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예측대회
투자분석
아카데미
커뮤니티
Valley AI 시작하기시작하기
Valley Space인기
마천루
헤아림꾼기록

마천루

avatar
헤아림꾼
2026.05.29조회수 87회
avatar
헤아림꾼
구독자 49명구독중 80명
alex-tai-zpRBCGplUzM-unsplash (1).jpg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라는 철학자는 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 우물에 빠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녀는 "밤하늘의 별은 보면서, 어찌 발밑의 우물은 못 보십니까?"라며 그를 비웃었다.


런던의 새벽, 분무기가 뿜어낸 듯한 빗방울 사이를 달리다 넘어진 나를 본다면 그 하녀가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휴가를 갔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로 휴가를 가지만 시골 사람들은 도시로 휴가를 간다.

그동안 회사 일로 바빴다 보니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최우선 사항이었지만 나에게는 대도시의 중심부를 달려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었다.

아직 꿈나라에 있는 아내와 아들을 깨우지 않으려, 살금살금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운동화 끈을 묶고 거리로 나서니 영국 특유의 흩날리는 빗방울이 이른 새벽부터 나를 반겼다.


그 빗줄기 속에서 거대한 빌딩 숲이 뿜어내는 불빛은 유난히 강렬했다. 나는 거대한 빛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마리의 벌레처럼 그 불빛을 향해 홀린 듯이 달려 나갔다.


'맨날 호수 옆 산책로나 달리다 이렇게 번쩍번쩍한 곳을 달리니까 진짜 좋네.'


6시를 막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이미 깨어 있었다. 은행가들이 즐비한 중심부에 다다르자 벌써부터 바쁘게 출근하는 런던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일찍부터 출근하네... 그나저나 이 틈에서 달리고 있으니까 나 완전 현지인 같아 보이겠는데?'


그들 사이에 섞여 조깅을 하다 보니 왠지 나도 이 거대한 도시의 일부가 된 것...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Basic 7일 무료 체험 시작하기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8개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글

팬티

나는 팬티다. 나는 캄보디아의 한 속옷 전문 공장에서 태어났다. 유칼립투스 나무 추출물인 리오셀로 만들어진 매끌매끌한 검은 원단 위로 꼼꼼한 박음질과 철저한 검수가 이어졌다. 모든 과정을 마치자 일본의 어느 유명 브랜드는 고무 밴드 위에 친환경 종이 띠를 둘렀다. 거기에는 '스트레치 복서'라는 멋진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리오셀에서 팬티가 되었다. 곧, 같은 공장에서 태어난 친구들과 함께 박스에 담겼고 우리는 바다 건너 영국으로 향했다. 런던 소호의 깔끔한 브랜드 매장. 세계적인 대도시의 잘나가는 동네에 자리 잡으니 나도 모르게 밴드가 팽팽해졌다. 밤이 되면 우리는 나란히 누워 쇼윈도 밖을 보며 각자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은 우리에게 '어떤 주인을 만나게 될까?'라는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날은 밝아 있었다. 이윽고 매장 문이 열리면 수많은 손길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와 친구들의 부드러움을 손끝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진가를 알아보고는 친구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며, 같은 스트레치 복서로서 자부심을 느꼈지만 동시에 나만 홀로 남아 재고 상품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으로 밴드가 처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한 손님이 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나를 위해 기꺼이 £8.95라는 값을 치르고는 매장을 나섰다. 앞으로 이 사람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섬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나의 리오셀 원단이 파르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매장에서 너무나도 많은 물건을 사서 종이 가방이 가득 찼던 탓일까? 그는 불과 3분도 안 되어서 나를 길바닥에 떨어뜨려버리고 말았다. 종이 띠를 최대한 바스락거리며 가지 말라고, 나 여기 있다고 외쳤지만 그 외침은 소호를 가득 채운 인파와 자동차 소음에 맥없이 묻혀서 전해지지 못했다.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바라만 보는 것뿐이었다. 차가운 소호의 보도블록... 수많은 인파가 걸어 다니고 있었지만 다들 나를 피하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비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얇은 빗방울이 추적추적 종이 띠를 적시기 시작하더니 곧 내 원단까지 물기가 스며들어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이대로 쓰레기가 되는 건가라는 깊은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왼쪽 다리를 살짝 절뚝이던 어떤 동양인 남성이 나를 집어 들었다. "어, 이게 뭐지? 팬티네!" "아니, 그걸 왜 주워?" "포장도 안 뜯긴 완전 새 거야. 상표를 보니까 바로 저 앞 매장에서 산 사람이 떨어뜨렸나 봐." 그는 고개를 두리번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백팩 옆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우리 그렇게까지는 안 가난해..." "버스 놓치겠다. 어서 가자." 유모차를 끌고 ...
기록
2026. 05. 15
10
10
137
팬티

