의 ARK인베스트는 1조 7,500억 달러라는 몸값이 "각 사업부의 그럴듯한 성장 궤적에 근거한 정당한 값"이라 못 박았고, 실제로 자기 벤처펀드 자산의 17%를 스페이스X에 담아 최대 보유종목으로 들고 있습니다. 


또 다른 거물, 배런캐피털의 론 배런 회장은 한술 더 뜹니다. 2017년 17억 달러를 처음 투자한 것이 지금은 평가액 150억 달러 이상으로 불었는데, 이게 그의 펀드에서 가장 비중이 큰 단일 종목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 공모에서 배정 물량과 별개로 10억 달러어치를 더 사들이겠다고 공언했고, "앞으로 10~15년 안에 스페이스X 한 회사의 가치가 최대 30조 달러에 이를 것이며, 이마저도 보수적인 추정"이라고 했습니다. 


평소 열렬한 일론 머스크의 지지자인 그가 든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팰컨 9의 탑재 중량은 18톤이지만 차세대 스타십은 200톤, 단숨에 열 배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배런은 이 압도적인 적재력이, 전기와 냉각수를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AI 데이터센터를 아예 우주로 올려버리는 '궤도 데이터센터' 시대의 토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캐시 우드는 "수요가 게걸스러울 정도"라며 상장 초기 물량이 모자라 주가가 출렁일 거라고도 했습니다.


요컨대 "비싸다"는 쪽만큼이나, "그만한 값을 한다"며 진짜 돈을 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며 그에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투자의 역사에서 변곡점을 과소평가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기에, 이번 역시 비싸다는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주관사도 아닌 곳들까지 이렇게 용비어천가를 부르다니, 정말 뭐가 있기는 한 걸까요? 이럴 때는 양쪽을 다 저울에 올린 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스페이스X의 주식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다고 칩시다.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어떻게든 영혼을 끌어 모아 사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 사지 않는다면, 10년 전 테슬라를 사지 않고 ‘껄무새’가 된, 지금의 자신을 미래에 또다시 원망할 거라면서 올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애에서 '이 남자다', 혹은 '이 여자다'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수 있듯이,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덕왕의 깜냥에는 한계가 있고, 악마의 속삭임 같은 거대 투자기관들의 유혹과 돈나무 누나 등 업계에서 방귀 좀 뀌시는 분들의 논리를 파훼하기에 부족함이 있어, 방귀대장 뿡뿡이급의 존경받는 석학을 모셔오겠습니다.


모자란 듯 보이지만 안 모자란 1타 강사, 다모다란 선생님

거대 기관들이 말하는 "스페이스X는 적정 가치다"라는 주장의 반대편에는, 월스트리트가 가장 신뢰하는 가치평가의 대가 뉴욕대 애스워드 다모다란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직접 쌀집 계산기를 두드려 스페이스X의 내재가치를 1조 2,200억에서 1조 2,900억 달러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공모가가 실제 가치보다 약 33% 비싸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상장 서류가 내건 28조 5,000억 달러짜리 총시장 규모를 두고 "환상에 가깝다"라고 일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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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8조 5,000억 달러라는 숫자는 거의 미국 한 해 GDP에 맞먹습니다. 그중 AI 시장을 26조 5,000억 달러로 잡았는데, 다모다란이 보는 현실적인 AI 시장은 3조에서 4조 달러입니다. 거의 여덟 배를 부풀린 셈이지요. 마치 동네 분식집 사장님이 "지구인 80억 명이 다 떡볶이를 먹을 수 있으니 내 시장은 80억 인분"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내 가게에 올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말이지요. 또 다른 신뢰받는 투자 리서치 기관인 모닝스타도 같은 이유로 적정가치를 절반 미만으로 깎았습니다.


제5부. 공모주의 함정

15. 버핏 옹이 평생 공모주에 손대지 않은 이유

마지막으로 다모다란 교수님도 한 수 접는, 이 바닥 대왕보스 워런 버핏 옹을 모셔보겠습니다. 이분은 공모주를 평생 거의 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9년, 우버 상장을 두고 버핏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54년간 버크셔가 신규 공모주를 산 적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셨어도 버크셔는 2020년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인 ‘스노우플레이크’의 기업공개(IPO)에 참여해 약 2억 5,000만 달러어치를 샀습니다만, 이건 버크셔 역사상 사실상 전례가 없는 이례적인 '예외'로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그마저도 버핏 본인이 직접 고른 게 아니라 그의 투자 부관(토드 콤스 또는 테드 웨슐러)이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오히려 평소의 원칙을 증명해 주는 셈입니다. 더구나 그전까지 마지막으로 산 공모주가 1956년 포드였다고 하니, 거의 이 동네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지요.

할아버지, 거짓말쟁이! 안 산다고 했잖아요?



어쨌든 그가 든 이유가 탁월합니다. 


"모든 매도 인센티브가 몰려 있고, 수수료도 높고, 동물적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그 자리가, 그런 열기가 전혀 없는 다른 1,000개 종목보다 더 나을 거라는 발상은 말이 안 됩니다."


이 말에 공모주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공모란, 회사가 자신을 팔기에 가장 좋은 시점을 골라, 솜씨 좋은 쇼호스트와 노련한 조명감독을 모시고, 가장 예쁜 화장을 하고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서 주식시장이라는 사교계에 데뷔하는 행사입니다. 소개팅에 나온 상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누구든 그날만큼은 평생 몇 번 없을 인생 최고의 모습으로 꾸미고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게 평소 모습이라 믿고 덜컥 결혼을 결심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공모주가 딱 그렇습니다. 파는 사람이 모든 패를 쥔 채, 가장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날을 골라잡은 것입니다.


16. "없어서 못 팔아요", 가격을 띄우는 진짜 이유

앞 장에서 버핏 옹은 공모의 자리에 "모든 매도 인센티브가 몰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번 스페이스X 딜의 숫자를 들여다보면, 그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기업가치가 이렇게까지 부풀려지는 진짜 이유는 거창한 비전이나 성장성, 혹은 철학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 거래에 손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가격이 높을수록 돈을 더 벌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 가지를 통해 그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수수료의 구조입니다. 머스크는 주관사들을 상대로 수수료율을 0.75% 밑으로 후려치는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보통 미국 IPO 수수료가 4~7% 정도이며 초대형 딜도 1%는 넘는데, 머스크가 요구하는 0.75%는 2010년 미국 정부가 GM을 상장시키며 받아낸 역대 최저 기록과 맞먹습니다. 만약 성사된다면 "갑 중의 갑인 머스크가 월가를 쥐어짰다"는 무용담이 전설처럼 남겠지요.


그런데 머스크는 왜 수수료율을 낮추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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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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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aloo
2026.06.11

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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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6.06.12

되실 겁니다. 자세가 워낙 좋으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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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2026.06.11

퇴근하면서 하편을 읽으니 속이 후련하네요.

이제 월드컵 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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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덕왕
작성자
2026.06.12

우고 퇴근

덕왕 출근

크로스!

월드컵 재밌게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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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doc
2026.06.13

머스크의 꿈을 응원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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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 ‘상’

