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분기의 초입에서
지난번, 미국과 세계 각국의 금리 방향성이 서로 갈라지는 이른바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초입에 서 있다는 짧은 언급과 함께 글을 마쳤었다. 그리고 오늘,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일본은행(BOJ)은 시장의 컨센서스대로 정책 금리를 0.50%에서 0.75%로 인상했다.
많은 전문가들과 경제 교과서는 이번 인상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촉발하고, 그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 큰 충격이나 폭락(Crash)이 올 것이라 염려한다. 물론 타당한 우려다. 하지만 나는 이 흐름을 지켜보며 조금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어쩌면 위기는 우리가 예상하는 요란한 '폭락'의 모습이 아니라, '선택적 청산'과 '조용한 증발'이라는, 조금은 낯선 형태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유동성이라는 마지막 날개
돌이켜보면 과거의 엔화는 참으로 단단한 통화였다. 수출 대국으로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무역 흑자가 있었고, 위기가 닥치면 해외에 나갔던 자금이 본국으로 회귀(Repatriation)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세계 최대 순채권국'이었다. 게다가 오랜 디플레이션 덕분에 현금만 쥐고 있어도 가치가 보전되는 안전한 저장소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기둥들은 하나둘 옅어졌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구조적인 적자로 돌아섰고, 30년 넘게 지켜온 순대외자산 1위 자리를 독일에게 내주었다는 소식은 엔화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어쩌면 엔화에 남은 마지막 장점은 '금리가 싸서 빌려 쓰기 좋다'는, 오직 유동성 하나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0.25% 인상은 그 마지막 장점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일본 중앙은행의 결정이 경제학적으로는 옳았을지 몰라도, 시장의 논리로 보자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굳이 엔화를 보유해야 할 유일한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매력을 잃은 통화가 과연 금리를 올린다고 강세로 돌아설 수 있을까? 심지어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는 내각의 재정 확대까지, 엔은 오히려 시장에서 조용히 소외되는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되물어보게 된다.
3. P = V / C, 버블 붕괴 아닌 '발산'이라는 경로
흔히들 엔 캐리 청산이 대규모 자산 투매로 이어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는 아주 단순한 공식을 떠올려보면,
분모인 화폐(엔화)의 가치(C)가 하락한다면, 분자인 실질 가치(V)가 그대로여도 가격표에 적힌 숫자(P)는 오르거나 유지되는 착시가 일어난다.
지금 시장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모든 것을 파는 공포'가 아닌 듯하다. 가치가 희석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