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경우 객관은 주관 보다 우위에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객관적으로'라는 이야기는 많이 듣고 사용하지만, '주관적으로'라는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득 이 이야기는 뒤집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객관客觀. 사전적으로는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좋다, 아니 좋아 보인다. 편향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조금 더 옳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객관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다. 주체가 있다는 것이고 결국 주관主觀이 된다. 객관을 받아들이는 나로 인해 객관도 주관이 되는 것이다.
말이 어려워 지는 것 같다.
주관을 고려하지 않고 객관만을 논하는 것은 피상적일 수 있다. 문득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유명하다.)이 떠오른다. 결국, 모든 탐구는 나를 아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면, 최근 주관의 힘을 크게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평온한 상태, 직접 연관되는 일이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되는 환경에서는 객관을 찾고 그것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불안정한 상태, 나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일, 이해관계가 크게 개입되는 경우 나의 주관은 온전히 머리가 이해한 객관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하는 조언이나 충고를 나에게 적용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내려보려고 한다.
'객관을 위한 훈련도 중요하다. 하지만 객관을 받아들이는 주관의 영역도 훈련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