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하라>

<#가속하라>

avatar
은둔기계
2024.08.21조회수 2회

역사 안에서 바라보면 발산은 임계 규모에 도달하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바라보면 위기는 인류가 잘못 해석한 수렴이다.


가속주의는 한편으로는 최악의 정치, 즉 최악의 상황을 바라야 하고 단지 묵시록이자 빈 서판으로서의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를 냉소적으로 감수할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사망할 것이라는 단언을 시장에 대한 옹호로 대체할 위험이 있는데, 그리하여 이른바 시장 근본주의는 정치 권력에 빠져들게 되어버린 수동적 묵종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참으로 진보적인 정치사상, 물려받은 권위나 이데올로기 혹은 기존 제도에 아무런 신세도 지지 않은 사상을 구상할 수 있다는 주장.

 

절망은 자신의 적을 도착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현시대 좌파의 지배적인 정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현시대 좌파는 신랄한 비난,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시위 그리고 유희적 파괴의 사소한 쾌락으로 자위하거나, 아니면 이론이라는 안전가옥에서 혹은 “비결정성”이라는 현대 예술의 자기만족적인 안개 속에서 자본 아래 인간 삶의 전면적인 포섭에 대한 우울한 “비판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저항을 구성한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관념으로 자위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역할이 자본주의 자체에 의해 접수되는 정도를, 특히 자율적 형태의 기계 자본이 발휘하는 ‘이차’ 생산력의 폭주 가속을 통해서 접수되는 정도를 과소평가한다. 그런 사태는 어떤 모순의 위기도 초래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생산력은 이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본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마르크스를 “자본의 쇠퇴에 대한 예언자”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퇴락을 예언하는 ...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0
avatar
은둔기계
구독자 98명구독중 62명
은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