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예측대회
투자분석
아카데미
커뮤니티
로그인Valley AI 시작하기시작하기
Valley Space인기
<프로이트와 슈퍼히어로>
은둔지Memo

<프로이트와 슈퍼히어로>

avatar
은둔기계
2024.08.22조회수 3회
avatar
은둔기계
구독자 120명구독중 47명
은둔지

현재에 맞춰 새로워진 신화들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코스튬으로 신경증을 위장하고, 망토 아래 징후들을 숨기며, 이상을 감추고 사는 슈퍼히어로인지 모른다. 슈퍼히어로는 코스튬으로 가장한 우리 무의식의 인물들이 아닐까?

 

정신분석과 슈퍼히어로에게는 일단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서사의 문제다.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한 인물의 서사라면 정신분석은 개인을 다시금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는 서사다.


프로이트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방문한 1909년에 자신이 정신분석과 함께 ‘역병’을 미 대륙에 가져왔노라 말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인류의 악을 훤히 드러내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들은 새로운 신화를 불러왔다. 글로 쓰인 허구 속에 새겨진 이야기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과 실재에 대한 앎을 전달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란 말할 수 없는 채 남는 것, 상징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변죽을 울릴 뿐 결코 그것의 명확한 경계를 알 수 없다. 이 불가능성이 실재를 이상적 원동력으로 삼아 끝없는 이야기들을 만든다.


그들은 산을 들어 올리고 산더미 같은 의문도 불러일으킨다. 부모 없는 슈퍼히어로가 왜 이리 많은가? 슈퍼히어로의 변신은 어떤 식으로 우리 시대의 환상을 말하는가?


마블 유니버스에는 ‘이니그마 포스’라고 하는 힘이 존재한다. 이것은 숙주를 선택해서 한동안 그에게 태고의 우주에서 오는 힘을 몰아주는데, 이 시원적 힘은 숙주가 지닌 능력을 몇 곱절로 증폭시킨다. 정신분석학에는 ‘대타자’가 있다. 주체는 자기가 마주쳤던 최초의 전능한 이들(부모)에 대한 기억으로 타자에게 권력, 지식, 후광을 돌린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대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굉장히 위압적이라고 치자. 위협이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도 여러분이 기를 못 펴고 쩔쩔맨다면, 여러분은 대타자를 상대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소타자’에게 우리의 내밀한 우주에서 유래하는 시원적 힘을 우리가 몰아줘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최초의 타자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는 벌거벗은 갓난아기였을 때 우리의 전부였으니까. 우리는 그에게 이 힘을 투자하지만 그건 <우리의 의지나 그의 의지와 상관없다.> 이 대타자가 그 힘을 써서 우리를 난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재는 상징계에 포섭되지 않는 것, 표상과 상징에서 빠져나가는 것, 그렇기에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재는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실재는 벽이다.


거세는 슈퍼히어로가 자기보다 교활한 수단을 지녔거나 거의 신에 가까운 힘을 지닌 적에게 처절하게 패할 때마다 일어난다. 당시에 아프고 힘든 것도 모자라 때로는 흉터까지 남는다. 거세는 슈퍼히어로가 지붕에서 몸을 던질 때마다 떨쳐버리고 싶은 콤플렉스다. 그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한다면 그냥 추락해버릴 공산이 크다. 거세는 전능하지 못함, 한계 속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몇몇 비극적 에피소드에서는 거세가 매우 가혹한 방식으로 상기되기도 한다.


박쥐나 거미 코스튬을 착용하지만 자기가 박쥐나 거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이 사람은 신경증이다. 거세에 굴복해 있기에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서 취하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타자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가끔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부양하고 불안을 내려놓기도 한다. 신경증은 불안과 욕망을 처리하는 위장된 타협이다.

 

주이상스는 좋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것이다. 아플 걸 알면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주이상스는 쾌락이나 고통을 초월한다. 그것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Basic 7일 무료 체험 시작하기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0개
아직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Memo 카테고리의 다른글

<충동의 몽타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신분석이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하늘’의 자리에 ‘충동’을 대신해도 문제가 없으리라. 하늘을 충동으로 바꿔놓으면 스스로 돕는다는 표현도 새로운 문맥을 얻게 된다. 우리는 소외된 존재이다. 우리는 빗금 쳐진 주체이다.   인간이 옷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환상 역시 필요불가결한데, 이 환상의 옷 아래로 충동이 작동한다. 주이상스(Jouissance) - 주체의 쾌락 규제를 넘어서는 것. 라캉은 이 용어를 남근 로고스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일종의 오르가슴적 쾌락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갓 태어난 어린 아들이 아내의 젖꼭지를 빠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새내기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에서 충동은 소리 없이 계속 작동한다. 프로이트는 충동이 비유가 아니라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을 과학에 칭칭 동여매어 묶어두려는 시도는 프로이트가 경고했던 바로 그 실수에 다름 아니다. 경험적 탐색이라는 좀 더 정확한 방법론을 통해서 포획될 때까지 언어의 저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물적 사실이라고 충동을 가정한다면 우리도 예의 그 실수를 저지르는 게 아닌가? 우리는 모두 LSD, 이 작은 문자들을 복용하고 있다.   몸이 중요하다는 식의 지적은 너무도 사소하다. 몸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실이 전해주는 내용이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 좋은 것을 해체하려고 들지?”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내 안에 이 좋은 것을 원하는 욕망을 거스르려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부 혹은 저항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것은 ‘필연’이다. 이 개념은 정신분석에 출몰하는 유령이 되었다. 충동은 정신분석에 꽤 늦게 도입되어 이미 존재하는 이론과 어울리지 않게 장착된 듯이 ...
Memo
2024. 08. 22
2
0
3

