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개인적으로 투자에서의 기회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서 베팅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하여 찾는 객관적 기회
같은 상황을 해석하는 방법을 달리 하며 찾는 주관적 기회
1번의 기회은 굉장히 명확하다.
개인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순매수뿐만 아니라,
공매도, 옵션, 선물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장이 횡보할 때에도 롱숏을 동시에 잡기도 하고,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공부를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다.
하지만, 2번은 매우 애매하다.
일단, 1번에 해당하는 기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해석하는 폭이 좁기 때문에,
'지수가 오르면 주식으로 돈을 번다'와 같이 몇가지 인과관계로 전체적인 상황을 일반화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1번에 해당하는 공부를 끝내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도
2번에 해당하는 문제로 인해서 수익률이 나빠지는 상황도 우리는 볼 수 있다.
결국 2번을 문제에서 기회로 어떻게 전환하는가가 투자 수익률에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월가아재님은 확률적 사고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줄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확률적 사고를 하면 이런 문제를 줄일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어떻게 해야 확률적 사고를 잘할 수 있을까?
일단, '주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체의 감각기관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몸에 달린 감각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하는게 과연 맞을까?
우리 마음대로 감각기관의 신호를 편집하거나 조작하지는 않을까?
설명 영상: https://youtu.be/TCQbygjG0RU
'고무손 착각'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참가자를 의자에 앉히고, 한쪽 팔은 탁자 아래로 숨기고 눈앞에 고무손(모형 손)을 놓는다. 참가자가 고무손을 자신의 손이라고 생각하도록 자리잡는다.
실험자는 참가자의 숨겨진 진짜 손과 고무손을 정확히 같은 리듬과 같은 방식으로 동시에 쓰다듬거나 붓으로 간지럽힌다.
이렇게 15-30초 정도 동시에 자극하면, 참가자의 뇌는 "눈으로 보이는 손(고무손) = 내 손"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참가자에게 "어느 손이 당신의 손인가?"라고 물으면, 많은 경우 고무손을 자신의 손이라고 답한다.
고무손을 위협하거나(칼로 찌르거나 불로 위협) 자극하면, 참가자는 진짜로 두렵거나 아프거나 간지러운 반응을 보인다.
이 실험은 학창시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환청이나 환각같은 뇌의 착각이 꼭 마음에 병이 있어야만 나타난다는 편견을 깨주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확장해보면, 사실 이런 현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시 현상: 주변 밝기와 색상의 대비에 의해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현상으로, 뇌의 측면 억제(lateral inhibition)와 깊이 지각 이론이 작용한다.
몬더그린 효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나 불명확한 음성을 자신의 모국어나 익숙한 언어 체계로 자동 재해석하는 현상으로, 기존 언어 지식과 새 정보의 인지적 부조화를 뇌가 추론과 가정으로 채워 일어난다.
플라시보 효과: 실제로는 약효가 없는 물질을 진짜 약이라 믿고 복용했을 때 뇌의 중전두회(mid-frontal gyrus) 활성화로 인해 실제 증상이 완화되는 현상으로, 기대가 뇌의 도파민 분비와 통증 억제 신경망을 활성화한다.
작화증: 기억 손상이 있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럴듯한 정보로 채워 자신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진심으로 믿게 되는 현상으로,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손상으로 인한 비판적 검증 기능의 저하로 발생한다.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우리는 감각기관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즉, 우리는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긴 하지만,
결국 그 정보를 바탕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는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뇌는 들어온 감각 신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내부 모델을 사용하여
현재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왜 이렇게 동작하는지에 대해서,
현대 신경과학은 뇌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면서 오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동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뇌의 '예측 처리(predictive processing)' 또는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라 부른다.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다음의 과정을 순환적으로 반복한다.
예측 생성: 뇌는 과거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미래의 감각 입력을 능동적으로 예측한다. 이는 뇌가 외부 자극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 모델(internal model)을 사용해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를 미리 구성한다는 의미다.
오차 계산: 실제 감각 입력이 뇌의 예측과 얼마나 다른지를 계산한다. 이 차이를 '예측 오류(prediction error)'라고 부르며, 오류가 클수록 뇌는 주의 깊게 정보를 처리한다.
모델 수정: 오차를 줄이기 위해 뇌는 내부 모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예측이 맞으면 모델은 유지되고, 예측이 틀리면 그 정도에 따라 모델이 수정된다. 이 과정을 통해 뇌는 환경에 더 잘 적응하고, 다음 상황에 대해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은 베이지안 추론(Bayesian Inference) 원리에 기반한다.