모두가 기다려온 그 회사, 과연 화성 갈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요즘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글 올리기가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분노, 좌절, 체념, 비난 같은 거칠고 날카로우며 프래질한 감정들이 안개처럼 자욱합니다. 그래서 조금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은, 행여나 기다리시는 독자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은 염려, 돌아올 수 있는 등대가 되겠다고 한 약속, 그리고 별셋에서의 경력이 끝날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한 스스로와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도 덕왕은 더딜지언정 ‘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물론 잠시 쉴 수는 있겠지요) 표지 이미지에서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2026년 6월 12일, 자본 시장이 열린 이래 역대 최대 몸값을 자랑하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무려 1조 7,70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뽐내며 나스닥에 상장됩니다. 말이 1조 7,700억이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1달러 1,500원 기준) 대략 2,655조 원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GDP 규모를 뛰어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현대차를 사고도 돈이 남습니다. 전체 기업가치 중 주식 공개를 통한 조달액은 무려 750억 달러(약 113조 원)로, 종전 기록 보유자였던 사우디 아람코(약 294억 달러 조달)의 2.5배를 가뿐히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화려한 데뷔입니다. 낭만과 신비로움이 가득했던 밤하늘에 숫자가 새겨진다는 것은 낯선 경험입니다. 덕왕은 그 옛날 동오(東吳)의 땅에서 긴 칼을 차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 큰 뜻을 닮고자 하였으며, 동이(東夷)의 땅에 이르러서도 센티해진 마음을 한잔 술에 담아 별을 향해 건배하면서 여전히 신비로운 하늘을 동경했습니다.  그런 감성 넘치는 덕왕에게 있어서, 우주에 민간기업이 진출하는 시기는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스페이스X라는 우주기업의 상장 뉴스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우주의 시대가 정말로 빨리 오는구나!"라는 감탄이 절반이었고, "그런데 이 가격이 맞는 건가?"라는 의심이 나머지 절반이었지요. TMI: 별 헤는 밤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덕왕이 쓴 〈별 헤는 밤, 경이로움을 좇다〉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사랑할 듯 의심할 듯 헷갈리는 두 마음 사이를 살펴보며, 우주 산업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스페이스X는 왜 이렇게까지 주목받는지, 그리고 그 1.77조 달러라는 가격표가 과연 화성에 갈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인지를 데이터와 추론을 통해 따져보겠습니다. 몹시 바쁜 분을 위한 오늘 글의 3줄 요약   1.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NASA의 독식은. It's over tonight." 우주 시대가 옵니다. 세계 우주경제는 2024년 약 6,130억 달러에서 2035년 1조 8,000억 달러로 커진다는 전망이고, 스페이스X는 그 한복판에서 전 세계 로켓 발사의 절반, 궤도에 올린 화물 질량의 80% 이상을 혼자 처리하는 압도적 1등입니다. 2.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보랏빛처럼 환상적인 회사지만, 1.77조 달러라는 가격표는 비싸 보입니다. 공모가의 밸류에이션은 매출 대비 주가비율(PSR)로 약 95배인데, 사업부를 쪼개서 동종업계 잣대로 다시 더해보면 적정가치는 잘 봐줘야 9,000억에서 1조 3,000억 달러 선입니다. 모닝스타도, 뉴욕대 다모다란 교수도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이름은 모자란 듯 보이지만 실은 엄청 유식한 분입니다.) 3.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공모주는 원래 유망한 만큼 비싼 게 당연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버핏 옹이 평생 공모주를 멀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통계도 고 PSR 공모주의 처참한 3년 성적표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거시경제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최근의 여러 경제지표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점 낮게 전망하게 만들고, 2026년 하반기부터 2027년까지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IPO 한 장 요약                               표를 보면 두 가지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첫째, 보통의 공모는 가격을 '범위'로 띄워 시장 수요를 먼저 떠보는데, 이번엔 1주 135달러의 단일 정찰제라는 점입니다. 백화점 명품관에 세일이 없듯이, 스페이스X의 가격에서도 엄청난 자신감 혹은 배짱이 느껴집니다. 둘째, 이번 상장이 대규모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니! 덕왕!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시오? 무려 5억 5,000만 주가 넘는 주식을 공모한다 하지 않았소?" 5억 주가 넘는 공모 규모는 숫자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전체 지분의 약 4.3%에 불과하며, 상장을 해도 머스크의 의결권은 82%가 넘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 우주 택시에 올라타도 조종은커녕 라디오 채널 하나도 못 바꾼다는 뜻입니다. 2,655조 원짜리 택시에 올라타는데, 기사님이 핸들을 절대 놓지 않고 목적지도 혼자 정하는 구조. 거기에 기사님이 "오늘은 화성으로 갑니다" 하면, 승객은 그냥 화성에 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 우주 택시에 타시려거든 그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스페이스X에 대해 알아볼까요? 제1부. 우주, 그게 돈이 됩니까 01. 6,130억 달러짜리 하늘, 누가 다 가져가나 우주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낭만을 먼저 떠올립니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라든가, 밤하늘의 별이라든가요. 그런데 그 하늘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거대한 시장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 우주재단(Space Foundation)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우주경제는 2024년 약 6,130억 달러 규모에 이르며, 민간 컨설팅 기업인 노바스페이스(Novaspace)의 조사에서는 2025년 수치를 약 6,260억 달러로 예상하는데, 이는 2024년 세계 반도체 산업 시장 규모인 약 6,300억 달러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물론 위성산업협회(SIA)처럼 좀 더 좁게 잡는 곳은 4,150억 달러 수준이라고도 하지만, 어차피 급격한 성장이 중요할 뿐, 비약적으로 커지는 우주 산업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시장의 약 78%가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민간 상업 영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깃발 꽂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장사꾼들의 무대입니다. TMI: 우주경제 6,130억 달러, 대체 뭘 파는데?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의외로 시시합니다. 우주경제의 가장 큰 부분은 로켓일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큰 덩어리는 위성 지상장비로 약 1,553억 달러 규모이며, 여러분 차의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GPS가 다 여기 들어갑니다. 그다음이 위성 서비스로 약 1,083억 달러(위성방송, 위성인터넷), 위성 제조 약 200억 달러, 그리고 정작 로켓 쏘는 발사 서비스는 약 93억 달러로 가장 적습니다. 어라? 우주의 꽃인 로켓발사가 이렇게 비중이 적을 수가? 로켓 발사 뉴스가 티비에 자주 나와서 꽤 큰 시장 규모가 된 줄 알았는데, 그 부분은 의외로 적고 대부분의 돈은 땅에서 더 법니다. 02. 우주의 3대 시장, 정부와 군대, 그리고 민간 우주의 고객은 크게 셋입니다. 정부, 군대, 그리고 민간이지요. 마치 삼국지처럼 세 세력이 각자의 이유로 우주에 돈을 붓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와 군대입니다. 노바스페이스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정부의 우주예산은 1,350억 달러였고, 그중 절반이 넘는 730억 달러가 국방 관련이었습니다. 이는 우주가 더 이상 NASA가 주도하는 낭만적인 과학의 영역만이 아니라 안보의 최전선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전 세계 예산 1,350억 달러 중 약 59%인 약 797억 달러는 미국 정부가 씁니다. 약 8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 중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한 해 약 250억 달러를 쓰고, 미 우주군(Space Force)이 약 290억 달러, 그리고 나머지를 미국 국방부가 사용합니다. 우주에서도 천조국의 클래스는 여전합니다. 나머지 한 축은 상업 시장입니다. 위성방송을 보고, 위성인터넷을 쓰고, 기업이 위성사진을 사는 그 모든 것이지요. 전체 우주경제의 약 78%가 여기에 속합니다. 스페이스X가 엄청난 기업가치를 갖게 된 건, 이 세 시장에 전부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 발사를 따내고, 군사 위성망을 깔고, 민간한테 인터넷을 팝니다. 한 회사가 군인과 공무원과 일반인의 지갑을 동시에 노리고 있는 모습은, 흡사 우주세기(U.C.) 건담 시리즈에서 전쟁 중에도 연방과 지온 양측 모두에 모빌슈트와 무기를 공급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거대 군수 복합기업, '애너하임 일렉트로닉스(Anaheim Electronics, AE)'를 떠올리게 합니다. 상장회사 아님. 찾아보시지 말 것 03. 1조 8,000억 달러라는 약속어음 여기까지가 현재라면, 미래는 어떨까요. 세계경제포럼(WEF)과 맥킨지가 2024년 4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2023년 6,300억 달러였던 우주경제가 2035년에는 1조 8,000억 달러로 커진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연평균(CAGR) 약 9%의 고속 성장입니다.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2조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비관적 시나리오도 1조 4,000억 달러이니, 보수적으로 봐도 10여 년 만에 거의 세 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심을 품어야 합니다. 이런 거시적 전망은 늘 화려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그리고 차갑게 읽어야 합니다. 그 약속어음이 진짜 현금으로 돌아오는 건 한참 뒤의 일이고, 그사이에 누가 살아남느냐가 진짜 게임이지요. 우주의 시대가 온다는 것과, 지금 우주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대목을 머릿속 한구석에 담아두고, 잠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오늘의 주인공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봅시다. 제2부. 스페이스X라는 회사 04. 3전 4기, 발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지금은 1.77조 달러를 부를 정도로 호쾌한 회사가 되었지만, 스페이스X도 한때 통장 잔고가 바닥인 거지시절이 있었습니다. 2002년 3월,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을 매각하여 번 돈에서 약 1억 달러를 털어 우주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6년간 '팰컨 1'을 세 번 쏴서 세 번 다 폭파시켰지요. 2008년, 금융위기발 대침체가 겹치며 회사는 말 ...
2026 시리즈 연재 지식한스푼
2026.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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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 ‘상’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2/2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양 많던 곰탕도 이제 마지막 그릇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마테리온을 향한 세 가지 의문이 담긴 곰탕 그릇을 받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첫째, 거버넌스의 정점에 앉은 CEO 비제이는 누구이며 어떤 무기를 쥔 사람인가. 둘째, 마테리온은 왜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가. 셋째, 재무제표에 쌓인 그 많은 차입금은 정말 나쁜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마치 다대기, 후추, 소금처럼 완벽한 곰탕 맛을 위해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양념 3형제와 같이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39장에서 우리는 비제이가 그의 경력 대부분을 '인수와 통합'이라는 한 우물로 보낸 사람이며, 도둑이 제 버릇 못 고치듯 그 필살기를 마테리온에서도 그대로 꺼내 들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40장과 41장에서는 손다이크와 차브라야를 비교하며 마테리온의 자사주 매입을 살펴보았고, 쌀 때 사들이던 규율이 최근 들어 흐릿해진 정황과 함께, 비싼 주식을 통화처럼 쓰는 차브라야의 기술은 끝내 꺼내지 않은 채 인수 자금을 빚으로 마련해 온 사실을 보았지요. 