불기둥

중동에서 또 전쟁이 났다. 미디어로 수없이 접해온 국가들이지만, 정확히 지구본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 그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를 죽여왔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뉴스 화면 속 테헤란이라는 도시 위로 거대한 붉은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오른손을 마우스에서 떼고서는 검지 손가락으로 엄지 손가락을 천천히 문지른다. 잠시 뒤, 화면이 스튜디오로 전환된다. 정장을 입은 여성 앵커가 나와서는 쉴 새 없이 입을 벙긋거린다. 아래에 놓인 붉은색 띠 위에는 하얀 글씨로 오늘 하루 발생한 사망자 수가 적혀 있다. 눈을 감고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다시 마우스를 움켜쥔다. '이러면 주식 시장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소리만 틀어놓은 채 탭을 전환한다. 자주 가는 주식 사이트를 뒤적인다. 너도나도 시황을 분석하고 유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중에는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 이 전쟁이 언제쯤 끝날지에 대해 토론하는 글도 보인다. 다시 탭을 전환해서 이번에는 영상 사이트를 뒤진다. 유명한 투자자가 이번 전쟁이 미국의 중간선거와 맞물려 있다고 떠든다. 갑자기 먼지에 뒤덮인 남자가 나타난다. 전쟁 난민 아이들을 도와달라며 후원을 호소한다. 시선이 우측 하단으로 향한다. 5 4 3 2 1 '건너뛰기'를 누른다. 남자가 사라진 화면 위로 차트가 ...
기록
2026. 05. 01
9
2

야근

"따르르릉, 따르르릉!"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기술 지원 팀도, 상담원도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한 우리 회사는 이런 고객센터를 운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수화기를 들고는 고객 응대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저기... 설치가 안 돼요..." 수화기 너머로 앳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이렇게 해보셨나요? 아, 그럼 화면에 보이는 계속 버튼을 한번 눌러보시겠어요?"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언제 숙지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매뉴얼 내용대로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내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수화기를 든 채로 커다란 원형 벽시계를 쳐다봤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초조함에 오른 다리가 덜덜 떨렸다. '조금만 있으면 퇴근인데 하필이면 이상한 전화를 받았네...' "아빠한테 부탁해서 산 건데..." "고객님,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제가 가서 직접 해드릴게요." 당시에 곧 아빠가 될 예정이라 그랬을까? 아빠라는 단어가 나에게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회사를 나서자마자 차를 타고 액셀을 밟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잡은 건 술에 취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러 가던 길에 인도로 올라갔었던 날이었다. 그런 현실과는 상관없이 나는 낯선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역시, 여기서 또 한 번 눈치챌 기회가 있었다. 도착한 곳은 언덕 위에 홀로 우뚝 솟은 대저택이었다. 정문 앞에서부터 금방이라도 사나운 맹견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것 같은 스산함이 훅 끼쳐왔다.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듯한 수많은 창문들과 압도적인 규모에 잠시 주눅도 들었지만, '빨리 끝내고 퇴근하자'는 일념 하나로 초인종을 눌렀다. "고객님! 아까 통화한 상담사입니다!" 끼이익... 육중한 문이 열리자 둥근 ...
기록
2026. 04. 17
9
6

