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컬러로 보고, 흑백으로 배우다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당신은 세상을 컬러로 보는가, 흑백으로 보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컬러로 본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은 둘 다 맞다. 우리는 주변 환경의 밝기에 따라 세상을 컬러로 보기도 하고, 거의 흑백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잠들기 전 불을 끄고 잠시 방 안을 바라보자. 색은 서서히 사라지고, 명암과 윤곽만 남은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야간에도 인공조명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색이 거의 사라진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 오히려 드물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색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흑백사진을 찍는 것일까?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이 질문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세상이 컬러로 보이는데 굳이 흑백사진을 찍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의 내 사진 작업은 대부분 컬러였다. 내가 실제로 보고 있는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흑백사진도 자주 촬영하고 보정한다. 흑백 작업은 단순히 사진에서 색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었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서 빛과 그림자, 형태와 질감, 화면의 균형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백사진을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다루는 과정은 오히려 컬러사진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늘은 컬러사진과 흑백사진 사이에서 내가 해왔던 고민을 따라가 보려 한다.
인간에게 지식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주목을 끄는 중요한 현상들을 인지함으로써 비로소 일깨워진다. 이러한 흥미가 지속적인 것이 되려면 우리로 하여금 대상들을 점차로 친숙하게 만드는 더욱 내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는 그 안에 있는 거대한 다양성을 보게 된다.
-괴테의 색채론 서문 중 -
'파우스트'라는 소설로 유명한 괴테이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색'에 대해 깊이 고찰한 철학자였다. 색채론의 서문에서는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색)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을 말하며 시작한다. 당시에도 색은 너무나 당연하게 지각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보면 꽤나 비과학적인 내용들이 많고 장황한 내용이지만 색채론이라는 책까지 집필한 것을 보면 그의 색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보다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색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막상 설명하려 하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눈은 수많은 구조로 이루어진 빛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다. 특히나 망막에 존재하는 세포들은 빛의 명암과 색을 인식하는데 핵심적인 세포이며 이 세포의 수와 분포에 따라 사람마다 색과 명암을 인식하는 능력이 차이가 난다.
Front. Cell Dev. Biol.,2022
우리 눈에는 간상세포(rod cell)와 원추세포(cone cell)라는 두 종류의 광수용체가 있다. 간상세포는 주로 어두운 환경에서 빛의 밝기와 대비를 감지하고, 원추세포는 상대적으로 밝은 환경에서 색을 구분한다. 원추세포는 반응하는 파장대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며, 이들의 신호가 조합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색을 인식한다. 그래서 색맹이 아닌 이상 빛이 충분한 조건에서 우리는 컬러로 세상을 인식한다. 망막에는 대략 9천만 개에서 1억 개 이상의 간상세포와 약 600만 개의 원추세포가 존재한다. 15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수적으로는 간상세포가 압도적으로 많다. 어두운 환경에서 미세한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 진화적으로 생존에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어두운 환경에서는 간상세포만 활성화가 되기 때문에 세상을 흑백으로 보게 된다. 이러한 해부학과 세포생물학의 기반이 없던 시절 괴테의 논의는 사실 지금보면 헛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상을 흑백으로도 컬러로도 볼 수 있다.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의 선택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를 근거로 드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망막에는 간상세포가 훨씬 많으므로 명암이 색보다 본질적인 감각이며, 따라서 흑백사진이 더 근본적인 사진이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는 우열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도 환경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세포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감각이 더 본질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흑백사진의 우월성을 피력하기 위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흑백과 컬러 중 무엇이 더 본질적인지를 생물학으로 결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사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인간의 시각에 더 가깝느냐가 아니라, 사진가가 흑백과 컬러의 선택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가이다. 흑백은 색을 제거함으로써 형태와 명암, 구조를 강조하고, 컬러는 색을 통해 감정과 관계, 시대와 장소를 드러낸다. 둘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의 문제다.
흑백사진은 애초에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졌다. 감광재는 빛의 농도와 유무만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초기 카메라 기술에서는 색이라는 정보를 담을 기술이 부족했다.
카메라의 프로토타입인 카메라 옵스큐라. 바늘구멍 사진기라 생각하면 좋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어두운 상자 안에 역상의 이미지를 만든다.
Joseph Nicéphore Niépce, View from the Window at Le Gras, 1827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제작되었고 현재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사진이다. 최초의 사진이라기보다 가장 오래 보존된 사진이라 보는 것이 맞다. 그냥 철판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밝은 부분에 건물의 실루엣과 나무, 굴뚝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주석합금판을 이용해서 촬영했고 노출 시간은 약 8시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초기 사진에서는 감광도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노출시간이 몇시간은 기본이었다.
1820년대에 사진이 등장한 이후 컬러사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30년대까지, 약 100년 동안 흑백사진은 사실상 사진의 표준이었다. 컬러 필름이 등장한 이후에도 흑백사진은 오랫동안 예술사진의 주류로 남아 있었다. 컬러사진이 예술로 쉽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컬러가 지나치게 대중적이라는 점에 있었다. 컬러사진은 광고, 패션 잡지, 여행 엽서, 관광사진, 가족사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예술은 익숙한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새로운 시선과 형식, 의미를 제시해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누구나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컬러이미지는 이러한 예술관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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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 컬러사진을 선택하신 이유들을 듣고 사진을 보니 이해가 더 잘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우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흑백과 컬러라는 키워드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전개하시는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b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금요일이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하신대로 흑백사진이 질감, 구도 같은 부분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도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무엇을 뺄 지 결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험하는 자아가 되어보라는 가르침이 녹아있는 좋은 글과 사진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도 건강하고 즐거운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에 버려 마땅한 기억은 없다. - WSAJ"
오늘도 좋은 칼럼 잘 보고 갑니다 :)

월가아재님의 명언이지요.^^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주도 건강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으어ㅓㅓㅓㅓㅓ 매번 느끼지만 글 내용과 사진의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시리즈 연재 오래오래 해주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