그렇게 세 갈래로 흩어져 보이던 의문을 끝까지 따라가 보니, 결국 차입금이라는 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마지막 그릇에서는 판단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요소인 차입금까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사골뼈가 녹아내릴 만큼 끝까지 우려낸다는 마음으로, 마테리온을 여덟 가지 측면에서 진단하고, 차입금을 자세히 들여다본 뒤, 마지막으로 재무제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숫자 뒤의 미장센까지 살핀 후 이 기업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제4부 가치함정에 대한 종합 진단 제42장 네 가지 원천과 네 가지 증상, 여덟 가지 측면으로 보는 진단 제3부에서 우리는 비제이라는 사람과 그의 자본배분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4부에서는 시야를 넓혀, 마테리온이 적정한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는지, 혹은 회사 전체가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겠습니다. 상편 도구상자에서 우리는 첫 번째 도구로 '가치함정'을 챙겼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덕왕은 가치함정을 '네 가지 원천'과 '네 가지 증상'으로 나누어 소개해 드렸습니다. 마치 들은 지 백만 년은 지난 듯한 먼 이야기 같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짚고 가겠습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회사는 왜 함정에 빠지는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추락하는 산업의 낮은 PER은 싼 게 아니라 비싼 것입니다. 원천② 회계 신뢰성 함정: 싸게 보이는 것에는 재무적 마사지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에 실패한 회사는 미래의 PER이 낮아집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좋은 회사가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닙니다. 시스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증상: 함정에 빠진 회사는 어떻게 보이는가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현금흐름이 들쭉날쭉합니다. 이런 기업의 앞날은 며느리도 모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인색합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경영 지배력이 약하고, 의사결정이 비정상적이며 느립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거버넌스를 의심케 하는 비정상적 거래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원천 넷, 증상 넷,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중 셋은 이미 상편에서 검증이 끝났습니다. 그 셋은 짧게 결론만 확인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나머지 다섯이 이번 장에서 새로 들여다볼 것인데, 그중에서도 회계 신뢰성 함정은 다음 장인 43장에서 차입금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이미 검증이 끝난 세 가지 원천① 사양산업 함정: 마테리온이 코닥처럼 죽어가는 산업에 갇혀 있는가. 상편 34장에서 우리는 우주·방위·에너지 세 전선을 모두 살펴보았고,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움직이며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양산업 함정은 명백히 해당 없고 앞날은 창창함. 통과입니다. 증상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상편 38장에서 임원 매도 클러스터를 3차원으로 검증할 때 점검했던 대목입니다. 고용된 전문경영인 CEO와 90%가 넘는 외부 기관의 지분 구조는 마테리온에게 최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닙니다. 13년 넘게 이어진 배당 증가 기간에서 볼 수 있듯 경영권 간섭의 징후는 없고, 앞으로도(배당이 꾸준하기만 하면)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통과입니다. 증상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 마테리온의 임원 매도는 정상적인 거버넌스 규정 안에서, 사전에 약속된 자동 매도 일정에 따라 일어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본 결과 실적 발표에 연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여러 이사회 멤버에게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현상이었습니다. 매수 없이 매도만 이루어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것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스톡옵션 가이드라인도, 이사회 독립성도 미국 상장사의 표준적인 틀 안에서 작동하고 있으므로 가치함정의 증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것 역시 통과입니다. 세 가지가 통과되었으니, 이제 새로 들여다볼 다섯 가지로 넘어가겠습니다. 원천③ 자본배분 실패 함정: 자본배분 실패 함정은 상편에서 후기 GE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CEO의 손에 들어온 1달러를 잘못된 곳에 쓰는 회사, 비싼 가격에 인수를 거듭하고 비쌀 때 자사주를 사들이는 회사는, 아무리 사업이 좋아도 주주의 돈이 새어 나갑니다. 비제이는 인수에 강하게 기울어진 자본배분을 해왔습니다. 옵틱스 발저스, H.C. 스타크, 코나솔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인수가 2017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임기를 채웠습니다. 반면 자사주 매입은 2014년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고, 2025년에는 오히려 비싼 구간에서 사들였습니다. 게다가 인수 자금은 자기 주식을 영리하게 '통화'로 쓰는 차브라야의 길이 아니라, 빚을 지는 방식으로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자본배분 실패'라고 부르기엔 이릅니다. 41장에서 보았듯이 큰 인수의 성패는 5년, 10년 뒤에야 드러나는데, 차브라야조차 인수 당시에는 큰 비판을 받았으니까요. 비제이의 인수 역시 훗날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성공하면 '탁월한 선견지명'이 되고 실패하면 '내 그럴 줄 알았다'가 되는, 딱 그런 자리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다만 '실패'는 아니더라도 '치우침'은 분명합니다. 비제이의 자본배분은 인수 한쪽으로 강하게 기울어 있고, 그 인수가 빚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회사의 재무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중립'입니다. '함정에 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안전하게 통과'라고 도장을 찍어 줄 수도 없습니다. 원천④ 가격과열 함정: 가격과열 함정은 상편에서 2000년의 시스코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그 가격이 미래의 성장까지 모두 끌어다 반영해 버리면, 그 시점의 주식은 끔찍한 주식이 된다는 이야기였지요. 내재가치로 적정주가를 계산하는 일은 이번 글에서 다루지 않겠으나, 대략적인 상대가치평가로 러프하게라도 들여다보는 것은 가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40장에서 본 대로 마테리온의 밸류에이션은 어떤 자(尺)를 대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일회성 손상차손 탓에 회계장부 그대로의 PER은 한때 수백 배로 튀었고, 그것을 걷어낸 보정 PER은 2025년 약 27배였습니다. EV/EBITDA로 보면 2025년 약 14.2배입니다. (참고로 이 둘은 2025 회계연도 기준입니다. 뒤 에필로그의 동종업계 비교에서는 2026년 5월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한 멀티플을 쓰기 때문에 같은 회사의 숫자가 이보다 높게 나오는데, 회사가 달라진 게 아니라 잣대와 시점이 다른 것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밸류에이션은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지금의 마테리온이 2014년처럼 '누가 봐도 싼' 구간에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보정 PER 27배도, EV/EBITDA 14배대도 헐값이라 부를 수치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것이 곧 하락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내재가치평가도 상대가치평가도 '추세(momentum)'를 담아내지는 못하며, 그 어떤 평가도 심리로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기에 가격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이 점이 덕왕이 내재가치평가, 상대가치평가 모두를 완전히 신용하지는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다만 현재 가격에 대한 상대적 판단은 43장의 종합 진단과 에필로그를 통해 정리하겠습니다. 증상① 불안한 현금흐름 창출 능력: 이제 증상 쪽으로 넘어갑니다. 첫 번째 증상은 '불안한 현금흐름'입니다. 함정에 빠진 회사는 장부상 이익은 그럴듯해도 실제로 들어오는 현금이 들쭉날쭉하거나 빈약합니다. 마테리온은 어떨까요. 2024년 회계상 순이익은 손상차손 탓에 590만 달러까지 추락했습니다. 장부만 보면 거의 돈을 못 번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8,780만 달러였습니다. 순이익의 거의 열다섯 배입니다. 손상차손이 현금이 나가지 않는 회계상의 비용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 장부상 이익은 찌그러졌어도 현금은 견조하게 들어왔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마테리온의 현금 창출 능력은 '불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마테리온이 CAPEX가 무거운 회사라는 데 있습니다. 사업에서 현금이 들어와도 그중 상당 부분이 설비 유지·갱신으로 다시 빠져나갑니다. 특히 그 설비투자와 배당금 등을 빼고 최종적으로 남는 잉여현금흐름(FCF)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FCF를 매출로 나눈 잉여현금흐름이익률은 2019년 6.13%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내려와, 2023년 1.47%, 2024년 0.42%, 2025년 1.33%, 그리고 2026년 1분기 TTM 기준으로는 단 0.50%에 불과합니다. 업종 중앙값 2.27%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매출 19억 달러대 회사의 한 해 잉여현금이 한 줌이라면, 지갑 사정이 '넉넉하다'는 말은 도저히 붙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부정적'입니다. 증상②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두 번째 증상은 '미흡한 주주환원'입니다. 주주에게 돌려주는 데 인색한 회사인가를 보는 자리이지요. 마테리온은 주주환원의 두 통로인 배당과 자사주 매입 가운데, 배당 쪽으로 분명한 무게를 실어온 회사입니다. 13년 연속으로 배당을 늘려왔지요.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결코 가볍게 볼 기록이 아닙니다. 어지간히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없고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니까요. 반면 자사주 매입은 과거에는 활발했으나 최근으로 올수록 가늘어졌습니다. 두 통로를 합쳐 보면, 마테리온의 주주환원은 '미흡하다'고 깎아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배당이라는 한 통로가 13년째 오히려 모범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 13년 연속 배당 인상은 훈장인 동시에 족쇄입니다. 배당은 한 번 늘리면 좀처럼 줄이기 어려운 탓에, 그 현금을 부채 상환이나 다른 곳으로 돌릴 여지가 좁아집니다. 앞서 보았듯 마테리온은 잉여현금이 얇아지는 상황에서도 매년 배당을 꼬박꼬박 늘려왔습니다. 2025년 한 해 배당으로 나간 현금이 약 1,150만 달러였는데, 그해 잉여현금흐름이 불과 2,370만 달러였습니다. 버는 잉여현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 배당으로 빠진 셈이고, 이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측면의 판정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13년 동안의 배당 증가는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그것이 '버는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내서 주는 것이라면, 배당의 증가가 오히려 다른 살림, 특히 부채 상환 여력을 빠듯하게 만드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동반하게 되며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집니다. 중간 정리 여덟 가지 측면 가운데 회계 신뢰성 함정(원천②)을 뺀 일곱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회계 신뢰성은 차입금과 한 묶음이라 43장으로 미뤄두었지요. 일곱 가지를 표로 모아 보겠습니다. 통과가 셋, 부정적이 셋, 중립과 보류가 각각 하나입니다. 얼핏 보면 마테리온은 무난하게 함정을 피해 가는 회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칸, 보류해 둔 회계 신뢰성 함정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막보'가 가장 센 것처럼, 이번 심화편 전체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이 주제는, 마테리온을 향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인 차입금과 맞닿아 있습니다. 곰탕 두 번째 그릇도 이제 바닥이 보입니다. 같이 힘을 내시지요.   제43장 회계 신뢰성 함정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이것을 43장으로 미룬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계 신뢰성을 검증한다는 것은 결국 "마테리온의 재무제표 숫자 자체를 믿어도 되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차입금이라는 가장 무거운 의심을 파헤치는 작업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차입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지려면 재무제표를 펼쳐야 하고, 그 재무제표를 믿어도 되는지는 회계 신뢰성이 답해 줘야 하니까요. 두 가지는 한 묶음으로 다뤄야 앞뒤가 맞습니다. 상편과 하편을 마치며 덕왕의 마음에 가장 크게 걸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사실 자사주도 아니고 임원 매도도 아닌 차입금이었습니다. 이 회사, 빚이 너무 빠르게 늘어난 것 아닌가. 이자비용이 회사를 갉아먹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이 가시를 빼려고 보니, 한 가지 곤란한 사실과 마주쳤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이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빚이 많다는 말은 왜 다루기 어려운가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부채비율 200% 넘는 회사는 거르세요." 