<어느 수학자의 변명>

전문적인 수학자가 수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우울한 경험이다. 수학자의 역할은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고 수학에 보탬이 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지, 자신이나 다른 수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예술가는 평론가를 경멸한다. 물리학자와 수학자도 대개는 이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다.창조하는 사람들이 해설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여주는 경멸보다 더 정당한, 경우는 없다.수학의 재능이 천국의 보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장 인색하게 주어지는 것만은 확실하다.수학은 다른 예술이나 과학 분야보다 더 젊은이들의 게임이다.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는 평균 연령은 수학이 가장 낮다. 세계 3대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뉴턴은 50세에 수학을 포기했으며, 그보다 오래전에 이미 열정을 잃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어떤 면에서는 발전했고 어떤 ...
Memo
2024. 08. 21
2
0
5

<낭만주의의 뿌리>

"어떤 경우이건 창시자 본인이 의도한 대로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하물며 단 한 가지 결과만 얻는 경우란 결코 없다"는 사실은 이사야 벌린의 저서에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논제이다. 벌린이 즐겨 인용한 칸트의 공식에 따르면, “비뚤어진 인간성의 재목으로 올곧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은 분명하다. 즉, 사상과 그 적용 사이의 간극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재는 척도라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 중 한 명이 흄이 대항계몽주의의 지적 무기고를 증강하는 데 동원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통상 ‘계몽주의’라는 이름의 ...
Memo
2024. 08. 21
1
0
4

<#가속하라>

역사 안에서 바라보면 발산은 임계 규모에 도달하고 있다. 매트릭스에서 바라보면 위기는 인류가 잘못 해석한 수렴이다. 가속주의는 한편으로는 최악의 정치, 즉 최악의 상황을 바라야 하고 단지 묵시록이자 빈 서판으로서의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를 냉소적으로 감수할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사망할 것이라는 단언을 시장에 대한 옹호로 대체할 위험이 있는데, 그리하여 이른바 시장 근본주의는 정치 권력에 빠져들게 되어버린 수동적 묵종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참으로 진보적인 정치사상, 물려받은 권위나 이데올로기 혹은 기존 제도에 아무런 신세도 지지 않은 사상을 구상할 수 있다는 주장.   절망은 자신의 적을 도착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현시대 좌파의 지배적인 정서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현시대 좌파는 신랄한 비난,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시위 그리고 유희적 파괴의 사소한 쾌락으로 자위하거나, 아니면 이론이라는 안전가옥에서 혹은 “비결정성”이라는 현대 예술의 자기만족적인 안개 속에서 자본 아래 인간 삶의 전면적인 포섭에 대한 우울한 “비판적”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저항을 구성한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관념으로 자위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역할이 자본주의 자체에 의해 접수되는 정도를, 특히 자율적 형태의 기계 자본이 발휘하는 ‘이차’ 생산력의 폭주 가속을 통해서 접수되는 정도를 과소평가한다. 그런 사태는 어떤 모순의 위기도 초래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생산력은 이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본을 위해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마르크스를 “자본의 쇠퇴에 대한 예언자”가 아니라 ...
Memo
2024. 08. 21
1
0

<광기와 천재> (2) - 조제프 푸셰, 네차예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혁명의 불길 속을 단 한 군데의 화상도 입지 않고 빠져나간 ‘정치적 동물’ 조제프 푸셰는 어떤 정신의 대표자이며, 어떤 유형의 개척자이다. 빈털터리로 시작해 정치의 생리를 철저하게 습득함으로써, 정치의 논리를 완벽하게 실천함으로써 그는 두려움과 더러움이 뒤섞인 늪지대에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했다. 조제프 푸셰의 이름에는 파충류의 점액질 같은 것이 묻어 있다. 인간이 가장 혐오하는 동물의 이미지가 그의 이름에 붙어 다닌다. 그는 소리 없이 움직이며, 어둠 속에서 하나의 목표물을 끈질기게 노려본다. 아무리 긴 침묵도, 아무리 억센 긴장도 그는 참을 수 있다. 때가 되면 이 미끈미끈한 포식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물을 제압하고 삼켜버린다. 그가 사라진 자리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허물도 없고 비늘도 없고 족적도 없다. 그가 사라진 걸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없다. 나폴레옹까지도 어떤 두려움을 갖게 하였던 푸셰의 특이한 천재성은 결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 무명의 국민공회 의원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인물인 동시에 또 가장 잘못 평가되는 걸출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책임감이나 정의감 따위의 고상한 가치를 제쳐놓고 한 인간을 오직 의지의 무게와 정열의 강도로만 평가한다면, 그가 천재라는 타이틀을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말한다. 그가 시대의 거인들, 이를테면 프랑스혁명의 인격적 표상이었던 로베스피에르와 불세출의 권력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붕괴시킨 제1의 배후 인물이었음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이 인간의 천재성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특별한 재능은 어느 날 갑자기 솟구친 것이 아니었다. 시련이 그를 단련시켰고, 경험이 그를 성장시켰다. 왕의 처분에 대한 안건을 놓고 표가 팽팽하게 갈렸다. 저울은 오랫동안 흔들렸다.   기회주의는 영리한 자의 것이지만 거기에 대담성이 덧붙여져야만 ...
Memo
2024. 08. 21
1
0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