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풀피리를 불 듯 그 질문을 내 입술 바깥으로 밀어내 달싹거려보았다.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 주인공인 세계에서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막막했다.
멘토나 롤 모델, 레퍼런스가 아니라 정확하게 호명할 수 있는 스승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애틋하게 묻고 답하며 이 불가해한 생을 좀 덜 외롭게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생의 길목마다 어김없이 돌부리에 걸려 머리가 하얘지는 내가 이어령이라는 스승을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을 꺼내놓앗다. 하루치의 대화는 우연과 필연의 황금분할로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 등의 주제를 타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스승은 내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나의 선생님은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단어를 고르시겠구나.
내가 멋쩍은 눈으로 우문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그는 웃으면서 빛이 되어 부서지곤 했다.
그는 필연적으로 생명이 넘치는 인간이었으나, 죽음과도 불화하지 않았다.
매일 밤 나는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네. 어둠의 손목을 쥐고서 말이야.
팔목을 꺾고 넘어뜨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어둠이 팔뚝을 걷어 올리고 덤비지.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뜨려야, 겨우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마인드로만 채우고 살았는지, 영혼으로 채우고 살았는지 어떻게 압니까?
"깨지고 나면 알겠지."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죽음 앞에서는 연습도 오만이다.
고통 없는 죽음이 신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했나? 아니야. 고통의 극에서 만나는 거라네.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지. 니체가 신을 제일 잘 알았다고 말일세. 신이 죽었다고 한 놈이 신을 보는 거라네.
자기 머리로 생각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누구나 머리는 자기 것이지요. 오히려 다들 제 생각에만 빠져 살지 않습니까?
"머리는 자기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이지 문제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선왕께서 말하기를...'이야. 먼저 말한 모델이 있어야 인정을 해줘. 이렇게 되면 결국 윗세대의 말만 달달 외우다 끝이 나거든. 내 머리로 생각하면 전혀 다른 앵글이 나와. 제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는거야."
무엇이든 만장일치라면 그건 한 명과 다름없네.
간곡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