증인

올해 들어 매주 토요일에 출근하다 보니, 가족들과 하는 일요일 마트 나들이가 꽤나 거창한 외출이 되었다. 토스트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가 차려진 아침 식탁에 앉자 아내가 물었다. "나중에 마트 갈 때, 시내로 갈 거야? 아니면 외곽으로 갈 거야?" 사소해 보이지만 이건 우리 부부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시내 매장과 달리, 외곽 매장에서는 다 쓴 아기 용품을 가져가면 £10어치 물건을 살 때마다 £5를 돌려주는 쏠쏠한 재활용 이벤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10분만 더 걸어가면 무려 £5를 버는 셈이다. 딸기 잼이 발린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며 대답했다. "...로 가자. 마침 바디워시랑 샴푸도 사야 하고..." 내 머릿속의 블랙박스에는 분명 저 첫 번째 말줄임표 자리에 '외곽'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녹음되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 입이 실제로 어떤 단어를 내뱉어냈는지는 지금도 100% 장담할 수가 없다. 내 대답에 아내는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적어도 현관문을 나서기 전까지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아들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재활용할 물건들 챙겼어?" 아내가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황당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 챙겼는데? 네가 아까 시내로 간다며!" "내가? 언제?" 내 반문에 아내의 미간이 좁혀지며 아내 이름을 따서 라인이라 붙여준 특유의 주름이 생겼다. "너 아까 내가 물어볼 때 제대로 안 들었지?" "내가 실수로 잘못 말했나 보지... 그럼 확인할 겸 다시 물어보지 그랬어?" "아니, 그럼 대화할 때마다 내가 매번 다시 확인을 해야 돼?" "야, 나랑 5년을 넘게 지냈으면 이제 슬슬 내가 얼마나 실수를 연발하는 사람인지 눈치챌 때도 되지 않았냐?" 내 궁색하고도 당당한 변명에 아내는 짜증 난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하,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오래 못 산다. 어쩌다가 이런 바보랑 결혼한 거지?" ...
기록
2026. 04. 03
11
4

실화

올해 들어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잔업이지만, 하루빨리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에 오히려 평일보다 더 서둘러 채비를 마친다. 새근새근 잠든 아내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인사말을 속삭인다.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는데 그만 아들의 장난감을 밟아버리고 만다. 소리 없는 비명을 삼키고는 절뚝거리며 현관을 나선다. 회사 로고가 그려진 회색 잠바에 양손을 밀어 넣은 채 마시는 새벽 공기는 꽤 상쾌하다. 새들의 지저귐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 고요한 거리에 내 발소리를 보탠다. 내가 사는 곳은 워낙 작은 시골 마을이라 작년까지만 해도 토요일 새벽에는 기차가 없었다. 그런데 마치 나의 잔업 결심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올해부터 거짓말처럼 새 노선이 생겼다. 덕분에 텅 빈 역사에는 나를 기다리는 두 칸짜리 기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다. 승무원과 기관사를 제외하면 승객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말 그대로,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한 기차인 셈이다. 기차에 오르면 ...
기록
2026. 03. 20
11
2
116
불기둥
94
야근
113
증인
99
실화
avatar
Dirtycat
2026.05.29

헤아림꾼님 블로그 가보니 재밌는 글 많네요. 부상 조심하시고 재밌게 달리세요!

avatar
헤아림꾼
작성자
2026.05.29

재미 삼아 쓰는 글인데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avatar
골드브루
2026.05.29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네요

avatar
헤아림꾼
작성자
2026.05.29

최대한 생생하게 써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ㅋㅋ

avatar
50평아파트
2026.05.29

ㅎㅎ 읽으면서 공감도 많이 가고 재밌네요. 헤아림님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예리하신거 같습니다. 저도 카나리워프 같은 곳 가면 우와 멋있다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이 너무 바쁜 것 같고 복잡해서 어휴 그냥 외곽에 있는게 낫겠다 싶습니다.

(수정됨)
avatar
헤아림꾼
작성자
2026.05.29

카나리워프에 집이 있고 따박따박 월세만 받을 수 있다면...

avatar
50평아파트
2026.05.29

전 첼시에 타운하우스 하나만 있다면...

avatar
헤아림꾼
작성자
2026.05.30

ㅋㅋㅋㅋㅋㅋㅋ 첼시 타운하우스면 더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