투자 책에도, 유튜브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깔끔하고 외우기 쉬운 기준이지요. 시험에 나오면 동그라미 받기 딱 좋은 한 줄입니다. 그런데 이 깔끔한 기준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에 그대로 갖다 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책에 나오는 위대한 CEO 여덟 명 중 상당수가, 부채비율 기준으로는 낙제생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람이 존 멀론입니다. 빚으로 제국을 세운 사람, 존 멀론 존 멀론은 TCI라는 케이블TV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빚을 무서워하기는커녕 빚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전략적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끌어다 썼지요. 부채비율 200% 룰을 들이대면 멀론의 TCI는 거를 회사가 아니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회사입니다. 그런데 손다이크는 이 멀론을 위대한 자본배분가 여덟 명 안에 당당히 넣었고, 멀론과 주주들은 그 빚더미 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멀론이 사기꾼이었거나 손다이크가 잘못 본 걸까요. 둘 다 아닙니다. 멀론의 빚은 '좋은 빚'이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빚이란 케이블망은 한 번 깔면 수십 년을 씁니다. 깔고 나면 가입자들이 매달 꼬박꼬박 시청료를 냅니다. 마치 오늘날의 인터넷 망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그 현금은 거르지 않고 들어옵니다. 멀론은 바로 이 점을 꿰뚫어 봤습니다. 들어올 현금이 이렇게 확실하다면, 그 현금을 담보 삼아 빚을 내서 케이블 회사를 더 사들이고, 거기서 또 현금이 나오면 또 빚을 내서 또 사들이고. 이렇게 굴리면 빚이 곧 성장의 엔진이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멀론의 빚은 갚을 수 있는 빚이었고, 벌어들이는 빚이었고, 실제 현금이 따라오는 빚이었습니다. 빚의 '양'이 아니라 빚의 '성격'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부채비율 200%"라는 한 줄짜리 기준은, 편하긴 해도 너무 거칠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칩니다. 같은 1억의 빚이라도 누가, 어떤 사업에, 어떻게 졌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데, 부채비율은 그저 "빚이 자본의 몇 배냐"만 볼 뿐 그 빚의 성격은 한 글자도 말해 주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부채비율 말고 무엇을 봐야 할까요. 이 질문 앞에서 덕왕은 세 도구상자 외에, 품속에 넣어둔 비단 주머니를 꺼냅니다. 제갈량의 지혜주머니, 세 개의 비단주머니 〈삼국지연의〉에는 유비를 모시러 동오로 떠나는 조자룡에게 제갈량이 비단주머니, 즉 금낭(錦囊) 몇 개를 건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러두지요. "평소에는 열지 말고, 정말 위급한 고비(위고비)가 닥쳤을 때 하나씩 열어보아라." 조운은 이후 막다른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 주머니를 하나씩 풀어보았고, 그 안에 제갈량이 미리 적어둔 계책을 실행하며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이때 조운이 받은 이 비단 주머니 안에 담긴 세 개의 계책을 '금낭묘계(錦囊妙計)'라고 합니다. (주의: 오늘날 금낭묘계를 맛볼 수 있는 술. Feat. 제갈량 금낭호품(錦囊豪品))   덕왕은 상편에서 가치함정, 5 Forces, 6중 제약이라는 세 개의 도구상자를 챙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셋은 회사를 처음 들여다볼 때 활짝 펼쳐놓고 쓰는 연장입니다. 그런데 차입금이라는 고비는 결이 좀 다릅니다. 모든 회사를 볼 때마다 매번 꺼내는 도구가 아니라, "이 회사 빚이 좀 많은데?" 싶은 위급한 순간에만 품에서 꺼내 풀어보는 제갈량의 금낭이 필요합니다. 이에 덕왕은 투자자가 빚 많은 회사를 만났을 때 하나씩 풀어보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비단주머니 세 개를 준비했습니다. 코에이는 덕왕의 능력치를 수정하라!   다만 그 셋을 풀기 전에, 이 주머니를 어디서 펼쳐봐야 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보는 숫자는 영업이익입니다. "영업이익이 늘었으니 빚도 감당되겠지" 하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건 주머니를 열어보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닙니다. 손익계산서의 순서를 떠올려 보면 간단합니다. 매출에서 원가와 판관비를 빼면 영업이익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자비용이 빠집니다. 영업이익은 이자비용보다 윗줄에 있기에 회사가 빚을 산더미처럼 졌든 한 푼도 안 졌든 영업이익은 똑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사업이 잘 굴러가나"는 말해 줘도 "그 사업이 빚을 감당할 수 있나"는 한마디도 해 주지 않습니다. 또한 빚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영업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어도 영업이익 자체가 빚을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영업이익으로 이익의 질을 보고자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자룡처럼 알맞은 상황과 질문에서 열어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단주머니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비단주머니, 갚을 수 있는가 첫 번째 금낭에 적힌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회사, 빚을 갚을 수 있는가." 빌린 돈이 많든 적든, 일단 제때 이자를 내고 만기에 원금을 돌려줄 능력이 되느냐를 봅니다. 이걸 보는 숫자가 둘입니다. 하나는 이자보상배율,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입니다. 앞에서 영업이익만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는데, 이자비용으로 나누는 순간 "사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를 몇 번이나 갚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쓸모 있는 숫자가 됩니다. 값이 1이면 번 돈을 이자로 정확히 다 토해낸다는 뜻이라 위태롭고, 보통 2~3을 넘어가면 급한 불은 끈 것이며, 훌륭한 기업들은 20~30이 훌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차입금을 EBITDA로 나눈 값으로, "지금 버는 속도로 빚을 다 갚으려면 몇 년 걸리느냐"를 대략 보여줍니다. 3을 넘어가면 빚이 슬슬 무겁다는 신호입니다. 두 번째 비단주머니, 벌고 있는가 두 번째 금낭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빌린 돈이, 그 돈을 빌리는 값보다 더 벌고 있는가." 빚에는 이자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연 5%에 돈을 빌렸다면 최소한 5%보다는 많이 벌어야 남는 장사입니다. 5% 주고 빌린 돈으로 3%밖에 못 벌면 빌릴수록 손해이지요. 멀론이 위대했던 건 빌린 돈으로 그 이자보다 훨씬 많이 벌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재는 잣대가 ROIC와 WACC입니다. ROIC는 "회사에 들어온 전체 자본(Invested Capital), 주주 돈이든 빌린 돈이든, 그것으로 세금 떼고 뭐 떼고 몇 퍼센트를 벌었나"이고, WACC는 "그 자본을 끌어오는 데 든 평균 비용이 몇 퍼센트냐"입니다. ROIC가 WACC보다 높으면 자본을 굴려 가치를 만드는 것이고, 낮으면 굴릴수록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금낭에는 잣대가 하나 더 들어 ...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하’ 1/2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지난 시간 심화편 상편을 철야작업 끝에 업로드했습니다. 회사에서 졸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덕왕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상편은 덕왕이 정성을 다해 우려낸 곰탕이었습니다. 베릴륨이라는 금속을 둘러싼 세 개의 산업 전선을 짚었고, 가치함정·5 Forces·6중 제약이라는 세 가지 도구상자를 펼쳤으며, 마테리온이라는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를 검증하고,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가 정말 위험 신호인지를 3차원으로 뜯어보았습니다. 스스로는 정성을 다한 한 그릇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진한 곰탕에, 예상보다 손님이 적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우셨는지, 아니면 내용이 복잡해 숟가락을 들기 어려우셨는지. 곰탕집 사장으로서 가게 문을 닫고 혼자 솥을 들여다보며 잠시 고민했습니다. 더 묽게 끓여야 했나, 양을 줄여야 했나.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가 밸리 가족만을 위해 올리겠다고 약속한 독점 컨텐츠는 애시당초 대중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이 깊은 밸리까지 굳이 찾아오시는 변태들을(좋은 의미입니다) 위한 글이라는 것. 그러니 그릇의 깊이를 얕게 만들기보다는, 같은 깊이를 더 잘 떠먹을 수 있도록 좋은 숟가락을 손에 쥐여드리는 쪽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진심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 글이 어렵든, 길든, 혹은 재미있든,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피드백 한 줄 한 줄은 덕왕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하고 소중합니다. "이 부분이 어려웠다", "이 비유는 와닿았다", "이건 빼는 게 낫겠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의견을 주신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앞으로 나올 다음 그릇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덕왕은 여러분 위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식탁에서 함께 곰탕을 떠먹는 사람이니까요.   자, 그러면 두 번째 곰탕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상편이 넘칠 만큼 큰 곰탕이었으며, 이번 하편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첫 그릇을 비우셨다면 아직 자리를 뜨실 수 없습니다. 덕왕은 여러분을 한 그릇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요.   상편을 아직 안 드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두 번째 그릇을 내려놓으시고 첫 그릇부터 드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곰탕은 순서대로 드셔야 제맛입니다. (feat. 입 벌려. 지식 들어간다)   첫 그릇 가볍게 핥아보기 긴 곰탕이었으니 첫 그릇의 맛을 짧게 되짚고 가겠습니다. 상편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를 물었습니다. 세 가지 도구상자 ―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 ― 를 펼쳐 검증한 결과, 마테리온은 우주·방위·에너지라는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있고, 5 Forces 22/25점의 깊은 해자를 가졌으며, 미국의 지정학적 구조 안에서 단단하게 보호받는 좋은 회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또한 "마테리온은 좋은 주식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심층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 검증으로 임원들의 자사주 매도 클러스터를 3차원으로 씹고 뜯어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CEO의 보유 주식이 18개월간 1.56배 늘었고, 매도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 정해진 거버넌스 규정과 사전채택 자동 일정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이 회사 내부의 이상 신호가 아니라 정상 거버넌스의 작동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첫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그릇을 비우고 나니, 국물 바닥에 가라앉아 건져 먹지 못한 건더기들처럼 세 가지 의문이 남게 되었습니다.   첫째, 그 거버넌스의 정점에 선 CEO는 누구인가? 그의 경력이 어떤 무기를 쥐여주었는가? 둘째, 마테리온은 왜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가? 한두 해가 아니라 십 년 넘는 시계열로 길게 봐도 같은 그림인가? 셋째, 마테리온이 재무제표에 나타난 많은 차입금은 정말 나쁜 것인가? 빚이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회사를 깎아내려도 되는가?   이 의문들을 풀기 위해 두 번째 그릇을 내어 봅니다.   하편의 목차 이번 하편의 차림표는 다음과 같으며 이번 시간에는 3부 41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제3부 CEO와 그의 자본배분전략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31년이 만든 그의 도구상자 제40장 손다이크의 거울 ― 자사주 매입 11년의 이력 제41장 차브라야의 거울 ― 비싼 주식을 ‘통화’로 쓴다는 것   제4부 함정과 종합 진단 제42장 가치함정 원천과 증상의 결합 ― 8각 진단 제43장 가치함정 종합 진단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에필로그: 색안경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리고 이 회사는 어떤가 부록: 심화편 용어·개념 정리표   상편에서 우리는 세 가지 도구상자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하편에서도 그 세 도구상자를 그대로 들고 갑니다. 다만 제43장에서 차입금이라는 까다로운 함정 앞에 섰을 때, 도구상자와는 결이 조금 다른 물건을 하나 더 꺼낼 것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위급한 장수의 품에 넣어주던 비단주머니 같은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43장에서 자세히 풀겠습니다. 일단은 "도구상자 셋에, 급할 때 열어볼 주머니 하나가 더 있다" 정도로만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 번째 의문, 마테리온이 가는 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 CEO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제3부 CEO와 그의 자본배분전략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31년이 만든 그의 도구상자 상편 38장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의 거버넌스가 정교한 기계가 돌아가듯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의 운전석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바로 마테리온의 CEO인 비제이입니다.   '비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덕왕은 인터넷 방송이 막 태동하던 시절, 게임을 중계하던 철 지난 옛날 BJ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스타크래프트 한 판에 채팅창이 불타오르고, 입담 좋은 BJ 하나가 수천 명을 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 그 BJ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한 시절 그 게임방송을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말입니다. 세월이 야속합니다.)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억을 뒤로 하고 우리는 게임이 아닌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마테리온의 BJ, 주갈 K. 비제이바르기야(Jugal K. Vijayvargiya)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름이 길고 발음이 어려우니, 이 글에서는 그를 줄여서 '비제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그렇게 불린다고 하니, 무례한 호칭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상편에서 마테리온이라는 회사의 해자와 산업을 둘러싼 구조를 보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회사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칼이라도 누구 손에 들렸느냐에 따라 요리 도구가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하듯이 마테리온도 운전석에 앉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비로소 "이 회사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Jugal K. Vijayvargiya, 현 마테리온의 CEO   한 엔지니어의 30년 비제이는 1968년에 태어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출발점은 엔지니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의 커리어는 1986년, 델파이(Delphi)에서 사회 경력을 시작하게 되면서 바뀌게 됩니다. 델파이는 당시 제너럴 모터스(GM)의 부품 부문이었고, 그 안에서도 전장·안전(Electronics & Safety, 이하 E&S) 조직이 그의 첫 둥지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31년 뒤 마테리온을 떠나는 순간까지 한 우물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10년은 엔지니어로서 여러 기술 직무를 거쳤습니다. 그후 1996년에 영업 직군으로 이동했고, 제품 라인 관리로 영역을 넓혔으며, 2002년에는 오디오 시스템의 제품 라인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성실하고 유능한 전형적인 엔지니어 출신 관리자의 성장 곡선입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변곡점은 2003년에 찾아옵니다.   2003년, 독일행과 그룬디히 2003년, 델파이는 독일에서 그룬디히 카 인터미디어 시스템(Grundig Car InterMedia System GmbH), 줄여서 CIS라는 회사를 인수합니다.   빈티지 오디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룬디히'라는 이름에 귀가 번쩍 뜨이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룬디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막스 그룬디히가 세운 독일의 전설적인 가전·오디오 브랜드입니다. 한때 유럽 최대의 라디오·TV 제조사였고, 빈티지 오디오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디자인 예쁘기로는 그룬디히"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름값이 있는 명기 중의 명기입니다. 실은 덕왕도 그룬디히 라디오(Grundig T7500)를 한 대 가지고 있습니다. 덕왕의 친형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었는데, 그 라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향숙이, 아니, 그룬디히 예뻐요!"라고 말할 정도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입니다. 영롱하지 아니한가   오디오 역사에서 이름 꽤나 날린 그룬디히의 ‘2040 SQ system’   하지만 2003년 당시 모기업 그룬디히 AG는 과거의 빛을 잃은 채 파산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룬디히 AG는 재무상태를 개선하고자 그나마 알짜였던 자동차 전장 사업부(차량용 오디오, 텔레매틱스, 인포테인먼트를 만들던 CIS)를 떼어내어 매물로 내놓았고, 그것을 델파이가 약 5,800만 유로에 사들인 것입니다.   기업 인수의 세계에는 이런 종류의 거래를 '카브아웃(carve-out)'이라고 부릅니다. 멀쩡한 회사를 통째로 사는 것이 아니라, 큰 몸통에서 특정 사업부만 칼로 도려내듯(carve) 떼어내어(out) 사는 거래입니다. 그리고 이 카브아웃은, 인수합병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축에 속합니다. 본디 사업부란 모기업의 회계 시스템, 인사 제도, IT 인프라에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던 조직인데 그 탯줄을 모두 끊어내고 인수한 회사의 몸에 새로 혈관을 이어 붙이는 작업은 수술로 따지면 거의 장기이식에 가까운 난이도입니다. 게다가 그룬디히 AG의 자동차 전장 사업부가 매물로 나왔을 때는 모기업이 파산 중이었고, 사업부가 독일과 미국, 두 나라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델파이는 이 까다로운 수술의 집도의로 비제이를 지명했고 그는 2003년, 짐을 싸서 독일로 건너갑니다.   인수란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끝나는 일이 아니라 그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서로 다른 두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와 사람을 한 몸으로 잇는 일을 '인수통합(acquisition integration)'이라고 부릅니다. M&A에서 돈을 버느냐 잃느냐는 사실 인수 가격보다 이 통합의 성패에서 갈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무리 싸게 좋은 회사를 사도 통합에 실패하면 그 인수는 재앙이 됩니다.   비제이는 그 인수통합을, 책상 앞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배웠습니다. 독일어가 오가는 뉘른베르크 사무실에서, 포르투갈 브라가의 생산 라인에서, 파산한 모기업에서 막 떨어져 나와 불안에 떨고 있었을 1,000명의 직원들 사이에서 발로 뛰며 결국 수술을 성공시킵니다. 그리하여 CIS는 '델파이 그룬디히'라는 이름으로 델파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14년 동안 완성한 하나의 필살기 그는 통합을 끝낸 뒤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일에 남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2017년 마테리온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무려 14년 동안 독일에 머물렀습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자신이 직접 꿰매 붙인 사업을 키우고 또 키웠습니다. 차체 보안과 메카트로닉스(Body Security & Mechatronics), 컨트롤 및 보안(Controls & Security), 인포테인먼트, 드라이버 인터페이스(Infotainment & Driver Interface) 등 부서를 차례로 거치며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2012년 2월, 델파이의 전장·안전(E&S) 부문 전체를 이끄는 수장(President)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그가 맡은 E&S 부문은 16개국에 생산·기술 거점을 두고 자율주행, 능동 안전,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연 매출 약 3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전장 사업이었습니다. 비제이는 델파이의 임원이자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기업의 중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최고위 경영진 모임)’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2003년 1,000명짜리 부실 사업 조각을 꿰매러 독일에 갔던 사람이, 14년 뒤 30억 달러 사업의 정점에 서며 자신의 필살기를 완성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성공시킨 무기를 평생 신뢰한다 비제이를 평사원에서 30억 달러 사업의 수장으로 끌어올린 무기는 바로 '인수와 통합'이었습니다. 회사를 사들이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가며 성과를 내는 것이 그의 필살기가 되었고, 그 위에 그의 커리어가 세워졌습니다.   상편에서 덕왕은 회사에서 해외향 제품을 담당하던 시절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한 번 몸에 익은 전략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성공을 맛본 조직은 계속 패스트 팔로워로 남으려 하고, 분석으로 성공한 사람은 계속 분석에 의존합니다. 자신을 정상으로 이끌어준 무기를, 사람은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합니다. 2017년, 자동차 부품 업계를 떠나 마테리온의 CEO가 된 비제이는 인수와 통합이라는 자신의 필살기를 마테리온에서도 꺼내들지 않았을까요?   마테리온에서의 비제이의 행적을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2020년, 마테리온은 스위스의 광학 회사 옵틱스 발저스(Optics Balzers)를 약 1억 3,6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1년에는 독일의 H.C. 스타크(H.C. Starck)의 일부 사업을 약 3억 9,2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2025년에는 한국의 특수 목적용 기계 제조 및 금속 복합 소재 전문기업이자 반도체 박막 증착 공정에서 필수적인 ‘고순도(99.999%) 탄탈럼 스퍼터링 타깃(Tantalum Sputtering Target)’ 소재를 독점 공급하는 코나솔(Konasol)을 약 1,95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2025년 마테리온이 인수한 코나솔 무언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인수통합 전문가가 마테리온의 운전석에 앉아서 한 일이 다름 아닌 그의 주특기인 인수였던 것입니다. 그의 31년 커리어가 마테리온에서도 주요한 경영 방식이 된 것이지요.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이 그 사람의 미래에도 반영된다는 것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비제이의 계속된 인수통합이 좋고 나쁨을 따지기에 앞서 그 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인수에 쓸 돈을 어디서 가져왔는가? 둘째, 자본배분은 어떻게 했는가?   그런데 눈치 빠른 분이라면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서두에서 의문은 세 개라더니, 갑자기 웬 질문 두 개인가?"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이 두 질문은 새로운 의문이 아니라, 서두에서 던진 세 의문 중 둘째(자사주를 왜 안 사는가)와 셋째(차입금은 정말 나쁜가)를 실제로 풀기 위한 실무적인 경로입니다. 인수에 쓸 돈의 출처를 캐다 보면 자연히 차입금에 닿고, 자본배분을 따지다 보면 자연히 자사주 매입 습관에 닿기 때문입니다. 큰 의문 셋은 그대로 두고, 그것을 손에 잡히게 좁힌 작업용 질문 둘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이 두 질문이 40장과 41장의 주제입니다.   그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비제이가 달리고 있는 도로를 먼저 점검하겠습니다. 이 점검의 도구로는 앞서 익힌 세 개의 도구 중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을 사용하겠습니다.   파픽의 시선으로 본 비제이를 둘러싼 제약들 상편 36장에서 우리는 6중 제약이라는 도구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국가'를 분석했습니다. 파픽의 도구는 국가뿐 아니라 국가 지도자, 그리고 기업의 경영자를 분석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제이가 아무리 인수라는 필살기를 가졌어도, 그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반드시 회사가 처한 ‘제약’을 감안하여 그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의사결정자는 제약 속에서 움직입니다. 파픽의 표현을 빌리면, 지도자의 '선호'보다 '제약'이 결과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트럼프는 이란을 폭격하고, 핵무기 가능성을 뿌리뽑고 미국에 친화적인 정권을 세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호르무즈를 둘러싼 지정학적 제약으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해군력과 지상 병력을 투입할 수 없으며, 유가와 소비자 물가에 의한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전쟁비용을 과도하게 쓰기 어렵고 군대를 지속적으로 전쟁에 동원하는 것에도 법적 제약 등에 부딪혀 제한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약’이 행동을 부르는 마리오네트라고 말해도 부족함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비제이에게 작용하는 여섯 제약 중, 그의 행동을 가장 강하게 규정하는 네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국내 정치, 경제 금융, 헌법 제도, 정보 불완전성)   첫째, 국내 정치 제약: 이중의 족쇄 여기서 '국내 정치'란 회사로 치면 이사회·주주·규제당국이라는 내부 권력 구조를 말합니다. 비제이에게는 이 족쇄가 두 겹입니다.   한 겹은 미국 정부입니다. 상편에서 우리는 마테리온이 베릴륨을 사실상 독점한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독점은 '미국 정부의 관리와 지원 아래 있는 독점'입니다. 마테리온은 ‘국방물자생산법(DPA) Title I’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 조항에 따라 미국 정부는 마테리온에게 "정부 계약을 다른 민간 주문보다 우선해서 처리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마테리온은...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2/2

