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주인, 윤가은>

<벚꽃 종례, 권영민>
연인 덕에 세계의 주인을 보고, 벚꽃 종례를 봤다.
주인이의 세계는 묵직하게 울렸고, 아름이의 종례는 가볍게 흩날렸다.
세계의 주인은 단순히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벚꽃 종례는 단순히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그들의 의지보다 어른들의 의사와 사회 시스템에 의해 바뀌고 결정된다. 보호와 안정은 때로 자율성을 대체하는 언어로 작동하고, 이때는 개인이 아닌 구조의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그들의 일상은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휩싸이며, 안정이라는 이름의 불확실성에 놓이게 된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 타의는 악의가 아니라, 단지 규칙과 제도로 아루어진 큰 타자의 형태를 띤다. 청소년은 자신의 욕망을 말하기 전에, 타자의 언어로 먼저 규정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년을 벗어난 우리 모두 시스템과 관계망이 만든 동선 위에서 움직인다.
그럼에도, 이런 환경 속에서 도전하고 내던지는 자신과 자신의 감정들은 너무나도 날 것이지만, 진정으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미완성이라서가 아니다. 재채기를 참을 수 없듯이, 언어로 규정되기 전에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온다. 구조의 압력에 눌리고 흔들림에도 튀어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진짜 자아가 남기는 신호 같은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이런 시절이 지나갔다. 당시에는 부정했지만, 지나고나서야 알게 된다. 선물 같고 축복 같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