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살아남는 투자법 - 우리가 살아갈 20년의 난세





들어가며
우리는 앞선 회차에 걸쳐 우리의 시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봤다. 자본주의 진영이 냉전에서 승리하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극하며 세계는 미국의 평화를 누렸지만, 911테러로 인해 미국이 서남아시아의 수렁에 빠져들어 국력을 소진하는 사이에 오랜 경쟁국들이 빠르게 부상하는 흐름을 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로 쇠퇴했지만 중국은 미국에 맞설만한 또다른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미국은 금융 위기와 제조업의 몰락으로 인해 내부의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코로나 19의 발발이 자유 무역의 시대에 확인 사살을 가하며 우리 시대를 규정 짓는 거시적인 흐름, 미중 패권경쟁이 공급망 분야에서 벌어질 것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일찍이 개인 블로그에서 필자와 언쟁을 겪었던 구독자도 지적했던 부분인데,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계이기에 필자가 소개한 것처럼 깔끔한 도식으로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공정한 지적이다. 세상은 우리가 측정하지도, 관측하지도 못하는 무수한 개별적인 요소로 이뤄진 혼돈의 흐름이다. 미래에 어떤 산업이 유망할지 모르고, 어떤 국가가 성장할지 알지 못한다. 오늘날 완벽한 투자처로 불리는 기업들, 예컨데 애플이나 코카콜라같은 기업들이 10년 뒤에 아직도 남아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필자는 30년 이후의 미래를 꿈꾸고 있지만 오늘 죽을 지도 모른다. 혹은 오늘의 연재글을 집필하다 급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세상은 수많은 확률로 구성된 것이며 이것을 정확히 연산해 현실을 구성하는 방법은 어떤 슈퍼컴퓨터를 사용해도 불가능하다.

역사학에선 이런 문제 의식이 일찍이 제기된 바가 있었는데, 이러한 사조는 역사학의 전통적인 서술 방법이던 통사(General History)와 이야기사(Narrative History)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광범위한 죽음과 파괴는 서구인들의 인식에 거대 담론의 공허함과 유해성을 인식시켰다. 그때부터 역사가들은 문명의 흥망이나 민족의 형성, 체제의 발전처럼 평범한 일상과 관련이 없어보이는 주제를 피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접근이 가능한 미시사 혹은 역사에서 인물과 이야기를 배제하고 구조적 특징에 집중하는 아날 학파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세계를 이해함에 일정한 효용성이 있었다. 미시사 연구를 통해 거대 담론에 가려진 부분들이 드러나자, 우리는 보다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명징하게 직시하게 되었고, 인물을 배제하고 구조에 집중하자 특정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던 영웅사관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20세기의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주목할만한 성과이다. 역사를 결론이 정해진 영웅담에 가까운 무언가에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구조적인 학문에 가깝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역사가들에 대한 필자의 호평은 여기까지다. 거대 조직의 핵심에 접근해본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사회적 진실은, 여전히 역사를 움직이는 굵직한 선택은 권력과 영향력을 소유한 개개인의 선택과 세계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구조와 미시적인 안건들은 이들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촉진할 수 있으나, 모든 제도와 관습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결정에는 책임자의 서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단의 명운을 걸고 서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국왕, 대통령, 총리, 의장, 장군, CEO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또한 이러한 지도자들의 명령이 정해진 계획대로 수행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지도자의 덕목보다 특정한 구조에서 자라난 구성원들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전쟁을 앞두고 대통령이 동원 명령을 내렸을때 장군들은 거기에 반대하거나 지지할 기회가 주어진다. 징병 통지서를 받은 청년이 자발적으로 훈련소에 입소할지, 아니면 사법적 처벌의 위험을 무릎 쓰고 국경을 넘거나 시골로 숨을지 수십수백만의 개인들이 각자 다른 결정을 내린다.
전쟁의 비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뉴런들께서 익숙할 회사 생활로 생각해도 좋다. 훌륭한 역량의 CEO가 있다고 회사가 모두 훌륭히 운영되진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구성원과 훌륭한 조직 문화를 갖춘 회사조차 CEO가 듣고 싶은 말만 듣거나 조직 운영에 실패하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이는 특히 CEO의 역량이 중요한 스타트업이나 업무가 정형화되지 않은 신산업에서 부각되는 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대 담론이나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인지와 그것이 우리의 미시적 일상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두었는가? 태평양 건너편의 나라에서 치러진 대선이 우리의 포트폴리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름도 생소하고 위치도 찾기 어려운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사건은 나의 직장과 무슨 관련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세상을 무작위성이 가득한 혼돈의 소용돌이로 인식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자연스레 우리의 인식과 행동을 위축시키며 안온함이나 신중함을 쫓게 만든다. 그것도 하나의 투자하는 방법, 나아가 살아가는 방법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길을 택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바람이 거대 담론을 부상시키는 방향으로 불고 있기 때문이다.
난세란 무엇인가?

난세(亂世)라는 단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순자가 인용하며 생명력을 얻었다. 순자가 대략에서 이르길, "의로움이 이익을 이기는 시대가 치세이며 이익이 의로움을 이기는 시대가 난세이다"라고 저술했다. 누군가는 전차를 몰고 다니던 농경 시대의 고대 중국인이 우리의 인생과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들이 시대마다 보여온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권력을 둘러싼 다툼, 황금을 향한 탐욕, 끝없는 전쟁과 그에 대비되는 고단한 노동과 소소한 행복으로 이뤄진 평범한 일상들, 버릇 없는 젊은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회 질서를 중시하는 노인들, 탐욕과 오만으로 무장한 치기 어린 청년들의 무모한 도전이 가져온 재앙.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와 ...

재밌어요!

우와! 리플없어서 재미없게 쓴줄알았는데 리플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조지님 글 올리셨는지 자주 확인하고 가요. ^^

극찬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만일 당신이 평온한 삶을 살길 바란다면, 안타까운 일이나 잘못된 시대에 태어난 것이다. 당신이 앞으로 들을 뉴스는 전쟁과 기근, 역병과 사회 혼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기술 발전과 알지 못하던 지식의 발견, 급진적인 사상의 전파도 들을 것이다. 우리는 혼돈의 흐름을 항해할 것이며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무엇인가를 인양할 사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조지님과 함께 하게 되어 설렙니다.

솔직히 조지님 글은 항상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긴 글을 흡입력 있게 잘 작성해주시는거 같아요!




![[시리즈 연재] 난세에 살아남는 투자법 - 우리의 시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https://post-image.valley.town/dl2F-8DxBl9QFqtDCfnUA.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