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천재> (1) - 아이히만, 스탈린, 루소, 푸코, 비트겐슈타인, 카프카

<광기와 천재> (1) - 아이히만, 스탈린, 루소, 푸코, 비트겐슈타인,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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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4.08.21조회수 3회

아이히만은 반성할 줄 모르고 성찰할 줄 모르는 인간, 요컨대 사유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유대인 절멸 계획을 사무적으로 실행하는 아이히만 안에 자제력을 잃고 유대인 뺨을 때린 일을 책망하는 또 다른 아이히만이 있다. 이 희비극적인 사건은 ‘악의 평범성’ 밑에 잠복해 있는 ‘삶의 모순성’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아이히만의 악은 뿌리도 깊이도 없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악이었지만, 동시에 그 악을 산출한 아이히만의 마음은 ‘평범성’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역설을 품고 있었다.


높이 자라든 깊이 자라든 정신의 크기가 클수록 문제의 크기도 커진다.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의 내면에서 사납고 무서운 원한이 쇠꼬챙이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모순투성이 인간은 도화지 같은 마음에 떨어진 작은 얼룩을 지우지 못해 어두운 동굴과도 같은 상상력의 극한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자신을 탄핵하고 자신을 처벌한다.


부하린은 스탈린의 별장을 아무 때나 찾아갔고 스탈린 가족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혁명 동지 가운데 부하린만큼 스탈린과 친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부하린이 공포정치의 희생자가 됐다. 1937년 트로츠키파로 몰려 재판에 회부된 부하린은 자신에게 죽음밖에 남은 것이 없음을 깨닫고 감옥 안에서 마지막으로 이 짧은 편지를 써 스탈린에게 보냈다. 그것은 왜 그런 운명이 닥쳐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자가 속삭이듯 내지르는 단말마였다.

  • 코바(스탈린), 왜 당신한테 내 죽음이 필요하지?

힘들었던 시절 스탈린을 돌봐줬던 처가 쪽 사람들도 대다수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아내는 자살했다. 마치 자신에게 인간성이 있다는 사실을 지워 없애려는 듯, 스탈린은 자신의 인간적 체취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스탈린은 자기가 만든 운명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는 한 세계를 얼어붙게 했으나 세계와 행복하게 만나지 못했다.


밀란 쿤데라는 두 종류의 바람둥이를 이야기한다. 한쪽의 바람둥이는 ‘낭만적 집착형’이다. 그들은 “모든 여자에게서 자신의 고유한 꿈, 여자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인 개념을 찾는다.” “그들이 여자에게서 찾는 것은 그들 자신, 그들의 이상이다.” 다른 한 종류의 바람둥이는 이 소설의 주인공 토마스와 같은 유형이다. 토마스에게 여자의 의미는 ‘여자와 여자 사이’에 있다. 나비가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빨 듯, 토마스는 이 여자와 저 여자 사이의 미세한 차이에 탐닉한다. 한 여자가 지닌 ‘다름’을 만끽하고 나면 곧바로 다른 여자에게로 날아간다.


그들을 몰아가는 것은 어떻게든 ‘색다름’을 찾겠다는 욕망이다. 끝없는 차이의 물결 위를 그들은 질주하듯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둥이 호색한은 여자를 사냥하면서 점차 관습적인 여성미를 멀리하고, 십중팔구 기이한 것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된다.”


이 글이 소개하는 인간은 대푯값을 지녔다고 판단되는 인간이다.


한계상황에서 자신을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려 했던 사람들, 불행한 의식을 견딜 수 없어 끝 모를 모험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속성이 광기이고 천재였을 뿐이다. 천재는 광기의 심연에서 솟아오르며, 광기는 천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같다. 광기가 없었다면 천재성도 없었을 것이며, 천재가 아니었다면 광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루소의 일생은 화해할 길 없는 모순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모순, 그 불화의 틈새에서 독창성으로 빛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 불완전한 인간이야말로 인류사의 진정한 정신의 도약이 불완전성의 산물임을, 불완전한 인간의 커다란 내적 모순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있다.


출구 없는 시대의 자궁 안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가망 없는 사투를 벌였다.


모든 것이 모순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기에게 집착했지만, 꼭 그만큼의 정도로 자신을 혐오했다.


<에밀>은 근대 교육학의 출발점이었다. 최초로 어린이를 발견한 저작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작품의 저자는 현실에선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남김없이 고아원에 버린 비정한 남자였다. 그는 상상력 안에서만 어린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인류 사상 최초로 한 조각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생각이 든 사람이 바로 문명사회를 처음 세운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말뚝을 뽑아버리고 이웃들에게 “땅의 산물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만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파멸할 것이다”라고 외쳤더라면 인류는 그 많은 전쟁과 살육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볼테르는 이 부분을 읽으며 책의 여백에 “이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의 철학이다”라고 썼다. 제네바 근처에 커다란 영지를 구입한 볼테르에게 루소의 주장은 확실히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볼테르는 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두고, “읽다 보면 네 발로 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책”이라고 비꼬았다.


귀족이 하인이 되고, 부자가 빈자가 되며, 군주가 신하가 된다. 그런 운명적인 사건은 너무나 희귀해서, 당신을 그런 사건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위기 상황과 변혁의 시대에 접근하고 있다.


<관용론>으로 종교적 불관용을 고발했던 볼테르는 자신의 적수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나와 견해가 다르더라도 그 견해가 억압받는다면 그 억압받는 자와 함께 싸울 것이다”라고 공언했던 이 관용의 사도는 루소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공언을 식언으로 만들었다.


볼테르는 파리와 그 도시의 유쾌함과 사치의 아들이었다. 반면 루소는 제네바의 아들이었고, 자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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