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의 몽타주>

<충동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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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4.08.22조회수 2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신분석이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하늘’의 자리에 ‘충동’을 대신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하늘을 충동으로 바꿔놓으면 스스로 돕는다는 표현도 새로운 문맥을 얻게 된다.


우리는 소외된 존재이다. 우리는 빗금 쳐진 주체이다.

 

인간이 옷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환상 역시 필요불가결한데, 이 환상의 옷 아래로 충동이 작동한다.


주이상스(Jouissance) - 주체의 쾌락 규제를 넘어서는 것. 라캉은 이 용어를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일종의 오르가슴적 쾌락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갓 태어난 어린 아들이 아내의 젖꼭지를 빠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새내기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에서 충동은 소리 없이 계속 작동한다.


프로이트는 충동이 비유가 아니라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을 과학에 칭칭 동여매어 묶어두려는 시도는 프로이트가 경고했던 바로 그 실수에 다름 아니다. 경험적 탐색이라는 좀 더 정확한 방법론을 통해서 포획될 때까지 언어의 저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물적 사실이라고 충동을 가정한다면 우리도 예의 그 실수를 저지르는 게 아닌가?


우리는 모두 LSD, 이 작은 문자들을 복용하고 있다.

 

몸이 중요하다는 식의 지적은 너무도 사소하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실이 전해주는 내용이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 좋은 것을 해체하려고 들지?”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내 안에 이 좋은 것을 원하는 욕망을 거스르려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부 혹은 저항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것은 ‘필연’이다. 이 개념은 정신분석에 출몰하는 유령이 되었다.


충동은 정신분석에 꽤 늦게 도입되어 이미 존재하는 이론과 어울리지 않게 장착된 듯이 보인다. 문제는 충동을 도입한 이유다. 충동 개념은 오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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