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을 배우면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게 지성 아닌가?”라며 딴지를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순화하면 망가지는 리얼리티가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한다라는 가치관 혹은 윤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현대에는 “제대로 하는” 방향으로 여러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똑바로 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 즉, 질서화입니다. 일탈을 단속해서 사회가 규칙대로 산뜻하게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기업에서는 컴플라이언스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에서도 우리는 넓은 의미의 컴플라이언스(준수)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할까, 뭔가 불평을 듣지 않으려고 움찔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라며 논의의 필요성 자체가 없다고 묵살해버리며 이야기를 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시대의 큰 경향만 말해 둡니다. 현대는 더욱더 질서화, 청정화로 향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가 발생해 재발 방지책을 세울 경우, 그 문제의 예외성이나 복잡성은 무시되고 천편일률적으로 규제만 늘리는 방향으로 향하기 일쑤입니다. 그게 단순화인 거죠. 세계의 미세한 요철이 불도저로 고르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일을 제대로 하려는 의지는 개별 주체적인 것에서 눈을 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사상입니다. 현대사상은 질서를 강화하는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질서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 즉 ‘차이’에 주목합니다.
20세기 사상의 특징은 배제되어 온 불필요한 것을 창조적인 것으로 긍정했다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니체의 철학에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표현된 거칠게 휘몰아치는 일탈의 에너지를 창조적인 것으로 긍정했습니다. 일탈에 창조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방식은 20세기 전체를 통해 대중화되었습니다.
가끔 제멋대로 뻗어 나가고 증식하는 식물에 눈을 돌리면, 사물을 말로 옭아매려는 경향에 구멍을 낼 수 있습니다.
LGBTQ의 권리에 관해 결정적인 작업을 한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의 욕망에 이성애가 반드시 기본이 아니라는 점을 독특한 논법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근대란 시민사회와 진보주의, 과학주의 등이 결합물. 근대는 민주화가 진행되고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오래된 습관을 버리고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어 “인간은 진보해가는구나”라고 모두가 믿는 시대입니다.
리오타르 “공통의 이상이 상실되고 포스트모던에 이르러서는 ‘거대 서사’가 없어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시기에는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밀어붙이는 것을 “post truth"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혼란의 원인이 과거의 포스트모던적 상대주의에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나왔다.
이전 시대에는 위대한 문학작품에 같은 구조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대담한 태도였다.
패턴의 변화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 일탈을 문제 삼고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세계를 논하고자 한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다.
회색 지대야말로 인생의 리얼리티가 있다.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바로 그것에 즐거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양가성이 중요하다. 반드시 능동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수동적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두 개념이 서로를 밀치고 뒤엉키면서 전개되는 회색 지대가 있고, 바로 거기에 삶의 리얼리티가 있다.
이항대립의 탈구축: 두 개념의 대립에 초점을 맞춰 파악하여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자세를 일단 유보한다.
오에 겐자부로 같은 버릇이 강한 작가의 책을 읽는 듯한 마음으로 씨름해야 하며, 보통의 자기계발서적을 읽는 듯한 감각으로 정보가 확 들어오기를 기대하면 무엇이 쓰여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