게시판 용량 제한이라는 불의의 일격으로 1/2에 이어 씁니다. (어쩐지 철야작업을 해도 안 끝나더라니...) 1/2를 읽지 않으신 분께서는 먼저 읽고 와주십시오. ㅠ ㅠ 차원 3. 매도 시점과 방식 ─ 10b5-1 자동 매도와 Trading Window 세 번째 차원에서는 매도가 일어난 방식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경영진이 행여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얻거나 위험을 회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10b5-1 사전채택 자동 매도 plan’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 SEC가 인정하는 합법적 분산 매도 계획이지요. 임원이 내부정보를 알기 전 시점에 미리 자기 매도 일정 ─ 언제, 얼마나, 어떤 가격에 ─ 을 정해두면 그 일정대로 자동으로 매도가 일어나도 내부자거래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안전장치입니다. plan 채택 후 보통 90일의 cooling period가 필요하지요. 채택 사실은 SEC Form 4에 공시됩니다. 이는 장모님 칠순 잔치를 90일 전에 식당에 예약해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가족 분위기가 어떻든 예약은 그대로 작동하지요.  마테리온 CFO Chadwick의 2026년 3월 3일 매도기록을 다룬 SEC Form 4 공시문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pursuant to a Rule 10b5-1 plan adopted on 2025. 12. 1" 이는 해당 주식 매매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거래가 아니라, 2025년 12월 1일에 미리 예약해 둔 계획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행된 거래임을 증명하는 문구입니다. Chadwick이 plan을 채택한 2025년 12월 1일 시점에서는 2026년 2월의 실적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결코’는 아닙니다. 알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알아내겠지요) 그날 정해둔 일정에 따라 2026년 3월 3일에 자동으로 매도가 일어났을 뿐입니다. 회사 내부에 대한 본인의 판단을 매도 행위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90일 전에 미리 정한 분산 일정이 그날 작동한 것을 뜻합니다.  다음은 Trading Window입니다. 미국 상장사가 임원에게 매매를 허용하는 시기입니다. 분기 실적 발표 직후 약 2주간 열립니다(회사마다 다름). 그 외 시기는 매매가 금지되지요. 이를 blackout period라고 부릅니다. 평소에는 임원이 자기 회사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고 오직 trading window가 열린 짧은 기간에만 가능합니다. 회사가 임원에게 "이 2주 동안만 매매 허락한다"고 정해주는 통금 해제 시간 같은 것입니다. 마테리온의 경우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가 2026년 2월 14일이었습니다. 그 직후 2월 17일부터 trading window가 열렸지요. 임원 5명의 매도가 그 윈도우 시작일에 집중된 것은 평소 매매를 자제하던 분들이 허락된 시기에 한꺼번에 분산 매도를 진행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차원 검증 종합 세 차원이 가리키는 결론을 한 표로 모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 차원은 기존의 '하'편과 다른 결론을 말합니다. 이 매도 클러스터는 회사 내부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임원들이 도망치는 신호가 아닙니다. 정상 거버넌스 규정 안에서, 미리 정해진 자동 매도 일정에 따라, 허락된 시기에 분산 매도가 진행된 결과이지요. 덕왕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이번 검증은 사실 가치함정의 또 다른 분류인 '증상' 중에서도 '비효율적 지배구조'와 '이사회 독립성'에 해당하는 거버넌스 특징을 미리 점검한 셈입니다. 심화편-하의 제4부에서는 이 결과를 다른 일곱 축(원천 네 가지 + 증상 두 가지 + 거버넌스 외 한 가지)과 합쳐 8각 종합 진단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리를 한 줄 미리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잉 해석하지 않는다 위의 검증이 끝났다고 해서 "임원 매도 = 회사에 대한 신뢰 표현"이라는 1차원적인 긍정론으로 넘어가지는 않겠습니다. 그 자리로 가는 것은 다른 의미의 과잉 해석일 수 있습니다. 매도 가격대를 보자면, 임원들의 매도가 일어난 주요 가격대가 146달러에서 157달러 사이입니다. 그 시점의 마테리온의 보정 PER은 약 35배, EV/EBITDA가 약 20배였습니다. 5년 중앙값(보정 PER 약 21배, EV/EBITDA 13배)을 한참 위에 있는 구간이지요. 임원들이 분산 매도를 이 가격대에 집중적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은 그 분들의 입장에서 "지금 주가가 충분히 반영된 가격대"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임원도 사람인지라 비싸지면 그들도 팝니다. 회사 내부에 문제가 있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유분의 시장 가치가 충분히 올라온 시점에서 분산 매도가 작동한 것이지요. 색안경 너머로 같은 데이터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지가 보입니다. 회사 내부에 우리가 모르는 이상 신호가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임원들도 현재 주가가 본인 보유분의 충분한 가치를 반영했다고 판단하는 가격대라는 시그널은 정직하게 받아들여 대응했다는 흔적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챕터 용어 한눈에 보기 미국 상장사의 임원 보상 구조와 매매 규정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이 챕터에서 새로 나온 용어를 한 표로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이 표에 나오는 용어만 머릿속에 가지고 가신다면 본문에서 다시 이 용어들이 나와도 막힘없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심화편-하로 넘어가는 다리 자, 여기까지가 심화편-상의 마지막 챕터였습니다. 제2부가 38장에서 마무리되는 자리이지요. 같이 달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심호흡하며 정리하겠습니다. 심화편-상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점검했습니다. 제1부에서는 마테리온이 좋은 회사인가를 물었습니다. 1부의 세 챕터(34·35·36장)를 거치며 외부 산업 조건과 해자를 종합한 결과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라는 데까지 도달했습니다. 우주·방위·핵융합 세 전선이 동시에 살아 있고, 5 Forces 22/25점, 6중 제약으로 본 지정학적 입체 구조가 미국 편에서 매우 단단합니다. 특히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대만 방어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못하는 자리와 NATO에서 발을 빼는 자리에서 마테리온의 의미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는 것까지 보았지요. 제2부에서는 ...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1/2

