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맞춰 새로워진 신화들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코스튬으로 신경증을 위장하고, 망토 아래 징후들을 숨기며, 이상을 감추고 사는 슈퍼히어로인지 모른다. 슈퍼히어로는 코스튬으로 가장한 우리 무의식의 인물들이 아닐까?
정신분석과 슈퍼히어로에게는 일단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서사의 문제다.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한 인물의 서사라면 정신분석은 개인을 다시금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는 서사다.
프로이트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방문한 1909년에 자신이 정신분석과 함께 ‘역병’을 미 대륙에 가져왔노라 말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인류의 악을 훤히 드러내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들은 새로운 신화를 불러왔다. 글로 쓰인 허구 속에 새겨진 이야기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과 실재에 대한 앎을 전달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란 말할 수 없는 채 남는 것, 상징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변죽을 울릴 뿐 결코 그것의 명확한 경계를 알 수 없다. 이 불가능성이 실재를 이상적 원동력으로 삼아 끝없는 이야기들을 만든다.
그들은 산을 들어 올리고 산더미 같은 의문도 불러일으킨다. 부모 없는 슈퍼히어로가 왜 이리 많은가? 슈퍼히어로의 변신은 어떤 식으로 우리 시대의 환상을 말하는가?
마블 유니버스에는 ‘이니그마 포스’라고 하는 힘이 존재한다. 이것은 숙주를 선택해서 한동안 그에게 태고의 우주에서 오는 힘을 몰아주는데, 이 시원적 힘은 숙주가 지닌 능력을 몇 곱절로 증폭시킨다. 정신분석학에는 ‘대타자’가 있다. 주체는 자기가 마주쳤던 최초의 전능한 이들(부모)에 대한 기억으로 타자에게 권력, 지식, 후광을 돌린다. 여러분이 누군가와 대결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굉장히 위압적이라고 치자. 위협이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여 아무런 위험이 없는데도 여러분이 기를 못 펴고 쩔쩔맨다면, 여러분은 대타자를 상대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소타자’에게 우리의 내밀한 우주에서 유래하는 시원적 힘을 우리가 몰아줘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최초의 타자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는 벌거벗은 갓난아기였을 때 우리의 전부였으니까. 우리는 그에게 이 힘을 투자하지만 그건 <우리의 의지나 그의 의지와 상관없다.> 이 대타자가 그 힘을 써서 우리를 난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재는 상징계에 포섭되지 않는 것, 표상과 상징에서 빠져나가는 것, 그렇기에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재는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실재는 벽이다.
거세는 슈퍼히어로가 자기보다 교활한 수단을 지녔거나 거의 신에 가까운 힘을 지닌 적에게 처절하게 패할 때마다 일어난다. 당시에 아프고 힘든 것도 모자라 때로는 흉터까지 남는다. 거세는 슈퍼히어로가 지붕에서 몸을 던질 때마다 떨쳐버리고 싶은 콤플렉스다. 그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한다면 그냥 추락해버릴 공산이 크다. 거세는 전능하지 못함, 한계 속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몇몇 비극적 에피소드에서는 거세가 매우 가혹한 방식으로 상기되기도 한다.
박쥐나 거미 코스튬을 착용하지만 자기가 박쥐나 거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이 사람은 신경증이다. 거세에 굴복해 있기에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서 취하지 못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타자가 하지 말라는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가끔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부양하고 불안을 내려놓기도 한다. 신경증은 불안과 욕망을 처리하는 위장된 타협이다.
주이상스는 좋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것이다. 아플 걸 알면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주이상스는 쾌락이나 고통을 초월한다. 그것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