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의 진짜 주인공, 진짜 주제, 진짜 중심은 힘입니다. 사람들이 행사하는 힘, 사람들을 종속시키는 힘, 그 앞에 서면 몸이 움츠러드는 힘 말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힘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자신이 지녔다고 생각하는 힘에 빠져들고 눈이 멀어서, 자신에게 행사되는 강제적 힘으로 인해 휘어져서 말입니다.
모든 인간 역사의 핵심 속에서,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힘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시에서 거울을 볼 겁니다.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거울을.
힘은 자신에게 종속된 사람을 사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끝까지 행사되는 힘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사물로 만듭니다.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엔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일리아스>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시하는 광경입니다.
“말들은 전쟁터의 길들을 따라 덜컹거리며 텅 빈 전차를 끌고 갔다. 흠잡을 데 없던 기마병들을 잃고서, 땅에 쓰러진 기마병들은 아내가 아니라 독수리에게 훨씬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영웅은 이제 전차 뒤에 먼지를 날리며 끌려가는 물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광경의 쓰라림을 있는 그대로 맛봅니다. 거짓된 위로로 윤색되지 않은 채로, 어떤 불멸성도 위안도 없이, 영광의 조국 같은 무의미한 광채 없이.
사람을 죽이는 힘은 단순한 힘, 정제되지 않은 힘입니다. 다른 힘, 사람을 죽이지 않는 힘은 그 펼쳐짐이 얼마나 다양하고 효과들이 얼마나 놀라운가, 하지만 그 힘 또한 ‘아직’ 죽이지 않은 힘일 뿐입니다.
승리를 결정하는 건 사람들이 갖는 가치가 아니라 제우스의 황금 저울이 대변하는 맹목적 운명이다.
“그때 아버지 제우스가 황금 저울을 펼쳤다. 모든 걸 쓸어버리는 죽음의 운명 두 개를 그 위에 올려놓으니, 하나는 말 사육자 트로이아인들의 운명, 하나는 청동 갑옷 그리스인들의 운명이었다. 그가 저울 중간을 잡자 그리스인들의 파멸의 접시가 기울었다.”
맹목적이기 때문에 운명은 일종의 정의를 확립합니다. 그리고 무장한 사람들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 형벌로 다스리는 이 정의 또한 맹목적입니다. <일리아스>는 복음서보다 훨씬 앞서 거의 똑같은 용어들로 그런 정의를 제시합니다.
“아레스(전쟁의 신)는 공정합니다. 그는 죽이는 자들을 죽이니까요.”
힘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런 저항도 없는 공간을 걸어 나갑니다. 그 주변의 인간 물질 가운데 그 어떤 ...