나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최강의 금속, 심화편 ‘상’ 1/2 프롤로그: 곰탕을 우려내는 마음으로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날씨가 무더워진 요즘,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지난 세 시간에 걸쳐 베릴륨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야무지게 살펴보았습니다. '최애의 아이'의 주인공 아쿠아마린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여정이 보석의 세계와 과학의 역사를 지나 마침내 세계관 최강자인 마테리온을 살펴보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하'편을 마치며 마테리온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남겼습니다. "마테리온은 분명 단단한 해자를 가진 좋은 회사 같은데 몇 가지 신호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 자사주를 거의 사지 않는다. 둘째, 임원들이 자기 회사 주식을 무더기로 팔고 있다. 회사가 정말 좋다면 왜 그 좋은 회사의 주인들이 사지 않고 팔기만 할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내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셋째, 차입금과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영업레버리지 전략이 실패할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으로 인해 저처럼 마테리온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깊이 알아보지 않은 채, '부정성 편향 (Negativity Bias)'에 빠진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의문을 풀지 않고서는 후회없이 글을 썼다 할 수 없을 것이며, 편히 잠을 청할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셨다면 이번 심화편이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먹었던 상편·중편·하편은 기사식당의 백반입니다. 양도 적당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며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깊은 맛은 아닙니다. 그에 비해 이번 심화편은 48시간 푹 고아 우려낸 진한 곰탕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정성을 들여 음식을 내놓는 이유는 굳이 이 어려운 밸리까지 찾아와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밸리식구들이 마치 만화 〈요리왕 비룡〉에서 천하의 진미(眞味)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돌며 궁극의 레시피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들처럼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변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대충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면 마치 애니에서 나오는 까칠한 캐릭터처럼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이걸 요리라고 내오신 겁니까"라고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릴 수도 있기에 덕왕은 마땅히 노력을 다해 최고의 한끼를 선물하고자 합니다. 다만 저의 배움이 깊지 않아 다양한 요리를 내어드릴 수 없음이 통탄스럽지만 깜냥 내에서 노력을 다해 글을 쓰고 이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디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다만 다 드실 때까진 못 나가시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곰탕을 남긴다? 이건 섭섭하지요) 이번 심화편이 던지는 질문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편 마지막에 떠오른 의문은 사실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테리온은 좋은 기업이 아닌 것인가? 혹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마테리온은 좋은 기업이 되는 것인가? 더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이번 심화편에서는 지난 하편에서 다룬 자사주 매입 부재와 임원 매도 클러스터라는 두 가지 신호를 단지 1차원적으로 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재무데이터와 거버넌스 규정, 그리고 다른 회사들과 비교하며 정밀하게 검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전통적 방법과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검증의 끝에서 진짜 의심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좋은 회사인 마테리온이 좋은 주식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기대합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번 심화편은 분량이 상당하기에 상, 하편으로 나눕니다. 또한 새로운 개념과 생소한 내용도 있기에, 사용할 도구와 목차에 대해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잃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글에 사용하는 도구들에 대해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복잡하고 긴 의문을 논리적, 효율적으로 검증하려면 그에 적합한 도구를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나 길고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평가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흔히 회사의 적정주가를 구할 때 우리가 꺼내는 도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DCF나 DDM, RIM 등으로 대표되는 내재가치 평가이며, 다른 하나는 PER이나 EV/EBITDA 등으로 대표되는 상대가치 평가입니다. 이 두 도구는 강력하고 검증된 도구이며 밸리AI의 많은 뉴런분들도 이 곳 밸리의 강의 지옥 속에서 어떻게든 배우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기업의 주가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계산하는 내재가치 평가와 상대가치 평가는 '지금까지 확보된 지식'에만 기반하는 강력한 '현재적'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덕왕은 회사에서 해외향 제품을 담당했었습니다. 전임자들은 경쟁사의 제품이 유행하면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베꼈습니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경쟁사 대비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미래의 히트상품을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 이 기능과 디자인이 필요한지, 각 요소가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 전략은 격차를 좁히는 데 사용되기에는 좋았으나 제품의 주기와 수명을 예측하는데는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목표 시장에 대한 경제, 문화, 국방 등 전방위적인 분석과 함께 국가의 장기적 계획과 지정학적, 법적 분석을 병행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현재 이 제품을 왜 원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것을 원하게 될지에 대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수립한 전략을 통해 나온 제품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1등을 차지하며 경쟁사들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적정주가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까지 얻어진 지식에 기반한 추정에는 커다란 오류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미래의 변화는 내재가치 평가나 상대가치 평가에서는 잘 잡히지 않기에 다른 도구로 접근해야 합니다. 회사의 성격, 산업의 형세, 경영자의 선호, 정치적 제약같은 정성적 차원이 그것이지요. 어떤 회사는 PER 12배인데 절대 사면 안 되고, 어떤 회사는 PER 35배인데 사도 됩니다. 어떤 회사는 DCF로 돌리면 적정가가 100달러로 나오는데 현실은 50달러에 거래되고 또 절대 그 가격을 회복하지 못합니다. 숫자만 보면 안 되는 영역이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심화편에서는 숫자가 잡지 못하는 영역을 잡아 줄 세 가지 도구를 먼저 챙기겠습니다. 그 세 가지 도구는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입니다. 이 세 도구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합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은 우리가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의 모양'을 외워두는 도구입니다. 마이클 포터의 5 Forces는 회사가 마주한 산업이라는 전장에서 '적의 진형'을 읽는 도구입니다.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은 그 전장이 놓인 '지형도'를 그리는 도구입니다. 함정의 모양을 외우고, 적의 진형을 읽고,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면 우리는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천지지(知天知地)의 자리에 닿게 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알고 땅을 알아야 비로소 승리가 온전해집니다. 그 세 도구를 차례로 펼쳐보겠습니다. 첫 번째 도구상자: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가치함정(value trap)이라는 말은 워런 버핏의 친구이자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었던 찰리 멍거가 즐겨 쓰던 표현입니다. 싸 보이는데 사실은 싼 게 아니라 비싼 회사, 즉 PER이나 PBR이 낮은데 그 낮은 가격조차 미래에 더 떨어질 회사를 가리킵니다. 가치함정에는 네 가지 원천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회사를 왜 함정에 빠뜨리는가"의 원인을 분류한 것입니다. 첫 번째 원천은 사양산업 함정입니다. 코닥이 대표적이지요. 1976년 미국 카메라 시장의 90%, 필름 시장의 85%를 차지했던 회사였습니다. 1996년까지도 PER 17배에 시가총액 280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 시장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먼저 만들어냈으면서도 상품화하지 않은 채 기존 필름 시장에 안주했고 시장 자체가 사라지면서, 2012년 결국 파산했습니다. 산업 자체가 죽어가는 함정은 어떤 경영자도 구해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원천은 회계 신뢰성 함정입니다. 엔론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 매출 1,000억 달러, 시가총액 700억 달러의 미국 7위 기업이었지요. 당시 엔론은 PER 55배에 거래되며 월스트리트의 총아였습니다. 그런데 2001년 12월 회계 부정이 드러나며 한 달 만에 파산했습니다. 숫자 자체를 믿을 수 없는 회사는 그 숫자 위에서 만든 모든 분석이 모래성이 됩니다. 매출도 이익도 자산도 부채도 의심해야 하지요. 회계 신뢰성을 검증하는 도구로는 알트만 Z-스코어, 피오트로스키 F-스코어, 베니시 M-스코어, 모한람 G-스코어가 있습니다. 밸리 AI의 재무비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네 지표를 통해 마테리온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 원천은 자본배분 실패 함정입니다. 잭 웰치 후기의 GE가 대표적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잭 웰치를 위대한 CEO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잭 웰치는 부임 당시 약 140억 달러였던 GE의 시가총액을 약 4,100억 달러로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잭 웰치의 임기 후기와 그의 후임 제프 이멜트 시기에 GE 캐피털을 지나치게 키웠고 비싼 가격에 인수를 거듭했으며 자사주는 주가가 비쌀 때 사들이며 연이은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같은 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회사의 운명을 가른다는 사실을 가장 비싼 수업료로 가르쳐준 사례입니다. 자본배분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CEO 손에 들어온 1달러를 어디에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자사주를 살 것이냐, 배당으로 줄 것이냐, 다른 회사를 인수할 것이냐, 공장을 더 지을 것이냐, 빚을 갚을 것이냐. 그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은 윌리엄 쏜다이크의 저서 〈현금의 재발견〉에 등장한 위대한 CEO들의 자본배분 케이스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거울삼아 마테리온의 CEO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분석해보겠습니다. 네 번째 원천은 가격과열 함정입니다. 2000년의 시스코가 대표적입니다. 1999년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의 절대 강자였고 매출은 매년 50% 이상 성장했으며 실제로 그 후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은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닷컴 거품의 정점에서 PER 200배에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기록한 순간부터 정점에서 80% 가까이 추락했고, 그 가격으로의 회복에는 2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스코는 좋은 회사였지만 그 시점의 시스코 주식은 좋은 주식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좋은 회사가 반드시 좋은 주식은 아니라는 격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을 표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도구입니다. 본문에서 마테리온을 검토할 때 우리는 이 네 가지 원천을 통해 차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가치함정에는 이 네 가지 원천 외에도 또 다른 분류가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 원천이 "왜 함정인가"라는 원인 측면의 분류(산업·회계·자본배분·가격)라면, 또 하나의 분류는 "함정에 빠진 기업이 시장에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증상 측면의 분류입니다. 이 증상 분류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① 불안한 현금흐름 창출능력, ②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③ 비효율적 지배구조, ④ 열악한 이사회 독립성이 그것입니다. 두 분류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원인 분류와 내부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 분류가 가치함정이라는 같은 현상을 양쪽에서 협공하는 입체 도구가 됩니다. 심화편-하의 제4부에서 두 분류를 함께 펼치며 마테리온을 8각 정밀 진단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미리 말씀드리면, 이번 심화편 상편에서는 첫 번째 원천인 사양산업 함정에 한정해서만 적용합니다. 나머지 세 원천과 네 가지 증상은 모두 CEO와 자본배분, 회계 신뢰성, 그리고 적정주가 분석과 직결되어 있고 이는 하편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기에 다음 시간에 다루겠습니다. (feat. 여기에 다 쓰면 죽음) 첫 번째 도구는 일단 소개만 받아주십시오. 두 번째 도구상자: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두 번째 도구는 마이클 포터의 5 Forces입니다. 이것은 마이클 포터가 1979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발표한 산업 구조 분석 프레임입니다. 한 회사가 속한 산업에는 다섯 가지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는데, 이에 대한 회사의 저항력을 측정합니다. 싸움 잘하는 '짱'을 주변 학교 다섯 명이 둘러 싼 악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편에서 다룬 바 있지만 이번 심화편에서는 더욱 정밀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다섯 압력이 모두 낮으면 회사는 편하게 돈을 법니다. 모두 높으면 회사는 죽도록 일하고도 얇은 마진만 챙기거나 천천히 망합니다. 마테리온의 경우 이 다섯 압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본문의 핵심 검증 지점 중 하나입니다. 다만 포터의 프레임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 세계, 즉 산업의 형세만 봅니다. 같은 산업에 있어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혹은 외부적 환경 변화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인데 그 부분은 5 Forces로 잡히지 않지요. 그래서 세 번째 도구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도구상자: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 마르코 파픽은 세계적인 지정학 전략가입니다. 2026년 상반기에 월가아재님의 라이브 방송에서 언급된 것을 계기로 읽게 된 그의 저서 〈지정학적 알파(Geopolitical Alpha)〉는 개인적으로 2026년 상반기 읽었던 최고의 책 중 하나였습니다. 지정학적 알파 / 마르코 파픽 / 여의도 책방 / 2022 그가 펼치는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한 국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는 지도자의 개인적인 '선호'보다 '제약'이 더 중요한 요인이 되며, 이러한 제약에는 여섯 가지가 존재합니다. 