뇌는 기존의 신념(사전확률, prior)과 새로운 증거(우도, likelihood)를
확률론적으로 결합하여 최적의 해석(사후확률, posterior)을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의 뇌가 뇌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감각 정보 속에서도
가장 가능성 높은 해석을 신속하게 도출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본 현상들은
모두 이러한 예측적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
고무손 착각: 뇌가 "만지는 감각 + 보는 손"의 동시 자극을 예측했고, 그 예측이 고무손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고무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뇌의 내부 모델에서 "신체 부위는 감각과 시각 신호가 동시에 온다"는 예측이 실제 입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착시 현상: 뇌가 주변 맥락(밝기, 색상, 인접한 물체의 크기)을 바탕으로 대상 물체의 크기나 밝기를 예측하지만, 실제 시각 신호가 예측과 다르면 그 차이를 뇌의 내부 모델에 따라 해석한다. 망막에서 받은 신호보다는, 뇌가 과거 경험으로부터 만든 예측이 최종 지각을 결정하기 때문에 착시가 발생한다.
몬더그린 효과: 뇌가 불완전한 음성 신호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 패턴(사전확률)으로 가장 그럴듯한 의미를 예측하고, 그 예측이 받은 음성 신호의 오차 범위 내에 있으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경험적으로 쌓아온 사전확률을 토대로 예측하다보니, 원래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 뇌가 "약을 먹었다"는 강한 기대(사전확률)를 형성하면, 이것이 미래의 신체 상태에 대한 예측을 만든다. 기대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을 통해 뇌줄기의 통증 억제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실제로 신경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뇌의 예측이 신경계의 물질적 변화를 직접 조절하는 것이다.
작화증: 뇌 손상으로 인해 기억이 불완전해지면, 뇌는 손상된 부분을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일반적인 패턴(사전확률)으로 채워 넣는다. 그리고 안와전두피질의 손상으로 인해 이 채워진 정보가 실제 기억인지 예상에 불과한지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 정보도 진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동일한 원리가 깔려 있다.
뇌는 감각 입력 자체보다 그에 대한 예측을 더 크게 신뢰하며,
예측과 입력 간의 오차를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자신의 내부 모델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우리의 뇌가 예측하는 기반인 '사전확률'은 보통 우리의 경험으로 쌓인다.
정리하면, 우리는 '배경지식', '신념', 등으로 사전확률을 정해두고
이를 토대로 우리는 각자의 모델을 만들어서 그 틀에 맞춰 세상을 인식한다.
그리고, 나의 모델을 바탕으로 기대를 만들면서,
매 순간 세상과 모델의 차이를 수정해가며 살아간다.
이 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인식론은 원래 신경과학보다 훨씬 먼저,
“인간은 무엇을,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철학의 분야에서 출발했다.
앞에서는 뇌의 예측적 처리, 베이지안 뇌 같은 현대 과학의 설명을 봤다면,
이제는 철학과 논리의 역사 속에서 인식의 한계가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살펴보자.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칸트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두 층으로 나눴다.
현상(appearance):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 시공간 속에서 인과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사물들.
물자체(thing-in-itself): 우리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세계.
칸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인식은 항상 감각 + 인식 형식(공간·시간, 인과성 등)을 거친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타난 방식대로의 세계(현상)’일 뿐,
그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물자체)”는 원리적으로 알 수 없다.
이는 앞에서 본 예측적 처리 모델과 통한다.
감각은 들어오지만, 그것을 조직하고 세계로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의 인지 구조와 내부 모델이다.
칸트는 이 구조를 “선험적 형식”이라는 철학적 언어로 먼저 지적했다.
쇼펜하우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의식 속에 나타난 표상(representation)일 뿐이다.
“대상 그 자체”를 직접 붙잡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에게 나타난 방식’이라는 필터를 거친 세계만을 인식한다.
또한 그는 세계의 근원을 “맹목적인 의지(Wille)”로 보았지만,
그 의지조차도 우리가 아는 것은 경험 속에 나타난 표상 형태로서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 인식은 표상의 구조를 벗어날 수 없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여전히 손에 닿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인식의 틀을 언어로 가져와서,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는 하나의 단일한, 추상적 논리 구조가 아니라
수많은 ‘언어게임’들의 집합이라고 다시금 정리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실제로 쓰이는 생활양식 속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우리는 각자 다른 언어를 쓴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언어를 쓴다는 말은 곧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산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같은 '엣지'라는 말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투자자들은 다른 시장 참가자들보다 갖는 우위(알파)를 엣지라고 부른다.
개발자들은 사용자 기기와 가까운 위치에서 실행하는 것을 엣지 컴퓨팅이라고 한다.
그래프 이론에서 노드(혹은 정점) 사이의 간선을 엣지라고 지칭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맵시 있게 옷을 입는 것을 엣지있다고 한다.
똑같은 말인 '엣지'를 두고도,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개념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언어 게임을 하고 있고,
그나마 비슷한 생활양식을 갖는 공동체 정도나 비슷한 세계와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수학도 불완전하다 라는 부분 이해가 안 돼서 제미니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주네요.

내용 너무 좋고, 저장해놓고 다음에 또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생각이 계속 많아져서 오래 걸렸네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더 읽기 쉽게 고쳐봐야겠네요 ㅠㅠ

공부 정말 많이 하신거 같아요. 수준 높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공부는 AI가...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