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부러져 떨어진 나뭇가지나 질주하는 자동차를 거느리고 밖에서 치고 들어가 당신을 으스러뜨릴 수 있고, 아니면 반란을 일으키는 그 사람의 몸속 세포들과 함께 안에서 박차고 나와 그를 해체해버릴 수도 있다. 혼돈은 당신의 화초를 말라 비틀어지게 하고, 당신의 개를 굶어 죽이고, 당신의 자전거를 녹슬게 할 것이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부식시키고,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무너뜨리고, 당신이 간신히 쌓아올린 모든 성스러운 장소를 폐허로 만들 것이다.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이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 하는 시기의 문제다.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그가 이뤄낸 혁신은 너무 허술하고 너무 근시안적이며, 자신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어마어마한 무지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야? 경고성 교훈담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모범?
나는 큰 주전자 가득 커피를 만들어 그의 책을 무릎에 올리고 소파에 앉았다. 이로써 혼돈에 항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파헤칠 모든 채비가 끝났다.
그들은 독실한 청교도였다. 그들은 절대 큰 소리로 웃는 법이 없었고, 매일 아침 태양보다 먼저 밭에 나가는 자신들의 순교자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미 지도가 존재하는 땅들의 지도를 만든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그들에게는 경거망동이자 하루의 쓸모에 대한 모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무렵, 신성 모독적인 텍스트 하나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인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나침반처럼 방향을 잘 찾던 형의 눈은 힘없이 늘어지고 풀려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벌거숭이 해안은 늘 급직적인 희망이 찾아드는 장소였다.
1970년 대에는 어느 해병대 출신 뱃사람이 격리와 육체노동, 축산, 공동체 생활, 학교 공부가 "다수의 잠재적 살인자들을 자동차 도둑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학교를 세웠다.
면적도 적당했다. 배회할 만큼 충분히 컸지만, 절대 길을 잃을 일은 없을 만큼 작은 섬이었다.
자연 자체를 교육의 재료로 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페니키스 섬은 한마디로 금광이었다.
캠프로 가는 동안 그 젊은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어쩌면 자기 고향의 동물들에 관한 허풍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았거나, 동물계와 식물계와 광물계 중 어느 왕국에 충성을 맹세했는지 서로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다.
기생충은 모두 싸잡아 단연코 하등한 생명체다. 기생충이 생명을 이어가는 방식을 보라. 빌붙고, 속이고, 더부살이하지 않던가.
아가시는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피부 아래 감춰져 있다고 믿었다. 페니키스 섬에서 강의하는 어느 시점엔가 그는 학생들에게 외피의 위험성에 관해 경고했다. 외피란 주의를 분사시키는 위험한 것, 분류학자들을 속여 사실은 유사성을 둔갑해내는 술책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가시는 신에게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밤에 집에 오면 엄마의 걱정과 아버지의 실망을 대면했고, 자기 방문 뒤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