본래는 국가 차원의 분석 프레임이지만 회사의 CEO가 내린 결정의 배경을 읽어낼 때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분석의 수준이 한 단계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력한 '제약'기반 분석 도구는 미국과 중국 같은 '국가'를 분석할 때도 유용하며, 마테리온의 CEO인 '비제이바르기야'같은 '개인'의 의사결정을 검증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마르코 파픽의 여섯 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여섯 제약 중에서 처음 네 개는 비교적 단단하며 잘 변하지 않지만, 마지막 두 개는 변동성이 큽니다. 그래서 파픽은 첫 네 개를 "구조적 제약(structural constraints)", 마지막 두 개를 "와일드카드(wildcards)"라고 부릅니다. 구조적 제약 중 지정학적, 지리적 제약과 헌법, 제도적 제약은 체계적 위험에 속하기도 합니다. 이 여섯 가지 제약이 세 번째 도구입니다. 이 도구는 기존의 어떠한 투자분석에서도 깊이 있게 다룬 적이 거의 없으며 CFA 시험에서도 나오지 않지만, 수학보다는 인문학을 엣지로 삼아야 하는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덕왕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이 분야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도구 외에 하나의 책이 등장합니다. 바로 윌리엄 손다이크의 〈현금의 재발견(The Outsiders)〉이라는 책인데, 기존의 기업분석이나 투자방법, 매매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현금흐름이라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성과를 냈던 8명의 미국 CEO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윌리엄 손다이크 / 마인드 빌딩 / 2019 특히 이 책에 나온 CEO들의 자본 배분 방식은 개인 투자자가 추구해야 할 엣지 형성에 충분히 참고할 만하며, 마테리온을 비추는 거울로 삼기에도 충분합니다. 이 책 안에 있는 CEO들의 성과 하나하나가 오늘날에도 그 유산이 계승되고 있을만큼 매우 훌륭한 사례이기에 본문에서 한 사람씩 자연스럽게 등장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표로 먼저 정리해보겠습니다. 손다이크는 이 8명에게서 공통적인 자본배분의 7가지 원칙을 찾아냈습니다. 본문 곳곳에서 이 원칙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주식이 쌀 때만 사들이고, 비싸지면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싼 자산을 사는 모습은 일반 투자자가 추구해야 할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원칙의 거울로 마테리온을 비추어 살펴보겠습니다. 이로써 도구상자가 다 펼쳐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더 짚은 후 본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밸리AI식구들만을 위한 글입니다. 가뜩이나 공부할 것도 많은데 굳이 미국의 작은 회사 이야기를 이렇게 굳이 심화편까지 써가며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개인 투자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마테리온이라는 회사 자체의 성격에 있습니다. 지난 '하'편에서 살펴봤지만 이 회사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진 것처럼 보였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판단이 회색지대에 있으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실력은 발전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파보는 '경험'만이 우리의 엣지를 강화시키며 그 경험을 얻는 것이 이번 심화편의 목적입니다. 세 가지 도구상자를 통해 기업을 분석하는 것은 개인투자자에도, 기관레벨에서도 익숙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증권사가 발간한 레포트를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스스로 파묘해보는 경험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가치함정의 네 가지 원천, 마이클 포터의 5 Forces, 마르코 파픽의 6중 제약이라는 세 가지 도구상자와 함께 손다이크가 제시한 위대한 CEO들의 원칙들을 결합하여 기업의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하고 현재의 '가격'의 적절성을 시장을 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개인의 엣지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단지 이 도구들을 손에 쥐었다고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게임도 아니고 초보 목수에게 에픽 도구들이 주어졌다고 해서 바로 멋진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요. 다만 땅을 다지는 법, 주춧돌로 삼을 돌과 좋은 목재를 구별하는 눈, 그리고 환경을 고려한 설계를 머리속에 순서대로 넣고 있다면 적어도 아기돼지 삼형제급으로 망칠 가능성은 줄어들 것입니다. 결국 이 도구들은 자랑할 만한 멋진 집을 만드는 것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집을 만드는 데 그 목표가 있습니다. 분석은 대박의 기회를 찾는 것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월가아재 혹은 에이버리 혹은 스텔라)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한국에도 마침 단독 글로벌 독점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첨단소재 회사들이 있고 외부 영입 CEO가 있고 자사주 매입에 인색한 채 매도에만 집중하는 임원들이 가득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심화편을 마치고 나면 이러한 기업들을 평가할 수 있는 멋진 도구들을, 우리는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번 심화편에서 나눌 핵심 내용들을 짚어보았습니다. 끝으로 이번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줄 전체 목차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심화편 상 프롤로그: 곰탕을 우려내는 마음으로 제1부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 제34장 세 전선이 동시에 불붙다 ─ 우주, 방위, 에너지 제35장 등짝, 등짝을 보자 ─ 5 Forces로 본 마테리온의 해자 제36장 미국과 중국의 제약 ─ 파픽 6중 제약의 입체 분석 제2부 마테리온은 좋은 주식인가? 제37장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 사이 ─ 비대칭의 화두 제38장 임원매도 3차원 검증 ─ 팔기만 한다는 말의 진위 심화편 하 제3부 CEO라는 사람과 그의 자본배분 제39장 비제이라는 사람 ─ 그의 31년이 만든 도구상자 제40장 손다이크의 거울 ─ 자사주 매입 11년의 이력 제41장 차브라야의 거울 ─ 비싼 주식을 통화로 쓴다는 것 제4부 함정과 종합 진단 제42장 가치함정 원천과 증상의 결합 ─ 8각 진단 제43장 가치함정 종합 진단과 차입금이라는 진짜 의심 에필로그: 색안경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부록: 심화편 용어·개념 정리표 참고로 이번 심화편에는 적정가격과 매수와 매도에 대한 의견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적정주가 도출에 대해 아직 글을 쓸 만큼 충분하게 익히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격과 매수·매도에 대한 해석은 투자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가격도 어떤 투자철학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가치투자자에게는 비싼 가격이지만 테크로펀더멘털리스트에겐 합리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통의 관심 요소인 기업 분석에 한정하며 투자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주의: 만약 기존 상, 중, 하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면 당장 곰탕을 내려 놓고 기사식당 밥을 먼저 드시고 오시는 것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제1부 마테리온은 좋은 회사인가? 제34장 세 전선이 동시에 불붙다: 우주, 방위, 에너지 지난 세 시간에 걸쳐 살펴보았듯이, 베릴륨이라는 금속은 이상한 금속입니다. 알루미늄보다 1.5배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단단합니다. 전기는 막는데 열은 또 잘 전달합니다. 그리고 X선도 통과시킵니다. 다른 금속들은 X선을 막지만 베릴륨은 거의 그대로 통과시킵니다. 우리가 찍는 X-Ray 기기에 베릴륨으로 만든 튜브 부품이 들어갑니다. 이 네 가지 특성 ─ 가볍고, 단단하고, 열을 잘 전달하고, X선이 통과한다 ─ 을 한꺼번에 가진 조합은 오직 베릴륨뿐입니다. 그래서 이 금속은 산업계에서 주전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손흥민급 선수입니다. 다만 계속 경기를 뛰고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는 오직 그 팀이 얼마나 발전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릴륨이 활약한 산업이라는 전장에 대해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베릴륨이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 개의 전선은 바로 우주, 방위, 에너지입니다. 전선 1. 우주산업 우주산업에서 베릴륨이 가장 빛나는 자리는 망원경의 거울입니다. 우주 망원경의 주거울은 매우 가벼우면서 정밀하며 극한의 조건에서도 신뢰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무거우면 발사 비용이 폭발하고 신뢰도가 낮으면 비싼 쓰레기가 됩니다.(실제로 허블 우주망원경이 그렇게 될 뻔 했습니다) 베릴륨은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유리보다 단단해서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합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그 대표 사례입니다. 2021년 발사된 이 망원경의 주거울은 베릴륨 18장을 벌집 모양으로 이어붙인 6.5미터짜리입니다. 이 거울에 들어간 베릴륨은 마테리온이 공급했지요. 정확히는 마테리온의 자회사인 Brush Wellman이 1990년대 후반부터 NASA에 베릴륨 광학 그레이드를 공급해 왔고 마테리온이 2011년 사명을 바꾼 뒤에도 계속 담당하고 있습니다. JWST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 세대의 우주망원경 ─ NASA의 NGRST, ESA의 Plato 미션 ─ 도 모두 베릴륨 광학을 검토 중입니다. 그리고 미국 NRO(국가정찰국: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는 첩보위성에 베릴륨 광학제품을 정기적으로 사용합니다. 정확히 어떤 위성에 얼마나 쓰는지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NRO의 단독 예산도 공식적으로는 비공개로 분류되어 있으며, 공개된 마지막 단독 수치는 2013년 Snowden 자료 기준 약 $10.3B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ODNI가 공개하는 National Intelligence Program(NIP) 총액이 FY2024 기준 약 $76.5B에 달하며, NRO는 그 NIP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NRO 광학 위성의 베릴륨 수요 비중에 대한 외부 추정치들이 일부 산업 보고서에 등장하지만, 1차 자료로 공개된 수치는 없으므로 정확한 비율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NRO의 베릴륨 광학 수요는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Space-X 같은 민간우주기업들의 발사체 사업과 스타링크로 대표되는 저궤도 위성군의 가세도 베릴륨 수요 증가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스페이스X 스타링크, 아마존 카이퍼, 중국 GW(귀왕), 인도 ISRO가 모두 자기 위성군을 띄우고 있습니다. 이 위성들 중 일부는 광학 카메라를 탑재하고 그 카메라 중 일부는 베릴륨 광학을 씁니다. 무게가 곧 돈인 시장에서 한 그램이라도 가벼운 거울은 발사 비용을 낮춥니다. 전선 2. 방위산업 베릴륨이 가장 결정적으로 쓰이는 곳은 사실 방위산업입니다. 무기 시스템에서 베릴륨은 당당히 두 자리를 차지합니다. 첫 번째 자리는 정밀 광학입니다. 베릴륨은 5세대 전투기의 핵심 부품에 필수적입니다. F-35 전투기의 눈 역할을 하는 EOTS(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의 하우징(껍데기)에 마테리온이 공급하는 특수 알루미늄-베릴륨 합금(AlBeCast®) 등이 쓰입니다. 이 합금은 알루미늄보다 22% 가벼우면서도 강철보다 6배 단단하여 고속 비행 시 카메라의 진동을 잡아줍니다. 그 외에도 랜딩기어 부싱, 전기 커넥터 등에 구리-베릴륨 합금 형태로 한 대 당 수십 킬로그램(kg) 이상이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F-35 한 대당 정확한 베릴륨 사용량은 록히드마틴·국방부 모두 비공개이며, 외부 추정치들이 산업 보고서 형태로 유통될 뿐입니다). 특히 F-35는 미국이 동맹국에 수출하는 5세대 전투기로 2026년 현재까지 1,000대 이상이 생산되었고 향후 3,000대 이상이 생산될 예정입니다. EOTS 한 세트당 베릴륨 사용량은 작지만 3,000대 곱하기 한 세트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양이지요. 전투기 단독 소비량과 위성/우주 프로그램을 포함한 국방 예산 자료를 통해 연간 총소비량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USGS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6(2025년 데이터 기준)에 따르면 미국 전체 베릴륨 apparent consumption(실질 소비 추정치)은 2025년 약 230톤으로, 시장 규모는 약 3억 6천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USGS 자료에서 베릴륨 제품의 매출 기준 용도 비중은 소비자 전자 약 29%, 항공우주·방산 약 24%, 산업부품 약 17%, 자동차 전자 약 9%, 에너지 약 8%, 반도체 약 2%, 기타 약 11%로 제시됩니다. F-35 전투기의 제조사 록히드마틴은 SEC 공시 기준 2024년 110대, 2025년 사상 최대인 191대를 인도했습니다(Lockheed Martin Form 8-K, 2026년 1월). 미 국방부의 단독 베릴륨 소비량은 별도로 공식 발표되지 않으나, F-35 프로그램의 연 150~190대 생산 규모와 합금 부품에 들어가는 베릴륨 양을 종합할 때 F-35 프로그램만으로도 가공 시 손실분 포함 연간 수십 톤 규모의 베릴륨 원료가 소요될 것이라는 산업 추정치들이 모입니다. 마테리온의 오하이오 엘모어 정련소가 연 약 130톤(공급망 자료 기준)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F-35 하나의 프로그램이 마테리온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는 셈입니다. 두 번째 자리는 핵억지력입니다. 미국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에는 베릴륨이 들어가는데, 정확히는 핵탄두의 1차 단계(primary stage)에 쓰입니다. Teller-Ulam 설계의 열핵무기에서 플루토늄 코어 주위를 감싸는 얇은 베릴륨 층은 두 가지 결정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하나는 ‘중성자 반사체’로서 플루토늄의 임계 질량을 낮춰 핵분열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유의 X선 투과성(X-ray transparency)을 활용해, 1차 단계 폭발 시 발생한 X선을 흡수·차단하지 않고 2차 단계로 손실 없이 빠르게 통과시켜 ‘복사 임플로전(Radiation Implosion) 압축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성자는 강력하게 반사하면서도 X선은 그대로 통과시키는 이중적 특성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금속은 베릴륨 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시 똑똑한 밸리인 답습니다. (feat. 믿고 있었다구!) 미국은 현재 보유 중인 ICBM 미니트맨3를 센티넬(Sentinel)이라는 신형으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2024년 7월 미 공군 발표에 따르면 센티넬 프로그램의 총 예상 비용은 1,410억 달러로 부풀어 있고 초기 능력은 2030년대 초, 전면 배치는 2050년대 목표로 일정이 다시 잡혀 있습니다. 1,410억 달러짜리 프로그램에서 ─ 노스럽 그루먼이 주계약자이고 록히드마틴이 재진입체(Mk21A)를 만들고 NNSA가 W87-1 탄두를 새로 만드는 ─ 그 모든 탄두의 1차 단계에 베릴륨이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테리온이 미 국방부에게 어떤 위상의 회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핵잠수함의 핵탄두,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탄두,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핵억지력 시스템도 베릴륨을 사용합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베릴륨을 공급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통로가 마테리온이지요. 그렇다면 이 방위산업 전선은 더 격렬해질까요? 거시 데이터가 그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부를 둔 독립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가 2026년 4월 27일 발표한 Trends in World Military Expenditure, 2025 Fact Sheet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군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실질 +2.9%, 11년 연속 증가). 한 해 전인 2025년 4월 28일에 발표된 2024년 데이터는 2조 7,180억 달러였고 실질 +9.4%로 1988년 이래 가장 가파른 연간 증가율이었습니다. (출처: SIPRI Fact Sheet, 2025-04-28 및 2026-04-27) 미국의 2025년 -7.5% 감소는 FY2025 예산의 회계상 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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